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 외경, 위경 구분
정경 - 선지자적 유래와 (사도성)이 확실하여 교회가 완성된 단위로서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유일하고 권위 있는
계시로서 인정한 것.
위경 - 저작성 자체가 허위인 저술(저자 자체가 거짓 저자, 다른 사람이 써놓고 이름을 베낌)
외경 - 정경적 권의의 주장이 허위임이 드러난 저술들을 말함.(저자는 맞음. 그러나 성령의 영감성이 없는 저술이다.)
<에스드라 3,4권, 토비트,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에스더서 부록, 불구덩이 속의 세 아이들의 찬송, 수잔나의 역사서, 벨과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비의 두 책 등>
외경에 대한 평가
ㄱ.네덜란드 신앙고백서는 외경의 가치에 대해서 전면 부정하지 아니하고 다소 유보적인 평가를 내린다.
이 책들은 그 내용이 정경에 기록된 내용과 일치하는 한계 내에서만 읽혀질 수 있고 교훈을 줄 수 있을 뿐이다.
기독교적인 종교 혹은 신앙의 어떤 면이라도 확증을 줄 수 있는 능력이나 효능과는 거리가 멀며 이 책들로 인해
다른 거룩한 책들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는 없다. 외경을 무조건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적인 사용이 가능하다고 진술하고 있다. 물론 다른 신앙고백서는 외경의 내용이 정경에 기록된 내용과 일치하는 한계 내에서만 읽혀질 수 있고 심지어는 교훈을 줄 수도 있다라고 하는 단서를 달고 있다.
ㄴ.장로교회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외경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한다.
보통 외경이라고 부르는 책들은 신적 영감에 의해 된 것도 아니며 정경의 일부도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아무런 권위도 없다. 또한 다른 인간적 저서보다 더 인정되거나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1장3조 - 일반적으로 외경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영감에 속하지 않은 것으로 정경의 일부가 아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권위가 없으며 작품 이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홍길동전하고 똑같음.
어거스틴. 제롬이 정경 작업을 많이하였다
외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도 배울 수 있다고 말한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와는 달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입장은 단호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네덜란드 신앙고백서도 외경의 정경적 권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배척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여기까지가 간단 정리였습니다.
더 구체적인 자료를 보시려면 밑으로 보시면 됩니다.
1.1 구약 위경이란 무엇인가?
위경이란 헬라어 <프슈데피그라파>를 번역한 것이다. 의미는 ‘가짜 이름이 붙은 글들’ 혹은 ‘가명으로 쓰여진 글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위경에 속한 책들이 책 이름으로 된 저자로부터 기록되지 않고 후대 사람들이 해당 본문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중요한 인물이나 시대와 연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초기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 안에서 생겨나서 이 두 종교의 근원에 대한 이해에 본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이지만 정경과 외경에 속하지 않는 책들을 가리켜 위경”이라고 칭했다.
<위경에 속한 책들의 목록>
묵시문학서 | 에녹1.2.3서, 바룩2.3서, 에스라4서, 아담 묵시록, 아브라함 묵시록, 엘리야 묵시록, 에스라 묵시록, 에스겔 묵시록, 스바냐 묵시록 등. |
언약서 | 12족장 언약서, 아담 언약서, 삼 족장(아브라함, 이삭, 야곱)언약서, 모세 언약서, 욥 언약서, 솔로몬 언약서. |
구약 전승의 확장 | 아담과 하와 전기, 야곱의 사닥다리, 요셉의 역사, 바룩4서, 이사야 순교 승천기, 희년서, 얀네와 얌브레, 예언자들의 생애, 아리스토텔레스의 편지 등. |
지혜서 | 마카베오3.4서, 아히카르 등 |
기도,시,송시 | 야곱의 기도, 요셉의 기도, 므낫세의 기도, 솔로몬의 시편, 솔로몬의 송시 등. |
단편들 | 비극작가 에스겔, 주석가 아리스테아스 등 |
1.2 외경이란 무엇인가?
외경은 ‘정경 밖의 책들’이란 의미로서 비정경들을 가리킨다. 헬라어 <아포크뤼파>는 기본적으로 ‘감추어진, 숨겨놓은 책들’이란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는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둘 다 가지고 있는데, 먼저는 신비하고 심오한 지식들을 포함하고 있어 일반인들에게는 ‘감추어진 것’이라는 의미와 다른 의미는, 그 내용이 황당무계하고 이교적이어서 신앙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숨겨두어야 하는 책’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그런데 외경의 유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70인경”이라고 불리는 구약성서의 헬라어 번역 성서의 생성과 전승의 문제를 알아야 한다.
