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진심으로 주님을 따라서 살아가요 = 누가복음9;57-62(260222)

열려라 에바다 2026. 2. 20. 13:41

진심으로 주님을 따라서 살아가요

한상원목사추천 0조회 3926.02.18 20:17댓글 0

 

PW : 믿음               BIW : 따라가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예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인생의 씨줄과 날줄

 

세상이 살아가는 원리는 가로와 세로, 위아래와 옆이 잘 조화를 이루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위아래만 있어도 안 되는 것이고, 옆으로만 옆으로만 있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입고 다니는 옷을 만드는 옷감은 바로 위아래와 옆이 서로 잘 어울려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곧 씨줄과 날줄이 서로 잘 이루어져서 옷감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인생은 개인의 노력과 재능이라는 씨줄과, 시대의 흐름과 시대정신과 은혜라는 날줄이 합쳐져서 직조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 노력과 재능이라는 씨줄만 놓고 미래를 기다립니다.

치고 들어오는 날줄의 모양새는 생각도 안 합니다.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도 잘 알고 남도 잘 알아야 합니다.

내 안의 도 잘 알아야 하지만, 내 바깥의 세상도 더 잘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보는 공부, 시대를 읽는 공부를 함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야 인생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해집니다.

질 좋은 옷감은 씨줄과 날줄이 촘촘하게 잘 짜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잘 짜진 옷감처럼 좋은 품질의 인생이 되려면 우리들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와 사회와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잘 어우러져서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은혜로 감싸주시는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 있다.

초록동색(草綠同色)이란 말도 있다.

수학에서는 동류항(同類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가령 2x 3x 4x 또는 2y 3y 4y처럼 같은 부류끼리 연결되는 것을 동류항이라고 부른다.

사람이란 존재는 같은 부류끼리 연결되어 있기를 선호한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끼리 모여서 지내려고 한다.

껄렁껄렁 거리는 학생은 똑같이 껄렁껄렁 거리는 학생들끼리 모여서 지내려고 한다.

조직 폭력배, 사기꾼, 도박꾼, 노름꾼 등등 다 같은 의미이다.

이들은 우정이나 의리라는 이름으로 끈끈한 무언가를 이루면서 같은 부류끼리 지내려고 한다.

자신들이 따라가고 싶어하는 스타나 우상들도 같은 부류의 대상을 골라서 스타로 삼고 우상화하면서 흠모하고 따라 배우려고 한다.

사람이란 존재는 반드시 누군가를 존경하고 흠모하면서 그 사람을 따라가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살아간다.

누구를, 어떤 사람을 따라가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모든 것들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를 따라갈 것인가? 하는 것은 본인이 선택하는 결정이요 자유겠지만,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 것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지는 것이다.

본인이 선택한 것에 대하여 그렇게 선택한 자기 자신을 책망하거나 원망할지언정 다른 누군가를, 제삼자를 원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전적으로 자기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이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는 사람들은 각각 다른 이유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감으로 인하여 자신의 부귀영화와 같은 욕망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감으로 인하여 자신에게 있는 작은 기업이라도 손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감으로 인하여 영영 가족들과 이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어떤 이유와 목적이 되었든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하면 이익을 볼 수도 있고,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이해득실을 따져서 예수님을 따라간다면 많은 분들이 손해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시간적인 손실, 경제적인 손실, 친구 우정과의 손실, 가족간의 손실을 감내해야만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이 큰 손실을 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손실을 보는 것처럼 보인다하더라도 결코 손실을 입는 것도 아닌데도 손실을 당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일까?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어떤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D4.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신 예수님.

 

57절에서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8:19에서는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사람은 서기관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서기관이라는 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모세5경인 토라나 다른 구약성경을 양이나 사슴과 같은 동물의 가죽이나 양피지에 옮겨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서기관이라는 사람들은 아주 고급스러운 직업을 가지고 있고, 생활 대책, 생계 문제, 가족 부양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서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서기관은 하나님 앞에서도 부정한 사람이 아니라 정결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이다.

서기관은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사람은 절대로 토라를 옮겨쓰는 일을 할 수 없다.

서기관은 정결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예루살렘 성전에도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다.

서기관은 누구에게라도 존경받고 추앙받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어느 날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가겠노라고 하는 것이다.

서기관은 이미 모든 것들을 다 가진 사람인데, 예수님께서 어디를 가시든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의 말을 듣고는 58절에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으로 비추어 보면 아마도 이 서기관은 예수님을 따라가면 지금 자신이 누리는 명예와 권력과 권위보다 훨씬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 생각의 수준을 이미 다 꿰뚫고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서기관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맘으로, 어떤 생각으로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가겠다고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에게 난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동물들도 자기 스스로 살아갈 수 방법이 다 있고, 식물들도 살아갈 방법이 다 있는데, 난 가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 넌 나를 따라와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단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서기관에게 나를 따라오면 이익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교회를 왜 다니고 있는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죄악과 허물을 용서받고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영원한 백성이 되고 하나님 나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받으려고 교회를 다니고 있을까?

