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에 충실한 믿음 2 (신 22:9-11)
9.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 10.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11. 양 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12. 너희는 너희가 입는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
이 시간에도 “기본에 충실한 믿음”에 대해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한국교회사에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 독립운동가 교육자 종교인 언론인 정치인이던 고당 조만식(曺晩植) 장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조장로님은 본래 가난해서 머슴살이하던 청년이었습니다. 머슴살이할 때 얼마나 성실했든지 자기 일처럼 했을 뿐 아니라, 주인보다 일찍 일어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마당을 쓸고 주인의 요강도 깨끗이 씻어서 햇볕에 말린 후 다시 안방에 들여놨습니다.
주인이 볼 때 이건 머슴이 아니라 자식이었습니다. 자식도 그런 자식이 없었습니다. 이에 감동한 주인은 그를 머슴으로 두기엔 아깝다고 여기고 평양숭실학교에 입학시키고 일본 명치대학교까지 유학을 보내어 공부시켰습니다. 공부를 마친 고당은 고향으로 돌아와 오산학교 교사에 이어 교장이 되었고 나라를 일제에서 구한 독립운동가요, 민족의 지도자요, 교회의 장로로서 위대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함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기본에 충실함 믿음이었습니다.
기본에 충실한 믿음은 또 어떤 것일까요?
4. 말씀에 기초한 믿음입니다.
9절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 당시 사람들은 혼작 또는 간작을 좋아했는데 간작은 사이사이에, 혼작은 두 종류 이상을 섞어 뿌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작물 끼리 공생하여 거름이 되고 경쟁이 되고 해충을 방지하는 등 상승효과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렇게 해서 결과가 나쁜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본문에 포도나무 곁에 혼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포도원의 덕은 울타리처럼 되어 있어 다른 작물이 포도나무의 그늘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없고, 포도나무 역시 다른 작물이 포도원의 물을 먹고 무성하게 자라서 기운을 막아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의 포도밭에도 하나님의 말씀만 뿌려야 합니다. 덧뿌리는 것은 사탄입니다. 마13:24-25에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말씀이 아닌 세상철학, 이방종교, 기복사상, 뉴에이지, 포스트모던이즘, 종교다원주의, 무속신앙, 율법주의, 민중신학이라는 가리지 등 교묘하게 말씀에 섞여서 들어옵니다. 요가도 깊어지면 귀신의 영에 빠집니다. 처음에는 스트레칭 수준이지만 더 깊어지면 죽은 영혼을 부르는 초혼술과 이러한 영혼들과의 신접을 통해서 저주받은 영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래서 환상을 보고 심하게 떨고 신비를 경험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다 귀신의 영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딤전4:7)고 했습니다. 마7:26-27에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말씀에 기초한 기본에 충실한 믿음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5. 주님을 본받는 믿음입니다.
10절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 하여 갈지 말며” 크기도 다르고 성질도 다른 두 짐승에게 한 멍에를 씌우면 보조가 맞지 않아 그 짐승들에게 고통을 줄 뿐 아니라 갈등을 유발시켜 밭갈이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여기서 주는 교훈은 예수님을 본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11:29-30의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배워서 본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중심에 모실 수 없습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은 것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 한 것은 자기를 본 받으라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는 그 믿음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믿음이 잘 됐는지 보려면 예수님과 비교해 보면 됩니다.
이 말씀은 세상을 본받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롬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말씀대로 사신 주님, 아버지를 경외함으로 사시던 주님, 기도로 능력 받아 사역하시던 주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던 주님, 그 주님을 본 받는 것은 믿음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6. 복음적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11절 “양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혼방을 '샤아트네즈'(Shaatnez)라고 부르는데 이방 세계에서 흔히 있었던 직조법이었습니다. 요즘은 섬유산업이 발달되어 혼방이 더 좋지만 당시로서는 울과 면은 성질이 달라 주름이 생기거나 줄어드는 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혼방을 금지하신 것은 그 안에 담긴 영적 의미 때문입니다. 먼저 양털은 복음입니다. 사1:18-19에 “너희의 죄가 -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하셨듯 양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예수님의 공로를 상징합니다.
여기에 다른 것이 섞여서는 안 됩니다. 벧전1:18-19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공로를 섞어서 조금이라도 의지한다면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온전히 회개해야 피 공로를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자기 공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온전히 회개할 날은 세상에서는 없습니다. 우리가 회개했든 아직 덜했든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피 공로만 믿고 나가야 합니다. 거룩함을 입는 것도 예수 공로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7. 신앙에 목숨 건 믿음입니다.
12절 “너희는 너희가 입는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 여기 “술”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의의 끝단에 다는 장식용 청색 끈을 말합니다. 이것을 달게 한 의미가 있습니다. 민15:39-40에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청색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청색 끈을 팔에다 감기도 하고, 옷에 달리게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늘 명심하며 살았습니다. 신앙생활에 목숨 걸라는 말입니다. 목숨이 아닌 체면이나 복이나 위안이나 취미나 감정으로 하는 자는 넘어질 날이 옵니다. 다니엘과 그 세 친처럼 목숨 걸고 철저히 신앙생활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키가 자라고 믿음이 자라고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믿음의 기본을 잘 지킵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말씀에 기초하고 예수님의 본을 따르고 오직 복음 안에서 믿음에 목숨 거는 투철한 믿음 가지고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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