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복음서 요약문
봉서방추천 2조회 2426.02.19 02:00댓글

마태복음서
소설의 전편을 읽지 않은 채 후편을 곧바로 읽어 본 적이 있는가? 그럴 경우엔, 전환되는 내용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성경에서 마태복음은 구약의 이야기와 신약의 이야기를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한다. 곧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이 어떻게 과거에 주어진 약속들 위에 세워졌는지 이해하기 쉽게 도와준다. 마태가 자주 구약 성경을 인용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유대적인 취향이 어떻게 마태복음의 맛을 더하는지 살펴보라. 예를 들면, 마태는 자주 ‘하나님의 아들’ 대신에 ‘다윗의 아들’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마태의 주된 주제 중 하나는 ‘하나님의 왕국’이다. 그 왕국의 시민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예수님의 가르침에 주목하라. <QA성경>.
마태복음이란?
헬라어 성경의 표제는 ‘카타 마타이온’, 즉 ‘마태에 의한’이다. 다른 복음서와 마찬 가지로 ‘복음’이란 말은 후대에 붙였다<큰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애, 그리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들에 의해 기록되어 졌다. 이렇게 사도들에 의해서 남겨진 모든 말씀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모든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 곧 ’복음‘(Gospel)이다. 엄밀히 말해서 신약 성경 모두가 복음이지만 그 가운데 특히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이 가장 자세하게 기록된 처음 네 책을 4복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네 개의 복음서 중에서 처음 세 복음서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같은 관점을 가진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래서 이 세 책을 공관복음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예수님의 생애와 그의 구속 사역이 기록된 복음서 중에서 첫 책을 마태복음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마태에 의해 기록되어진 기쁜 소식”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한 명칭이 붙여 진 것이다. <FMA성경연구>.
저자
세리 마태이다. 폴리캅, 이그나티우스 같은 교부들이 쓴 저서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큰성경>
다른 복음서와 같이 이 복음서에도 저자명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사도 마태의 이름(9:9,10:3)은 늦어도 2세기 이후 전통적으로 본서와 연결되어왔다. 4세기 초두, 저작 활동을 한 유세비어스의 “교회사”에는 2세기의 감독 파피아스, 2 세기의 리욘의 감독 이레네우스, 3세기의 기독교 수학자 오리겐의 말이 인용되어 현존 하고 있으나 다 같이 일치하여 이 복음서가 마태에 의하여 유대인 크리스챤을 위하여 히브리어(의심할 여지없이 아람어)로 기록된 것을 말하고 있다. <IVF주석>.
마태이다. 그는 본래 직업은 세리였지만, 부름을 받고 예수님의 12 제자 중 하나가 되었다. <QA성경>
복음서의 첫 책은 초대 교회부터 마태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여겨져 왔으며 이러한 사실에는 별로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마태는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며 직업은 어부였다. 그는 주님의 부름을 받은 후 그리스도의 충실한 증인의 삶을 살았다<FMA 성경연구>.
기록연대
기원50-70년. 예루살렘에 있던 기독교도들의 분산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주후 50-70이후, 예루살렘이 멸망한 주후70년 이전인 것으로 추정된다. <큰성경>
마태복음은 주후70년대 우선적으로 유대인 독자들을 위해 기록되었다. <QA성경>.
주후50-70년. 초대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벗어나 흩어진 이후. 예루살렘의 멸망이 이루어지기 이전.
기록목적
복음서 저자 마태는 목적을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전도, 수난, 부활을 일련의 기사로서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는 그 자료를 주의 5대 설교 곧 산상설교, 사도들의 훈계, 겸손과 용서에 대한 설교 및 계시적인 설교를 중심 하여 배치하고 있다. <IVF주석>.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목적으로 하여 기록된 복음서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구약과 그 율법의 파괴자가 아니라 그 완성자이신 것, 또 그는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 다윗 왕의 자손인 것 등을 강조함과 함께, 맹렬하게 유대인에게 불신 불순종을 책망하고, 그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유대인을 목표로 하면서도 전 인류의 복음서임도 강조하고 있다. <성서대사전>.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며 유대인의 왕으로서 히브리인에게 약속 된 메시야이심을 유대인과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증거하기 위해 본서를 기록하였다. <FM A성경연구>.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아가 마침내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진리에 대한 논박을 할 수 없는 증거를 제공하기 위해 기록되었다.<QA성경>
마태가 그의 복음서를 기록한 주요 목적은 유대인 독자들에게 예수님이 그들의 메시야이심을 입증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마태는 무엇보다도 구약 성경을 번번이 인용함으로써, 예수님이 그의 삶과 사역을 통해 어떻게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셨는가를 보여주었다. 또한 마태는 예수님의 혈통을 아브라함으로부터 밝히고 있으며, ‘다윗의 자손’으로써의 예수님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 마태는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성을 은폐시키려는 유대인들의 시도에 대항하여, 부활의 사실성을 힘주어 강조하였다. <빅파워성경>
신학적 특성
마태복음에는 예수의 가르침이 뚜렷하게 5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제자 됨의 자세에 관한 산상수훈, 두 번째는 선교와 사도직에 대한 가르침, 세 번째는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 네 번째는 교회의 훈련과 교제에 대한 가르침, 다섯 번째는 세상의 종말에 대한 가르침이다.
또한 마태는 예수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약속된 메시야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즉 예수는 다윗의 자손이며 히브리인에게 약속된 메시야로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시키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이 본서의 위대한 메시지인 것이다. 그런데 마태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키기 위한 메시야가 자기 백성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십자가에서 처형된 사실을 자세히 기록함으로써 독자들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큰성경>.
