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자가 빠지는 함정, 허영
한 번은 원로 수도사 푀멘이 “두 가지를 극복할 수 있는 수도사는 세상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듣던 형제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육체적 안일과 허영심이라고 했다. 원로들에 따르면 오랫동안 부지런히 금식하며 기도와 덕을 닦아온 수도사들은 어느 정도 인정받고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성장했을 때 다들 겪는 한 가지 시험이 있다고 했다. 허영이었다. 허영이란 자신이 이룬 일과 영적 능력으로 인해 인간적인 영광과 칭찬을 구하는 것이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허영심은 왜 위험한가
존 카시안에 따르면 허영에 빠진 수도사는 남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옷, 걸음걸이, 목소리, 태도로 폼을 잡고 또 노동, 철야, 금식, 기도, 독서 등 모든 외적인 일에 열심을 낸다. 내적으로는 침묵, 복종, 겸손, 인내 등의 덕을 나타내 보이려고 노력한다. 카시안은 허영은 잘못된 이유로 옳은 일을 하게 만드는 악이라고 한다. 허영에 빠진 자는 자신이 갖지 못한 덕을 소유한 체하며 자신의 허물을 감추려 한다. 더 나아가 이 정도 훈련을 했으면 나도 제자들을 지도하는 영적 아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로부터 받는 명성을 추구하기에 자기 앞에서 울부짖는 마귀들, 기도로 치유 받은 여성들, 축복을 구하는 군중, 그리고 자신을 사제로 임명하려고 찾아오는 감독과 성도들을 상상하기도 한다.
사막 원로들은 왜 허영이 위험하다고 보았는가? 첫째, 허영심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즉 현재 자신의 수준을 실재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자기기만에 빠지는 것이다.
공주수도원에서 살던 어느 수도사가 사막의 은둔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수도원에 있을 때는 매주 5일 내내 금식하고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았는데 사막에서는 오후 3시 식사 시간까지 굶주림을 참지 못해 날마다 힘들어했다. 이를 의아히 여기던 수도사는 원로 마카리우스에게 질문했다. 그는 “왜냐하면 여기서는 아무도 당신의 금식을 보지 않고 당신을 칭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기 수도원에서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허영의 음식으로 살찌었기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허영을 먹고 나면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보는 눈이 감겨진다.
둘째, 사람의 칭찬으로 마음이 부풀어질 때 교만해지기 때문이다. 원로 제임스는 누구로부터 칭찬을 받는다면 자기의 죄를 생각하며 그러한 칭찬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교훈했다. 그러나 허영심에 정복된 영혼은 칭찬을 기다리고 그대로 받기를 즐긴다. 또 여기서 끝나지 않고 마음속으로 형제를 판단하며 ‘나는 저 사람보다 더 건전하고 엄격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로 오르는 이 정도에 이르면 지금까지 노력해서 얻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경고했다.
셋째, 사람의 영광을 얻지 못할 때 해로운 우울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허영심은 사람들이 나를 몰라준다고 한탄하며 세상을 비관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과 똑같아져라
그럼 어떻게 하면 헛된 영광을 멀리할 수 있을까? 첫째, 자신의 명성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원로들은 제자들에게 자기를 높이려는 동기가 없는지 주의 깊게 자아를 성찰하라고 요구했다.
어느 수도사가 원로 모티우스에게 물었다. “만일 제가 다른 곳에 가서 산다면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어디서 살든지 어떤 일로 유명해지려고 하지 마세요. 공허한 명성을 만들어내려고 남다르게 튀어 보이는 일을 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활하세요. 그러면 평화로울 것입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여기는 것이 겸손입니다.”
둘째, 원로들은 다음의 말씀을 늘 기억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6) 수도사들은 누가 자신을 칭찬하는 말을 할 때 그것을 자기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수처럼 여겼다.
키 작은 존이라 불린 원로는 한 방문객이 찾아와 자신의 영웅적인 금욕 수행을 칭찬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끈을 꼬고만 있었다. 칭찬이 세 번째에 이르자 “당신은 이곳에 오신 후로 나를 하나님에게서 몰아내고 있습니다”라고 응답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목회자들의 명성이 알려지는 것을 피하지 않고 자랑으로 여긴다. 혹시 허영의 위험마저 모르는 것은 아닌가. 우리 주님은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는데 관심이 없으셨다. “자기를 비워”(빌 2:7)라는 말씀을 영어성경 흠정역은 주님께서 명성을 만들지 않았다로 번역했다. 주님의 눈에 명성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헛된 명성을 거부한 채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치욕을 감당하신 주님, 그 비우심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허영의 악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길임을 기억하자.
김진하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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