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오리 강물로 뚫은 바위에 세월을 담다
‘살아있는 지리학 교과서’ 영월 요선암
강원도 영월에는 술이 솟아났다는 전설의 샘이 있다. 주천강에 발을 담근 망산의 바위 아래에 위치한 술샘(酒泉)에서는 양반이 잔을 대면 청주가, 천민이 잔을 놓으면 탁주가 솟아났다고 한다. 한 천민이 양반 복장을 하고 청주를 기다렸으나 술샘에서 탁주가 솟아나자 화가 나 샘을 부숴버렸다. 이 후 술샘에서는 술 대신 맑은 물이 솟아나 주천강으로 흘러들었다고 한다.
평창과 횡성의 경계에 위치한 태기산 남쪽 골짜기에서 발원한 주천강은 쌍섶다리의 고장 주천에서 어릴 적 천렵의 추억을 실타래처럼 풀어낸다. 쌍섶다리는 조선 숙종 25년(1699년)에 주천강을 사이에 둔 주천리와 신일리 주민들이 단종의 장릉을 참배하러 가는 강원도 관찰사의 가마 행렬이 주천강을 안전하게 건너도록 놓은 한 쌍의 섶다리.
운학천과 엄둔천을 만나 강폭을 넓힌 주천강은 법흥계곡과 합류하는 무릉리에서 크고 작은 구멍이 뚫린 너럭바위를 두루마리 그림처럼 펼쳐 놓는다. 시조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로 유명한 조선 중기의 문인 양사언은 평창군수 시절에 이 너럭바위를 요선암이라고 명명하고 선녀탕에 글을 새겼다고 한다. 요선암(邀仙岩)은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뜻.
지난 4월 천연기념물 제543호로 지정된 요선암은 찾아가는 길부터 예사롭지 않다. 술샘에서 주천교를 건너면 한우고기 마을인 다하누촌으로 유명한 주천면 소재지이다.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다슬기를 줍는 피서객들로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는 주천강을 거슬러 오르면 수주면 무릉리에서 광개토대왕비 탁본을 전시한 호야지리박물관을 만난다. 요선암은 여기서 옥수수밭을 지나고 소나무 뿌리가 드러난 오솔길을 걸어 야트막한 야산을 넘어야 보인다.
솔향 그윽한 야산 정상에는 숙종의 어제시가 걸려있는 요선정(邀僊亭)이 홀로 주천강을 지키고 있다. 숙종의 어제시를 새긴 현판은 인근 주천강변의 청허루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청허루가 붕괴된 뒤 주천면의 일본인 경찰지소장이 가져갔다고 한다. 이에 마을의 요선계 회원들이 많은 돈을 주고 현판을 구입한 후 이를 봉안할 요선정을 1915년에 건립했다. 요선암은 신선을 뜻하는 ‘선(仙)’을 쓰지만 요선정은 춤추다는 의미의 ‘선(僊)’을 사용한다.
요선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정자로, 그 옆 흔들바위에 새긴 고려시대 마애불 하나가 눈길을 끈다. 흔들바위 아래로 주천강이 구절양장 흐르고 바위절벽 끝에는 잘생긴 소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이 소나무들은 어떻게 단단한 바위에 뿌리를 내렸을까. 놀랍게도 소나무는 갈라진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바람에 날아온 흙먼지를 자양분으로 삼아 오랜 세월을 독야청청하고 있다.
오솔길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요선암은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다. 흐르는 물이 수만 년 세월 동안 화강암의 피부를 매끈하게 연마했기 때문이다. 요선암은 돌개구멍이 있는 너럭바위와 주변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넓이는 500여 평. 맑은 강 속에 크고 하얀 바위가 200m에 걸쳐 넓게 깔려 있다. 요선암이 동해의 무릉반석과 다른 점은 너럭바위 표면에 돌개구멍이 무수하게 패여 있다는 점.
포트홀(Pot Hole)로 불리는 돌개구멍은 ‘속이 깊고 둥근 항아리 구멍’이라는 뜻이다. 돌개구멍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학자들은 하천에 의해 운반되던 자갈 등이 오목한 모양의 너럭바위에 들어가 소용돌이치는 강물과 함께 회전하면서 내부를 마모시켜 항아리 모양의 구멍이 생긴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이런 돌개구멍들이 만들어질까?