주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물리치고 승리함으로써 고대 중동세계의 통용어가 되었고, 유대인들도 모국어가 아니라 헬라어를 상용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유대인들조차도 히브리어도 기록된 구약성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고, 구약성서를 헬라어로 번역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2.1 구약성경의 정경화 과정
2.1.1 70인경과 아리스테아스 서신
기원 전 100년경 아리스테아스 서신에 의하면 이 헬라어 번역 성서는 기원전 3세기 중반 경에 프톨레미 2세(B.C. 285-264년)의 지시에 따라 72명의 장로들에 의해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번역된 헬라어 번역 성서를 70인경(Septuagint, LXX)이라 부른다. 이 번역작업은 당시 희랍 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가질 수 있다. (한하르트 교수)
첫째, 70인경은 언제 완성되었는가?
둘째, 유대 헬라 공동체와 초대교회는 70인경을 얼마나 정경으로 인정했는가?
사실 이 질문은 자료의 부족으로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그 사본도 온전히 전체를 포함한 사본으로 보관되어 있지 않기에, 오리겐에 의해 쓰여진 <헥라플라>에 기록된 헬라어 본이나, 70인경이 다시 라틴어로 번역된 고대 라틴어본을 참고하여 말할 수밖에 없다.
2.1.2 얌니아 공의회
그레츠의 주장에 따르면 정경은 “3단계”를 거쳐 90년도 얌니아 회의에서 39권의 정경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경은 에스라 시대인 기원전 5세기, 예언서는 적어도 기원전 180년 이전, 나머지 성경들은
바리새파 주도의 90년도 얌니아 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
얌니아 회의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유대 공동체가 70인경에 기록된 15권의 외경을 정경의 목록에 넣지 않고 오직 히브리 사본을 근거로 하는 39권만을 구약의 정경으로 확정하였다는 점이다. 1947년 사해 문서의 발견은, 종전의 신교와 구교 간의 외경논쟁에서 일단 가톨릭 측의 손을 부분적으로 들어주었다. 종전에는 외경(제 2경전)에 해당하던, 예레미야의 편지(바룩), 집회서, 토비트 등의 동방 정교회의 2경전 목록에 해당하는 고대 히브리어 필사본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즉, 얌니야 회의에서 외경 배제의 결정적 사유로서 주장되었던 일부 외경 문서들의 출처 불명확의 근본적인 사유가 어느 정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물론, 쥬빌리나, 하가다등의 개신교의 위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문헌도 발견되었으며, 정경의 문헌들과 비교해 볼때, 외경의 히브리어 문헌들의 보존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출토된 외경 문헌에는 정경 문헌과 달리 미드라쉬의 존재가 없다는 점을 놓고서 개신교에서는 단순한 히브리어 문헌 출토가 경전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기도 한다. 유대교의 경우에는 아직 사해문서와 얌니야 회의의 결정의 연관성을 놓고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70인경에 추가로 포함된 15권의 책>
토빗서 | 유딧서 | 에스더 첨가서 | 솔로몬의 지혜서 | 집회서 |
바룩서 | 예레미야의 편지 | 세 청년의 노래 | 수산나 이야기 | 벨과 뱀 이야기 |
마카비 1서 | 마카비 2서 | 에스드라 1서 | 에스드라 2서 | 므낫세의 기도 |
2.1.3 종교개혁과 루터의 말들
서방교회는 외경이 포함된 70인역을, 동방교회는 히브리어 사본을 중심으로 구약성경을 정경으로 삼았다. 이런 차이는 초대 교부들의 외경에 대한 입장에서부터 차이가 나기 시작했는데, 히브리어를 몰랐던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키프리안 등과 같은 2-3세기 라틴 교부들은 구약성서와 차이를 두지 않고 외경을 인용했다. 그러나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이 있다거나(예컨대 오리겐과 제롬) 유대교 정경의 한계를 알기 위해 노력한 (예컨대 사르디스의 멜리토) 소수의 교부들은 외경의 정경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한편 서방교회는 고전어에 능통하지 못했던 어거스틴의 의견으로 70인경 전체를 정경으로 삼는데 강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종교개혁은 구교와 신교로 나뉜 지금의 정경을 확정 짓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루터는 연옥 문제나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와 미사의 효과에 대한 증거 본문으로서 외경이 인용되었을 때 처음으로 외경을 비난하게 되었다. 그리고 선행을 통해 얻어지는 공덕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외경의 내용들(토비트 12:9, 집회서 3:30), 에스드라 2서 8:33, 13:46)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루터는 1534년 독일어 번역을 마쳤을 때 외경을 구약성서 끝에 부록으로 처리하고, 서문에 이렇게 말했다. “외경-이는 성서와는 동등시될 수 없는 책들이지만 읽어서 유익하고 좋은 책들이다.”
