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의 일곱 족속

가나안 사람들을 모두 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결코 잔인한 학살 명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방의 우상들과 절대로 타협하려 들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사람들과 타협하고 조약을 맺는다는 것은 조만간 자기들도 가나안 사람들의
우상을 받아들이겠다는 호의를 의미했다.
하나님은 이를 예방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가나안족속에 대하여 유죄 평결을 내리신 하나님의 선고에 근거해서, 악한 국가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엄중히 집행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는 자비가 있을 수 없었다. (신 7:2)
1. 이스라엘 백성과 가나안 7족의 비교
신명기 7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가나안 7족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7족은 헷족, 기르가스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즈족, 히위족, 그리고 여부스 족속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도 숫자도 많고 힘도 강한 백성들입니다. 모세는 이 가나안 7족의 특징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로 가나안 7족은 우상숭배하는 백성들입니다. 아쎄라 목상과 조각한 우상들을 섬기는 백성들입니다.
둘째로 우상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유혹하는 백성들입니다. 하느님을 떠나서 다른 신들을 섬기도록 유혹하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7족은 우상으로 유혹하는 백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윤리적으로 완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구별’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거룩한 백성들이란 하느님께서 따로 구별해 놓으신 백성들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택함 받은 백성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가 많거나 능력이 많거나 어떤 조건이 좋아서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그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택하셨습니다. 이 선택을 무조건적 선택이라고 합니다.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사랑받은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누렸던 백성이었습니다.
2. 가나안 7족의 영적인 의미
하느님께서는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7족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세 가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로 그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고 명하셨고, 둘째로 그들과 혼인관계를 맺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는 가나안 7족을 조금도 불쌍히 여기지 말고 철저히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느님의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겉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순종을 표현했지만, 그 마음은 달랐습니다. “이 민족들이 우리보다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그들을 쫓아 낼 수 있을까?
이와 같은 하느님의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겉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순종을 표현했지만, 그 마음은 달랐습니다. “이 민족들이 우리보다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그들을 쫓아 낼 수 있을까? 하고 너희는 속으로 걱정이 될 것이다”(17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속으로 ‘이 가나안 7족이 우리보다 숫자도 많고 힘도 강한데 어떻게 이들을 진멸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한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가나안 7족을 진멸하라고 하신 것은 어떤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이는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애굽의 노예가 아니라 영토와 주권과 백성을 가진 새로운 민족 국가요, 새 나라입니다. 그러나 새 나라 가나안 땅에도 여전히 가나안 7족이 도사리며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훼방합니다. 그러므로 이 가나안 7족은 구원받은 신자들의 삶 속에 남아 있는 죄, 즉 옛 성품을 가리킵니다. 7족이기 때문에 종류도 많고 그 영향력도 강한 것입니다. 본문 20절 말씀을 보면 이 가나안 7족은 숨어 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는 또 말벌을 보내시어 아직 살아남아 너희를 피해 숨은 자들까지 멸하실 것이다”
우리가 모두 예수님을 믿어서 거룩한 성자가 된 것 같아도 우리 속에는 가나안 7족들이 숨어버린 것처럼 옛 죄악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옛 성품의 간교함, 교묘함, 은닉성입니다. 우리의 죄는 우리 속에 교묘하게 숨어 있습니다.
가나안인들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이유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붙이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고 진멸하고 그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신 7:16).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그 땅에 거주하는 이방민족에 관해 지시한 말씀이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가나안 7족과 일체 외교도 타협도 하지 말고 그들을 갓난아기와 짐승새끼까지 전부 진멸(annihilation)해서 지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릴 것을 명령하고 있다. 왜 그런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2] 속사도시대의 마르시온은 이 부분을 가지고 구약신과 신약신은 다른 신이라고 교회에서 가르치다가 이단으로 정죄되었는데, 그 이유는 마르시온이 보기에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범죄자를 멸하는 진노와 정죄의 신이라는 것이었다. 요즘 TV강의로 인기를 끄는 철학자 도올 김용옥도 이같은 점을 들어 구약의 여호와를 “사막의 깡패 하나님”이라고 자기 저서에서 비방함으로써 기독교계의 물의를 빚기도 했다.
[3] 분명히 본문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한다면 그같이 볼 수 있는 견지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좁은 당시 정황이 아닌 구속사적인 컨텍스트와 영적 비유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구속사적으로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후 금송아지를 만든 죄로 3천명이 죽임 당했고, 40년을 광야에서 살면서 불순종과 범죄로 “한 세대가 완전히 진멸된 후에야” 다음 세대에 와서 가나안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졌다. 가나안 입성은 구속사적으로 본다면 성도가 세상에서 광야 생활을 마치고 죽어 천국에 올라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는 우리가 호리만큼의 죄라도 허용한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천국은 완전한 거룩함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율법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신 18:13)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우리 안의 일체의 죄를 제거해야 한다. 철저히 죄를 멸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결하고 흠 없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 같은 영적 교훈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즉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가르치고, 죄와 추호라도 타협하지 말고 죄를 멸할 것을 본문은 가르치는 것이다.
