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 당시의 파라오

출애굽기를 보면 많은 ‘바로’(파라오)가 등장한다.
그냥 보면 그 바로들이 모두 동일한 인물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수 십년에 걸쳐 일어난 출애굽 사건이기 때문에 등장하는 바로들이 각각 다른 사람이다.
고대 사회의 역사이기 때문에 자료마다 조금씩의 연대 표현이 다르기도 하고 어떤 자료에서는 제법 다른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성경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도 각 바로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의미가 있다.
1. 투트모세 1세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출애굽기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나타났다는 것은 요셉이 활동하던 시기의 힉소스 왕조(수리아와 아시아에서 나일강 지역으로 이주해 북 애굽을 정복한 후 B.C. 1674-1567년까지 애굽의 제15 ~ 17 왕조를 형성한 이방 왕조)를 축출하고 애굽의 ‘신 왕국시대’(애굽의 제18왕조)가 도래하였다는 것이며, ‘새 왕’은 아모세(Ahmose, 1584-1560)의 손자인 투트모세 1세로 인식하고 있다.
투트모세 1세는 출애굽기 2장에 나타난 바로와 동일인물이다.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출애굽기 2:5)
여기서의 바로는 투트모세 1세이며, 그 딸은 애굽 역사상 두 번째 여성 파라오가 된 ‘핫셉수트’다.
2. 핫셉수트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출애굽기 2:5)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기서 언급된 바로의 딸이 핫셉수트다.
투트모세 1세(Thutmose I, 주전 1539-1514년)는 강한 탄압 정책을 펴 히브리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노동을 시켰다. 심지어는 새로 태어나는 히브리 사내아이들을 나일 강에 던져 모조리 죽이는 민족 말살 정책까지 강행하였다.
이 때 모세가 태어났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석 달 동안 숨겨서 키웠으나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모세를 넣고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여 나일강 갈대 사이에 두었다. 모세는 바로의 딸에게 발견되어 건짐을 받는다. 모세를 나일강에서 건져 낸 바로의 딸이 바로 투트모세 1세의 딸인 핫셉수트(Hatshepsut)다.

핫셉수트 미라
3. 람세스 2세
비록 출애굽기에서는 파라오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지만, 일부 성서학자들은 구약 출애굽기의 파라오를 람세스 2세의 무덤에 새겨진 문양에서도 반유대적인 형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에 근거하여 람세스 2세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성경의 연대기와 출애굽기의 내용이 이집트 18왕조 때의 상황과 일치하는 것을 근거로 람세스 2세를 모세시대 한참 이후의 파라오로 본다. 즉 람세스 2세는 기원전 1303년에 태어나 기원전 1213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근거로 하면 람세스 2세는 출애굽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파라오다.
4. 아멘호텝 2세
아멘호텝 2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던 모세 일행을 쫓아가다 익사했다는 설도 있다. 그 이유로는 미라의 얼굴이 희다는 것, 귀가 무엇인가에 뜯기었다는 것, 피부에서 소금성분이 검출되었다는 것 등이다. 또한 아멘호텝 2세는 투트모세 3세가 죽기 2년 전에 공동 파라오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학자는 아멘호텝 2세가 출애굽 전에 있었던 10대 재앙을 모두 겪은 왕으로 마지막 10번째 재앙에서 장자를 잃게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그가 장자를 잃었다는 것은 성경 외에도 스핑크스 사원에서 발견된 석판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자료에 의하면 아멘호텝 2세는 기원전 1445년에 태어났다고 하므로 모세 나이 80세로서 다시 바로 앞에 선 때가 기원전 1447년이므로 홍해를 건너던 때에는 아멘호텝이 태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게 여겨진다.
구체적으로, 투트모세 3세는 기원전 1425년에 죽었으며, 투트모세 3세가 죽기 2년 전에 아멘호텝 2세가 공동 파라오로 임명되었다고 하므로 그 시기가 기원전 1427년이 된다. 그리고 아멘호텝 2세가 파라오로 임명된 때의 나이가 18세라 하므로 그는 기원전 1445년에 태어난 것이 되며, 모세가 바로 앞에 선 기원전 1447년의 2년 후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아멘호텝 2세는 출애굽 이후에 집권한 파라오가 되는 셈이다.

아멘호텝 2세 미라
5. 투트모세 2세
어떤 학자는 이 당시의 왕은 투트모세 2세로서 10년을 통치(주전 1514-1504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망간 시기(40세) 즉 기원전 1487년은 투트모세 2세가 퇴위하고 난 후가 되므로 모세가 태어나고 자란 시기와는 중복되지만 홍해에 빠져죽은 파라오가 투트모세 2세라는 주장과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은 듯 하다.
6. 투트모세 3세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출애굽기 2:15)
모세가 태어난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장성하였을 때의 상황이다.(출애굽기 2:11) 성경 주석에서는 이 당시의 ‘바로’란 투트모세 3세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투트모세 3세의 출생 시기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어서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확증하기 어렵다. 모세 나이가 40세 정도 되었을 때이므로 투트모세 3세가 기원전 1504년에 출생하였다는 주장은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망간 시기에 바로가 17세가 되므로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보여지나 출생에 대한 다른 주장들은 이 시기에 투트모세 3세가 태어나지도 않은 때이므로 모세가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애굽 사람을 죽인 시기와 맞지 않다.
어쨌든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망간 시기부터 다시 바로 앞에 설 때의 시기는 투트모세 3세가 통치하던 시기와 일부 겹치므로 출애굽과 투트모세 3세의 관계는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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