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아모리족속

열려라 에바다 2024. 4. 11. 16:29

아모리족속

아모리 족속은 구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방 족속이다. 아모리 족속은 통칭 가나안 족속과 구별되지만 대체로 근동 지역에 함께 공존하면서 매우 오랫동안 견고한 세력을 형성함으로써 숱한 나라와 도시들의 주인공으로 군림하였다는 사실이 고고학적 연구 결과 증명되었다. 이들의 다방면에 걸친 발전은 대단하였는데,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진멸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그들도 여타의 민족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패역한 족속이었음을 말해 준다. 그들은 다신을 숭배하며 자신들의 혈기에 만족하는 역사를 가꾸어 나갔기에 하나님과 대적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처럼 매력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단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서 유기된 상황을 보게 된다. 반면에 오히려 더 보잘것없고 볼품 없는 우리가 단지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반열에 서게 됐다는 것을 생각할 때 주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세오경은 아모리인에 대해 많이 언급되어 있다. 특히 창48:22, 수24:15,18에는 가나안과 수리아 땅이 아모리 족속의 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가나안과 아모리는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대의 도시국가들은 이 아모리 족속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때에 이들은 강력한 힘을 지닌 민족이었다. 그들의 활약상을 여러 측면에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1. 아모리 족속

 

 주전 약 2000년 전에 수리아와 메소포타미아가 아모리인들에 의해 침략을 당하였다. 이들은 요단 강 동서 양쪽 계곡지대에 흩어져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창14:7; 겔16:3,45). 아모리 족속은 메소포타미아 하부 계곡에서 유프라테스 상부 계곡으로 이동하여 팔레스틴으로 들어와 정착해 있던 셈족들을 괴롭힌 대표적인 족속이다. 일반적으로 아모리란 말은 서부인을 의미한다. 존 브라이트(J. Bright)는 그의 「설형문자 교본」 (Cuneiform Texts)에 나타난 대로 북부 시리아와 서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아누루(Anurru)라고 하면 '서부인'을 가리켰음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아모리인들은 그저 메소포타미아 서쪽에 살았기 때문에 서부인이라고 불려진 것 같다. 이들의 세력은 점점 강력하게 되어 앗수르와 마리(Mari)를 빼앗았다. 그리고 그곳을 그들의 풍요의 도시로 삼았다.

 특히 마리는 유프라테스 강의 남부,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의 북부에서 약27㎞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처음에 도시국가로 출발하였던 이곳은 그 후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마리 지역은 현재 아랍어로 텔 하리리(Tell Hariri)라고 불린다. 악카드의 사르곤(Sargon) 대제 즉위 11년째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연대기에, "그의 세력이 서쪽 땅끝까지 미쳤으며, 그들의 언어를 통일하였고, 서쪽 지역에 자신의 동상을 세웠으며, 그들에게 빼앗은 물건을 바다 건너 이쪽까지 가져왔다". 라는 내용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당시 아모리인의 세력은 상당히 강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2. 시대별 분류

 

 1) 마리 지역의 통치

 이 족속들은 크게 세 부류의 지역을 장악하며 통치하였다. 동남쪽에서는 바벨론을, 서쪽에서는 마리를, 동북쪽에서는 앗수르를 장악하고 있었다. 시대상으로는 먼저 이신 라르사(Isin-Larsa) 시대를 들 수 있다. 우르의 통치자들이 나약해지자 마리 출신인 이쉬비 이라(Ishbi-Irra)는 이신(Isin)을, 다른 아모리 사람 나발룸(Mabalum)은 라르신을 점령하였다. 이쉬비 이라를 시작으로 225년간 16명의 왕들이 마리 지역을 다스렸다. 이 왕들 중 5대 왕이었던 리핏 이쉬타르(Lipit Ishtar)는 약 11년간 이신을 다스렸다. 이때에 리핏 이쉬타르 법전이 공포되었다. 이 법전의 마지막 부분에는 축복과 저주에 관한 내용이 있다.