마태복음서는 마가복음서보다 1/3만큼 길고, 28장으로 되어 있다. 신약성서의 처음에 놓여있고, 또 문체가 장엄하고, 형식이 잘 갖추어진 데다가 힘찬 데가 있어, 독자에게 다가서고 있다. 본서의 특색은 유대인적인데 있다. 예수는 특히 구약 예언의 성취자인 이스라엘의 왕임을 보이면서, 40회에 달하는 구약의 인용(引用)으로서 하나, 하나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먼저 아브라함의 아들인 다윗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마1;1) 임을 써서, 예수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태어난 순수한 이스라엘인임을 보이고, 또 예수가 “이스라엘의 잃은 양”을 위해 보내신바 된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동시에 세계의 왕이다. 복음은 유대인에게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부활의 예수는 11제자에게 명하여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나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분부하시고 있다. 예수는 하늘에 있어서도 땅에 있어서도 모든 권세를 받으신 만민의 구주시라는 것이 특색이다. 이외에도 본서는 사건이 연대순으로가 아니라, 내용의 종류 따라 편집된 것도 특징이다. 산상교훈, 기적, 비유, 바리새인에 대한 비난, 종말의 사건 등 모두 한 곳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마태는 구약을 많이 인용하였다. 특히 예수님의 메시지를 자세히 언급하면서 왕국의 사상과 종말의 사건을 강조하였다. 또한 마태는 복음을 유대인의 역사와 관습에 잘 조화시켜 설명하였다. 한 마디로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된 메시야로서 모든 믿는 자들의 구세주이시며 주가 되시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구속자적 의의 : 구약의 말라기의 예언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사이에는 약 400 년간의 침묵이 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 헤롯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헤롯은 유대의 왕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 침묵의 기간은 바로 이스라엘의 왕이 준비되고 다윗의 혈통이 이어지는 구속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마태복음은 구약에 이어지며 신약의 시작으로서 큰 의의가 있다. 그래서 본서를 “성취의 복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주제(공관복음 서론)
복음의 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연구하려면 우선 이 복음이라는 낱말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는 이 신령한 증인들(저자들)의 글 뒤에 숨어 있는 의미와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다.
이 복음이라는 말은 제 3자가 집어넣은 것이 아니라 저자들 자신이 써넣은 것이다. 가령 마가 같은 경우를 보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하는 말로써 자기의 글을 시작하고 있다.
복음이라는 말에 대한 확고하고 틀림없는 정의(正義)는 바울의 문장에서 찿을 수 있는데 그는 이 복음을 가리켜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2-4)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다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첫째, 예부터 여러 세대에 걸쳐 조상들에게 약속되어 온 구원의 계시에 대한 증거가 바로 이 복음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해서 구약 시대의 성도들을 마음 조이며 기다리게 했던 소망의 약속과 이제 사건으로 전개 될 사실을 알려주는 기쁜 소식 사이에 명확한 구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곧 이어 그는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증거 된 하나님의 의가 오늘날 얼마나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5장 20절에 보면 그는 복음을 가리켜 사신이라고 부른다. 이 사신의 역할이 있기에 그리스도의 죽음이 단번에 성취한, 이 세상과 하나님과의 화해를 우리는 날마다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줄곧 약속해 오시던 모든 축복의 보증일 뿐 아니라 이 모든 축복에 대한 완전하고 본질적인 계시가 이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다는 모든 “하나님의 약속은 ... 그리스도 안에서 ... 에와 ...아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입양의 축복은, 그 근원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자비와 기쁨이듯이(본래 독생자인)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우리를 자신의 형제로 삼으신 일로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드러났다. 사망의 저주와 심판이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못하게끔 우리의 죄를 씻어 없애주는 속죄는 바로 그의 희생적 죽음에서만 찿을 수 있으며 칭의, 구원, 그리고 영생의 행복은 그의 부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복음이란 타락한 세상을 새롭게 하고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의 자리로 되돌려 놓으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나타나 셨다는 사실에 대한 엄숙한 선언이다.
