대림절 3주 주일설교. 내 영혼이 찬양하며 내 마음이 기뻐하며 (누가복음 1장 46~56절) 김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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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림절 세 번째 주일로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마리아의 찬가’ 부분을 함께 보겠습니다. 누가 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이야기 뿐만 아니라 세례요한의 출생 이야기도 함께 나옵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으로 아기를 잉태하게 된 마리아가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찾아 간후에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아기를 가진지 6개월쯤 지난 후였고, 마리아는 이제 막 아기를 가진 상태였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그간에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을 설명해 주고, 자기도 심히 믿기 어렵고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는 고백을 하면서 순종함으로 감당해 나가기로 했다는 말을 들려 줍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통해 아기가 잉태된 과정을 듣고서 성령 충만함으로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축복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마리아와 함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큰 환대와 축복의 말을 들은 마리아는 화답하여 찬가로 영광 돌리는 장면이 오늘 본문입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내려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는 하늘의 말씀을 들었고,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고백을 한 당사자이자 아기를 가진 엄마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찬가를 부르며 영광 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직접 아기 예수 탄생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기록된 말씀으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서만 이 찬가를 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성령이 와 계시고, 성령으로 깨닫고 하시고, 성령으로 감동 주셔서 얼마든지 마리아와 같은 심정으로 찬가를 올려 드릴 수 있도륵 은혜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마리아의 찬가가 곧 아기 예수를 영접하며 고대하는 우리 모두의 대림의 소망 위에 충만하게 역사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미라아의 찬가 46~48을 읽어 드립니다.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아멘.
이 마리아의 찬가는 라틴어로 “Magnificat anima mea Dominum!(마(그)니피캇 아니마 메아 도미눔/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오며 / My soul magnifies the Lord)”이라고 시작하는데 앞 글자를 따서 마리아의 ‘찬가를 ’Magnificat(마(그)니피캇)’이라고 부릅니다. 마그니피캇은 ‘찬미하다(magnify)라는 뜻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리아의 찬가라고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찬미라는 용어도 사용하는데, 찬가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가사로 불려지는 노래이고, 찬미(찬양, Hymn)는 일반적인 가사로 불려지는 노래입니다. 다만, 둘 다 모두 성령의 감동으로 작사 작곡 되고 불려지기 때문에 감동 가운데 소리 높여 영광 올리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용어 자체를 이해 하시고 구분해서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리아가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를 기뻐하며”라고 찬가를 부른 것은 너무나 감격적인 하늘의 은혜, 은총을 받은 것에 대한 감동적인 고백을 올려 드린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을 맞이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이러한 큰 은혜의 고백이 솟아올라오기를 바랍니다.
은혜가 무엇일까요? 은혜라는 단어가 의미상으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부 하나님 앞에서 원죄와 자범죄를 저지르며 살아가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선물은 커녕 죄로 더럽혀진 우리들은 매 맞고, 징계 받고, 멸망 받을 심판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당장이라도 꺼지지 않는 지옥에 던져져 버리는 영벌에 처해질 자들이었습니다.
당장 영벌에 던져지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긍휼과 인자하심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 탄생이 없었다면 우리에게는 비참한 결말 만이 예상 될 뿐이었습니다.
진짜 심각한 것은 우리가 그러한 멸망의 대상이라는 것조차 하나도 느끼지 못하면서 완전 무감각하게 인생을 허랑방탕하게 보낸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불순종, 불신앙으로 살아가면서 은혜 받을 자격이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내 자신은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면서 “복 내려 주세요, 소원 들어 주세요, 잘 되게 해 주세요” 허공에 대고 외치며 살았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에 관하여서는, 죄에 대하여서는, 모르는 것이 약이 아니고 모르는 것, 알지 않으려는 것,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최대의 불행이자 최고의 불순종의 죄악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우리는 다 이런 처참한 지경에 빠진 자들이었습니다. 앞서 은혜의 의미를 설명 드렸는데, 저는 그런 단어적인 의미 보다 은혜라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찾아와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이 은혜중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무엇 보다도 내가 오시라고 초청하지도 않았음에도 나를 지목하며 찾아오시려고 창세 전에 계획 하시고, 그 찾아오심을 기꺼이 기쁨 가운데 실행 하셨다는 것이 은혜중의 은혜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우리를 향하여 찾아 오신 것은 내 인생 일대는 물론이고 온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은혜중의 은혜입니다. 이 날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얼마나 소름끼치도록 감동적인 절기인지 깨닫게 되었으니 그저 머리 숙여 감사할 뿐입니다.
