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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아 우르 - 아브라함의 탄생지

열려라 에바다 2024. 7. 9. 08:43

갈대아 우르 - 아브라함의 탄생지


갈대아 우르(Ur)/아브라함의 탄생지 =
수메르의 도시국가(이라크 남부, 바빌론의 남쪽 도시)
*바벨론/신바빌로니아제국


< 창세기 11장 >


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우르(Ur) = 수메르와 바벨론 문명중심지, 아브람의 고향.

아브라함의 고향이며
메소포타미아 갈대아인의 성읍으로
수메르어 우림(Urim)에서 유래했다(창 11:28, 31; 15:7; 느 9:7).

우르, 키쉬 그리고 우룩은
수메르와 바벨론 사람들에게는 문명의 중심부로 유명한 곳이다.
그 중에서도 우르는 종교적인 도시로 중요한 신당들이 있었다.
바벨론 시대에서 BC 6세기까지 그 지역에 큰 지구랏이 세워져
메소포타미아에서 중요한 신전이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우르는 현재 이라크와 근접해 있으며 비옥한 초생달 지역의 동쪽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바그다드의 남동쪽에 위치한 텔 엘- 무카야르(tel el-Muqayyar)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유프라테스강의 항구를 이용하기 쉽게 되어 있다.
우르의 유적지에서 달의 신 난나(Nanna)의 신전이 발굴되었다. < 비전성경사전 >


갈대아 우르(Ur of the Chaldeans)

갈대아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두 강의 하류 유역
바벨론과 페르시아 만 사이에 끼여 있는 지역에 위치하며
갈대아의 대표적인 성읍이 우르이다(창 11:28, 31).

BC 1000년경 갈대아인들이
이곳에 들어오면서부터 갈대아 우르라고 불리게 되었다.
우르는 산업과 종교의 중심지로
아브라함이 살던 당시 대단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창 11:28; 느 9:7).
이곳 무덤(BC 2900-250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의 발굴 결과,
당시 문화의 화려한 발전상을 보여 주는 토판, 장신구, 보석 등이 발견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달신인 ‘신’(Sin)을 섬겼으며, 거대한 지구라트 위에 신전이 있었다.




* 아브라함의 탄생지 우르(Ur) 위성사진


갈대아 (Chaldea) = 칼데아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두 강의 하류 유역
바벨론과 페르시아 만 사이에 끼여 있는 지역으로
수메르와 바벨론의 문명 중심지이다.
갈대아의 대표적인 성읍이 우르이다.
갈대아는 앗수르제국(아시리아제국)을 멸망시키고
갈대아제국(칼데아제국=신바빌로니아제국/바벨론)을 세운다. < 비전성경사전 >

갈대아제국(칼데아제국)=바벨론(신바빌로니아제국)

신바빌로니아(New Babylonia/성경의 바벨론).
칼데아인(人/성경의 갈대아인)이
아시리아제국(帝國,/성경의 앗수르)을 멸망시키고 세운 왕국(BC 625∼BC 539).
셈계(系)의 유목민으로
바빌로니아 남부에 정주한 칼데아인은 차차 세력을 신장하여
곧 나보폴라사르(성경의 나보폴라살)가 바빌론을 수도로 정하였고,
그 후 메디아왕국과 연합하여 BC 612년 아시리아를 멸망시키고
신바빌로니아 (칼데아제국)를 건국하였다.
왕자인 네부카드네자르 2세(성경의 느부갓네살)는
이집트군을 카르케미시에서 격파하고 즉위 후에는 아시아에서 이집트인을 추방하여
시리아 ·팔레스티나의 지배권을 획득하였다(BC 597).
이때 이집트측에 가담하였던 유다왕국은 보복을 받아
팔레스티나는 파괴되고 수천명의 헤브라이인이 바빌론으로포수(捕囚)되었다. <네이버>


갈대아인(Chaldean) = 칼데아인

원래 바벨론의 남부에 살던 주민을 지칭하던 말로,
후에는 바벨론 제국의 백성들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고(왕하 24:2; 렘 21:4; 단 1:4; 행 7:4),
때로 바벨론 제국의 학자나 행정가 계급을 가리켰다(단 2:5; 5:7).
갈대아는 원래 유브라데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에 있던 ‘날’이라고 불리던 나라에
나보폴라살이 왕조를 세우면서 생겼다.
앗수르를 끊임없이 공격하던 갈대아는
BC 720년경 바벨론 시를 통치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갈대아인이라는 말이
바벨론인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사 23:13; 43:14).
갈대아는 느부갓네살 2세 때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유다를 침략하여(BC 587) 포로로 삼기도 했다(왕하 24:2).
성경에서 갈대아인은 욥의 재산을 빼앗고 종을 죽였으며(욥 1:17),
예레미야는 갈대아인의 땅에 임할 심판을 선포했다(렘 50:1-2).
다니엘서에는 갈대아인이 점성가들이나
점치는 제사장 계급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으며(단 1:4; 2:4; 4:7),
다니엘 자신도 거대한 바벨론 제국의 행정가로 봉사하기 위해
훈련받은 갈대아인 중의 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단 2:1-13). < 비전성경사전 >


