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비추어 주는 빛
1980년대만 하더라도 동네 전체에 전기가 끊기는 정전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해는 졌지만, 아직 잠자리에 들기는 이른 시간에 정전이 되어 온 동네가 깜깜해지면 촛불을 켜 잠시 어둠을 쫓았습니다.
어둠에 있을 때 작은 촛불 하나를 켜면 사람들이 그 빛 아래로 모입니다. 서로 얼굴을 식별하고 책을 읽고 바느질합니다. 그 빛 아래 모여 그림자 드리우는 여운 속에서 서로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전기가 돌아와 전등불이 켜지면 방안 어디에도 어둠 없는 밝은 공간이 됩니다. 사람들은 이제 촛불은 아무 미련 없이 꺼버립니다.
이제 아침이 되어서 해가 떴습니다. 햇빛은 온 세상을 덮어 모든 곳을 밝힙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미련 없이 전등불을 끄고 밝은 햇빛에 모든 것을 맡깁니다.
더 큰 빛, 더 큰 기운 아래 이제까지 어둠을 밝혀왔던 작은 빛과 기운은 힘없이 그 소임을 다하고 사그라집니다. 사라지는 작은 빛들은 자신들의 소멸에 아쉬움이 없습니다.
가득 차오른 큰 빛도 언젠가 다시 기울고 작은 빛을 다시 찾아 꺼내게 될 때가 곧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거리감
지구가 태양을 사랑한다고 해서 태양 쪽으로 갑자기 뛰어든다면 혹은 달이 지구가 좋다고 와락 달려와 안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별빛이 고운 것은 그 빛이 오래전 출발해 지금 우리 눈에 닿았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지척에서 별의 표면을 본다면 그것은 한낱 울퉁불퉁하고 거친 광야 같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아름다운 거리감'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을 통한 아름다운 거리감은 서로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하면서도 마음의 연결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때로는 열정적이고 격렬할 수 있지만, 그 열정이 상대방을 무례하게 다루거나 침범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공간을 인정하면서도 그 거리를 더욱 아름답게 유지하는 것은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사랑입니다.
사랑을 미루지 말라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사상가인 '톨스토이'가 여행 중 한 여인숙에 들렀을 때 일입니다.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 날 여인숙을 나오려 할 때 병중에 있던 여인숙집의 6살 난 어린 딸이 톨스토이가 들고 있던 빨간 가방이 갖고 싶다며 자신의 어머니에게 눈물까지 흘리며 조르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톨스토이는 가방 안에 짐이 있으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방을 주겠다고 아이에게 약속했습니다.
며칠 후 톨스토이는 여인숙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이미 죽어 공동묘지에 묻힌 뒤였습니다. 톨스토이는 소녀의 무덤을 찾아가 가져온 가방을 무덤 앞에 놓고 비석을 세워주었습니다.
톨스토이는 만약 그때 여인숙 어린 딸에게 선뜻 가방을 내주었더라면 그 어린 딸은 기쁘고 행복한 마음에 생명의 끈을 조금 더 붙잡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면서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습니다.
그리고 여자아이의 비석에 '사랑은 미루지 말라'는 글귀를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반드시 행한 대로 되돌아온다
아이작 뉴턴의 세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제1 법칙 (관성의 법칙)
제2 법칙 (힘과 가속도의 법칙)
제3 법칙 (상호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이 중에서 '상호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은 한 물체가 다른 물체에 힘 을 적용하면 다른 물체도 똑같은 힘으로 반응하는 법칙입니다.
'상호작용과 반작용' 법칙을 쉽게 설명하면 책상을 힘차게 치면 큰 소리가 나고 작게 치면 작은 소리가 나는 것이 그 원리입니다.
신기하게도 이는 삶 속에서도 적용됩니다. 내가 선하게 행동하면 선한 영향이 악하게 행동하면 악한 영향이 온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아침 식사
유난히 바쁜 어느 날 아침, 8시 30분쯤 되었을 때 어르신 한 분이 엄지손가락의 봉합침을 제거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어르신은 9시에 약속이 있다며 빨리해 달라고 나를 무척이나 재촉했습니다.
시계를 계속 들여다보는 어르신 모습에 내가 직접 치료해 주기로 마음먹고 궁금해 물어보았습니다.
“왜 이렇게 서두르시는 거예요?”
“근처 요양원에 입원 중인 아내와 아침 식사를 함께해야 합니다.”
어르신의 아내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요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왜 이렇게 서두르시는지 궁금하여 다시 물었습니다.
