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하나님의 진짜 이름은?

열려라 에바다 2024. 5. 7. 10:23

하나님의 진짜 이름은?

다른 모든 종교는 믿고 섬기는 대상을 ‘하느님’이라고 하는 반면에 개신교만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데 유일하신 절대적 존재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의미는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붙여서도 안 되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름이라도 붙이면 그 이름의 인간 언어가 뜻하는 특별한 의미 안에 그분이 제한되고 종속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세상 어떤 것에도 제한은커녕 한 치의 영향도 받지 않습니다. 어떤 이름이라도 그분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당신께서 당신의 진짜 이름을 직접 가르쳐준 일이 성경에 딱 한 번 나옵니다. 팔십 노인이 되어서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어느 날 타지 않는 불꽃으로 임재 했습니다. 모세더러 애굽에서 노예가 되어 고생하고 있는 동족을 구출해 내라는 소명을 주셨습니다.

 

그 때 모세가 “만약 이스라엘 동족이 누가 보냈는지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하나님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고 대답했습니다.

 

영어성경이 “I am who I am.”이라고 번역한 것을 우리말 성경이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사실은 히브리 원어로는 “I am.”이라고 주어와 Be 동사로만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히브리 발음으로 야훼인데 우리말 성경에 여호와로 번역한 그 명칭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당신의 이 이름은 참으로 흥미롭고도 심오한 의미를 지닙니다.

 

영어로 “I am a boy.”(나는 소년이다)라고 말하면 주어 ‘I’와 보어인 ‘boy’는 동격(equal)의 관계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I am’ 다음에 보어로 무엇을 갖다 붙여도 하나님을 수식하기에는 너무나 불완전하고 부족합니다. 그분은 인간언어로는 온전한 설명이 도무지 불가능하신 분입니다. 세상에는 그분과 등호(等號,=)에 의해 같은 위치에 설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최고로 고급한 존재인 인간조차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비슷하게 지어졌다고 진술할 뿐입니다.

 

히브리어 원래 명칭 ‘I am.’은 영어구문에서 이름으로 사용할 수 없고 또 문법적 맥락으로도 맞지 않아서 번역하면서 “who I am”을 추가로 붙인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하니까 스스로 자존한다는 의미로 하나님에 대한 아주 훌륭한 설명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이 직접 가르쳐준 당신의 이름은 우리말로 치면 “내다” 혹은 “내가 내다”가 됩니다. 더 쉽게 풀면 “내가 내라는데 무슨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는 말인가?”라는 뜻입니다. 사실 우주 전체에서 인간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의 최고 지도자인 모세는 물론 모든 인간에게 그분은 언제 어디서나 ‘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분입니다.

 

이를 실감나게 비유해보겠습니다. 한국에선 아버지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합니다. 꼭 이름을 밝혀야 할 때에도 한 자씩 따로 떼어서 예컨대 박자, 진자, 호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에 대해 최대한 예의와 존경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아버지가 아이들만 집에 놓아두고 외출했다가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칩시다. 아이들은 점점 무서워져서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될 것입니다. 한밤중에 초인종 소리가 들려서 아이들이 뛰어나가 누구세요라고 물으면 아버지라면 당신의 이름을 대는 법은 없습니다. 단순히 ‘내다’라고만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다’라는 한 마디에 엄청난 의미가 다 담겨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에게 순식간에 불안과 공포는 완전히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부양하고 각자의 인생을 책임지고 이끌어주는 한 분이 아버지입니다.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내다’라는 한 마디면 모든 것이 다 통하는 존재입니다.

 

바로 세상 모든 인간에게 그렇게 ‘내다’라는 존재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이름이 아예 없고 붙일 수도 없어도 언제 어디서나 떼려야 뗄 수 없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이미 맺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관계는 전혀 변개 포기 취소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처럼 신자 개인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일생을 다 계획하시고 주관하여서 거룩하게 이끌고 계십니다. 믿음의 시초는 하나님이 나에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내다 하면서 다가와서 은혜와 권능으로 이끌어주는 존재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그분의 아들답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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