2.1.4 트리엔트 공의회
트리엔트 공의회는 1545-1563년 사이 25개 회기로 이탈리아 북부 토렌토와 볼로냐에서 개최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종교개혁 즉 프로테스탄티즘의 출현으로 자극받은 반종교개혁의 전형으로 묘사되며, 한스 큉은 트리엔트 공의회를 “개신교의 종교개혁 요구에 수많은 파문과 정죄로서 응답한 공의회”라고 말했다. 이 공의회의 목적은 종교개혁에 반발하여 '누가 이단이냐'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이단인가'를 밝혀 가톨릭 신앙 교리의 명확한 한계를 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1546녀 4월 8일에 있었던 4번째 회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특별히 구약 정경의 범위를 결정하였는데 여기에서 외경들을 포함했다. 다음은 4번째 회기 내용의 일부이다.
“거룩한 에큐메니칼 보편 공의회는 … 경건과 존경의 심정으로 구약 및 신약의 모든 책들을 받아들이고 존경한다. 왜냐하면 한 분 하나님께서 그 둘 모두의 저자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신앙과 관련되어 있건 윤리와 관련되어 있건 전통들을 그리스도 혹은 성령님에 의해 구두로 명령되었으며 중단되지 않은 계승으로 가톨릭교회에 보전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존경한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경과 기록되지 않은 전통들(교회의 판결)을 진리의 원천으로 확증했으며 종교개혁의 중추적 필요성을 가지고 있는 주장인 성경해석을 위한 교회의 독점적인 권한 역시 확증하였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경으로 『불가타』본문의 권위를 확증했으며 동시에 『불가타』의 개정도 명령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구약 및 신약 책들에 대한 법령을 제공하였다. 확증된 구약 목록은 다음과 같다.
<트리엔트 공의회 구약 목록>
『창세기』 | 『출애굽기』 | 『레위기』 | 『민수기』 | 『신명기』 | 『여호수아』, |
『사사기』 | 『룻기』 | 『사무엘상』 | 『사무엘하』 | 『열왕기상』 | 『열왕기하』 |
『역대상』 | 『역대하』 | 『에스드라 1서』 |
『에스드라 2서』 |
『토빗서』 | 『유딧서』 |
『에스더』, | 『욥기』 | 『시편』 | 『잠언』 | 『전도서』 | 『아가』 |
『솔로몬의 지혜서』 | 『집회서』 | 『이사야』 | 『예레미야』 | 『바룩서』 | 『에스겔』, |
『다니엘』 | 『호세아』 | 『요엘』 | 『아모스 | 『오바댜』 | 『요나』 |
『미가』, | 『나훔』 | 『하박국』 | 『스바냐』 | 『학개』 | 『스가랴』 |
『말라기』) | 『마카비 1서』 | 『마카비 2서』 |
트리엔트 공의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의회 중 하나이다. 본 공의회는 가톨릭교회의 성경 정경의 범위에 대해 이 시대에 통용되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신념들을 분명히 규정했기 때문이다. 본 공의회를 통하여 구약 및 신약 정경은 최종적인 정의를 얻게 되었다; 구약의 46권 및 신약의 27권. 이 공의회는 “제1 정경적” 및 “제2 정경적” 책들로 구성된 구약 책들과 신약 책들이 교회의 정경을 형성한다고 결론지었다. 두 모음집은 동일한 권위를 가졌다고 주장되었으며 성경의 라틴어 『불가타』 역시 가톨릭교회에서 권위있는 성경으로 수용되었다.