‘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몸 비틀어 바위에서 빠져나와/ 차디찬 강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하고/ 뻘겋게 머리가 까뭉개져/ 앓는 소리를 내는 앞산을 보며/ 천년 긴 세월을 되씹기도 한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논틀밭틀에/ 깊드리에 흘린 피는 아직 선명한데/ 성큼성큼 주천 장터로 들어서서 보면/ 짓눌리고 밟히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숨가쁘게 사랑을 하고/ 들뜬 기쁨에 소리 지르고/ 뒤엉켜 깊은 잠에 빠져 있다’(신경림 ‘주천강가의 마애불-주천에서’ 중)
주천강의 돌개구멍은 손바닥에서 욕조까지 크기가 다양할 뿐 아니라 모양도 하트형, 원형, 반달형, 타원형, 쉼표형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으로 발달해 기괴한 모양을 연출하기도 한다. 신경림이 요선정의 고려시대 마애불이 밤마다 바위에서 빠져나와 주천강에서 놀다 간다고 읊은 이유도 요선암이 가진 매력 때문이리라.
어린 시절을 수주면이나 주천면에서 보낸 사람들에게 요선암은 추억의 놀이터이자 단골 소풍장소였다. 거울처럼 맑은 주천강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던 벌거숭이들은 고기도 잡고 다슬기도 주웠다. 그리고 입술이 파래지면 돌개구멍에 고인 따뜻한 물속에서 몸을 녹이던 유년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돌개구멍의 잔잔한 수면은 주천강의 풍경을 담아내는 거울이기도 하다. 맑은 날에는 푸른 하늘을 담고, 흐린 날에는 하얀 하늘을 담는다. 해가 뜨고 질 때는 돌개구멍에 붉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황홀하다. 봄에는 연둣빛 신록에 물들고, 여름에는 뭉게구름이 흐른다.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을 담고,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은 수면이 거울처럼 반짝인다.
요선암에서 가장 잘생긴 돌개구멍은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 양사언이 새겼다는 ‘요선암’ 글씨는 찾을 길이 없지만 한 사람이 목욕을 즐길 정도로 넓은 선녀탕은 특이하게도 쉼표처럼 생겼다. 강물도 쉬었다 가고 세월도 쉬었다 가라는 뜻일까. 주천강에서 자란 아이들의 추억을 새긴 돌개구멍이 오늘도 새로운 추억을 주섬주섬 주워 담고 있다.
영월=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강원도 영월에는 술이 솟아났다는 전설의 샘이 있다. 주천강에 발을 담근 망산의 바위 아래에 위치한 술샘(酒泉)에서는 양반이 잔을 대면 청주가, 천민이 잔을 놓으면 탁주가 솟아났다고 한다. 한 천민이 양반 복장을 하고 청주를 기다렸으나 술샘에서 탁주가 솟아나자 화가 나 샘을 부숴버렸다. 이 후 술샘에서는 술 대신 맑은 물이 솟아나 주천강으로 흘러들었다고 한다.
평창과 횡성의 경계에 위치한 태기산 남쪽 골짜기에서 발원한 주천강은 쌍섶다리의 고장 주천에서 어릴 적 천렵의 추억을 실타래처럼 풀어낸다. 쌍섶다리는 조선 숙종 25년(1699년)에 주천강을 사이에 둔 주천리와 신일리 주민들이 단종의 장릉을 참배하러 가는 강원도 관찰사의 가마 행렬이 주천강을 안전하게 건너도록 놓은 한 쌍의 섶다리.
운학천과 엄둔천을 만나 강폭을 넓힌 주천강은 법흥계곡과 합류하는 무릉리에서 크고 작은 구멍이 뚫린 너럭바위를 두루마리 그림처럼 펼쳐 놓는다. 시조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로 유명한 조선 중기의 문인 양사언은 평창군수 시절에 이 너럭바위를 요선암이라고 명명하고 선녀탕에 글을 새겼다고 한다. 요선암(邀仙岩)은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뜻.
지난 4월 천연기념물 제543호로 지정된 요선암은 찾아가는 길부터 예사롭지 않다. 술샘에서 주천교를 건너면 한우고기 마을인 다하누촌으로 유명한 주천면 소재지이다.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다슬기를 줍는 피서객들로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는 주천강을 거슬러 오르면 수주면 무릉리에서 광개토대왕비 탁본을 전시한 호야지리박물관을 만난다. 요선암은 여기서 옥수수밭을 지나고 소나무 뿌리가 드러난 오솔길을 걸어 야트막한 야산을 넘어야 보인다.