[4] 그리고 고고학에 의해 밝혀진 당시 가나안의 영적, 도덕적 수준은 최악이었음을 보게 된다. 가나안인들은 다신교를 믿었는데, 아나트와 바알이 주신(主神)이었다. 바알은 남신, 아나트는 여신으로 오누이 사이인데, 오라비 바알이 아나트를 강간하자 아나트는 피를 흘리면서 기뻐 날뛴다는 것이 가나안 종교의 신화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알과 아나트를 본받아 제사지맬 때 산 사람을 죽여 바쳤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벌거벗고 신전에서 혼음을 재현하며 날뛰었다. 이 같은 극한에 이른 도덕적 타락상이 당시 가나안 종교의 도덕적 현실이었다. 그래서 처녀는 결혼 전에 성문에서 일주일 동안 창녀 짓을 해서 받은 화대(花代)를 바알 신전에 드려야 했고, 유부녀들은 일생에 한번 이상 바알신전의 창녀로 봉사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국가 체제가 처녀의 순결과 결혼의 정조를 조직적으로 말살하는 악마적인 체제였다. 나아가, 고고학에서는 몰록의 제물로 바쳐진 어린아이들의 유골 항아리가 발견되었다고 보고하는데, 이는 인신(人身)을 악마에게 공양으로 바치는 무서운 살인 풍습이 종교적 제의의 탈을 쓰고 실행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당시 가나안의 영적 도덕적 상태는 최악이었음을 알 수 있다.
[5] 하나님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 이니라”(창 15:16)고 하셨다. 이는 곧 가나안 족속의 죄가 관영(reached its full measure)하면 그때에야 그들을 진멸하고 이 땅을 주시겠다는 말씀이었다. 그같이 되는데 걸린 시간이 430년이었다. 이를 볼 때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죄의 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은 그들을 더 이상 붙들지 않고 멸하신다고 이해할 수 있다. 즉 영적인 회귀불능선이란 게 있는 것이다. 창 6:5를 봐도,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했다. 즉 세상 사람들의 죄가 관영하자, 하나님은 홍수로 온 세상 인류를 진멸하셨다. 또한, 소돔과 고모라가 도덕적으로 완전히 타락하자 하나님은 하루에 불과 유황으로 그 도시들을 진멸해 버리셨다(창 18-19장). 이처럼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단계의 죄악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당시 가나안 7족이 그와 같은 단계에 이르렀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다윗도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사르이리로다”(삼하 23:6-7)라고 말한 바 있다.
[6] 나아가서, 오늘날도 성도덕의 타락으로 에이즈나 매독 같은 무서운 질병이 만연하는 것처럼, 당시 가나안 거민들도 무수한 음란으로 인해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수많은 질병(특히 성병)으로 감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럴 때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서 그들과 친교하고 결혼한다면 같은 질병에 걸려 고통당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들과의 타협도 접촉도 일체 금지하신 것이다(딘 셔먼의 견해).
[7] 요컨대 당시 가나안 땅은 외면적으로는 풍요의 땅이요 낙원처럼 보였으나, 사탄적인 가나안 종교가 번성하고 있었고, 그 도덕은 철저히 혼음적(混淫的)이고 타락된 것이었다. 그들을 말로 타이른다고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개종시킨다고 그들이 변하여 새로워지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선민이 그들과의 접촉을 통해 더러워지고 여호와 신앙에서 떠날 수밖에 없게 될 것이 너무나 분명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처음부터 전부 제거할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구약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처음에 완전히 제거하지 않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인 올무에 걸려 마침내 하나님 신앙을 떠나 타락의 길로 가고 말았다. 구약 이스라엘 역사는 사실상 이같은 타락의 슬픈 역사였다. 그래서 나라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갈리어 마침내 멸망함으로 끝나고 마는데, 이는 바로 이같은 가나안 종교의 영적, 도덕적 유혹을 완전히 단절하지 않았던 처음 과오의 누적된 결과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고, 추호라도 죄와 타협하지 않도록 깨어서 경성해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열왕기 상하 정리, 이스라엘 왕들 정리, 왕들 연표 (0) | 2025.09.01 |
|---|---|
| 성경에 나오는 '만나'는 어떤 음식인가? (0) | 2025.08.29 |
|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의 차이 (0) | 2025.08.29 |
| 스크랩 그리스도의 승천 (0) | 2025.08.29 |
| 스크랩 가나안 족속에 대한 정의 (0) | 2025.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