“어르신이 약속 시간에 늦으시면 아내께서 역정을 많이 내시나 봐요?”
“아니요, 제 아내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지 벌써 5년이나 되었습니다.”
“아니 아내께서 어르신을 알아보시지 못하는데도 매일 아침 요양원에 가신단 말이세요?”
노신사는 미소를 지으며 치료 중인 나에게 말했습니다.
“아내는 여전히 나를 못 알아보지만, 나는 아직 아내를 알아볼 수 있으니깐요.”
어르신께서 치료받고 병원을 떠난 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애써 참아야 했습니다. 내가 그토록 찾아왔던 진정한 사랑의 모델을 드디어 발견했다는 기쁨에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나
미국의 시사주간지로 유명한 더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성공한 사람의 기준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나'였습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그건 바로 '내 맘에 드는 나'입니다.
결국 나에 대한 자존감과 자부심, 그리고 사명을 깨달은 사람이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소중히 생각하고 사랑해야 하며 지금 하는 일을 무엇보다 좋아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인생은 정말 풍요로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따뜻한 말로 자신을 격려해 보세요.
내 모습 그대로 보여주자
영국에서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인 '휘트브레드 문학상(코스타 상)'은 1971년에 제정되었는데 비슷한 문학상인 '부커상'보다 좀 더 대중적 성격을 지닌 상입니다.
1987년도에 이 상을 받은 '크리스토퍼 놀란' 작가는 '시계의 눈 밑에서(Under the Eye of the Clock)'라는 자전적 소설로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출생할 당시 산소 부족으로 인해서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말할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오직 눈으로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10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그에겐 특별한 의사소통 수단이 생기는데 바로 작은 막대기 하나였습니다. 이 작은 막대기를 이마에 붙여 알파벳 하나하나를 누르며 자기 생각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와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책의 한 페이지를 쓰는 데 보통 12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쓸모없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글을 쓴다는 건 힘겨운 작업이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어떻게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묻어보자 대답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내 모습 그대로 받아줬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인내하기
1932년, 미국에서 태어난 '빌 포터'는 뇌성마비로 몸 여기저기에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른손은 거의 사용할 수가 없었고, 구부정한 걸음걸이 자세와 어눌한 말투 때문에, 누구나 한눈에 그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장애가 있는 그는 취업도 쉽지 않았습니다. 번번이 거절당했는데, 방문판매원을 모집했던 '왓킨스(Watkins)'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망감에 회사를 나온 빌 포터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나서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회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지역으로 보내주세요. 저를 가장 힘든 지역으로 보내주세요.”
결국 취업을 했지만, 사람들은 장애가 있는 그에게 어떤 물건도 사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는 매일 어머니가 싸주신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어느 날 한 개의 제품도 팔지 못하고 반나절을 소비한 그는 길거리 벤치에 앉아 어머니가 싸주신 샌드위치로 허기진 한 끼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어머니가 싸주신 샌드위치에는 케첩으로 다음과 같은 글자가 적혀있었습니다.
'PATIENCE(인내)'
그리고 뒷면에는 'PERSISTENCE(지속)' 즉, '끝까지 인내하기'라는 단어가 적혀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일이 끝날 저녁쯤 항상 그를 데리러 오시던 어머니가 오시지 않았습니다. 한참 동안 기다리던 그는 결국 혼자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에 도착한 그는 어머니에게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어머니에게 치매 증상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어머니가 자신을 돌봐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홀로서기를 결심합니다.
그는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일 15km의 거리를 발로 걸으며 자신의 담당구역의 집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녔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가정을 방문하여 고객이 필요한 물건을 추천했습니다. 그 성실함을 이해한 사람들은 조금씩 그를 신뢰하고 물건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한결같은 그의 인내와 꾸준함 덕분에 그는 1989년 '왓킨스'의 올해의 판매왕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쉽지 않은 일, 할 수 있는 일
어느덧 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이 찾아올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운동으로 자신감을 회복하려는 청년들이 헬스장을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한 청년이 꽤 무거워 보이는 바벨을 움켜쥡니다. 마음 같아서는 깃털처럼 가볍게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바벨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시 시도해야 합니다.
계획을 짜고 작은 무게부터 들어보고 일정 기간 끊임없이 단련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무거운 바벨도 들어 올리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어떤 남자가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삿짐을 다 옮기고 짐 정리가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마을 전체가 정전이 되어 버렸습니다.
남자는 더듬거리며 수북한 짐 사이에서 양초를 겨우 찾았을 때 '띵동' 하며 현관 벨소리가 들렸습니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한 아이가 서 있었고 인사와 함께 말을 건넸습니다.
