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성경의 땅, 안디옥(Antioch)

열려라 에바다 2025. 11. 18. 13:37

 

성경의 땅, 안디옥(Antioch)

익명추천 3조회 4125.09.15 01:54댓글

 

안디옥이란 도시는 사도행전에서 두 군데 나옵니다. 하나는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현재 터키의 영토)과 터키 중부에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이 글에서는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만 다룹니다.


1. 안디옥의 역사


안디옥은 영어로 앤티옥(Antioch)이라고 하며 고대 그리스어로 안티오케이아(Ἀντιόχεια)라고 하는 오론테스(Orontes) 강의 동쪽에 있는 고대 그리스 도시였습니다. 그 유적은 고대 도시 이름이 유래된 현재의 터키 안타키아(Antakya) 시 근처에 있습니다.


안디옥은 기원전 4세기 말에 알렉산더(Alexandros) 대왕의 장군 중 한 명인 셀레우코스(Seleucus) 1세 니카토르(Nicator)의 아버지 안티오쿠스(Antiocus)를 기리고자 16개의 도시를 세웠는데, 안티오케이아(Ἀντιόχεια)도 그 가운데 하나로서 이소스 전투에서 승리한 뒤인 기원전 300년에 도시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안티오케이아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수도로써 헬레니즘 세계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던 도시였습니다.


도시의 지리적, 군사적, 경제적 위치는 거주자들에게 특히 향신료 무역, 실크로드 및 왕의 도로(Royal Road)와 같은 기능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근동(The Near East)의 주요 도시로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와 경쟁했습니다. 이 도시는 BC 63년까지 셀레우코스 제국의 수도였으며, 그 때 로마인이 시리아 지방의 총독이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주전 4세기 초부터 16개도의 지방 행정의 수장인 동양 총독의 소재지였으며 제2성전 시대 말 헬레니즘 유대교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안디옥은 로마 제국의 동부 지중해 절반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거의 1,100에이커(4.5km2)를 덮었고 그 중 4분의 1은 산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안에는 대략 로마시 면적의 5분의 1이 남은 750에이커(3.0km2)가 남아 있습니다.


안디옥은 헬레니즘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출현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기독교의 요람"이라고 불렸습니다. 신약 사도행전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이 안디옥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디옥은 시리아의 셀레우쿠스(Seleucus)의 4개 도시 중 하나였으며 그 주민들은 안티오케네스(Antiochenes)로 알려졌습니다. 이 도시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 시대에 최대 250,000명의 사람들이 살았을 수 있지만 중세 시대에는 전쟁, 반복되는 지진, 극동에서 몽골의 침략과 정복 이후 더 이상 안디옥을 통과하지 못하는 무역로의 변화로 인해 상대적으로 무의미하게 쇠퇴했습니다.


2. 안디옥과 관련된 성경의 에피소드(Episode)


성경에서 안디옥의 지명은 오직 신약에서만 18개절에서 19회 나타나며 사도행전 16개절에서 17회, 갈라디아서에서 1회 디모데후서에서 1회 나타납니다. 그런데 안디옥이라는 지명은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과 비시디아 안디옥 두 군데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오직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에 대해서만 설명합니다.


첫째 행 6:5 – 예루살렘 교회에 유대파에 속한 과부들과 헬라파에 속한 과부들이 있었는데 예루살렘 교회는 생계가 어려운 과부들의 구제 사업을 벌였고 이 일에 사도들이 관여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에 대한 구제사역을 하던 중, 헬라파 과부들에 대한 구제가 누락되는 것이 몇번 반복되는 일이 발생하자 헬라파 과부들이 불평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도들은 과부의 구제사역을 위하여 예루살렘 교회에서 신실한 사람 일곱명을 택하여 집사로 세우고 이 구제사역을 처리하게 하게 하고 사도들은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것에 집중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택된 집사들의 면면을 보면 대다수가 헬라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의 모든 교인들은 이러한 결정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집사로 세웠습니다. 이것이 최초에 안수집사를 세운 스토리입니다. 이 집사들 중에 안디옥 출신의 니골라도 있었습니다.


둘째 행 11:19~21 –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유대와 다른 지역으로 흩어진 자들이 복음을 유대인들에게만 전했습니다. 그 지역들은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이었습니다. 그 중에 구브로(키프로스,Cyprus)와 구레네(Cyrene) 출신의 몇 사람이 안디옥으로 가서 이방인이었던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주 예수를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역사하셔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셋째 행 11:22~26 -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에서 수많은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내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사람들을 권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안디옥 교회를 이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사울(바울)을 찾으러 다소로 가서 그를 데리고 와서 함께 일년간을 사역하며 큰 무리를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바나바와 사울(바울)의 사역의 결과 안디옥에 있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 의해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넷째 행 11:27~28 – 안디옥에서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고 예언을 했는데 글라우디우스 황제 때에 그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다섯째 행 13:1~3 - 안디옥 교회에 있는 선지자들과 교사들 중에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섬기며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불러 시키는 일(선교 사역)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선교사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선교사로 안수하여 보냈습니다.


여섯째 행 14:26 – 바나바와 사울이 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배 타고 원래 선교사로 파송 받았던 안디옥으로 돌아갔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과 안디옥 주변에 있는 교회들에서 성도들을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안디옥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습니다.


일곱째 행 15:1~35 - 유대지방에서 안디옥으로 내려온 유대인들 중에 몇 명이 이방인들이라도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여 바나바와 바울과 그들 사이에서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를 바나바와 바울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회의가 열리고 많은 변론과 토론이 있은 후에 야고보에 의해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 결론은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여 권고하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서신에 담아 바나바와 바울을 안디옥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으로 가서 그 사실을 전한 후에 안디옥에 머물면서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했습니다.


여덟째 갈 2:11 – 게바(베드로)가 안디옥에 와서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식사할 때에 예루살렘의 야고보에게서 내려온 유대인들을 보고 두려워하여 그 자리에서 떠나 물러갔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베드로에게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안디옥에서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