따라서 이것이야말로 반갑고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완전한 행복이 담겨 있으며, 그것은 결국 우리 속에서 일단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타락한 육신을 뒤로 하고 영으로 새로워진 우리를 저 하늘의 영광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켜 종종 하늘나라라고 부르는가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지는 새로운 축복의 삶을 가리켜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같은 뜻에서 마가는 메시야의 초림을 기다리는 아리마대 요셉을 가리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막15:43)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약에 복음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 적당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들 못지 않게 선지자들도 이 복음의 사자들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율법과 선지자들의 시기는 요한 이전까지이고(눅16:16) 그 이후부터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이 된다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요, 마가 역시 복음의 시작을 요한의 전도로부터 잡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중보자의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묘사한 네 가지 설화를 가리켜 복음서라고 부르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및 부활 사건 그 자체가 우리의 구원의 총체, 아니 구원의 본질인 만큼,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를 보고 축복의 삶의 원천인 분으로 알아 볼 수 있도록 아버지의 보냄을 받은 그분을 우리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 보여 주는 이 사람들을 가리켜 복음서 기자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오심이 가지는 실제 의미와 효과에 대해서는 신약의 다른 부분에 더 강조 되어 있다. 사실은 이런 점에서 볼 때 요한은 이 세 제자들과의 사이에 큰 차이를 드러낸다. 곧 이 세 사람은 그리스도는 인류에게 약속 된 구세주,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한 가지 요점을 강조하지만,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끼치는 그대로의 인격과 감화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세 저자들은 그리스도의 활동을 들어 설명하는 가운데 그의 은혜의 성격과 그 은혜가 우리에게 미치는 이유를 알기 쉽게 해줄 뿐 아니라, 앞서 지적한 대로 어떻게 해서 하나님께서 태초에부터 약속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고 있는가 하는 점을 특별히 다루고 있다. 이들은 하늘의 진리가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된 이상 이제 구약은 쓸모가 없다고 떠들어대는 일부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복음서를 율법서와 예언서 등이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쓰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율법서와 예언서 속에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분명함을 강조했다. 사실 복음서는 과거의 약속의 말씀에 비추어 연구할 때만이 유익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 복음서 저자들에 대해서 간단히 생각해보자. 마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마가는 베드로와 친한 제자인데 베드로가 불러 주는 그대로, 곧 필경사로서 이 복음을 받아썼다고 믿는 자들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왈가 불가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임명을 받은 증인 가운데 한 사람이요 성령의 지시가 아니면 그 어느 것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런 문제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가복음을 마태복음의 축소판이라고 말하는 제롬의 경우는 아무래도 이해 할 수 없다. 마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태의 순서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맨 처음부터 그 접근 방법이 다르다. 다른 복음서에 없는 문제를 취급하는가 하면 동일한 사건을 두고 보다 더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어쩌면 마가는 이 마가복음을 쓸 때 마태의 책을 본 일이 없다고 보는 것이 보다 더 사실에 가까운 추측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남의 작품을 축소판으로 베껴 쓸 의도는 그에게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세 복음서 사이의 다양성은 일부러 꾸민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각자는 본인의 입장에 확실하고 사실적인 것을 기록하였을 뿐이요, 그 배열에 있어서도 각자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여기에 우연히 개재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여기에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 문제의 다양한 형태 가운데서도 성령께서 놀라운 통일성을 제공하신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다른 더 큰 권위가 첨가되지 않더라도, 저자들의 글의 권위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가는 바울의 절친한 동료였다. 바울이 디모데후서 2장 8절에서 나의 복음이라는 말을 한다고 해서, 누가 복음의 저자는 바울이라고 유세비우스는 말하는데 이것은 유치한 주석이다.
바울의 그 다음 이야기를 읽어보면 그는 어떤 특정한 책을 두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 전체를 두고 이야기한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는 곧이어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물론 그가 옥살이를 한 것은 어떤 특정한 책을 기록했다 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사자였기 때문이다. 유세비우스가 대단히 성실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의 무분별한 이야기를 몇 가지 종합해 볼 때 판단력이 모자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의 책에는 이런 애매하고 모호한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독자들은 이 점을 거울삼아 조심하기 바란다.
얼핏 보아서 본 주석의 설명하는 방법은 일반 독자의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경건하고 분별력 있는 독자를 위해서 몇 가지 설명을 하고자 한다. 세 복음서 가운데 어느 한 책을 나머지 두 책과 비교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주석을 할 수 없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유능한 주석가들은 이 세 설화를 조화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공부를 별로 많이 못한 사람에게는 여기 저기 뒤집어가며 비교 검토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본인은 세 설화를 하나로 묶어서 취급하는 것이 환영을 받을 수 있고 유익한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말하자면 한 눈에 유사점과 차이점을 구별할 수 있게끔 단권으로 묶어 본 것이다. 물론 이 세 권의 내용을 그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한 문맥 속에 담을 것이다. 또 이것이 나의 예상대로 들어맞아 가느냐 않느냐 하는 것은 독자들이 이것을 이용하면 판단 할 문제다. 솔직히 말해 이것은 나의 독자적인 시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모방이다. 특별히 본인은 이 분야에서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교회의 석학인 부우처의 형식을 따랐다 <칼빈주석>.
내용 분해
1) 그리스도의 출현(마1:1-4:1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약속 하셨다(창12:3).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셨다. 또한 예수는 다윗의 후손, 유대인의 왕으로 세상에 오셨다.
2) 그리스도의 선포와 권세(마4:12-11:1)
이 부분에서는 그리스도의 사역이 연대기적으로 배열되지 않고 주제별로 수록되었다. 또한 열 가지 기적으로 나타나는 주의 사역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권세를 잘 입증해 준다.
3) 그리스도에 대한 거부와 그리스도의 가르침(마11:2-28)
이 부분에서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역에 대한 일련의 반작용들을 다루고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와 거부할 때의 차이점에 대한 가르침도 수록되어 있다.
4) 그리스도에 대한 결정적인 거부(마20:29-27:66)
이 부분에 언급되어 대부분의 말씀은 왕 되신 그리스도를 거부한 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여기서는 종말의 심판과 예루살렘의 멸망 등을 다루고 있다.
5) 그리스도의 증거(마28장)
이 부분에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역을 확증해 주는 부활과 부활 후의 나타나심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희생이 하나님께 열납 되어 구원의 길이 열렸음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큰성경>.
마가복음
오늘날 뉴스 전문 방송국과 케이블 TV의 뉴스 채널은 온종일 세상에서 일어난 갖가지 새로운 뉴스를 사건 발생 30분 안에 신속하게 제공한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그분의 행적을 오늘날 뉴스처럼 신속하게 전달한다. 신이자 인간인 이 특별한 인물의 이야기, 예수의 설교와 이적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 등의 이야기는 모든 시대를 초월하여 가장 위대한 뉴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인간의 아들이셨던, 예수님의 인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책은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갖추신 예수님의 활동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마가는 이 책의 40% 이상을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의 희생과 고통에 초점을 맞추었다. <QA성경>.
마가복음이란?
헬라어 성경 표제는 카타마르콘, 즉 마가에 의한이다. 다른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복음이란 말은 후대에 붙였다. <큰성경>.