“아저씨 양초 있으세요?”
아이의 말을 듣자 남자는 '이사 오자마자 나에게 양초를 빌려달라고 하다니 만일 지금 양초를 빌려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것저것 빌려 달라고 하겠군'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양초가 없다고 말하며 아이를 돌려보내려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 아이가 급하게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아저씨! 이사 온 첫날부터 정전 때문에 불편하실 것 같아서 양초를 드리려고 왔어요!”
이 말과 함께 아이는 양초 2개를 내밀었고 남자는 좀 전에 생각했던 것들이 부끄러워져 아이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인내로 이겨내어야 한다
참을 인(忍)과 견딜 내(耐)가 만나 이루어진 인내(忍耐)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여기서 忍(참을 인)은 刃(칼날 인)과 心(마음 심)이 합쳐진 글자로 칼날이 심장을 찌를 듯한 아픈 마음을 견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耐(견딜 내)는 수염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而(말이을 이)와 寸(마디 촌)이 합쳐진 글자인데 수염을 깎는 형벌을 나타내는 글자로 확장되어 '견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내에는 어쩔 수 없어서 참아야 하는 수동적인 의미의 인내가 있습니다. 그리고 힘겹고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더 열심을 내어 이겨내는 능동적인 인내가 있습니다.
마치 문이 닫혔다고 참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을 두드리고 새로운 방법을 찾는 자세를 말합니다.
악어와 악어새
자연의 공생관계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악어와 악어새(이집트물떼새)를 말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날씨 좋은 날 햇볕을 쬐던 악어가 기분 좋게 입을 벌리고 있으면 악어새가 입안으로 날아 들어와 악어 이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를 쪼아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악어새는 배를 채우고 악어는 이빨을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어 서로 도움이 되는 공생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악어의 이빨은 아주 듬성듬성하게 나 있어서 그 사이에 음식물이 낄 것 같지도 않으며 악어는 평생 3,000개가 넘는 이빨을 교환하므로 악어새와 같은 이빨 청소부가 필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둘 사이의 공생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오해가 생겼을까요? 여러 추측이 있지만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서에서 악어와 악어새의 모습을 공생적인 관계로 묘사하면서 아직도 진실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장 유명합니다.
탐욕에서 벗어나자
뉴스를 보면 돈이나 외모, 지위와 명예 등에 큰 가치를 두고 현재의 삶에는 만족하지 못해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탐욕입니다.
탐욕은 끝은 더욱더 많이 가지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해서 우리의 삶을 비극으로 끝나게 한다는 걸 늘 명심해야 합니다.
탐욕은 마치 도미노와 같은데 간단하게 시작할 수 있지만 절대로 멈출 수 없고,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무너트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럴 가능성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고정관념을 버리자
비가 오면 보통은 우산을 씁니다. 특히 한국은 길거리 곳곳에서 우산이 펼쳐지지만, 프랑스에서는 장대비가 아니고선 웬만해서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비 오는 날 프랑스 길거리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아무렇지 않게 비를 맞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프랑스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특별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손이 자유롭지 못해 넘어졌을 때 다칠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우산을 쓰고 걸어가면 시야가 좁아져서 교통사고의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우산 대신 우비나 레인코트를 입도록 교육한다고 합니다.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보세요
미국 제34대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가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 최고 사령관이었을 때 있었던 유명한 일화입니다.
아이젠하워가 긴급 군사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차를 타고 사령부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폭설로 인해 가던 길이 위험했고, 날씨 또한 상당히 추웠습니다.
그런데 그의 차가 지나가야 할 길가에 한 노부부가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각 참모에게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보도록
지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참모가 아이젠하워에게 말했습니다.
“사령관님, 우리는 급히 사령부에 가야 합니다. 이런 일은 경찰이 처리하도록 하시지요.”
그러자 아이젠하워는 다시 말했습니다.
“지금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다간 저 노부부는 이 추운 날씨에 얼어 죽고 말 걸세.”
이 노부부는 파리에 있는 아들을 찾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중간에 차가 고장 나서 그 누구의 도움도 못 받고 어쩔 줄 모르고 추위에 떨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즉각 그들을 차에 태우고는, 다른 길을 택해 그들을 배웅하고 사령부로 가서 회의를 마쳤습니다.
사실 보상을 바라며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의 이러한 선행은 결국 큰 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노부부를 돕던 날 독일의 저격병이 아이젠하워를 태운 차량이 가는 길에 매복해 있다가 암살하도록 작전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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