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나라가 임하시오며(마6:9-15)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는 중보자에 따라 결정된다.
중보자가 사람이라면 그에게 속한 백성들은 종(머슴)이다.
그러나 중보자가 하나님 아들이라면 그에게 속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아들(자녀)이다.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속하여 여호와의 백성이다(고전10:2).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종(머슴)인 백성이다.
이는 하나님과 관계에 휘장의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안방인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한다.
제사장과 그들이 들어가는 한계는 휘장 밖 성소까지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은 아래로부터 나서 육신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중보자 모세가 증거한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겼다.
그들은 대제사장 아론이 나아가는 방식대로 여호와를 섬겼다.
이것이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대하신 방식이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옛 세상에 대한 율법의 통치질서이다.
따라서 아무리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더라도 죄를 없이 하지 못한다.
이는 율법은 그 아래에 있는 자를 온전케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는 율법 아래에서 종(머슴)을 하나님 아들(자녀)로 세우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모세가 똑똑하고 완전해지더라도 예수가 될 수 없다.
이것이 옛 통치질서인 모세율법의 한계이다.
그래서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속량하셔서 아들로 세우시기 위함이다(갈4:4-5).
그런데 개혁주의 신학(칼빈주의 신학, 장로교 신학)은 예수께서 율법을 지키셨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율법을 지킨 의를 믿는 자에게 전가하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율법을 지켜서 얻은 의는 율법의 의일 뿐이다.
율법의 의로는 종말의 천국, 곧 아들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성경은 예수께서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은 산헤드린공회의 예수에 대한 판결이 그 증거이다.
산헤드린 공회는 두 증거를 들어서 예수가 사형에 합당하다고 판결하였다.
두 증거는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이라고 하신 것과(마26:63-64)
이 성전을 헐면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고 하신 주장이다(마26:61).
이러한 예수의 주장은 모세율법과 제도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내용이다.
주기도문은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와 대비되는 천국 백성의 기도이다.
주기도문 가운데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도내용이다.
하나님 나라는 역사의 진행을 따라 완성을 향하여 발전한다.
예수의 공생애를 생각해 보라.
유대 사회에는 율법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사회이다.
율법 아래에서 먼저 되고 큰 자들이 모세율법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사회이다.
모세율법은 문둥병자와의 접촉을 엄격하게 금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고 말씀하신다(마8:3).
그리고 깨끗해진 문둥병자에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서 저희에게 증거하라”
고 말씀하신다(마8:4).
또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비판하는 문맥에서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라”
고 말씀하신다(마23:23).
깨끗해진 문둥병자의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서 백성들에게 확인시키는 일,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율법의 통치를 인정하는 말씀이다.
이는 기존의 율법통치를 인정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율법의 통치는 공생애 동안까지만 유효하다.
그리스도의 구속이 완성되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율법이 금하는 문둥병자를 의도적으로 접촉하신다.
그리고 율법에서 언급하지 않는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가르침은 율법이 엄격하게 금하거나 율법에서 언급하지 않는 내용이다.
이러한 말씀은 율법과는 전혀 다른 가르침이다.
이처럼 예수의 공생애 기간은 기존의 율법통치와 그리스도의 통치가 공존한다.
왜 예수께서는 모세율법과의 공존을 허용하시는가?
율법은 하나님의 엣 통치질서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이 완성되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통치가 종말의 통치질서로 확립되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공생애 기간은 율법의 통치와 그리스도의 통치가 중첩되는 과도기이다.
공생애 기간은 율법통치가 그리스도의 통치로 이전되는 과도기이다.
그렇다면 언제 그리스도의 통치가 종말의 질서로 확립되는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후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이후에야 율법통치는 완전히 종결된다.
율법이 명령하는 각종 짐승 제사와 예물, 십일조 명령도 영원히 폐기된다.
그리스도의 구속이 완성된 후에는
옛 백성과 세상에 대한 율법의 통치질서,
곧 시간과 날, 사람에게 있던 모든 장벽과 간격은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유가 하나가 된다.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가 세례요한이다.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고 외치며 회개의 세례를 베푼다(마3:1-12).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백성들이 천국 왕을 맞이하도록 준비시키는 일이다.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공식적으로 천국 왕에 취임하신다(마3:13-17).
천국 왕에 취임하신 후에는 사탄과의 세 번의 전투에서 승리하신다(마4:1-11).
이후에 천국 왕께서는 공식적인 사역을 시행하신다.
비로소 예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고 외치시고(마4:17),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천국의 서기관으로 세우신다(마4:18-22).
예수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율법이 시행되는 땅에 오심으로,
예수께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는 가르침과 사역을 통해서,
구약의 하나님 나라와는 다른 천국이 임하였음을 말한다.
이처럼 기존의 율법통치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심으로 종결된다.
옛 선지자를 통해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고 말씀하시던 율법 시대는 종식된다.
이제 예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자기 백성을 대면하여 말씀하시는 방식이다.
이는 휘장의 장벽이 없이 자기 백성과 교제하는 새 시대의 시작이다.
이는 율법통치가 종결되고 하나님의 직접통치가 시작되는 선언이다.