마가복음서는 요한 마가가 쓴 것으로 복음서 중 제일 최초로 씌어진 것이다. 마태, 누가, 두 복음서의 기본적 자료로 이용된 것으로 유명하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루살렘 교회의 유력한 지도자이며 예수님이 돌아 가신 뒤 그의 집은 초대 사도들의 집회소였다. 마가는 베드로의 동역자(베드로의 헬라어를 아람어로 통역)이며 로마 옥중의 바울에게 시종하였다. 바나바의 종형제이며 바나바를 통하여 바울을 알게 되어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 때 그의 조수로서 동행하였다가 도중에 일행과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행13:13). 이것이 후년에 바울과 바나바가 분리된 원인으로 되었다. 저작 년대는 예루살렘 파괴 이전, 베드로의 사후 곧 64-70년이며 장소는 로마설이 유력하다. 네로 황제 박해(64년 베드로의 순교) 직후 이 위기에 직면하여 공포에 떨며 번뇌하는 신도들을 고무, 격려할 필요성이 본서 집필의 유력한 동기였다.
본서의 내용은 예수는 세계적 구주라는 것을 주장하고 이방인을 목표로 넓은 시야로 나타낸 나머지 유대적 색채가 비교적 희박하다. 문체와 구성이 다른 복음보다 정연하지 않고 매우 소박한 필치로 기교가 적다. 그리고 예수의 교훈보다 그 행동과 사건의 경과를 주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예수를 이 세상의 모든 것 위에 선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이려고 하여 악귀를 쫓아낸 이적 기사가 다른 복음서에 비해 많은 편이다. 본서는 예수의 탄생과 유년 시대의 가정환경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그의 활동 특히 최후 일주일간의 수난을 중심으로 한 일이 전체 지면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저자
마가이다. 마가는 한 예루살렘 과부의 아들로, 그의 집은 초기 신자들의 모임 장소였다(행12:12). 아마도 마가는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에게서 직접 들은 것들을 기록했을 것이다. <QA성경>
마가-요한. 본서를 살펴보면 저자가 당시 유대의 사정에 밝았으며, 아람어에 익숙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마가복음의 전반적인 특징과 일치하는데, 베드로의 통역관이었던(벧전5:13) 마가가 평소 베드로가 가르친 예수의 행적과 설교를 기록했다는 교부 파피아스 등의 증언으로도 명백하다. <큰성경>
마가 요한. 요한은 유대식 이름이고,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다. 그는 예루살렘에 살았다.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에 연보를 하고 돌아갈 때(행11:27-30), 그들은 마가를 데리고 갔다(행12:25). 이것은 그가 수종자로 그들의 제1차전도 여행에 동행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마가는 중간에 되돌아갔고 바울은 그를 불신하여 제2차전도 여행에 동행하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전도일행은 둘로 분열되었다. 마가는 그 후 로마에서 바울의 동역자로 등장한다. 그는 바울의 추천을 받아 골로새 교회에 간다. 베드로는 그를 내 아들 마가라고 불렀다. 이것은 단순한 애정의 표현일 수도 있고, 마가가 개심하여 베드로의 동역자가 된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기독교사전>.
마가는 예수님의 직계 제자는 아니었다. 그는 베드로의 제자로, 베드로는 그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벧전5:13). 이하 생략/ (빅파워성경>
기록연대
주후65-70년 추정. 베드로 순교 이후에 마가가 베드로의 설교를 기록했다는 이레네우스의 주장과 예루살렘 멸망이 미래형으로 기록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큰성경>.
아마도 주후 50년대 초 인듯하다. 다른 이들은 베드로가 처형된 65년경으로 보기도 하는데, 어쨌든 예루살렘이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되기 이전이다. <QA성경>.
베드로의 순교(65년)이후 예루살렘 함락(70년) 이전으로 본다. <기독사전>.
기록 목적
당시 세상의 지배 세력이었던 로마 제국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마가는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싶었다. 그는 예수님을 고난 받는 종으로 묘사했다. 또한 예수님을 온 세상의 구세주로 묘사했는데, 이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로마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이다<큰성경>
당시 세상의 지배 세력이었던 로마 제국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마가는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싶었다. 그는 예수님을 고난 받는 종으로서 묘사했다. 또한 예수님을 온 세상의 구세주로 묘사했는데, 이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로마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QA성경>
신학적 특성
마가는 예수를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끊임없이 사역을 하신 활동적이고 연민이 넘치며 순종적인 종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가복음은 종되신 예수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의 기적적인 탄생과 조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본서의 독특한 낱말로는 즉시, 곧 이라는 뜻의 헬라어 유튀스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예수께서 어떤 목표를 향해 부단히 전진해 나가시는 모습을 잘 보여 주는 말이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구절로 시작되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십자가 앞에서 외친 백부장의 고백까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고 있다. 본서 또한 연대기적인 전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애를 주제별로 엮은 책이다. 특히 본서에는 죽음을 통해 궁극적인 승리를 얻는 주님의 고난과 부활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큰성경>.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는 서두에서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십자가 앞에서 외친 백부장의 고백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고 있다. 변화산 위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뿐만 아니라 세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확증해 준다. 심지어, 귀신들까지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예수님도 자신의 교훈에서 이 사실을 가르치셨다. <빅파워성경>
누가복음
이 책은 다른 복음서에서 발견할 수 없는 몇몇 새로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사건을 목격한 사람은 확실한 증인이 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누가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의 범위를 넓혀 준다. 그래서 당신은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될 것이며, 예수님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게 될 것이다. 누가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보다 그 상황을 더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에서 예수님에 관한 새롭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출생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가 이 책에 기록한 사건들을 통해 예수님이 비유대인들과 사회의 소외된 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QA성경>
누가복음이란?