 

 2) 바벨론 지역의 통치

 바벨론에서는 주전 1895년경 수무아붐(Sumuabum)이라는 한 아모리 족장이 왕이 디어 통치가 시작되었다. 그가 바로 바벨론의 제5대 왕 함무라비(Hammurabi B.C. 1728-1686)이다. 그는 전체 나라와 백성들의 군주였으며, 경건한 신전 건축가였다. 이때 그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이 만들어졌는데 이 법전으로 인해 당시의 사회 구조가 귀족과 평민과 노예의 3계급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벨론은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Salmaneser)과 그의 후계자 투굴티 니누르타(Tukulti Ninurta)에 의해 정복당하였다.

 

 3) 앗수르 지역의 통치

 티그리스 강의 양편에 자리잡고 있는 앗수르는 주전 1814년경 샴시아닷(Shamshi Adad)에 의해 통치되기 시작하였는데 앗수르의 왕의 목록을 통해 이들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17명의 왕들이 '천막에서 살던 왕들'이라고 언급되었을 뿐이다. 이것으로 보아 그들은 반(半) 유목민 족속들의 족장에 지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며 앗수르는 아모리 족속인 샴시 아닷에 의해 통치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아주 탁월한 지도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주위의 많은 경쟁자들로부터 압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토를 지키며, 자신의 아들들에게 그 권력을 물려 주었다. 마리서판에 보면 그의 활동상이 자세히 나온다. 앗수르는 200여 년 간이나 암흑기를 맞이하였는데 이것은 아마도 야만족인 투르크족에 의해 침략당한 증거라고 겔브(Gelb)는 해석하였다.

 

 3. 아모리족과 마리

 

 1) 마리 지역의 발굴

 이 도시는 프랑스의 고고학자 앙드레 파롯(Andre Parrot)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돌을 찾던 베드윈에 의해 목이 없는 상(像) 하나가 발견되었고, 그 상에 있는 비문을 해석함으로 시작되었다. 이 상은 1933년 8월에 발견되었는데 발굴은 12월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마리의 왕들이 이쉬타르(Ishtar) 여신에게 봉헌한 사실이 기록된 작은 조상(彫像) 하나를 발견하였다. 마리의 황금기는 주전 1860-1760년까지이며, 당대의 가장 번창하고 훌륭한 도시임이 발견되었다.

 

 2) 짐리림 왕궁의 발굴

 이 도시에서 발견된 가장 중요한 것은 짐리림(Zimri-Lim B.C. 1730-1700)의 왕궁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그들의 신인 이쉬타르 신을 모시는 신전을 짓고 "이쉬타르 신이 천하의 권세를 짐리림에게 위탁했다." 고 했다. 이 왕궁의 크기는 약 15에이커가 넘으며 거기에는 300개의 방들이 있고 왕의 내실, 집무실, 학교, 목욕실과 부엌, 예배실이 별도로 있었다. 특히 목욕실은 견고한 점토로 된 목욕통과 세면대 시설, 하수도 시설을 완비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또 20,000개가 넘는 서판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아모리족의 높은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이 서판들 중 독특한 것은 30개의 서판들인데 거기에는 신들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있다. 그 신들은 다곤과 아닷이었음을 보여 준다. 이 서판이 언급하는 팔레스틴 도시는 하솔(Hasor)과 라이스(Raish)로 한정된다. 특히 마리서판은 당시 족장들의 상황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도시의 발굴로 인해 아모리족은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아모리 족속은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함으로 당대 최고의 도시국가들을 건설하고 서로 경쟁의 시대를 살아왔다. 이 시대의 많은 자료들은 그 시대의 사회적 혹은 역사적 배경을 아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또 이 시대의 마리서판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족장 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앞으로도 더욱더 많은 고고학적인 자료들이 나와서 성경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 시혼(Sihon)

 

 시혼은 사해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 헤스본 성읍의 왕이다. 그에 대한 일차적인 정보는 아모리인들의 왕이라는 사실과 관련하여 민21:21-32을 기초로 한다. 그러나 신2;26,30에서는 그를 독자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단순히 헤스본의 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신명기에서는 시혼을 바산 왕과 관련시켜 함께 거론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요단 동편에서 이스라엘에게 패하고 멸망하였다(신1:4;민21:33-35;시135:11).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이후 광야를 통행할 때 첫 관문으로 에돔을 거쳐야만 했다. 그러나 에돔은 같은 핏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허락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할 수 없이 멀리 돌아가야만 했다. 다음으로 시혼 왕이 다스리는 그의 영토를 지나가기 위하여 허락을 요청하였으나 시혼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이스라엘은 그들을 공격하여 패배시켰던 것이다.