이는 모세의 말로 경영되었던 율법 나라가 종식되고
아들의 말이 시행되는 종말의 천국이 시작되는 말씀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와 통치권을 가리킨다.
이는 하나님의 뜻과 경륜이 시행되는 영역을 가리킨다.
구약의 하나님 나라는 율법이 시행되는 다윗왕국이다.
그러나 신약의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말이 시행되는 아들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나라가 임하옵시며 라는 기도내용은 그리스도의 통치가 시행되기를 구하는 내용이다.
이는 율법통치가 아니라 예수께서 천국 왕으로서 다스리기를 구하는 내용이다.
이는 모세율법(구약성경)과는 다른 참되고 온전한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기를 구하는 내용이다.
예수 당시의 하나님 나라는 어떤 것인가?
왕의 임함은 곧 나라의 임함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하나님 아들이다.
그는 종말의 중보자이며 대제사장으로 율법 아래에 보냄을 받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다 백성들처럼 세례를 받으시고 천국 왕에 공식적으로 취임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을 부르셔서 천국의 서기관으로 세우신다(마4:18-22).
따라서 예수 당시에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이는 예수와 함께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이는 천국 왕이 계신 그곳이 곧 천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예수께 나아와서 거하는 것이다.
천국 왕의 초대에 응하여 그를 따르는 것이다.
천국 왕께서는 나라의 생명을 따르는 백성에게 선물하신다.
그것이 온 갈릴리에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들을 고치신 일이다(마4:23-25).
이러한 천국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는 완전하게 된다.
이는 예수께서 교회를 성소 삼으셔서 부활의 영으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설립하신 종말의 천국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은 당시의 제자들과 무리에게만 행하신 한 사건이 아니다.
이는 새 시대의 출발점에서 시행하신 일이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우리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이처럼 종말의 천국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완성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심을 통해서 시작되고,
공생애 동안 예수 사역을 통해서 나타나서 시행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완성되어서 온 세상에 편만하게 된다.
따라서 나라가 임하시오며 라는 기도는 율법통치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통치 가운데 거하기를 구하는 기도이다.
이는 죄 아래에서 살지 아니하고 하늘의 질서 안에서 살기를 구하는 내용이다.
이는 모세율법(구약성경)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복음을 따라 하늘의 아버지를 섬기기를 구하는 내용이다.
이는 모세의 나라 백성으로 남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나라 백성으로 살기를 구하는 내용이다.
주기도문은 기도의 모델이 아니다.
이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나라를 섬기도록 주신 기도문이다.
이는 이스라엘 조상들처럼 율법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도록 주어진 기도문이 아니며,
율법이 명하는 바를 따라 사람에게 보이도록 하는 기도문도 아니고,
성전에 계신 여호와를 섬기라고 주어진 기도문도 아니다.
주기도문은 천국 왕께서 천국 설립식에서 가르치신 기도이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종말의 천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나라 질서와 특성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은 이스라엘의 회당 기도와 대비된 천국 백성의 기도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예수께서는 따르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나타내셨다(마11:26-30, 눅10:21-24).
이는 예수께서 아버지를 온전히 아시고 아버지의 일을 행하시는 그 아들이기 때문이다.
주기도문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제자들의 아버지가 되심을 가르치셨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심은 종말의 구원이며 복음 내용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늘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아들(자녀)의 기도를 들으시며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자녀) 사이에는 아무런 장벽이나 가림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종말의 천국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불러서 기도하며 섬기는 나라이다.
천국 백성은 하나님과 하나가 된 가족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예배공동체이다.
주기도문의 각 항목은 별개가 아니라 상호 연관되고 서로를 설명한다.
천국 백성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한다.
그들은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하나님 나라가 임하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
이러한 기도는 천국을 봉사하는 나라 백성의 경건이다.
기도는 아버지께 드리는 찬양과 경배이다.
이는 하늘의 아버지께 대한 신앙 고백이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일이기도 하다.
왕과 나라는 하나이다.
왕은 곧 나라 자체이다.
그러므로 왕의 임함은 곧 나라의 임함이다.
이에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을 선포하셔서 자신의 말이 시행되는 천국을 설립하신다.
따라서 산상수훈은 천국 왕께서 자신의 나라를 설립하는 선언이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아버지로 일하시는 나라이다.
천국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긴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백성 안에 그들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하나님과 하나가 된 나라이다.
이처럼 자신과 하나가 된 아들(자녀)로 세우시려고
종말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이다.
천국 백성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한다.
그들은 구약에서는 봉인되었던 참되고 온전한 아버지의 뜻을 행하여 아들(자녀)의 자태를 나타낸다.
‘나라가 임하옵시며’라는 기도는 아버지의 뜻과 질서가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내용이다.
이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기를 구하는 기도이다.
이는 모세에게 속하여 종(머슴)으로 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백성으로 살기를 구하는 기도이다.
아들(자녀)은 자신의 모든 것으로 아버지를 섬긴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 아들(자녀)로서 구하는 기도가 ‘나라가 임하옵시며’이다.
하늘에 속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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