헬라어 성경의 표제는 카타쿠콘, 즉 누가에 의한 이다. 다른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복음이란 말은 후대에 붙였다. <큰성경>
저자
의사 누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자. 사도행전에서부터 그는 바울과 교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교제가 누가에 대한 전기적 자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의사임이 분명하고, 사도행전의 끝부분에서 사라진 이후에 때때로 바울과 함께 있었으며 개종하였던 것 같다. 우선 본서와 사도행전을 비교해보면 저자가 동일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도행전에는 우리라는 표현이 28장16절의 로마 입성 기사에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바울은 딤후4:11절에서 로마에는 누가 만 자기와 함께 있다고 증거하므로, 누가를 저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큰성경>.
누가. 누가는 사도 바울의 동료였으며, 사도행전도 기록했는데 그는 이방인이었고 아울러 의사였다. <QA성경>
저자 누가는 바울의 사랑하는 의사(골4:14)요 통역자로서 바울의 전도 여행 때 수행하였다. 누가는 헬라인이다. 그의 출신지는 수리아의 안디옥이라고도 하고 마케도냐의 빌립보라고도 하나 정설이 없다. 마태, 마가, 요한의 3대 복음서가 유대인이 저작인 것과는 달리 본서는 신약 성경 중 유일한 이방인의 저작이다. 누가는 의사이면서 동시에 헬라적 교양을 갖춘 역사가였다. 그리고 문학적 재능이 풍부하였다.
기록연대
주후 62년경. 본서는 사도행전보다 먼저 기록되었는데, 사도행전이 로마 대화재 사건(주후64.7월) 이전인 주후63-64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주후 62년경을 본서의 기록연대로 잡는다. <큰성경>
주후 58-60년경 추정
아마도 주후59년에서 63년 사이로 추정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보다 15년에서 20년 이후로 생각하기도 한다. <QA성경>
저작 연대는 기원70-80년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많은 자료를 갖고 상세하게 연구하여 순서를 바르게 배열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실을 명확하게 구명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기록목적
집필의 목적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로마인 데오빌로 각하에게 헌정(獻呈)하여 그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한 것과, 이방인의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였다. 누가는 데오빌로와 다른 독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은 유대인을 뛰어넘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알기 원했다. <QA성경>.
역사적(종교) 배경
1) 사회, 경제적 배경
당시는 농업 위주의 경제 구조였으므로 토지, 건물, 가축 등을 소유하는 것이 부의 중요한 원천이었다. 부는 이 밖에도 교역과 장사를 통해서 이룩되기도 했다. 한편, 종교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지위를 이용해서 부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 세 가지 방법을 모두 이용하여 부자가 될 수 있었던 두 집안이 있었다. 하나는 헤롯 가(家)와 그 추종자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제사장들과 그 가족들이었다.
2) 종교적 배경
예수님 당시에 모세의 율법을 토대로 하여 광범위한 입법이 이루어졌으며, 이것은 실제로 유대인의 사사로운 삶과 가정과 사회의 삶 전체에 관계되는 법령의 집대성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의 율법 준수가(특히 종교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율법의 본래적 정신인 사랑, 정의, 믿음을 저버리고, 율법의 외형적인 표현만을 중시하여 외부적으로 기록된 말씀만 지키면 다 된다고 생각했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한편 유대인들의 종교 생활을 성전과 회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 앞에 희생을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으며, 1년에 3회씩 절기(유월절, 맥추절, 수장절)를 맞이하면 예루살렘에 오는 순례객들에 의해 그러한 희생이 다량으로 드려졌다. 따라서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장사를 하는 비양심적 장사꾼이 많이 생겨났다. 결국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과는 달리, 탐욕과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변해 버렸다. <빅파워성경>
신학적 특성
누가복음의 메시지는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찿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는 예수의 말씀으로 요약될 수 있다. 사람의 아들로 오신 메시야 예수의 특성과 사역이 본서의 주제를 이루며, 이러한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서 예수가 행하신 기적과 교훈 등이 적절히 서술되었다. 누가는 예수를 사람의 아들로 이해하면서 인간을 향한 예수의 연민과 인간미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본서는 세계인의 구세주, 즉 빈부와 남녀노소, 유대인과 이방인, 종과 자유인을 구별하지 않는 만민의 구주에 관한 복음서라고 할 수 있는데, 잃은 양의 비유, 탕자의 비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등등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이와 같은 특징을 확실하게 뒷받침해 준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도 오직 본서에만 기록되었다. 이와 같이 누가는 민족과 계급을 초월하시는 구주 예수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큰성경>.
이방인을 대상으로 하는 복음서이기 때문에 유대적 요소가 적고 세계사와 연관하여 서술하였다. 그 목표는 유대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죄를 사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복음의 보편성, 기독교의 세계성이 잘 나타나 있다. 주님은 유대인의 주일뿐 아니라 전 인류의 주이시며 우주적 메시야 임을 강조했다. 마태복음서가 교훈적이라면 누가복음서는 역사적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의 특색으로는 금욕적, 사회주의적 관심을 들 수 있다. 저자는 가난한 자를 동정하고 부자에게는 반감을 품었다. 부자와 나사로의 설화(눅16:19)는 그것을 나타낸 대표적인 것이다. 또 부요한 자와 배부른 자는 화가 있으리라는 경고(눅6:24,25),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눅6:20),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를 들어가기보다 쉬우니라(눅18:24,25) 등으로 누가의 부(富)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알 수 있다. 또 누가가 품고 있었던 당시 사회의 불우한 부인에 대한 동정을 지적할 수 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아름다운 설화(눅10:38이하), 죄 있는 여자의 이야기, 엘리사벳 안나, 막달라 마리아 등을 들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이다. 뿐만 아니라 죄인과 병자에 대해서도 깊은 동정을 가졌다.
