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들(롬6:1-11)

열려라 에바다 2026. 6. 29. 13:06

죄에 대하여 죽은 자들 로마서 6:1-11

권호만barnabak추천 0조회 23026.06.26 09:21댓글 6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성도들을 향하여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처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이 조금 애매합니다.

죽은 자들은 욕을 하든 칭찬을 하든 어떤 말을 해도 반응이 없습니다.

어떤 달콤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하는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짓고 각종 유혹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살아있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죄와 인간의 관계를 네 단계로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는, 아담과 하와처럼 죄를 짓지 않는 단계입니다.

죄는 없지만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게 됩니다.

두 번째는, 아담의 후손으로 죄 가운데 태어나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단계입니다.

모두가 죄를 짓고 죄 가운데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세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은 자가 된 단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죄를 속량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죄에 대하여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죄의 권세, 죄의 지배로부터 자유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성화 구원의 단계라고 말합니다.

네 번째는, 영화 구원의 단계인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때는 죄가 완전히 사라졌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러한 네 단계에서 우리는 지금 1단계와 4단계는 경험하지 못합니다.

성도들이 경험하는 것은 2단계 즉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를 짓고 사는 상태에서 3단계 즉 예수님을 믿고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1. 말하자면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해서 죄를 완전히 짓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죄의 유혹이 사라졌다는 말도 아닙니다.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좋아하며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고 죄의 지배에서 해방된 사람입니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노예들은 법적으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노예들은 오랫동안 주인에게 복종하며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자유를 얻고도 옛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려 했습니다.

주인들도 아직 자기의 노예인양 생각하고 일을 시켰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옛 노예를 향해 밭에 나가서 일을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노예가 아닙니다. 당신의 말을 따르지 않겠습니다.”거부했습니다.

그 주인은 여전히 소리를 지를 수는 있었지만 그를 지배할 권리는 없었습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가 우리의 주인이었고 우리는 죄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입니다.

죄는 우리를 지배할 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죄는 여전히 자기가 주인인양 우리를 유혹하고 지시하지만 우리는 죄를 따를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더 이상 네 종이 아니다. 네 말을 따르지 않겠다."라고 거절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성도입니다.

여러분,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죄가 더 이상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해방된 노예가 옛 주인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없는 것처럼, 성도는 죄의 명령에 순종할 의무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절에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말합니다.

더 이상 죄의 명령을 따라 죄 가운데 살수 없다는 것입니다.

 

2.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죄에 대하여 죽은 자들이 되었습니까?

 

3절 말씀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여기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세례는 단순한 종교의식이 아닙니다.

세례는 예수님과의 연합을 상징합니다.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한 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이루어놓으신 일이 그대로 우리의 것이 됩니다.

결혼을 통하여 남녀가 연합한 자가 되면 남편의 아픔이 아내의 아픔이 됩니다.

아내의 즐거움이 남편의 즐거움이 됩니다.

남편의 빚이 있으면 아내도 그 빚을 갚기 위해 함께 수고를 해야 합니다.

이처럼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과 연합한 자가 되면 예수님의 것이 그대로 우리의 것이 됩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이 우리의 것이 되고요, 예수님이 죄를 이기셨기에 우리도 죄를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우리도 부활하게 됩니다.

그럼으로 이제 죄에 물들어진 옛사람은 죽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은 절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옥에 갇힌 사형수나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자는 자신의 노력으로 감옥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밖에 있는 대통령이 사면을 하거나 법무장관이 죄를 감해주어야 나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에 물들어있던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은 내가 죄를 짓지 않겠다고 애쓰고 힘써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믿고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를 받아야 죽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죄의 몸이 죽고 옛사람이 죽는 것이나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인간적 차원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애씀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신 일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음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3. 그러면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먼저는, 죄에 거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2절 말씀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보면,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낭비한 후에 거지가 되어 집에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탕자의 모든 잘못을 다 용서하고 사랑으로 맞아주고 아들의 지위를 회복합니다.

탕자는 이 일로 인하여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체험합니다.

그런데 이 은혜와 사랑을 다시 체험하기 위하여 두 번째로, 세 번째로 재산을 가지고 나가서 탕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느니라.’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탕자의 삶은 한 번으로 끝나야지 용서받은 후에 다시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6절 말씀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했습니다.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에게 종노릇하며 사는 것은 주님을 알지 못할 때 한 번으로 족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에 대하여 죽은 이후에는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두 번째로, 새 생명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4절 하 반절에 보면, “우리로 또한 새 생명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는 새 생명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새 생명이란 예수의 생명의 씨앗을 받은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받아 새 생명을 얻은 성도의 삶을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사는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영광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잔치 날을 앞두고 부잣집 가축들이 회의를 열었습니다.

소가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나는 봄, 가을 논밭을 갈아야하고, 장날에 수레를 끌어야 하기 때문에 남아야 되겠다."고 하자 모두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수탉이 말합니다. "나는 고단하게 잠든 가족들을 새벽에 깨우기 위해 울어야 하고, 마누라는 영양 공급을 위해 알을 낳아야 되니 남아야 되지 않겠소?"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합니다.

개가 말합니다. "나는 도둑을 막기 위해 남아야 합니다."

그러나 돼지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때 모든 가축들이 "너는 매일 먹고 놀았으니 너 밖에 죽을 자가 없다!"고 말했답니다.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성도는 새 생명의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사는 것이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을 위해 일하면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책임져주십니다.

 

세 번째로, 이 사실을 확실하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11절 말씀에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여기에서 여길지어다.’ 믿음으로 그렇게 생각하라’ ‘그렇게 계산하라는 뜻입니다.

아닌 것을 그렇게 여기라는 말이 아니고 그렇게 된 것을 그렇게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여기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어느 젊은이가 취직을 했는데 사장이 대단히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부하 직원들을 괴롭히고 잘못을 지적하고 시비를 걸어 인격을 모독합니다.

그래도 가족들을 생각하고 참고 고통 속에서 몇 년을 일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좋은 선배의 소개로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 무서운 상관은 없어졌지만 거기에도 사장은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이미 전 직장의 사장에게 길들여져 있어서 이 회사의 사장도 전 사장처럼 대하게 되었습니다.

가까지 가지 않았고 가능하면 멀리하려고 했습니다.

하루는 새 사장이 다가와서 도와줄 것이 있으면 말하세요. 여기서는 사원이 왕입니다.’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그는 직장도 상관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그 상관이 너무도 좋은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직장이 달라져도 상관을 두려워했기에 여전히 옛 직장이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옛사람이 죽었고 새 생명을 얻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생각하지 않고 의심하면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주님과 합하여 옛사람이 죽었다고 했으면 나는 죽었다.’ ‘옛사람은 죽었다고 여기고 생각해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씀하는데 나는 죽지 않았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죽었다고 하면 죽은 것으로 여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유혹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죽었다고 여기시고 유혹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분노가 올라올 때도 나는 죽은 사람이라고 선포하면서 분노를 이기시기 바랍니다.

김익두는 죽었다고 부고를 냈으면 죽은 사람처럼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시험과 유혹 가운데서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여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두번째로,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죄인이라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죄인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유혹도 있고 실패도 있고 죄를 지으며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이나 느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 하나님의 선포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믿고 그렇게 여기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믿는 성도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선언합니다.

"너는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이다. 죄의 종이 아니다."

"너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한 사람이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다."

"너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을 얻은 자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진리를 붙들고 믿음으로 여기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날마다 죄를 거절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6.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