2.2 소 결론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항하여 이태리 트렌트에서 종교회의가 소집되었는데, 1546년 4월 8일 회의에 참석한 53명의 가톨릭 사제들은 불가타 성서 전체를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를 정죄했다. 이것은 초대 기독회가 따랐던 ‘알렉산드리아 정경’의 기본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때 가톨릭 교회는 15권의 외경 가운데서 에스드라 상,하와 므낫세의 기도 3권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 결과 오늘날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하는 외경은 ‘알렉산드리아 정경’의 15권이 아닌 12권이 되었다. 또한 기독교회의 3대 주류 가운데 하나인 동방정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같이 ‘알렉산드리아 정경’의 전승을 따르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1672년 예루살렘회의에서 바룩서와 예레미아의 편지 두 권의 책을 정경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3. 이외의 흥미로운 외경
3.1 마카비서
맛다디아의 아들 마카베오는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4세의 종교박해에 맞서 종교 항쟁을 수행한 중심인물로서 마카비서는 그의 이름을 따 이름 지어진 성서이다. 마카비서는 상, 하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하권 모두 이스라엘 역사 깊이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일깨우고자 쓰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유다인들이 안위를 위하여 민족을 배신하거나 죽음의 위협을 느껴 우상과 이방 관습을 받아들이는 풍토에서, 신앙과 민족을 지키려 목숨을 던져 순교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굳은 신뢰만이 이스라엘이 살 길임을 되새기게 하는 목적을 가진다.
마카비서 상권은 주전 2세기의 역사자료로서 매우 중요하며 그 당시 종교적 의식과 신앙을 아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 성전을 귀하게 여겼으며 예루살렘 순례와 성전에 십일조를 드리는 일을 적극적으로 강조했다. 토라는 지혜의 핵심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상은 축복받은 토라를 수호하기 위하여서는 죽음도 불사하는 유대인들이 굳은 결의의 기초가 형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토라는 율법주의만 강조한 것이 아니며 인격적인 심오한 경건심을 불러일으켜 다른 사람을 돕고 선행을 하도록 하는 역할도 했다. 또 상권은 시몬의 아들 요한에 이르기까지 하스모니안 왕조의 공식적인 역사에 관심을 보이며 그 가문의 확립과 연속성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히브리어 원본은 전해지지 않지만, 히브리 관용어가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보아 하스모니안 왕조를 적극 지지한 사람이 히브리어로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유다 문헌에서는 마카베오 상권을 이들 가문의 이름을 따라서 ‘하스모니안’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스모니안 왕조를 적극 지지한 사람이 히브리어로 썼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히브리어 원본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고 히브리 관용어가 자주 언급된다.
마카비서 하권은 외경 중 역사를 다룬 대표적인 책이다. 마카비서 하권은 정경인 ‘열왕기서’를 토대로 쓰였고 마카비 반란 이전부터 시몬의 사망에 이르기까지(175-134 B.C) 팔레스타인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상황을 잘 묘사해주고 있다. 이 책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이 마카비 왕조를 그의 구원의 도구로 여기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의미와 내용을 담고 있다. 마카비서 하는 역사와 함께 상당히 많은 분량의 전설이 섞여 있어서 신빙성이 약하다. 이 책은 주전 5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희랍어로 쓰였으며, 성전에 대한 열정과 모세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데 대한 열심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전설은 1:1-2:18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대인들이 이집트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주전 124년 및 143년에 보낸 두 개의 편지내용으로 되어 있다. 둘째 편지에는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 예레미야가 제사장들에게 명령해서 제단 불을 우물 밑에 감추게 한 사실과 느헤미야 시대에 그 불을 찾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그 대신 검은 액체를 발견해서 태양열로 불을 붙여 희생제물을 태웠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또한, 의인이 영생을 얻기 위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다는 신조를 피력하고 있다. 이 점에서 마카비서 하의 저자는 다른 알렉산드리아 계통의 책, 즉 그리스 사상의 영향을 받아 영혼불멸설을 주장하는 [솔로몬의 지혜]와 의견을 달리한다.