누가복음은 이방인 전도에 대한 사상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고, 사회문제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소외된 이들, 죄인들, 사마리아 인들, 여성에 대해서 커다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빅파워성경>
요한복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고, 그곳엔 다양한 신들이 있다. 어떤 종교는 힘과 복수의 신을 숭상하고, 어떤 종교는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침묵하는 신을 예배한다. 또 다른 종교는 신비스럽고 알 수 없는, 모든 인류를 하나의 거대한 우주의 바다로 흡수하는 신을 섬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요한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내어 주신 인격적인 사랑의 하나님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임을 알려 준다.
우리는 이 책(요한복음)에서 심오한 단순성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요한은 빛과 생명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의 활동을 묘사한다. 또한 요한은 일곱 가지 이적들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제시한다. 더불어 요한은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예수님의 일곱 가지 설교(요6, 10, 13-16장)를 포함시켰는데, 이를 통해 예수님 생애의 목적을 설명한다. <QA성경>.
요한복음이란?
헬라어 성경 표제는 카타 이오안넨, 즉 요한에 의한이다. 다른 복음서와 마찬 가지로 복음이란 말은 후대에 붙였다. <큰성경>
저자 이름을 따름. 헬라어 본문에는 카타요아넨(요한에 의한)이란 표제어가 나옴. <주석성경>
요한복음은 요한3서 및 요한 계시록과 함께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요한의 저작이며, 기원 85-95년경 에베소에서 집필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요한은 야고보와 함께 세베대의 아들로서 갈릴리의 어부였다. 그는 야고보와 함께 예수의 부르심을 받아 그의 제자가 되어 베드로와 함께 열두 사도 중 가장 사랑을 받은 제자였다. 특히 예수께 중대한 일이 있을 때마다 입회할 영예를 받았던 사람이다.
요한 복음서는 마태, 마가, 누가의 공관복음서와 함께 예수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공관복음서와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요한복음은 맨 처음에 태초로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신적 로고스(말씀)에 대하여 전개하여,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메시아)이심을 증거한 사실이다.
둘째, 공관복음이 예수의 생애에 대하여 외부적 면을 묘사하는데 충실했다면, 요한복음은 내면적인 영과 진실에 넘치는 내적 생명을 전하는데 힘썼다. 영적 종교의 특성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 있다.
셋째, 공관복음에 나온 병 치유와 기적 설화 같은 것은 요한복음에는 거의 없다.
넷째, 그 대신 요한에는 서사(序詞) 가나의 혼례, 니고데모와의 대화, 사마리아의 여자, 베다스다 못에서의 중풍병자 치유, 초막제에의 여행, 간음한 여자, 나면서부터의 소경을 고치심, 참 목자, 나사로의 소생, 마리아가 향유를 바름, 결별의 긴 설교 등의 특유한 기사가 있다.
다섯째, 공관복음은 사건 묘사가 중심이나, 요한복음은 예수의 설교가 중심이며 사건에서 독립된 내용을 가진 것조차 없다.
여섯째, 활동의 장소가 다르다. 공관복음에서 예수는 그 생활의 태반을 갈릴리호 주변에서 지내시고 십자가 사건으로 예루살렘으로 상경하셨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갈릴리의 체제 기간이 짧고, 유대, 요단강 동쪽 베레아와 북쪽 사마리아가 중시되고, 예루살렘이 복음서 전체의 거의 반의 무대로 되었다.
일곱째, 산상 설교와 비유의 영적인 예수의 가르침은 요한복음에는 없고 설화에 의한 긴 설교는 상세한 교훈에 포함되어 있다. 요한은 예수의 사실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그 신학적 의의를 추구하여 신학적 특색을 표출하고 있다. 요한 신학의 중심은 그리스도론이며 요한은 그리스도를 생명의 빵, 세상의 빛, 부활, 좋은 목자, 포도 나무라고 선언하였다. 예수를 참 구주로 받아들여 거기서 참 생명을 받도록 권고하였다.
일찍이 마틴 루터는 설사 신, 구약 성경의 모든 서책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로마서와 요한복음만 남게 된다면 기독교의 진리는 영원히 보존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토록 중요한 요한복음서의 이해를 위하여 교부 시대부터 많은 학자들이 연구의 노고를 거듭해 왔다.
