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믿음의 밭을 만들어봐요 = 신명기10;1-11(231217) 한상원 목사
PW : 믿음 BIW : 좋은 밭을 만들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좋은 믿음의 밭을 만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다.
손님은 왕이다!
어느 날 어느 임금님께서 암행사찰을 나섰습니다.
이때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가 임금의 호위무사가 되어서 임금님을 호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막에 들렀다가 벽에 붙은 글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벽에는 ===손님은 왕이다!===라는 글귀가 써 있는 것입니다.
그 글귀를 본 사오정이 임금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하..., 들켰사옵니다....”
어느 전직 대통령께서 골프장에 예약도 없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에 안내하던 여직원이 당황하여 이런 인삿말로 맞이했습니다.
“전....하..., 어서 오시옵소서!”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향햐여 “주님 전......하....., 오서 오십시요! 주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 오늘 우리 교회와 가정과 생업터전과 나의 삶에 찾아와 주시옵소서!”라고 인사 여쭐 수 있는 주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과 생각과 우리의 모든 곳에 왕이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좌정하시고 왕으로 모셔드릴 수 있는 주일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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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성령 받지 말고 목회해라.”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미치광이요 정신병자인 도올 김용옥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김용옥이라는 사람은 신학교 교수이기도 하다. 방송에서 성경을 가르친다.
신학교 교수요 성경을 가르친다 해도 성령을 받지 않으면 성경을 온전하고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한다.
성경을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말씀으로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아무리 해박한 지식으로 강의한다 해도 엉터리, 가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성령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아야만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전하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으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려는 믿음의 자세, 삶의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의식체계가 형성되어야만 한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을 들고 시내산을 내려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라고 하면서 추악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두 돌판을 던져서 깨뜨려 버린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을 던져서 깨뜨리면서 아론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장로들, 지도자들을 책망한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을 깨뜨려 버린 모세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는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켜나가는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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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두 돌판과 언약궤를 만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1-2절에서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궤 하나를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쓴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으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전에 시내산 정상에서 직접 모세에게 만들어 주셨던 십계명의 두 돌판과 똑같은 돌판을 만들어서 가지고 시내 산 정상으로 올라오라고 말씀하신다.
두 돌판을 만들어서 가지고 시내산 정상으로 올라오면 그 돌판에 먼저 써 주셨던 십계명을 다시 써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그 돌판을 가지고 내려와서 언약궤에 넣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직접 돌로 글을 쓸 수 있는 판을 만들고, 그 돌판을 넣어서 운반할 수 있는 법궤, 언약궤를 만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전에는 십계명의 두 돌판을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서 십계명을 써주셨기 때문에 모세는 시내산에서 무거운 돌판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은 약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첫 번째 주신 돌판을 모세가 던져서 깨뜨려버렸기 때문에 두 번째 돌판은 모세가 직접 만들어서 가져오라고 하신다.
모세는 지난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살았던 목자이다.
모세는 돌로 여러 가지를 만들어내는 석공 출신이 아니라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드로의 양떼들을 치던 목자 출신이다.
목자 출신이 석공들도 만들어내기 힘든 십계명의 돌판을 만들어내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세는 돌을 깎아서 글을 쓸 수 있는 판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제대로 된 돌판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어떻게 모세가 돌판과 언약궤를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씀하셔야지 할 줄도 모르는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전능하시고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십계명의 돌판을 인간인 내가 어떻게 만들 수 있겠나?
처음 돌판도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두 번째도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셔야 옳지 않나?
시간도 너무 급하다. 내일 아침 시간까지 만들어내려고 하면 난 도저히 해낼 수 없다.
돌을 다를 줄 아는 기술자, 기능공, 석공도 아니고 목자 출신인 내가 무슨 재주로 내일 아침 해뜨기 전까지 그 어려운 돌판을 두 개씩이나 만들 수 있겠는가?
십계명의 돌판은 다른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오직 모세만 보았기 때문에 재능 있는 다른 사람에게 돌판을 만들라고 부탁한다 해도 그들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똑같이 만들어낼 수 없다.
대신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석공으로 하여금 도움을 받게 하신다.
브살렛과 오홀리압 같은 훌륭한 재능을 가진 석공들을 붙여주어서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돌판을 만들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다.
브살렛과 오홀리압은 모세가 정해준 규격을 따라서 조각목과 순금으로 법궤를 만들게 된다.
하나님은 일꾼을 붙여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재능을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맡겨진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맡겨질을 수행하는 결과를 요구하시는 분이다.
첫 번째 돌판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셨지만, 두 번째 돌판은 직접 모세의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돌판에 대하여 더욱더 진한 애정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을 주신다.
