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계시'가 궁금하다

열려라 에바다 2024. 5. 7. 10:20

'계시'가 궁금하다

봉서방추천 2조회 2424.05.04 02:00댓글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므로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초월적 존재이다. 더구나 인간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타락한 죄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올바로 알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하시는만큼, 즉 스스로를 드러내 주시는 만큼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기독교 신앙과 신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시고 알려주시는 계시에 기초한다. 계시란(아포칼립시스) 베일 같은 것으로 가려져 있던 것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계시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는지를 알게 해 주신다.

성경은 하나님 지식 혹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하여 매우 강조하여 이야기한다(호4:1,6, 호6:3,6). 하나님을 아는 것은 참된 삶과 직결되어 있고(렘22:16, 신4:6), 그것이 곧 영생의 길이기도 하다(요17:3). 사람들은 계시라고 하면 종종 무슨 환상이나 꿈이나 무슨 신비한 체험을 연상하기도 하는데,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궁극적 계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히1:1-2, 마11:27, 갈1:12, 갈3:23-24).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이요(요1:1),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나타나신 분이시요(요1:14),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나타내신 분이시기 때문이다(요1:18). 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깨닫고 올바로 알게 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1장 17절은 성령을 “지혜와 계시의 영”이라고 하였다. 그 계시의 내용은 특별히 구원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관련되어 있다.

계시는 그 계시의 방법에 따라 자연계시와 초자연계시로 구분되기도 하고, 그 계시의 목적에 따라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로 구분되기도 한다.

 

자연계시는 자연의 구조와 인간에게 부여된 자연적인 이성의 능력으로 파악되는 계시이고

초자연계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활동에 의한 계시이다.


일반계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일반적인 목적과 관련된 계시이고,

특별계시는 타락한 인간의 속죄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가리킨다.

 

자연계시 혹은 일반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사건과 성경 밖에서도 어느 정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우리가 그로 인하여 하나님을 분명하게 알고 구원에 이를 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그 계시를 파악하는 이성이 어두워지고 왜곡되어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롬1:18-23).

 

이 글 아랫부분에서 계시라는 말은 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한 ‘특별계시’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오늘날에도 계시가 있는가?

오늘날 계시라는 말과 관련하여 일반 신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은 아마도 이 질문인 것 같다. 계시는 ‘객관적 계시’와 ‘주관적 계시’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 새로운 ‘객관적 계시’는 더이상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주관적 계시’는 성령 안에서 계속된다고 할 수 있다.

‘객관적 계시’란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객관적 계시 사건 혹은 사실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행하신 계시적 사건들,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신 말씀들,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심과 그분의 말씀과 행위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한 사도들의 말씀, 마지막으로는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결과인 성경 등을 가리킨다.

이것은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그러한 계시적 사건들과 말씀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이미 (객관적으로) 일어났고 완결된 일이다. 궁극적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 사건은 객관적으로 이미 일어났고, 성경의 형성은 객관적으로 이미 종결되었다.

히브리서 1장 1-2절에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7-8절에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고 하였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하였다.1) 객관적 의미에서 궁극적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 사건은 이미 일어났고, 계시의 책인 성경은 완결되었으므로 더 이상의 새로운 객관적 계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주관적 의미에서 계시는 지금도 계속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무슨 새로운 구원자가 온다거나 새로운 구원의 길이 열린다거나 새로운 계시의 책이 주어진다거나 하는 의미가 아니다.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미 주신 성경의 말씀을 우리가 믿고 깨닫고 알 수 있도록 하는 성령의 역사가 계속된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러한 주관적 계시는 주로 성경 말씀에 근거한 설교의 말씀을 들을 때, 혹은 성경 말씀을 읽거나 듣거나 묵상할 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일어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자신이 재림예수 혹은 보혜사라고 하면서 자신의 말을 따르라고 하는 이단들이 많이 있다.2) 우리는 그들의 말을 따라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림 예수도 아니고 보혜사도 아니며3), 그들이 가르치는 말이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이미 성경을 통하여 충분하고도 완전하게 알려주셨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쳐주는 것과 다른 하나님이나 다른 구원의 길, 다른 삶의 길을 말하는 자는 거짓 계시를 말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 9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단언하여 말한다.

