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예루살렘의 함락
1세기 중반 정복자 로마인과 피정복자 유대인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유월절 절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전보다 높은 망루에 있던 로마병사 한 사람이 겉옷을 들어 올리고 상체를 수그리더니 유대인들 쪽으로 엉덩이를 향하고 음란한 괴성을 질러댔습니다. 이런 모욕적인 행위에 유대인 군중들이 봉기했고 이 사건으로 3만 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AD 64년 새로운 로마의 통치자 플로루스가 유대에 당도했습니다. 그는 두해 동안 유대인들을 극악하게 모욕했습니다. 이에 몇몇 유대지도자들이 성전 약탈을 중지하라고 요구하자 그는 병사들을 시장으로 보내 학살과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무고한 백성들의 피가 메마른 예루살렘의 거리에 강처럼 흘렀고 그날 하루동안 3,600명의 유대인이 살해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대반란군 집단이 예루살렘과 갈릴리에 있는 로마의 요새를 공격했습니다. 이때 네로 황제가 베스파시안 장군에게 6만 명의 군사를 주었습니다. 베스파시안의 원정은 갈릴리에서 시작되었고 수천 명의 갈릴리 백성들이 진군해 오는 군대를 피해 예루살렘으로 피신했습니다. 하지만 네로가 자살했다는 소식에 베스파시안 장군이 로마로 돌아갔고 로마의 황제가 되어 장군시절에 완수하지 못한 소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AD70년 봄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마침내 8월 5일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습니다. 로마에 저항했던 반란군들은 처참하게 학살당했고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생존자들은 노예로 팔려갔으며 성전은 통곡의 벽 하나만 남기고 불에 탔습니다. 그후 4년 동안 유대전역의 반란군 요새들이 로마에 의해 차례로 점령당했습니다. 마지막 요새(사해 근처의 마사다 요새)를 지키던 유대인 반란군은 항복하는 대신 자살했습니다. 마사다는 본래 헤롯대왕이 반란이 일어나면 피하기 위한 요새였습니다.
봉기가 실패로 돌아간 뒤 유대인 지도자들은 그와 유사한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을 포함하여 로마의 미움을 살 우려가 있는 모든 비주류 무리를 회당에서 내쳤습니다. 이로써 교회와 회당, 기독교와 유대교가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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