시내산 밑에서 자신이 직접 만들어서 시내산 정상까지 가지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전에 올라갈 때보다 더 힘들고 어렵다.
정상에서 십계명의 돌판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도 쉽지 않고 어려운 일인데, 이번에는 80세가 넘은 노인이 두 돌판을 산 밑에서 만들어서 가지고 시내산 정상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몇 갑절 더 힘들고 어렵다.
그래도 자신이 만든 돌판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 십계명을 직접 새겨 주신다고 하시니 기쁘고 영광스럽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너무나 감사하고 고맙다.
② 직접 십계명을 써 주시는 하나님.
모세가 만들어서 들고 올라간 그 돌판에 하나님께서 직접 능력으로 십계명을 서 주신다.
하나님께서 구름 가운데 시내산 정상으로 강림하신다.
모세와 함께 시내산 정상에 서신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출애굽기 34;6-7에서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가 들고 간 돌판에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십계명을 써 주신다.
북한의 유명한 산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많다.
특히 금강산에는 유명한 바위들이 많다.
전에 금강산을 올라가 보니 커다란 바위든, 작은 바위든 바위마다 김일성, 김정일이를 찬양하는 글을 커다랗게 새겨놓은 것을 보았았다.
수많은 일꾼들을 동원하고 생명을 빼앗아 가면서 김일성, 김정일이를 신으로 찬양하는 글을 새겨놓았지만, 시내산에서는 하늘 아버지께서 직접 모세가 만들어 온 돌판에 십계명을 기록해 주시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삶의 원리가 되는 십계명을 절대로 변할 수 없는 돌판에 기록해 주시는 것이다.
십계명을 돌판을 만드는 것보다 쉽게 나무나 파피루스로 글을 쓸 수 있는 판을 만들어서 그것에 십계명을 써 주셔도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나무나 파피루스에 십계명을 기록해 주시지 않고 돌판에 기록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돌판에 써 주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 십계명을 써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십계명은 절대로 바뀌거나 변할 수 없는 절대불변의 원리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어떤 무리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십계명 중에서 제2계명은 자기들 임의로 빼버리고 열 번째 계명을 두 개로 쪼개어서 10가지 계명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은 절대 불변의 원칙을 따라서 오직 삼위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주권을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수시로 변하는 상황이나 지역이나 인종이나 문화나 사상에 의해서 이리저리 바뀌고 변하는 것은 절대불변의 진리가 될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절대불변의 원칙과 진리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신앙생활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죄인 세계로 강림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분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분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인자를 1000대까지 베풀어주시는 분이시다.
우리 하나님으 죄악과 과실을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대가를 지불하도록 요구하시는 분이시다.
③ 안전하게 보관하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2절에서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으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법궤, 언약궤를 만들고 두 돌판을 언약궤에 넣어서 안전하게 잘 보관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하신 법궤는 브살렛과 오홀리압이 주도하에 길이가 두 규빗 반 = 113cm, 넓이는 1규빗 반 = 68cm, 높이는 1규빗 반 = 68cm 크기로 만들어진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조각목으로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정해주신 규칙에 맞추어서 법궤를 만들고 조각목에 순금으로 안팎을 둘러싸고, 금테를 만들고, 각각 고리를 만들어서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옮길 수 있도록 만든다.
또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든다.
순금으로 그룹 두 개를 만들어서 그룹의 두 날개로 앞뒤로 감싸도록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법궤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을 넣어서 잘 보관하게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보관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과거에는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셨다.
교회를 갈 때도 성경을 꼭 가슴에 품고 교회를 다니기도 했었다.
집에서도 성경을 아주 귀하게 여기면서 성경을 읽으면서 신앙 생활하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성경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가 사라져 갔다.
간혹 당근마켓에서 성경을 팔겠고 매물로 내놓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련하게 아프다.
성경을 팔겠다고 매물로 내놓는 당사자는 더 이상 신앙 생활하지 않아서, 성경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져서 팔겠다고 매물로 내놓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성경을 매물로 내놓는 현상을 보면서 왠지 가슴이 아프고 저려온다.
이젠 성경이 귀찮은 존재가 되었구나 싶기도 하다.
정말 삼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신앙 생활하는 성도님들이라면 성경을 아주 소중하게, 귀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성경을 가까이하고 사랑하고 사모하고 온몸으로 느끼고 고백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신앙인들은 얼마나 많이 성경을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 신앙인들은 얼마나 성경을 가까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신앙인들은 얼마나 성경을 알고 읽고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지키고 순종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들 자신에게 자문자답해야 한다.