3.2 솔로몬의 지혜서
지혜서, 혹은 보다 길게는 솔로몬의 지혜서라고 불리우는 이 책은 주전 100년부터 주후 40년 사이에 편찬된 것처럼 보인다. 많은 독자와 청중을 확보하기 위하여 저자는 자신의 작품을 이스라엘의 가장 지혜로운 왕이었던 솔로몬의 이름으로 내놓았다. 지혜서의 저자가 누구였는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었으며, 저자 후보로는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로부터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의 아폴로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름들이 등장했다. 확실성을 가지고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지혜서의 저자가 희랍 철학에 능통한 한 정통파 유대인이었다는 점이다.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지혜 자체에 관한 교리가 있다는 것 이다. 이미 구약성서 안에서 지혜의 의인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혜서의 저자는 지혜를 주의 영, 주의 손, 주의 섭리 및 능력과 일치시킨다. 지혜의 속성으로서는 지성, 거룩, 자비, 전지, 전능 등 이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기능과 속성은 지혜가 곧 하나님 자신과 매우 가까운 존재임을 말한다. 저자는 단순히 지혜의 의인화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지혜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지혜를 하나님의 떨치시는 힘의 바람이며, 전능하신 분께로부터 나오는 영광의 티 없는 빛이며, 티 없는 거울이며, 하나님의 형상이라고까지 묘사한다. 하지만 저자는 지혜를 곧 하나님이라 하지는 않는다. 지혜를 하나님과는 구별한다.
종말론의 영역에서 지혜서의 저자는 생시의 인간의 도덕 행위의 내용과 그 질이 사후의 운명을 결정 짓는다고 가르친다. 의로운 사람은 “주님의 성전 안에 제일 좋은 자리”에서 평화와 영광의 상태에서 영원히 살지만 악한 사람들은 지옥바닥에 거꾸로 던져져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솔로몬의 지혜서는 초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총애를 받았었다. 몇몇 구절들이 그리스도의 수난 예고로 이해되었었기 때문이었다. “정의를 나타나게 한 그 나무는 축복을 받았다”는 본문은 본래는 노아의 방주를 두고 한 말이었으나, 문맥에서 이탈시켜 예수의 십자가 나무를 언급한 것으로 여겼다. 이와 같이 지혜서 2장 12~20절과 같은 본문을, 그리스도 살해 음모를 예고한 것이라고 생각한 교부들도 있었다. 이 책에는 메시아사상에 입각하여 재해석될 수 있는 본문들도 있다. “하늘의 옥좌로부터 주님의 전능하신 말씀이 마치 사정없는 전사처럼 멸망한 땅 한 가운데로 뛰어들었다”는 본문에서 교부들은 말씀(로고스)이 육신을 입고 나타난 화육의 교리를 끄집어냈다. 하지만 본래 이 본문은 고대 애굽 사람들의 장자 멸망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해당 교부들은 이것을 화육 교리에 적용시켜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천주교 미사 경본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화육의 교리
-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죄 아래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 곧 인간의 세계 속으로 들어오신 사랑의 행위.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사건을 가리킨다.
3.3 바룩서(예레미야의 편지)
외경 가운데서 예언서적인 성격을 띤 책으로, 저자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동료로 알려진 바룩(렘32:12)의 이름을 빌어서 예레미야의 부록과 같은 이 책을 쓰고 있다. 저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므로 형벌을 받았다는 것에서 시작하여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내용을 끝내고 있다. 예레미야의 편지는 애가나 바룩서의 뒤에 첨가되어 왔다. 예레미야의 이름을 빌린 저자는 동포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저급한 신앙과 생활로 떨어질 것을 염려하고 있다. 이것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본문으로 한 일종의 설교라고 불 수 있다.
3.4 에스드라(Esdras) 1서, 2서(에스라 4서)
"에스드라"는 "에스라"와 같은 이름이며, 에스드라 1서는 에스라의 마지막 장과 느헤미야 8장을 연결시켜 준다. 요시야 왕의 유월절 행사, 바벨론 포로, 다리오 왕의 성전 재건, 귀환자들의 명단, 에스라의 귀환과 종교 개혁 등을 다룬다. 애굽적인 색채가 많은 것은 애굽에 살던 유대인이 저자일 것으로 추측하게 한다. 에스드라 1서는 허구적 역사 소설로서 저자는 사실에 대한 정확한 보도보다는 도덕적 교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에스드라 2서는 요한 계시록과 같은 묵시 문학으로 에스라의 족보와 함께 그에게 보여진 일곱 개의 계시(악의 문제, 죽은 자들의 운명, 소수의 구원받을 자들, 이스라엘을 위한 애곡, 바다에서 솟아난 독수리, 바다에서 나온 이상한 남자, 묵시의 기록과 보존)를 기록한다. 에스드라 2서에 기독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이 책이 기독교인에 의해서 지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3.5 토비트(Tobit)
고대 유대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혀지던 경건 소설로서 주전 190-170년 사이에 경건한 유대인에 의해 쓰여졌다. 이 책의 목적은 모험 소설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종교적 및 도덕적 교훈을 주려는 것이다. 토비트가 북이스라엘의 멸망 때에 니느웨로 잡혀가서 경건하게 살다가 실명을 하자 그의 아들인 토비아가 사람으로 변장한 천사 라파엘과 모험을 하면서 아내와 약을 얻어 온다는 내용이다. 이 책은 당시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의 경건한 삶의 모습과 자선을 통하여 의롭게 된다는 사상들, 천사와 마귀에 대한 사상 등을 보여주고 있다.