마리아가 느낀 감정이 바로 이러한 감격, 감동, 감사였을 겁니다. 그 찾아오심을 간접 체험한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체험한 마리아의 감동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찬 감동 이었을 겁니다.
마리아가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를 기뻐하며” 라고 찬가를 부를 때의 느낌이 어느 정도 였는지 우리는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는 크나 큰 은혜를 받게 된 심정을 48절에 담아 찬양했습니다.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아멘.
마리아가 자신을 ‘여종’이라고 부른 것은 그가 평소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생활이 얼마나 습관화 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여종이라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일컬어 ‘비천’하다고 했습니다.
‘비천’이라는 단어는 천하다, 상스럽다, 등급(품질, 수준)이 낮다, 생각이 얕고 보잘 것 없다는 뜻입니다. 비천 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제일 처음 등장한 것은 유다 왕국이 멸망 당할 즈음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세 번에 걸쳐 침공하여 수 많은 지도자와 왕궁 사람들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들은 다 잡아가는 상황에서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4:14)라고 했습니다. 비천한 사람들은 포로로도 잡아가지 않았습니다. 딱 봐도 힘 없고, 병들고, 연약하여 내버려 두어도 그냥 죽게될 사람들이 비천할 자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항상 바닥에 엎드려 간구해야 하는 비천한 자라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자세와 태도는 자기 자신은 긍휼과 자비와 인자와 은혜를 받지 않으면 도저히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강력한 보호하심을 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간절함이 베어 있습니다.
또한 그녀가 평소에 하나님을 최고로 존귀하고, 고귀하고, 성결하고, 참 되신 분으로 가장 높게 영광 돌리는 찬양을 수시로 해 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마리아의 평소 신앙습관이 이러하였기에 하나님은 그녀를 선택하여 은혜를 입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낮은 자를 높이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없는 자를 부하게 하시고, 비천한 자를 존귀하게 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분이십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비천한 존재 였는지 잊지 않는 말아야 하며, 그 과거를 지속적으로 고백하며 영광돌리는 삶을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리아의 고백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해 보시면 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를 기뻐합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습니다. 나는 은혜 받은 자요, 은혜가 있는 자요, 은혜를 누릴 자입니다.”아멘.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 죄의 노예, 사탄의 종으로 살아가는 비천한 존재 였지만, 이제는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존귀한 존재로 변화 되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주를 기뻐 하며”라는 찬가를 입에 달고 살면서 예수님의 찾아 오심의 은혜를 일평생 잊지 아니하고 영광돌리는 습관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리아의 찬가 첫 번째 고백이 ‘은혜’ 였다면, 두 번째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긍휼’을 구하는 고백입니다. 49~50절을 읽어 드립니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아멘.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신 일은 참으로 크신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죄에서 건져내서 살려 주시려고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 하셨다는 것은 큰 일이라고 표현하지도 못할 정도로 충격적인 대 사건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 각자가 입은 은혜는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지난 번 제가 설교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라고 누군가 나에게 물어 본다면 내 자신이 그 증거라고 말하면 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내 자신의 삶에 갑자기 찾아 오시고 믿음과 은혜와 용서를 선물해 주신 것 자체가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났는데 어찌 하나님이 안 계신 분이라고 거짓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토록 큰 은혜를 받은 대 사건을 경험하고도, 헤아릴 수 없는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사건을 잊어 버리고, 그 은혜를 다 빼앗겨 버리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은혜는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받고, 계속 받고, 더 채우고, 계속 채워가는 것이 중요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 없는 은혜를 충만하게 주시기에 충분하신 분이기에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여 가는 것이 진정으로 은혜 받은 자의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우리보다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마리아 자신도 그 크신 은혜를 지켜가는 것이 중요했기에 일평생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기 위한 다짐의 마음을 담아 50절의 찬가를 올려 드렸습니다.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아멘.
이 말씀 속에서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여 가는 공식이 나옵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삶을 사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구하며 회개하는 삶을 사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내가 받은 은혜를 소중히 여기며 그 은혜가 대대로 이어지도록 간절한 기도를 드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은 은혜가 금방 소멸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더 이상 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은혜의 공급이 중단 됩니다. 은혜를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간절한 간구와 기도가 멈춰진 사람에게는 자신은 물론이고 자녀들에게 대대로 내려지는 은혜는 끊겨 버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으로, 긍휼을 구하며, 간절하게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은혜를 은혜 답게 여기며, 은혜를 대대로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받은 그 큰 은혜를 대대로 지켜 가기를 원했으며, 그렇게 하며 살겠다는 굳은 결심을 찬가로 올려 드린 것입니다.