우리들 자신에게 자문자답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올려드릴 수 있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④ 언약궤를 메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8-9절에서 “그 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 궤를 메게 하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으니 그 일은 오늘까지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레위는 그의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하게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들을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게 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에게는 특별히 기업도 없고, 분깃도 없는 대신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의 기업이 되어주신다고 말씀하면서 레위 지파가 언약궤를 메고 이동하도록 지정해 주셨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레위 지파 중에서도 고핫 자손에게 법궤, 언약궤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는 성물들을 어깨에 메고 이동하면서 운반하는 사명을 맡겨주신다.
언약궤를 어깨에 멘다는 것은 레위 지파 사람들의 헌신, 특히 고핫 자손들이 온전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레위의 고핫 자손들에게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하게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의 기업과 분깃이 되어주시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이 되어주신다.
하나님은 온전하게 삼위 하나님을 향하여 헌신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직접 기업과 분깃이 되어주시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이 되어주신다.
경제적인 문제, 건강의 문제, 안전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가정의 문제, 교회의 문제, 나라와 민족의 문제까지도 하나님께서 직접 간섭하시면서 채워주시고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L4 & B4
하나님께서 십계명의 두 돌판을 받은 모세에게 언약궤를 만들어서 그 언약의 두 돌판을 언약궤에 넣어서 보관하고 고핫인들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말씀하셨다면,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실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좋은 믿음의 밭을 만들기를 원하신다.
모세가 두 개의 돌판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십계명을 다시 받기 위해서이다.
법궤, 증거궤를 만드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의 말씀을 담아서 보관하기 위해서이다.
곧 하나님의 말씀, 축복의 말씀, 언약의 말씀을 받아서 축복받기 위해서 돌판을 만들고 법궤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돌판과 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보관할 수 있는 법궤를 만들면 된다.
그 법궤는 바로 신앙인들의 좋은 믿음의 밭이다.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하여 4 종류의 밭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길가와 같은 밭,
돌짝밭과 같은 밭,
가시떨기와 같은 밭,
그리고 좋은 밭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길가밭과 돌짝밭과 가시떨기의 밭에는 결실을 맺을 수 없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는 목적은 많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길가밭, 돌짝밭, 가시떨기밭에는 결실을 기대할 수 없다.
농부가 많은 결실을 기대할 수 있는 밭은 좋은 밭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곧 좋은 밭에 뿌려진 씨앗만이 싹이 나고 자라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좋은 밭은 어떤 밭인가를 가르쳐 주신다.
예수님은 좋은 밭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믿음의 마음이라고 해석해 주신다.
마태복음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누가복음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곧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좋은 밭이 될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닫는 마음이라고 하신다.
이것은 곧 착하고 좋은 믿음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이 언약의 말씀, 축복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 좋은 믿음의 밭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들이 좋은 믿음의 밭을 만들 때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말씀, 축복의 말씀, 은혜의 말씀, 치유의 말씀, 회복의 말씀, 문제해결의 말씀을 듣고 받을 수 있게 된다.
돌은 변하지 않는다.
돌은 세월이 바뀌고, 역사가 바뀌어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의 말씀을 쉽게 찢어지고 타버리는 종이에 주지 않는다.
쉽게 타버리는 나무에 새겨 주지 않는다.
하나님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돌판에 하나님의 말씀, 언약의 말씀, 축복의 말씀을 주시듯 우리들도 어떤 상황이든지, 어떤 처지가 되었든, 세월이 어떻게 바뀌든, 누가 되었든 절대로 바뀔 수 없는 좋은 마음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원망하는 마음이 아니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불평하는 마음이 아니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자신의 처지와 환경에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불순종하는 마음이 아니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이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용서하고 감싸주시고 사랑해 주는 마음이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거역하는 마음이 아니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대적하는 마음이 아니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면서 받아드리는 마음이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소극적으로 낙심하고 좌절하는 마음이 아니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와 은혜와 사랑을 기대하는 마음이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아니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늘 작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심을 믿는 믿음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는 마음이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고 사모하며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마음이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시든 그 말씀에 아멘 아멘 아멘 아멘 하면서 받아먹는 마음이다.
좋은 믿음의 마음은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마음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 좋은 마음의 밭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좋은 마음의 밭을 만들고 하나님 앞으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우리들의 마음 밭에, 영혼에 새겨 놓아주신다.
하나님께서 새겨 주시는 말씀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새겨 주시는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새겨 주시는 말씀은 우리들에게 축복으로 쏙쏙 들어온다.
그럴 때 우리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서 30배, 60배, 100배, 1000배, 10000배의 결실을 믿는다.
우리들은 누가 뭐해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축복의 주인공, 축복의 통로, 축복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가득 채워진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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