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말씀

주님의 말씀은 현실이 된다

열려라 에바다 2025. 4. 9. 16:40

주님의 말씀은 현실이 된다      

   
글쓴이/봉민근


사람의 노력에는 항상 한계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마치 밥만 먹고 뛰는 축구 선수가 한골을 넣기가 어려운 것처럼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삶도 죽음도 모두가 나의 뜻과는 무관하다.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교회는 언제나 타락하고 변질되어 부패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이미 배워서 아는 바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것이다.
권능이 임하면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의 삶을 살 수가 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붙들어 주시기에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굳건히 서있다.

교회는 인간의 지혜나 능력 따위를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약할 때 강함이라 고백했던 바울처럼 연약한자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

주님의 말씀은 현실이 된다.
인간의 능력이 절대 아니다.

이것을 아는 자는 가슴이 뛰게 되어 있다.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한계에 부딪히고 역경 속에서 신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본다.

성경의 주제는 오직 주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이다.
언제나 변질된 역사는 하나님을 떠난 인본주의적인 토대 위에 세워져 있을 때다.

죄로 인하여 타락한 인간들의 생각은 늘 세 상것에 국한되어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은 저주다.
하지만 그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인류의 소망이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것을 친히 보여 주시고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 주셨다.
믿음은 한계를 뛰어넘어 영원한 세계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준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 예수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자가 그의 나라에 가게 될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주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그날을 사모하며
믿음을 굳건히 지켜 최후의 승리자가 되자. ☆자료/ⓒ창골산 봉서방

탐욕과 시기의 차이/류호준        

 

시기는 단순한 탐심보다 더 비열한 죄이다. 무엇보다도 시기하는 사람이 원하는 건 남들이 가진 걸 자기도 가졌으면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원하는 건 다른 사람이 그걸 못 가지게 하는 것이다.

 

탐한다는 건 다른 누군가가 가진 것을 너무도 열렬히 원해서 그걸 훔치고 싶은 마음까지 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시기는 다른 누군가가 좋은 것을 가진 게 너무도 화가 나서 그걸 망쳐 버리고 싶은 마음을 품는 것이다.

 

탐하는 사람은 빈손이고,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가진 좋은 것으로 자기의 빈손을 채우고 싶어 한다. 시기하는 사람 역시 빈손이지만, 이 사람은 자기가 시기하는 대상도 빈손이기를 원한다.

 

더 나아가 시기에는 개인적 분노의 느낌이 배어 있다. 시기하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복 받는 것을 불쾌히 여길 뿐만 아니라 복 받는 사람까지 싫어한다.

 

탐심은 사람보다는 물건에 훨씬 더 초점을 맞춘다. 사람에게 초점을 맞출 때조차도 그 사람을 물건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무엘상에서 시기 어린 사울의 시선은 다윗에게 머무는 반면, 사무엘 하에서 탐내며 눈동자를 굴리는 다윗의 시선은 저 고결한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에게 머문다) 탐내는 사람은 욕망한다. 그러나 시기하는 사람은 분노한다. 마침내 살인에 이른다. 가인과 아벨의 경우처럼 말이다.

 

코넬리우스 플랜팅가 Jr.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 255-256에서 ☆자료/ⓒ창골산 봉서방

삶의 변화       

 

충성스럽다는 것은 믿을 만하고 신뢰할 만하며 믿음직하고 지조가 있다는 뜻이다.

성경은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잠 20:6)고 말한다.

 

1. 우리가 충성스러워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 행사는 다 진실하도다(시33:4).

환난 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자는 부러진 이와 위골된 뼈와 같으니라(잠 25:19)

 

2. 우리가 충성되어야 할 다른 이유는 하나님이 그것을 보상해 주시기 때문이다.

마 25장에 기록된 달란트 비유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고 우리의 충성됨에 따라 보상해 주실 것이다.

 

충성된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덟 가지 일

첫째, 약속을 지키라(잠 25:14, 잠 20:25, 전 5:5, 마 5:37).

 

둘째, 결혼생활을 소중히 여기라.

 

반지를 교환하는 것은 평생 서로에게 충실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고전13장은 누군가 사랑할 때 우리는 그 사랑하는 사람을 의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셋째, 은사를 사용하라(벧전 4:10).

 

넷째,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엡5:15-16).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는 것은 우리 뒤에까지 남을 일에 투자하는 것이다. 우리의 시간을 낭비하는 두 가지가 있다. 후회(과거에 대해)와 염려(미래에 대해)이다. 보다 충성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하게 되면...그러면 이라는 사고 방식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 충성하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의 삶 가운데 잘라낼 것은 잘라내라, 추가할 것은 추가하라.

 

다셧째, 친구와 함께 하라.

 

진정한 친구는 언제나 충성스럽고, 형제는 어려운 때에 돕기 위해서 태어났다(잠 17:17).

 

여섯째, 돈을 잘 관리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재물에 신실하지 않으면 영적자원들을 우리에게 맡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눅 16:11)

 

일곱째, 최선을 다해 일하라.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은 큰 것에도 충성한다(눅 16:10).

 

여덟째, 교회에 헌신하라(롬 12:5).

 

그리스도인이 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헌신한다. 그리 다른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것을 통해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일 뒤에 숨지 말라        

 

우리 사역의 대상은 항상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 사역의 수단도 사람이다.

곧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다.

 

같이 몇년을 일하고도 서로를 알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일 뒤에 숨어서 살기 때문이다.

바쁘게 지내며 서로를 만나고, 얼굴을 보고, 마음의 교제를 나누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도 내내 바쁘게 움직이는 통에 인사도 건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눈 인사도 하질 않는다.

 

일 뒤에 숨지 말자.

쑥스럽고 부끄럽고 부담스럽더라도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자.

서로에 대해 얘기하자.

하나님께 대해 얘기하자.

마음을 나누자.

사랑하자.

 

일 뒤에 숨지 말자. ☆자료/ⓒ창골산 봉서방

성경 말씀이 주어진 목적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진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요?

말씀을 마주하는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하고 이해하게 하는 것이고,

그로인해 결국

하나님과의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성경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시는 일종의 러브레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알리시려는 걸까요?

이는 그의 절대적 사랑을 깨닫고,

그래서 우리 역시 그를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의 인간됨의 본질이 채워져

드디어 행복의 물꼬가 터지기 때문입니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사명이 드러날 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기 적성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 속에,

사명까지 안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자기 사명은 잘 모르는 게

정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삶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명을 말함에 있어 하나 확실한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의 형태는 다르더라도

모든 사명은 다 사랑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말로 사랑하다 보면 이끌리고 드러나는 게 사명입니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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