1990년대에 미국에서 ‘신사도운동’이라는 것이 일어나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는데, 그들은 오늘날에도 옛날 성서 시대와 같은 ‘사도’ 직분이 있으며, 사도의 직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남다른 권위가 있고, 그들에게 교회와 목회의 전적인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도의 직분도 예언으로 확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오늘날에도 사도의 직분이 주어진다는 것은 성경적, 교회사적으로 입증될 수 없는 주장이다. 또한 특정인이 사도의 절대적 권한과 예언의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다보면,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

직통계시가 있는가?

간혹 우리 주변에는 무슨 직통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위험한 사람들도 있다. 소위 직통계시를 통해서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다른 구원의 길을 주장하다가 이단이 된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요한일서 2장 27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이를 근거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서 직통계시를 받으니 아무도 자신들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그 말씀에 대한 심각한 오해이다. 모든 성경구절은 그 한 구절만 따로 떼어서 볼 것이 아니라, 그 앞뒤 문맥을 살펴보아야 참된 의미를 알 수 있다. 요한일서 2장 27절의 앞에 나오는 22절과 23절을 보면 잘못된 가르침을 전파하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경고가 나온다. 그러므로 2장 27절에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은 직통계시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2장 24절에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이다. “처음부터 들은 것”이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일 때, 사도들로부터 전해오는 참된 복음의 말씀을 들은 것 안에 거하라는 것이다. 너희에게는 그 말씀과 함께 그것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으니, 그 말씀과 다른 새로운 교훈, 즉 적그리스도 교사의 가르침을 받지 말라는 뜻이다.

 

간혹 우리 주변에는 자신들이 꿈이나 환상 혹은 기도 중에 얻은 어떤 영감을 통해 어떤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었다거나, 좋은 결과를 얻었다거나, 인생의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자신이 천국이나 지옥을 다녀왔다는 간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일들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열심히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고 그것이 그 개인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체험은 우리들의 신앙에서 어떤 표준이 될 수 없고,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해서 적용할 수 없다. 또한 그런 것을 ‘계시’라는 차원에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것을 무슨 신비한 진리인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거나 강요해서도 안 된다.

다시 말해서, 그런 체험이 성경이 가르쳐주는 것과 다른 신이나 다른 구원의 길을 계시해 준다면, 그것이 제아무리 신기하고 놀라운 체험이라도 받아들이면 안 된다. 만일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경이 가르쳐주는 그 하나님과 그 구원의 길을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그를 돕는 것이라면, 그것은 새로운 ‘계시’라기 보다는 성도를 돕는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이나 인도하심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것이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매우 신중하게 분별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4)

_______

1) 또한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강조한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 말씀은 직접적으로는 요한계시록 자체에 대한 말씀이지만, 간접적으로 성경 전체에 적용할 수 있다.

2) “통일교”의 문선명은 자칭 재림예수라 하였고, “전도관”의 박태선과 “영생교”의 조희성 등은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였으며, “신천지” 이만희는 자칭 보혜사라고 한다. 이들을 포함하여 한국에 자칭 재림예수가 약 50여 명, 자칭 하나님이 20여 명 된다고 한다.

3) 「현대종교」 6월호 “삼위일체가 궁금하다” 참조.

4) 꿈이나 환상 같은 것이 계시적 내용을 가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으며, 바로의 꿈과 요셉의 해석, 느부갓네살의 꿈과 다니엘의 해석 등의 경우처럼, 그것도 올바른 해석을 필요로 한다. 우리들의 꿈이나 환상은 대부분 우리 자신의 욕망이나 생각 혹은 무의식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인간의 마음은 악한 영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왕상22:19-23, 요13:2). 그러므로 성경 말씀에서도 그런 것들을 신중하게 분별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신명기 13장 1-3절은 선지자나 꿈꾸는 자를 경계하고 그들이 다른 신을 믿으라고 하는 말을 따르지 말라고 하였다. 신명기 18장 22절은 선지자의 말을 다 믿지 말고 그것이 옳다는 증거와 성취가 있는지 잘 분별하라고 하였다.

 

현요한 교수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앙핵심개념  (0) 2024.05.07
하나님의 진짜 이름은?  (0) 2024.05.07
나사렛  (0) 2024.05.03
디모데전서 1Timothy  (0) 2024.05.03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0) 2024.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