 이 지역에서의 이스라엘의 전쟁과 승리의 이야기는 시로 쓰여져 예찬되기도 한다(민21:27-30). 본 시는 시혼의 영토가 얍복 강에서 아르논까지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 왕의 영토와 세력이 규모가 큰 것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이것을 사해 동부를 점령한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아르논 골짜기에 이르는 디본과 아로엘을 포함하여 헤스본과 메드바의 남부 지역을 완전히 점령한 것은(민21:30; 수12:2) 다윗이 모압을 물리친 이후에야 이루어졌으므로(삼하8:2) 민21:24의 내용은 과장되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시혼과 옥의 패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염원을 들어 주신 기념비적 사건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2. 옥(Og)

 얍복 강 북쪽에는 바산이라 불리는 비옥한 땅이 있는데 옥은 그곳의 거인 왕이었다. 그런데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그 땅을 빼앗아 버렸다(민21:33;민32:33;신1:4;신3:1,3,4) 옥은 거인족으로 전설적인 인물이었는데 그가 죽은 후 그의 거대한 철침상이 랍바에 오랫동안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신3:11). 그 침상을 현무암 벽돌로 이루어진 고인돌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한편 바산의 역사와 문화는 다분히 가나안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옥 왕국이 나름대로의 역사적인 기반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신명기 자료에서 상당히 주목을 받고 있으며 또한 그들의 주거적인 특성, 즉 수많은 요새화된 성들과 두 개의 수도-에드레이와 아스다롯-에 대한 기록이 역사적 사실성을 뒷받침 하고 있다(수12:4). B.C. 14세기에는 이 지역을 여러 나라들이 나누어 지배했지만 어느 시기엔가 아스다롯 왕 옥이 바산을 지배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 므낫세 지파가 정착하게 된 때는 옥의 세력을 몰아낸 이후였다(민21:35; 민32:33).

 3. 리핏 아쉬타르(Lipit lshtar)

 그는 이신(Isin)의 다섯째 왕으로써 B.C. 1864년으로부터 B.C. 1854년까지의 기간 동안 그 지방을 다스렸던 왕이다. 그의 법전들을 포함한 토판들이 펜실베니아 대학교에 의해 니푸르(Nippur)에서 발굴되었고, 그것들은 현재 동(同)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실제로 그는 아모리 사람이었는데 자기의 법전은 수메르어로 기록하였다. 아마도 그 법전 자체는 수메르의 선조들이 사용했던 것을 인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신인 안(Ann)과 엔릴(Enil)에게 그들의 통치권을 부여받았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또 실제로 리핏 이쉬타르는 자신이 엔릴의 명을 받아 수메르와 악카드에서 신의 공의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법령은 소실된 부분이 있어 반밖에 보존되어 있지 않는데 38항목이 남아 있다. 그 내용으로는 배의 상속, 종의 계약, 감람 농원을 포함한 자산의 소유권, 세금 납부, 상속과 겨론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전체적인 성격은 사람들이 이법을 지키면 축복을 받지만 만약 어기게 되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4. 라르사(Larsa)

 이곳은 우르와 우룩 사이 남쪽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해 있던 수메르의 성읍으로서 마리(Mari) 시대에는 지도적인 힘을 가진 도성들 중에 하나였다. 나브라눔(Naplanum)의 네번째 계승자인 궁구눔(Gungunum)은 우르를 정복했고 이신과 같이 강력한 도시를 만들었다. 라르사의 마지막 통치자는 flatls(Rim-Sin)이었는데 그는 함무라비(Hammurabi)에게 패했고 라르사는 바벨론 제국의 행정적 수도가 되었다. 로프투스(W. K. Loftus)는 1854년 오늘날 '센케레'(Senker도)라고 불리는 라르사를 발굴했는데 그곳에서 공동 묘지와 여러 토판들이 발견되었다. 그 밖에도 로프투스(Loftu-s)는 라르사의 지구라트(Gigg-urat)와 고대 도시에서 섬겨온 신상과 신전을 발굴했는데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http://cafe.daum.net/cgsb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