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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교회가 있었네-두월교회] 복분자처럼, 우리 신앙도 향기롭게 잘 익으면 좋겠어

열려라 에바다 2013. 11. 26. 15:44

 

[그곳에 교회가 있었네-두월교회] 복분자처럼, 우리 신앙도 향기롭게 잘 익으면 좋겠어

 

전북 정읍시 산내면 두월교회

두월교회는 전북 정읍시 산내면 두월리에 있다. 산내면은 정읍시 남동부에 있으며 해발고도 250m 이상의 고랭지다. 산내면의 북쪽에 왕자산·성옥산이 있고 동쪽에 짙푸른 산과 신비로운 물안개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옥정호가 있다.

정읍과 임실 지역에 212㎞ 길이로 뻗어있는 옥정호는 수력발전 및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섬진강 상류를 막아 형성된 인공호수다. 특히 옥정호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국사봉 전망대와 추령천변의 구절초 군락지는 손꼽히는 관광지다.

가난한 주민들의 교회

교회의 주된 전도 지역은 사교·상두·방성동·홍문 등 마을 4곳이다. 이들 마을을 모두 합해도 주민은 100여명뿐이다. 주변 경관은 아름답지만 주민들의 소득 수준은 상당히 낮다. 대부분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산을 일궈 호박고구마, 고추, 콩, 옥수수 등을 재배한다. 그나마 6월 말 수확하는 복분자 농사가 큰 보탬이 된다.

지난 8일 만난 한 주민은 “농사를 쬐께 지으니까 용돈 쓰기도 모자란다”며 “밥만 먹고 있응게 포도시(가까스로) 사는 거 아니겄소”라고 했다. 최병해(46) 목사는 “2004년 정부에서 전국 1500여개 면단위별 소득 수준을 조사한 결과 산내면이 꼴찌했을 정도로 열악한 산골마을”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담배농사가 주 수입원이었다. 교회에서 500m쯤 떨어진 사교마을에 사는 최순이(74) 집사는 담배 농사로 5남매 대학 교육을 다 시켰다며 얘기를 꺼냈다. “그때는 리어카도 없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르겄소. 담뱃잎을 다발로 묶어서 지게에다 짊어지고 집에 와서는 또 짚으로 엮어서 비닐하우스에 널어서 말린 다음 전매청에 넘겼응께. 그 냄새가 또 얼마나 독한지 담뱃잎 따다가 쓰러진 사람도 많았지.”

최 집사는 담배농사로 한 해 200만∼300만원 수입을 올렸으나 고된 일을 감당하기 어려워 20년 전쯤 그만뒀다. 그가 교회에 나오게 된 이유는 우울증 때문이었다. 자식들을 다 키워 도시로 떠나보낸 뒤 허망함이 컸었다고 한다. 당시 멍하게 정신을 놓는 때가 많았고 밥맛도 없어 몸은 비쩍 마르게 됐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의사는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라고 했다.

최 집사는 10여년 전 예배당에 처음 나왔을 때 부끄러워 목회자 눈도 못 마주치고 강대상 쪽만 바라봤지만 어느새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됐다. “옆집 할머니가 아프고 정신이 흔들리면 하나님 아버지만 믿으면 괜찮다고 그래서 교회에 다녔지. 그전에도 교회에 나가고자픈데 잘 안 됐었고…. 교회 나오니까 머리는 맑아졌는데 이제 무릎도 아프고 사방 아픈 데도 많지만 주님만 바라보고 살고 있소.”

최 집사는 십일조를 하고 싶지만 경제권을 믿음이 깊지 않은 남편이 쥐고 있고 형편도 넉넉지 않아 5000원씩 헌금을 한다고 했다. 최 집사뿐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교인들이 많다보니 헌금보다는 농산물을 교회에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사교마을에 사는 성미자(80) 집사는 “6남매 가르치느라 가랑이 찢어질 정도로 어려웠다”며 “손발로만 벌어먹고 사니까 헌금도 잘 못 허고 참기름이나 깨 같은 거를 가져온다”고 했다.

상두마을에 사는 이순임(72) 권사도 “돈이 없어서 헌금은 쬐께밖에 못한다”면서 웃었다. 이 권사 곁에 있던 어르신들이 “그래서 얼마를 내느냐”고 물었으나 계속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웃기만 했다.

이 권사도 담배농사로 7남매를 뒷바라지했다. 7남매를 출산한 순서대로 소개하는 그를 보며 한 성도가 “이 동네는 테레비(텔레비전)가 없응께 잠만 자. 그러니까 저렇게 새끼들만 줄줄이 낳지”라고 농을 쳤다.

이 권사는 10년 전쯤 농약을 치다가 넘어져 허리를 다쳤다. 이후 농사를 이전처럼 크게 짓지 못하고 복분자를 재배한다. “한마지기 조금 못 되게 심어놨는데 (복분자를) 120킬로 팔아서 한 150만원은 벌어. (농사를) 혼자서 한께 많이는 못해.”

이 권사는 밤마다 꿈자리가 사나워 교회에 나왔다. 무속인이던 시어머니가 20여년 전 세상을 뜬 뒤 눈만 감으면 젊은 머슴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악몽에 시달렸다. 이 권사는 “전에는 한번 잠을 자려면 잠자리를 여러 번 바꿔야 했는데 교회 나오고 나서 신간(몸)이 편안하다”며 “복분자, 고추 따느라 바쁠 때만 빼고 주일예배에 꼬박꼬박 나온다”고 말했다.