왜 예수님을 믿고 아까운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허비하고 있는가?

왜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 이런 눈치, 저런 눈치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어떤 때는 심한 책망을 듣기도 하고, 모욕과 수치를 당하면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고 있는가?

일신의 안목과 정욕을 위해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명예를 얻기 위해서, 그래도 00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니까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서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고 교회의 직분을 받아서 살고 싶어하는가?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안수집사라고, 권사라고, 장로라고, 심지어는 목사라고 그 직분을 자랑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자랑하고 어느 큰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잘못 믿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말로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따라가는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위하여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고, 자신의 모든 욕망, 욕구, , 희망까지도 다 내려놓고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원하지 않는 삶이라면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고 이루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더라도 예수님께서 기뻐하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다.

목사님들께서 자신의 모든 것들을 헌신하여 교회당을 세우고 교회를 부흥시켰다고 하더라도 은퇴할 때는 다 내려놓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교단을 탈퇴하여 다른 교단으로 옮긴다거나 교단 헌법이 정한 기간이 지났음애도 불구하고 계속 목회하려고 한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이 앞서는 것일 수 있다.

말로는 주님의 교회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주님의 교회가 아니가 목사의 교회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교회당을 매매하거나 어떤 조건을 앞세워서 후임을 세우려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욕망을 앞세우는 것이다.

왜 그러고 있는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하여 인간적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이해가 된다하더라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진 물질이요 시간이요 열정이라고 한다면 그것으로 감사하고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빈털터리로 나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가복음10;29-30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 모든 것들을 드렸다고, 헌신했다고 결정했다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역사하시든 하나님께서 의식주 문제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을 때까지 모든 것들을 책임지고 역사해 주실 것이라 확신한다.

 

오늘 서기관이라는 사람은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명예, 권위, 권세를 다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라가겠노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서기관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들, 존경받는 서기관이라는 직임까지도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을 따라가서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의 종으로 살겠노라고 선언했다면, 예수님께서 58절의 말씀처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는 말씀을 서기관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하는 이유와 목적은 세상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하늘의 신령한 세계와 구원의 세계, 영생의 세계, 천국의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자신이 예수님을 따라감으로 인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손해를 당할 수도 있고, 고난을 받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생명의 위협까지도 당할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따라가면서 손해 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유익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을 따라가려는 의도와 목적이 잘못된 사람이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59절에서는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따르라.”라고 부르신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아버지의 장례를 먼저 치루고 난 다음에 따라 가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8:21에서는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사람은 제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말씀을 기록한 다음에 마태복음 10장에서 12제자를 선별하여 부르시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12제자 중에 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예수님은 60절에서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가기는 하겠는데, 먼저 가정의 문제를 해결한 이후에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지금 이 사람에게 아버지 장례가 생긴 것일까? 아니면 장례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곧 아버지의 장례가 생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만약에 이 사람에게 아버지 장례가 발생하였다면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라는 말씀을 하셨을까?

유대인들은 장례가 발생하면 1일장으로 그날에 장례를 치른다.

1일장으로 그날에 곧바로 장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아버지 장례가 발생하였다면 그 사람은 지금 예수님 곁에 있을 수 없다.

아버지 장례를 거행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지금 아버지 장례를 거행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아버지 장례가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앞으로 급하게 아버지 장례가 곧 발생할 것같은 불길한 느낌 때문에 아버지를 먼저 장례 치르고 난 다음에 따라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일까?

물론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계실 것이고, 조부모님도 언제 어떻게 급작스럽게 장례가 발생할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장례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발행하지 않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몇 년 전에 아내랑 이스라엘 성지여행을 갔을 때, 조마조마하면서 다녀왔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잘 다녀온 다음 해 3월에 어머니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사람은 아직 장례가 발생하지도 않았는데도, ‘아버지를 먼저 장례치루고 나서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라고 하시는 부르심에 거절하기 위한 핑계를 찾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정말 아버지나 어머니나 다른 가족의 장례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르심을 적당하게 거절하기 위한 핑곗거리를 찾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교회에 잘 다니라고 하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찾는 이들이 많다.

이래서 바쁘고 저래서 바쁘고, 이런 일을 해야 하고 저런 일을 해야 하고, 누구를 만나야 하고, 어디를 가야 하고 등등 온갖 핑곗거리를 찾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핑곗거리를 찾고 있는 것을 다 알고 계신다.

사람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고, 속아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어찌 속일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보여주는 꼴이다.

자신의 불신앙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신앙인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핑곗거리를 찾지 말고 진솔하게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장사하고 난 다음에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하는 제자에게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장사하는 것이지, 어떻게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장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하신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죽은 자들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사람들을 향하여 죽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죽은 자들이란 실제로 목숨이 끊어진 사람, 사자(死者), 망자(亡者)를 두고 하시는 말씀일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죽은 자들이란 어떤 의미일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죽은 자들이라는 말씀은 영혼이 죽은 자들, 곧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영혼이 죽은 자들을 가리킨다.