요한복음서는 앞의 다른 세 복음서와는 다르다. 마태오, 마르코, 루가 복음서에는 예수의 기적과 말씀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요한복음서에는 표지라고 불리는 기적이 일곱 번밖에 나오지 않고, 서서히 펼쳐지는 연사도 열쇠가 되는 동일한 주제들을 되 풀이하며 몇 가지 밖에 나오지 않는다. 앞의 세 복음서 저자들은 자기 공동체들 안에 이미 있던 교리교육 내용을 모아서 편집하고 완성시켰다. 그러나 요한은 그와 다른 길을 따른다. 요한복음서는 자기 공동체 안에 있던 교리 교육 내용을 깊이를 더해서 보여 주기 위한 일종의 묵상서다. 요한의 복음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요한20: 30,31)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일깨우고 키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요한이 보기에, 예수께서는 하느님이 보내신 분이고, 아버지를 사람들에게 계시하는 분이시다. 하느님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어 살리고자 하신다. 예수께서는 그 사랑을 계시하고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 생명을 바침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행하신다. 요한은 자기 복음서 전반부에 제시되는 일곱 가지 표지를 통하여 신앙의 투신이 중요 함을 강조하면서 그 사실을 보여 주려고 애쓴다. 그리고 요한은 자기 복음서 후반에서도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리고 최고의 표지, 즉 예수께서 당신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그와 동일한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예수 안에서 예수를 통하여 보여 주신 하느님의 계시는 세상을 심판한다. 계시의 빛을 받으면 사람들의 삶의 본 모습이 드러난다. 하느님의 뜻에 맞추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예수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거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빛이신 예수를 멀리하고 예수를 물리친다. 그래서 요한은 자기 복음에서 사람들이 예수와 맺는 관계를 강조 한다. 예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생명을 얻고 예수께 등을 돌리는 사람들은 죽음에 이른다. 예수를 멀리하고 예수께 적의를 보인 사람들은 예수를 죽이게 된다. 그러나 예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초대 그리스도 신자 공동체를 만든다. 그로부터 그 공동체들이 예수의 사명을 이어 받아 실천할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당신 외아들을 넘겨줌으로써 당신 사랑을 증명해 보이셨다. 사람들도 그와 똑같은 모양으로 사랑의 선물에 자기 자신을 열어 형제자매인 모든 인간을 살리는데 몸 바칠 때 아버지의 사랑에 응답할 수가 있다. 요한 복음서를 읽는 우리는 예수를 통하여 우리 삶을 비추고 우리에게 결단을 다구치는 하느님의 빛에 의하여 심판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열어 놓도록 초대받는다. 즉 결정적으로 생명에 다다르고 살기 위하여 예수의 사업을 이어받든지, 아니면 예수를 물리치고 결정적으로 단죄와 처벌을 받든지 결단을 내리도록 초대받는다<공동번역성경>
저자
사도 요한. 유대 지리에 밝은 것으로 보아 저자는 본서의 사건을 목격한 유대 사람인데 21:24절은 이 사람으로, 21:20절은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증거하고 있다. 요한을 뒤이은 폴리캅의 제자 이레네우스와 이그나티우스 등이 요한의 저작 임을 인정했다. <큰성경>
사도 요한이 썼다. 그는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베드로 및 야고보와 더불어 중요한 제자 중 한 명이다. <QA성경>.
본서에는 저자의 이름이 직접 밝혀지지 않으나 본문을 살펴보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1) 팔레스타인에 거주한 유대인이었다.
이것은 그가 유대인의 절기와 풍습에 익숙하다는 점, 그리고 그가 팔레스타인 지형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2) 본서에 기록된 사건의 목격자였다. 그 자신이 목격자임을 스스로 증언하고 있으며, 발생시기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3)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 참여했다는 사실과 베드로의 친한 동료였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보면, 본서의 저자 는 사도 요한임이 드러난다.
요한. 세베대와 살로메의 아들. 사도 야고보의 동생. 갈릴리 어부 출신(눅5:10).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인물(행 3:1). <주석성경>
사도 요한은 세베대와 살로메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 갈릴리에서 살았는데, 어부였다. 세례 요한을 통해서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사도로 부름을 받았으며 예수의 가장 가까운 세 사도 중의 한 사람으로(다른 사도는 베드로와 야고보이다).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로 불린다. 사마리아에 불을 내리게 하라고 예수께 요청했고, 보아니게 라는 별명을 얻었다. <기독교사전>.
본서의 저자로는 세베대의 아들이며 예수의 수제자 중의 하나였던 사도 요한이 확실시 되고 있다. 본서에는 요한이 저자라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 다음과 같은 본서의 특징과 기록이 이를 뒷받침 한다 (이하 생략). <호크마 주석>
기록연대
주후 85-90년경으로 추정. 유세비우스의 주장에 의하면, 공관 복음이 완성된 후 부터 95년 유배되기 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한다. <큰성경>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요한이 에베소에서 설교하고 저작활동을 했던 때부터 밧모섬으로 유배당하기 이전인 주후80-90년경에 에베소에서 본서가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다. <빅파워성경>
주후85-90년경. 공관복음이 완성된 이후. 밧모섬으로 귀양가기 전. <주석성경>
본서의 기록 연대는 크게 나누어 볼 때 사울의 핍박으로 예루살렘 성에서 기독교인 들이 흩어졌던 주후 45년 직후부터 2세기 중엽 사이의 어느 시기일 것으로 추정 된다(이하생략). <호크마주석>
기록 목적
이 책의 저자인 요한은 그 이유를 분명히 설명한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QA성경>
요한은 20:30,31절에서 예수께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로 본서의 저작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나아가 주석가들은 몇 가지 부수적인 저작 목적도 지적한다.