솔향 그윽한 야산 정상에는 숙종의 어제시가 걸려있는 요선정(邀僊亭)이 홀로 주천강을 지키고 있다. 숙종의 어제시를 새긴 현판은 인근 주천강변의 청허루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청허루가 붕괴된 뒤 주천면의 일본인 경찰지소장이 가져갔다고 한다. 이에 마을의 요선계 회원들이 많은 돈을 주고 현판을 구입한 후 이를 봉안할 요선정을 1915년에 건립했다. 요선암은 신선을 뜻하는 ‘선(仙)’을 쓰지만 요선정은 춤추다는 의미의 ‘선(僊)’을 사용한다.
요선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정자로, 그 옆 흔들바위에 새긴 고려시대 마애불 하나가 눈길을 끈다. 흔들바위 아래로 주천강이 구절양장 흐르고 바위절벽 끝에는 잘생긴 소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이 소나무들은 어떻게 단단한 바위에 뿌리를 내렸을까. 놀랍게도 소나무는 갈라진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바람에 날아온 흙먼지를 자양분으로 삼아 오랜 세월을 독야청청하고 있다.
오솔길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요선암은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다. 흐르는 물이 수만 년 세월 동안 화강암의 피부를 매끈하게 연마했기 때문이다. 요선암은 돌개구멍이 있는 너럭바위와 주변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넓이는 500여 평. 맑은 강 속에 크고 하얀 바위가 200m에 걸쳐 넓게 깔려 있다. 요선암이 동해의 무릉반석과 다른 점은 너럭바위 표면에 돌개구멍이 무수하게 패여 있다는 점.
포트홀(Pot Hole)로 불리는 돌개구멍은 ‘속이 깊고 둥근 항아리 구멍’이라는 뜻이다. 돌개구멍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학자들은 하천에 의해 운반되던 자갈 등이 오목한 모양의 너럭바위에 들어가 소용돌이치는 강물과 함께 회전하면서 내부를 마모시켜 항아리 모양의 구멍이 생긴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이런 돌개구멍들이 만들어질까?
‘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몸 비틀어 바위에서 빠져나와/ 차디찬 강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하고/ 뻘겋게 머리가 까뭉개져/ 앓는 소리를 내는 앞산을 보며/ 천년 긴 세월을 되씹기도 한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논틀밭틀에/ 깊드리에 흘린 피는 아직 선명한데/ 성큼성큼 주천 장터로 들어서서 보면/ 짓눌리고 밟히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숨가쁘게 사랑을 하고/ 들뜬 기쁨에 소리 지르고/ 뒤엉켜 깊은 잠에 빠져 있다’(신경림 ‘주천강가의 마애불-주천에서’ 중)
주천강의 돌개구멍은 손바닥에서 욕조까지 크기가 다양할 뿐 아니라 모양도 하트형, 원형, 반달형, 타원형, 쉼표형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으로 발달해 기괴한 모양을 연출하기도 한다. 신경림이 요선정의 고려시대 마애불이 밤마다 바위에서 빠져나와 주천강에서 놀다 간다고 읊은 이유도 요선암이 가진 매력 때문이리라.
어린 시절을 수주면이나 주천면에서 보낸 사람들에게 요선암은 추억의 놀이터이자 단골 소풍장소였다. 거울처럼 맑은 주천강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던 벌거숭이들은 고기도 잡고 다슬기도 주웠다. 그리고 입술이 파래지면 돌개구멍에 고인 따뜻한 물속에서 몸을 녹이던 유년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돌개구멍의 잔잔한 수면은 주천강의 풍경을 담아내는 거울이기도 하다. 맑은 날에는 푸른 하늘을 담고, 흐린 날에는 하얀 하늘을 담는다. 해가 뜨고 질 때는 돌개구멍에 붉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황홀하다. 봄에는 연둣빛 신록에 물들고, 여름에는 뭉게구름이 흐른다.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을 담고,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은 수면이 거울처럼 반짝인다.
요선암에서 가장 잘생긴 돌개구멍은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 양사언이 새겼다는 ‘요선암’ 글씨는 찾을 길이 없지만 한 사람이 목욕을 즐길 정도로 넓은 선녀탕은 특이하게도 쉼표처럼 생겼다. 강물도 쉬었다 가고 세월도 쉬었다 가라는 뜻일까. 주천강에서 자란 아이들의 추억을 새긴 돌개구멍이 오늘도 새로운 추억을 주섬주섬 주워 담고 있다.
영월=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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