3.6 유딧서(Judith)
유딧서는 전쟁 무용담에 속하는 작품으로, 저자는 민족의식과 원수들에 대한 반항심, 율법에 대한 준수 등을 교훈하면서 특히 애국심과 신앙심의 불가분의 관계를 보여준다. 유대인을 쳐들어온 앗수르의 군대를 유딧이라고 하는 한 과부 여인의 지혜로 물리치는 내용인데, 역사성은 전혀 없는 허구의 이야기이다.
3.7 에스더 추가(Rest of Esther)
에스더서를 보충하는 내용으로 모르드개의 꿈, 유대인 학살 조서 사본, 에스더의 기도,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가는 장면, 유대인 복권 조서 전문, 모르드개의 꿈에 대한 해석이 들어 있다. 이것은 에스더서에 희박하게 나타나는 종교적인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70인 역에서는 에스더서에 추가되었다.
4. 결론
4.1 사해 사본 발견의 결과
사해 사본의 발견은 기원후 1세기말경에도 구약의 범위나 내용이 종파에 따라 달랐고, 모든 유대인들이 받아들인 히브리 정경의 개념은 없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또한, 칠십인역은 마소라 본문과 다른 대본에서 정확하게 번역된 것이고, 팔레스틴 유대인들도 이를 사용했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따라서,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히브리 정경을 경전으로 받아 들였지만,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히브리 정경보다 칠십인역을 선호하여 사용했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다.
4.2 구약 정경의 형성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구약성서의 정경 개념은 유대교에서 온 것이 아니라 기독교회가 로마의 국가종교가 된 후 교회 회의를 통해서 4세기경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범위는 교회 전통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개신교회의 경우 구약정경을 39권으로 한정하는데 이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로부터 시작되었고
이는 루터가 유대교 랍비들의 경전 전통을 수용함으로써 가능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것은 구약정경이 역사적으로 단계별로 형성되었다기보다는 후대에 일관되게 결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5. 참고문헌
국내 문헌
김창선, “헬라 유대 디아스포라와 칠십인경(LXX) 성서마당 가을호” (2007)
천사무엘. “구약정경의 형성과정에 대한 재고: 표준 이론을 중심으로” 구약논단 제20권 1호 (2014)
하경택. “구약의 위경 어떻게 볼 것인가?” 성서마당 2006년 9월호 (2006):
국외 문헌
부르스 M. 메츠거, 민영진 역, 『외경이란 무엇인가』, (컨콜디아사, 1990)
데이빗 웬함, 스티브 윌튼, 『복음서와 사도행전』, (서울:성서유니온, 2006)
D.S 러셀, 임태수 역, 『신구약 중간시대』, (컨콜디아사, 1977)
레스터 L. 그래비, 이유미 역 『제2성전기 유대교』, (컨콜디아사, 2017)
크레이그 A. 에반스, 김주한 박정훈 역, 『신약성경 연구를 위한 고대문헌 개론』, (서울:솔로몬, 2018)
자크 르 고프, 최애리 역, 『연옥의 탄생』, (문학과 지성사, 2000)
가스펠서브, 『교회용어사전: 교회 일상』, (생명의말씀사 2013)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기독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속의 동물과 그 의미 (0) | 2025.03.18 |
---|---|
성경의 역사와 세계역사 비교표 (0) | 2025.03.18 |
부활절은 왜 해마다 다를까 (0) | 2025.03.14 |
사순절이란 (0) | 2025.03.11 |
유대성서와 구약성서의 비교연구 (0) | 2025.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