먼저 공관복음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이다. 즉 예수님의 생애와 활동에 관한 외적인 사실을 취급한 복음서들이 이미 쓰여졌지만, 요한은 이것들보다 더 깊은 영적인 복음(이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한 말임)을 쓰려고 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케린 투스의 오류를 논박하기 위한 목적을 들 수 있다. 케린투스는 사도 요한의 시대에 살았던 인물로서, 성령으로 인한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출생과 부활, 곧 신성을 부정하였다. 이런 까닭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요, 완전한 신성을 입으셨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세례 요한에 관한 그릇된 견해를 바로잡기 위한 목적도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그의 존재 의미는 이미 예수님을 증거 하는데 있었음을 강조한다. <빅파워성경>
쉽고 단순하며 명료한 문체로 기록되었으나 사도 요한의 예리한 통찰력과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는 본서는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부인하는 이단 사상을 불식시키며 예수가 로고스이심과 성령의 사역을 강조할 목적으로 기록되었다. 헬라 사고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공관 복음서의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씌어졌다<주석성경>
본서를 기록하게 된 특별한 동기를 찿아 내기는 어려우나 많은 학자들의 주장들을 살펴 볼 때 다음 몇 가지 사항으로 요약된다(이하생략). <호크마주석>
핵심 단어
믿으라!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라고 본서를 기록한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또한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지적, 영적 확신을 공고히 하기 위해 특별히 몇 가지의 표적을 수록하고 있다. 이같이 본서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핵심 단어는 믿다 로서 이는 참다운 지식(요8:32. 10: 38)과 더불어 과감한 결단(요1:12. 3:19. 7:17)이 요구되는 말이다. 즉 이 말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은 즉시 영생을 얻지만 그를 거절하는 자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정죄 아래 놓이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요3:36. 5:24-29. 10:27-29). <주석성경>
핵심 장 ⇒ 요3장
본 장에서는 본서의 중심 사상인 믿음과 구원의 불가분적 관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16절에 요약된 복음의 정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구원의 원리를 보여 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희생 제물로 주시기까지 성도를 사랑하시며,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구속 사실을 믿으면 성도의 반열에 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예수와 니고데모와의 대화 및 세례 요한의 증거를 통해서도 오직 중생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진리가 확인된다<주석성경>
본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본서는 성 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신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 속에서 잘 나타난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요6:35,48),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8:12. 9:5),
나는 양의 문이라(요10:7,9),
나는 선한 목자라(요10:11,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
내가 참 포도나무요(요15:1-5),
내가 그로다 등이며 또한 하나님 아들 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일곱 가지 표적과 다섯 가지 증언(요5:30-40)에서도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장 잘 나타낸 구절은 요1:1. 8:58. 10: 30. 14:9. 20:28절 등이다. 그러나 본서에는 그리스도의 신성뿐 아니라 인성도 나타나고 있다. 즉 피곤, 갈증, 성부께 대한 의존, 슬픔, 심령의 갈등, 번민과 죽음 등이다<주석성경>
신학적 특성
요한복음 전체에 걸쳐 나는.....이니라 라는 선언이 일곱 번 반복되어 나온다. 나는.....이니라 라는 선언 형식은 구약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말은 불타는 가시나무 떨기 속에서 모세에게 계시되었던 하나님의 이름을 표현하는 형식이었으며, 신성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나는.....이니라 라는 선언은 예수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한 표현으로 이해된다. 또한 본서는 예수가 행하는 놀라운 기적들을 표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표적이란 기적의 의미나 배후에 있는 기적을 일으킨 능력자를 암시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본서에는 일곱 개의 표적이 소개되고 있다. 이와 같이 본서는 나는.....이니라 라는 일곱 개의 표적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심오한 복음서이다. <큰성경>
요한복음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공관복음과 다르다. 그 중 중요한 몇 가지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장소와 시간을 들 수 있다. 예수님이 활동하신 장소에 대해 마지막 주간만 제외하고 공관복음에서는 주로 갈릴리 사역을 다루고 있으나, 요한복음에서는 유대 지방에서의 사역이 강조되었다. 시간 상으로도 공관복음은 한 번의 유월절만 언급하여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1년인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반해, 요한복음은 세 번 내지 네 번 언급하여 공생애 기간이 3년 이상 이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언어 상의 용법을 들 수 있다. 공관복음에서 특징적인 표현 형식은 비유이며, 또한 여기에서 교훈적인 진술을 가미한 짧고 생생한 구절들과 쉽게 기억될 수 있는 간단한 사건들이 많이 나타난다. 반면에 요한 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교훈은 긴 강론 형식으로 되어 있다.
관점을 들 수 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나라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반해, 요한복음의 강론들은 대부분이 예수님 자신에 관한 것과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특별히 영생이라는 주제에 집중되고 있다.
전체 구조를 들 수 있다. 공관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 교훈의 기본적인 구조는 오는 세대가 되면 현재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시간적인 선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공관 복음이 제시하는 세계와 역사의 구조는 이 세대와 오는 세대, 현재와 미래 사이의 종말론적인 이중 구조로 대치되어 있다. 즉 현재와 미래의 긴장 대신에 위와 아래, 하늘과 땅, 하나님의 영역과 세상의 영역 사이의 긴장이 존재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매우 순수하고 간결한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신학적인 통찰력은 대단히 무게가 있고 심오하다.
본서는 영원한 아들, 곧 로고스(말씀)로서의 예수님을 주제로 삼고 있는데, 그분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세상이 창조될 때 하나님과 함께 일하셨다. 본서 전체에는 나는 ... 이니라는 말씀이 일곱 번 반복되어 나온다.
즉 (1) 생명의 떡, (2) 세상의 빛, (3) 양의 문, (4) 선한 목자, (5) 부활이요 생명 (6) 길이요 진리요 생명, (7) 참 포도나무 등이다. 그런데 나는 ...이니라 라는 말씀은 구약에서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이 말은 불타는 가시덤풀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자신을 표현하는 형식으로서, 신성을 표현하는 말이다. 또한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을 표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유일한 복음서이다. 나아가 요한은 유일하게 보혜사. 곧 성령님에게 대해 이야기한다.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 을 나눌 때, 예수님은 앞으로 오실 성령님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자신에 대해 증인이 될 것이지만, 성령님의 사역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시작될 것이라고 하셨다<빅파워 성경>.
공관복음의 내용이 객관적 성격을 띤 전기체인 반면에 본서는 예수에 대한 객관적 해설을 그 내용으로 한다. 또한 예수의 신성이 강조되고 대화와 변론과 상징적 표현이 풍부하다<주석성경>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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