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미디안(Midian)

열려라 에바다 2025. 3. 26. 14:35

미디안(Midian)    

1. 미디안(Midian) 족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성경 속 미디안 족의 시작은 아브라함 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세기 25장에는 그두라라는 여인을 후처로 들여 여러 아들들을 낳았다고 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미디안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재산 일부를 주어 미디안을 비롯한 그두라의 아들들에게 동방으로 가서 살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창 25:6). 자신의 정통 후계자(이삭)을 제외한 나머지 서자들을 멀리 떨어트려 살도록 한 것은 이 시대 상의 관습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디안 족속의 조상이 아브라함의 아들 미디안이 맞는지, 아브라함의 아들 중 정말 미디안이라는 사람이 있었는지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는 전혀 없다(물론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실제로 존재했을 법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있지만 그들의 인생을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는 성경과 같은 교의적 증거 외엔 없다).

여튼 출생이 불분명한 미디안 부족은 아라비아 반도 서쪽 전역에 퍼져 살게 되었다. 서쪽에는 홍해가, 북동쪽에는 사막지대가 가로막고 있어 주변과의 적극적인 교류는 어려웠어 보인다. 이들은 넓은 범위의 땅에 두루두루 퍼져 살면서 명맥을 이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2. 성경 속 미디안(Midian) 민족의 등장
미디안 민족은 이렇듯 아라비아 반도 서쪽 끝에서 살다가 출애굽기 초반에 잠깐 등장하게 된다. 모세가 살인을 저지르고 미디안 땅으로 도망하게 되는데, 여기서 모세의 장인이 되는 사람의 이름은 이드로고 곧 미디안 민족의 제사장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미디안의 제사장이라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과연 유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는가에 대해 생각에 볼 필요가 있다. 이 당시 미디안 민족(겐족)은 아라비아 반도 서부에서 광산업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주로 이집트와 교류를 하며 삶을 영위했었는데 이집트의 광부들은 채굴을 하러 올 때마다 하돌(Hathor)이라는 신의 신전을 세웠다. 하지만 주전 12세기 중엽 이후 이집트의 광부들이 더 이상 채굴을 하러 올 형편이 되지 않자, 미디안 민족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밖에 없었고 하돌의 신전을 자신들의 신당으로 대체하였다(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장막으로 된 신당이었다고 함). 여기서 하돌 신상들은 모조리 뽑히거나 고의적으로 훼손되었다고 한다. 또한 신당에서는 구리로 도금한 뱀의 상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모세가 들어올렸다고 전해지는 놋뱀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이 모든 고고학적 자료들은 미디안족의 종교와 이스라엘의 종교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다는 것을 강력히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집트에서 탈출한 모세가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에게 신에 관한 어떤 것을 전수 받았고 이것을 시내산에서 변형시켜 드러냈다는 가설도 충분히 세울 수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미디안 민족이 보이는, 또 성경 속 이드로가 보이는 행태는 단일신론에 대한 믿음이지 유일신론에 대한 믿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 속 이드로는 하나님을 모든 신 중의 신, 즉 경배할 만한 단 하나의 신 정도로 생각하지 '유일신'에 관한 믿음의 행태를 보이고 있진 않다. 오히려 이 유일신이라는 독특한 개념은 위대한 인물인 모세에 의해 확립된다고 본다. 보통 단일신론에 관한 믿음은 모세의 세대보다 훨씬 이전인 족장시대(아브라함, 이삭, 야곱)에서 두드러지는데 - 특히 한 부족의 수호신으로 생각하여 각자의 하나님을 이름짓고 예배함 - 이것은 가나안의 거의 모든 부족들이 그리했으며 그들(셈계)의 신을 통칭적으로 '엘'이라 불렀다. 예를 들어, a부족이 b부족을 이기면 a부족의 신이 이긴 것이므로 a신만이 경배할 만한 단 하나의 신이 된다. 그러나 애굽에서의 오랜 기간 이후 모세를 따라 엄청난 신앙적 경험을 공동체적으로 고백하게 되고 '유일신'에 관한 믿음이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어찌 되었든 위에 관한 문제들로 인해 미디안 민족이 모세로부터 이어지는 독특한 유일신 신앙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였느냐는 문제는 추측과 추론에 그칠 수 밖에 없다. 고고학적으로 밝혀지는 증거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고 교의적으로 드러나는 성경 속 진술(이드로의 발언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드로의 향후 행적)들도 미디안 민족의 종교관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미디안 민족은 본인들이 생각하는 경배할만한 어느 한 신만을 예배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그'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이드로, 혹은 고대 족장들의 신앙에 큰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따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평가하실리는 만무해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한계적인 시대 속으로 들어가셔서도 일하시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 내려지는 열 가지 재앙들을 통해 이집트의 주요 10신을 차례로 도장깨기 하신다. 오늘날과 같은 우리의 유일신을 믿는 믿음이라면 이러한 '가짜 신 도장깨기'는 사실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10신은 단지 우상일 뿐이므로,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대상으로 대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시에 지배하고 있던 단일신론 혹은 다신론을 적극 고려하여 당대의 '믿는 백성'들에게 엄청난 사상적 충격을 떠안게 하셨다. 따라서 이들의 기초적인 신앙, 종교관을 두고 굳이 채찍질 할 필요가 없다. 시대가 그랬기 때문이다. 존재론적 측면에서 단일신론에 꽤 가까웠던 아브라함은 그대로 믿음의 조상이 된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다른 신들에 관해 신경 쓸 일 없이 그와 그의 부족의 하나님을 충실하게 믿었기 때문이다(비록 다른 신보다 유일하게 경배할 만한 신이다라는 단일신론 관점 속에서 살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시대적 한계였기 때문에)!


3. 미디안(Midian) 민족과 가나안 정복, 그 이후

잡다한 이야기가 길었지만 미디안 민족은 제사장 이드로 일파를 제외하고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복 행보에 굉장히 적대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가나안 남부지방을 통한 왕의 대로를 노렸던 이스라엘 민족이 에돔의 거절로 인해 아라바 광야 남부, 즉 에시온게벨(민 33)쪽으로 방향을 틀어 남진해 왔기 때문이다. 민수기 22장에서는 이에 대한 미디안 민족의 불안감이 잘 드러나고 있다. 미디안의 장로들과 모압의 장로들이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할 것을 요청했다는 부분이 기록되어 있는데, 굉장한 적대감을 가지고 행한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미디안 민족은 사사 시대에 가서야 군대를 일으켜(정확히는 아말렉, 친분이 있던 동방의 유목 민족들과 결합하여) 이스라엘을 침공하였다. 이를 통해 약 칠 년간 이스라엘을 억압하였지만 사사 기드온에 의해 왕 세바와 살문나가 사로잡혀 죽고 완전히 패퇴하였다(삿 8).

이스라엘 왕정 시기에는 앗수르(앗시리아)에게 결국 정복당했으며, 이후에 그들이 살던 지역은 미디안 지역으로 불렸고, 앗수르의 정책에 의해 자연스럽게 타민족과 동화되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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