우르 [ Ur ]

이라크 남부에 있다.
수메르의 도시 유적. 우르는 선사시대의 우바이드 기,
젬데트 나스르 기(期)에도 문화가 번영하였으나
우르 제1~제3왕조시대 (B.C. 2700경~B.C.2000경)의 수도로서,
또 수메르 초기왕조시대로부터 신 바빌로니아시대에 이르는
달(月)의 신 난나르를 제사하는 도시로 번영하였다.
신역은 350X200m의 사각형이며 주위는 벽으로 둘러싸이고
그 가운데는 주로 제3왕조시대에 재건된 여러 신전이 있다.
이 신전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건물의 하나로 이라크 고고국에 의하여 복원되었다.
닝가르 신전, 에눈마프 신전 등도 있었다.
신전은 신바빌로니아 시대에 이르기까지 종종 수리 개축되었다.
신역의 외측에는 둔기 왕(Dungi, Shulgi)과
부르 신왕(Bur-Sin)의 지하묘지를 만들었고
신역의 북쪽에는 개인저택을 세웠다.
왕묘군에서 출토된 미술작품으로는 조개와
홍옥수 및 라피스 라줄리를 상감한 『우르의 스탠더드(군기[軍旗])』,
금으로 된 황소상의 머리가 있는 류라(竪琴),
앞발을 내밀고 있는 풀밭의 양. 메스 · 칼람 ·
두그 왕(Mes-Kalam-Dug)의 금제투구, 금제단검, 금제의 컵,
조개를 상감한 쟁반, 금, 홍옥수,
라피스라줄리 제의 장신구류 등이 있어 초기왕조시대를 대표한다.
우르 제3왕조시대의 것으로는
우르남 왕의 돌비석, 닝가르 여신상의 머리부분이 있다.
<미술대사전>




우르 [ Ur ]

이라크 남부 유프라테스강 가까운 곳에 있던 수메르의 도시국가.
지금은 텔 엘 무카이야르이다.
구약성서에는 아브라함의 고지(故地), '칼데아의 우르'라고 한다.
1854년 J.E. 테일러가 발견하였으며,
1922년부터 영국의 C.L. 울리가 중심이 되어 본격적으로 발굴하였다.
우바이드기(期)에서 페르시아 시대에 이르는 각 시대의 유적·유물이 밝혀졌으며,
최고(最古) 주민은 BC 4000년경까지 소급된다.
우바이드기 후반에 2.4 m 두께의 홍수층(洪水層)이 있는데,
울리는 이것이 수메르지방 일대를 덮치고
뒤에 길가메시 서사시에 반영된 대홍수라고 생각하였다.


번영기는 초기 왕조시대(BC 2800∼BC 2400?)이며,
수메르 왕명표(王名表)는 홍수 뒤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키시·우루크왕조에 이어 우르 제1왕조를 든다.
왕명표에 있는 앞의 둘은 가공 연대인 데 대해,
우르 제1왕조는 4왕이 177년간 통치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또, 왕명표에 있는 메스 안니 파다의 이름을 새긴
각명(刻銘)이 발견되면서 왕조의 존재는 확실해졌다.
우르는 일찍부터 원격지 무역을 하였고 크게 번영하여,
수메르 지방의 도시국가 중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우르왕묘의 발굴

영국의 C.L. 울리는
'왕가(王家)의 묘지'로 일컬어진 지구에서 약 2천기(基)를 발굴하였으며,
왕묘(王墓)는 그중 16기이다.
모두 지하에 석조로 만들어졌으며,
호화로운 부장품과 다수의 순사자(殉死者)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왕 슈브 아드묘에는 정교한 금·은세공과 보석을
여기저기 박은 머리장식품·빗·귀걸이·가슴장식품등을
여왕의 시체에 장식하였고, 28명의 성장(盛裝)한 시녀를 매장하였다.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된 하프, 7현금(七弦琴),
2마리 당나귀가 끄는 썰매, 황금그릇 등 다수가 출토되었다.


또, 메스 카람 두그의 묘에서 출토된 황금단검과 투구,
다른 묘에서 발견된 스탠더드(標幟) 등
모두가 수메르문명의 높은 수준을 나타낸다.
'왕묘'는 이전에 이미 파헤쳐졌으나,
죽음의 수갱(竪坑)에서는 6마리 소가 끄는 2대의 수레와
병사· 시녀·마부·악사 등 63명의 시체가,
또 죽음의 대수갱에서는 74명의 순사체가 발견되었다.