육신은 살아 있으나 영혼이 죽은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육신이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은 자들을 장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혼이 죽은 자들은 영혼이 죽은 자들로서의 일을 하게 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혼이 살아난 사람들은 영혼의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제자, 하나님의 일꾼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나 뜻을 이루려고 사는 삶이 아니라 전폭적으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뜻과 의지와 섭리와 비전과 계획과 꿈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사람의 생각이나 의지가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전폭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와 섭리를 최우선하는 사람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사람이 12제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과연 누구일까?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를 곧바로 인지하고 깨달을 수 있었을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이 세상에 속한 말씀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에 속한 말씀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이해하고 인지하고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점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의도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인지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무슨 말을 듣든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이해하고 수용한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면 아무리 좋은 말씀을 전해주더라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되었을 때에 비로소 아하... 그 때 그 말씀. 이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었구나.“라고 인지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때가 되면 성령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오버랩시켜 주시면서 깨닫게 해 주실 때가 있다.

성령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기 전에는 묵묵히 자신이 걸어갈 길을 걸어가면 된다.

묵묵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오직 천국의 소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뒤를 돌아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 나라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61절에서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한 사람으로 보인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가기는 하겠는데,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한 후에 따라가겠다고 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62절에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신다.

오늘날 농부들은 경운기나 이양기, 트렉터와 같은 농기계를 사용하여 밭을 갈기 때문에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다.

고고고고대사회에서는 소나 말이나 나귀와 같은 동물에게 쟁기를 메어서 동물의 힘을 빌어서 밭을 갈면서 농사한다.

그런데 밭을 갈던 사람이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게 되면 밭을 갈지()자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밭을 비뚤비뚤 갈 수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밭을 가는 농부는 좌도, 우도, 뒤도 돌아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농부는 오직 앞만 바라보면서 동물이 쟁기를 잘 끌고 갈 수 있도록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에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면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성령님께서 이끌어가시는 삶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농부가 쟁기를 잡고 밭을 갈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듯이 예수님을 따라가기로 결단했다면 오직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 외에 다른 것에 신경 써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에 최우선권을 두고 집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기로 결단한 사람이라면 오직 하나님 나라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하늘의 신령한 일에 집중하고 매진하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말씀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만을 위해서 집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목표를 정한 사람,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하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곧장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은 어떤 경우와 처지가 되더라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은 어떤 경우와 처지가 되더라도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은 어떤 경우와 처지가 되더라도 더 이상 다른 것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은 어떤 경우와 처지가 되더라도 오직 하나님 나라만을 위해서, 구원의 푯대를 향하여 질주하는 사람이다.

 

L4 & B4

 

누가복음은 세 사람의 경우를 기록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왜 하나님께서 누가에게 성령의 강권적인 영감과 은혜를 베풀어주시면서 오늘의 본문을 기록하게 하시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의래껏 오직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우선권을 가지고 오직 한 길만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신앙인이 되어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이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언제나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사명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예수님의 부르심을 입어야 한다.

 

서기관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 아니다.

서기관은 예수님께서 부르시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지명하여 불러주셔야만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다.

자신이 먼저 서원을 했거나 가족들이 서원하여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가족이나 자기 자신이 예수님을 따라가겠노라고 서원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부르셨다는 부르심의 소명을 받아야만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다.

예수님께서 부르셨다는 소명의식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가장 중요한 바로미터(Barometer)가 된다.

예수님께서 부르셨다는 소명의식이 없으면 절대로 주님을 따라갈 수 없다.

예수님께서 부르셨다는 소명의식이 없을 때, 앞으로 일어나는 온갖 핍박과 박해와 역경과 고난의 사건들이 발생하게 되면 언제든지 예수님을 버리고 떠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르셨다는 확고부동한 소명의식을 가지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신에게 어떤 환경이나 처지가 된다하더라도 믿음을 잃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붙들고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영생을 가진 사람답게 따라가야 한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세상에서 속한 사람, 세상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세상의 모든 것들을 포기하거나 초월하여 오직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의 일생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영생을 가진 사람답게,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왕국, 천국을 위해서 사는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소한 세상의 문제들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향한 자신의 열정을 허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열정과 의와 복음을 위해서, 구령의 열정을 펼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오직 한 길만을 견고하게 따라가야 한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세상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직 하늘의 신령한 뜻만을 바라보며 걸어가야 하는 사람이다.

죽으나 사나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가야할 삶의 여정이다.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죽고,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의 일생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오직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도 안 되는 것이다.

오직 예수 예수 예수 예수 예수 예수 예수님만 부르고 찾고 사모하고 갈망하면서 오직 예수님께서 살으셨던 삶의 흔적과 십자가 보혈과 복음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살아야 할 인생 여정이다.

 

좌로도, 우로도, 뒤로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한 길, 예수님만 바라보며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는 삶을 살면서 삼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