이 권사를 비롯해 매일 새벽부터 밭에서 고된 일을 하는 성도들은 기도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최 목사는 “오랜 세월 자식들 뒷바라지하시느라 치열하게 살아오셨고 여전히 일하시느라 바쁜 분들이 많아 짬을 내기 부담스러워하신다”며 “어르신들이 여생을 예수님만 바라보고 주님께 의지하실 수 있도록 기도한다”고 했다.

빈자리 느는 산골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에 소속된 두월교회는 1984년 10월 세워졌다. 고 현흥대 집사가 교회 부지를 헌납했고 몇몇 성도가 직접 큰 돌을 날라 기초 공사를 했다. 앞서 이 마을에 복음이 처음 전해진 때는 78년 4월이다. 방에 모여 예배를 드리던 사교·방성동 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복음이 퍼져나갔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지는 못했다. 이 지역에 신라시대부터 뿌리를 내린 사찰이 있고 해마다 당산제를 지내며 무속신앙을 받드는 주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10명 안팎의 성도들이 근근이 교회 명맥을 유지해왔다.

최 목사는 2004년 10월 두월교회에 부임했다. 그가 부임하기 전 3개월간 목회자가 없어 성도들이 전기세 등을 내며 교회를 관리했다. 척박한 환경이라 선뜻 이 교회에서 목회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부임하기 전 목회자들은 길어야 5년 정도 이 교회에 머물렀다.

최 목사가 부임했을 때 어르신 6명과 주일학교 어린이 3∼4명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는 어르신을 위해 매년 3∼4차례 잔치를 열어 예배를 드리며 식사를 대접했다. 식용유나 설탕 등의 선물도 챙겨드렸다. 또 다른 교회 등의 지원을 받아 국악공연을 보여드렸고 어르신들이 의료, 이·미용, 목욕 봉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농한기에 한글학교도 운영했었다. 최 목사는 “겨울에 마을회관에서 주로 화투를 치며 시간을 보내시는 게 안타까워 다양한 활동을 하실 수 있도록 노력했다”며 “여러 행사에 참여하면서 어르신들이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택견 교육, 피아노 레슨, 도자기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교회는 2011년 청장년 이상 30여명이 출석할 정도로 ‘부흥’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성도 수는 감소했다. 청소년들은 고교 및 대학 진학을 하면서 마을을 떠났고 교회의 젊은 일꾼들도 도시로 이사했다. 가장 어린 크리스천인 초등학생 2명도 곧 오산으로 전학을 간다고 한다.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던 김광익(27·여) 성도는 오는 10월 결혼해 군산에 신혼집을 차린다.

최 목사는 “지난 9년간 목회를 돌아보면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것 같고 부족한 일들만 자꾸 떠오른다”며 “빈자리가 늘어나는 교회지만 우리 교회를 떠난 성도들이 도시 교회에 가서도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는 소식을 들으면 힘이 생긴다”고 했다.

현재 성도 20여명이 섬기는 두월교회는 몇몇 교회의 지원을 받고 있으나 재정난이 심각하다. 성경말씀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영상을 편집하는 데 쓰던 컴퓨터는 고장이 났고 중고로 산 프로젝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교회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최 목사는 고구마, 콩 등을 재배하고 자신의 지도교수였던 전주대 신학대학원 현경식 교수의 배려로 전주대에서 성경 강의를 한다.

최 목사는 전남 순천의 시골교회를 섬기는 부모의 영향으로 목회자가 되기를 꿈꿨다. 그의 부모는 1남5녀 중 첫째인 최 목사가 어릴 때부터 목회자가 되기를 기도했다. 최 목사는 개혁신학대학원, 전주대 신학대학원을 나와 98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사역하다 두월교회에 부임했다. 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 교회에 부임했지만 3남매 중 둘째 요셉(17)군을 돌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발달장애 1급인 요셉군이 때묻지 않은 청정 지역에서 밝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교회의 표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다. 늘 예수님만 바라보며 어떻게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지 고민하자는 뜻에서다. 최 목사는 “시골에 사람이 별로 없더라도 주님을 모르는 영혼들을 위해 꼭 교회가 있어야 한다”며 “이 교회에 다닌 어린이 대부분은 자라서 도시로 떠났지만 이곳에 교회가 없었다면 그들이 신앙의 근간을 다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목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간까지 이곳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며 살 것이라고 했다. “영원한 안식처이자 유일한 소망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주민들이 알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겨자씨만한 이 산골교회를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소망합니다.”

정읍=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두월교회 가는 길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50분쯤 걸린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천안JC까지 가서 천안논산 고속도로 논산 방면으로 갈아탄다. 논산JC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태인IC로 나와 고속도로 삼거리에서 태인·강진면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태인사거리에서 칠보·강진면 방면으로 좌회전한 뒤 피향정사거리에서 칠보·강진면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매당교차로에서 칠보·강진면 방면 30번 국도를 타고 가다 산내사거리에서 좌회전해 715번 지방도로로 진입, 4㎞를 가다가 좌측 도로로 들어가면 교회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