울리는 이것들을 BC 3200년 이전의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현재는 초기 왕조시대 후반으로 여기며,
왕묘 성격에 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다.


우르 제3왕조

BC 2370년경 수메르 지방은
셈계(系) 아카드인(人) 사르곤에 의하여 통일되었다.
그러나 181년 동안의 사르곤왕조가 끝나자
수메르는 부흥하였으며,
이윽고 우르제3왕조(BC 2113∼BC 2006?) 밑에서 번영을 되찾았다.
초대 우르남무는 시벽(市壁)을 재건하고
궁전과 월신(月神) 난나르를 위하여 웅대한 지구라트(聖塔)를 조영하였다.
역대 왕들은 주위에 신전을 건립하여 넓은 성역(聖域)을 만들었다.


제2대 슐기는 법전을 편찬하였는데,
이것은 《함무라비법전》의 원형이 되었다.
또한 다수의 점토서판(粘土書板)이 발견되어
당시의 경제생활과 교역활동을 전해준다.
그러나 이 왕조도 5대 107년 간 계속되다가,
엘람인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두산백과>



[중동사]

칼데아 제국 = 신바빌로니아(New Babylonia)

기원전 626년에 칼데아(현 남부 이라크) 총독
나보폴라사르(Nabopolassar 625~605 B.C.)가
폭넓은 지지를 얻어 왕이 되어 바빌로니아를 통치했다.
그는 기원전 612년에 메디아와 연합하여 아시리아를 정복한 뒤에
칼데아 제국(신바빌로니아 왕국, 625~539 B.C.)을 세웠다.
이 제국은 바빌로니아 영역(메소포타미아)을 지배했기 때문에
신바빌로니아 왕국이라고도 불린다.
이 제국은 한때 중근동의 대부분을 통치하였다.
그의 아들 네부카드네자르 2세(Nebuchadnezzar Ⅱ, 605~562 B.C.)
때에 전성기를 누렸다.


이 왕은 시리아에서 세력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던 이집트를
기원전 605년에 패퇴시켜 이곳에서 쫓아 내었다.
이 때에 유다(Judah) 왕국이 이집트 편을 들어
기원전 589년에 반란을 일으키자
네부카드네자르는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을 18개월 간 포위한 후 함락했다.
이 성도(聖都)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수천 명의 유대 인이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는데,
이것이 세 번에 걸친 바빌론 유수
(幽囚, Babylonian Captivity, 597~538 B.C.) 가운데 첫 번째이며,
유다 왕국은 칼데아 제국의 한 주로 전락했다.


또,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제국의 수도 바빌론의 재건에 정성을 기울였고,
특히 그 외곽을 따라 두께 26m의 성벽을 쌓았다.
도시의 주요 지역에는 거대한 내벽을 쌓아 보호했으며,
해자를 만들어 방어를 도모했다.
그러나 이 나라는 기원전 539년에
이란 인의 아케메네스조에 의해 멸망했다.


칼데아에서는
기원전 8세기~기원전 6세기 사이에 천문학과 점성술이 발달했다.
칼데아 인은 천문학을 기록으로 남겼고,
월식과 일식을 예측하였으며, 나아가서 한 해의 길이를 계산했다.
점성가는 별과 행성을 보고 미래를 점쳤다.
같은 시기에 서부 소아시아 반도에서는
리디아(Lydia) 왕국이 번성하였다. <네이버>



칼데아제국 = 신바빌로니아(New Babylonia)

칼데아인(人)이
아시리아제국(帝國)을 멸망시키고 세운 왕국(BC 625∼BC 539).
셈계(系)의 유목민으로 바빌로니아 남부에 정주한 칼데아인은
차차 세력을 신장하여 곧 나보폴라사르가 바빌론을 수도로 정하였고,
그 후 메디아왕국과 연합하여 BC 612년 아시리아를 멸망시키고
신바빌로니아(칼데아제국)를 건국하였다.
왕자인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이집트군을 카르케미시에서 격파하고 즉위 후에는
아시아에서 이집트인을 추방하여
시리아 ·팔레스티나의 지배권을 획득하였다 (BC 597).
이때 이집트측에 가담하였던 유다왕국은 보복을 받아
팔레스티나는 파괴되고
수천명의 헤브라이인이 바빌론으로 포수(捕囚)되었다.


왕은 함무라비시대의 재현을 목표로
부흥에 노력하였으므로 바빌론은 번영을 되찾아
고대 세계의 중심으로서 면모를 일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후계의 왕들은 적극성이 없는데다
사제계급(司祭階級)이 정치에 간섭하였으므로
독신자(篤信者)인 왕 나보니도스 때에
키루스 대왕이 거느리는 군대가 바빌론에 입성하여
신바빌로니아 왕국은 멸망하였다.
이 시대에는 점성술(占星術)을 비롯한 천문학의
칼데아 문화가 바빌론을 중심으로 꽃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