“은혜 아니면 살아 갈 수가 없네,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였소”라는 찬양을 많이 부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큰 은혜를 단 번에 주셨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더 큰 은혜, 더 많은 은혜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 은혜를 계속해서 누려 갈 수 있는 핵심은 회개하며 긍휼을 구하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마리아와 같이 대대로 은혜를 누리고, 지켜 가겠다는 마음을 가지시고 두려움으로, 매일같이 진실하게 회개하고 긍휼을 간절하게 구하며,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며 살아가시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은혜와 긍휼에 이어서 마리아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찬가를 올려 드렸습니다. 51~53절을 읽어 드립니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아멘.
하나님은 언제나 공평 하시고, 공의로우시고, 섭리하시고, 반드시 믿음과 행위에 대해 심판 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이 적용이 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오히려 그 은혜 받은 것으로 인해 엄격하게 적용이 될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받은 은혜로 인해 마음이 교만해 지거나, 권세를 누리려고 하거나, 부유함을 탐내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자칫 흔들릴 수 있는 마음 상태를 진정 시키고 굳건한 믿음을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지금 영혼이 기뻐하고 마음이 찬양하는 이 마음과 자세가 변해 가는 것을 극히 경계했습니다.
교만하고, 권세를 누리며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자기 배만 불리려고 욕심만 부리는 자는 가장 천국에 합당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거침 없이 비판했습니다. 그 대상이 헤롯과 같은 권력자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너무나 잘 안다고 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더욱 강도 높게 비판했음을 기억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통하여 주신 믿음, 은혜, 용서라는 큰 선물에 대하여 마지막 심판날에 내가 너에게 준 그 믿음, 그 은혜, 그 용서가 어디에 있느냐? 라고 반드시 물어 보실 겁니다.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는 것보다 심판대 앞에서 공평과 정의로 행사하시는 심판자를 늘 의식하며 그 때를 대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아가라고 은혜를 내려 주셨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은혜, 긍휼, 그리고 공평과 공의로 이어지는 마리아 찬가의 마지막은 약속의 성취로 이어집니다. 54~56절을 읽어 드립니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아멘.
54절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를 행사하시고 심판하시는 무서운 분이시지만 하나님의 기본 성품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심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다움의 진짜 팩트는 신실하신 하나님 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신실하심의 정점에는 약속과 성취를 반드시 이루어 가시는데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 흔들려서, 금방 바뀌고, 틀어지고, 깨트려 버리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 그대로,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하셨던 약속 그대로를 전부 이루어 가시고 계십니다. 그 신실하신 약속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으로 나타났습니다.
“말씀 하신 것과 같이 영원히 하시리로다” 마리아는 이러한 영광을 올려 드리면서 자신의 배 속에 있는 아기가 영원한 약속의 증거임을 굳게 믿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서 발람 선지자가 예언 하기를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하시고자 계획 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로마서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셨고, 미리 정하셨고, 부르셨고, 의롭다 하셨고, 영화롭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계획의 과정은 반드시 이루어져 갈 것이며, 그 대상이 우리에게 적용 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한 일입니다.
한 번 구원, 한 번 자녀, 한번 의인의 약속이 나에게 임한다면 그 약속은 영원한 약속으로 성취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을 명심 해야 합니다. 한 번 멸망, 한번 불순종의 자녀, 한 번 악인으로의 약속이 나에게 임한 다면 그 약속 또한 반드시 성취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약속의 자녀이자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증거와 증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살아갑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말씀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이 자신과 후손들에게 영원히 함께 하시리라고 찬양 했습니다. 그 찬양대로 우리는 임마누엘의 예수님과 함께 약속의 동행을 이루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마리아의 찬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마음에 깊이 새기며, 습관적으로 고백하며 부르기에 너무나도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고백입니다. 구원자가 찾아오신 은혜에 영혼이 찬양하며 마음이 기뻐하는 고백을 매일 같이 드리며, 두려움으로 긍휼함을 간절히 구하며, 공평과 정의를 행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순종으로 살아가며,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분과 거룩한 동행을 해 나가다 보면, 우리는 반드시 천국문 앞에서 두 팔 벌려 우리를 기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마리아의 찬가가 여러분 모두의 찬가, 그리고 내 자신의 영원한 찬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대림절 남은 기간 동안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주를 기뻐하며” 은혜와 긍휼과 공의와 양속을 행사하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겸손한 마음으로 초청하여 기다림의 소망이 충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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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마리아의 찬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 돌리며 찬양과 기쁨으로 나아가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의 영혼과 마음에 더욱 풍성한 찬양과 기쁨을 충만하게 채워 주셔서 날마다 영광의 고백을 드리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만남의 소망으로 인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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