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교육(2) 적기 효도 교육
딤전5:4
지난 주 월요일 신 장로님께서 상의할 것이 있다고 해서 교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음식점으로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유 집사님 내외가 음식점에 들어 왔습니다. 딸과 사위가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부모님 식사 대접을 하려고 일부러 날을 잡아 온 것 같았습니다.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신장로님이 계산을 하려고 하니까 “계산을 미리했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대접하러 온 딸이 부모님이 섬기는 교회 목사님이라고 미리 계산을 한 것 같았습니다. 사소한 일 같지만 아마 어릴 때부터 부모님들께서 딸을 신앙으로 잘 교육한 것 같습니다. 아무나 다 그렇게 어른을 대접하는 것은 아닙니다. 차를 타고 오면서 우리 아이들은 결혼하여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잘 가르쳐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다 그렇지만 어느 날 갑자가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순종하고 효도하는 습관이 생기지 않습니다. 어릴 때 순종하지 않고 효도하지 않는 아이들은 결혼해서도 대부분 불효하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됩니다.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전통 중에서 최고의 가치는 효(孝)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국 시대 때에도 인간의 도리인 효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 정의를 실현해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라의 화랑도의 정신적 기저인 '세속 5계' 중 첫째 항목은 사군이충(事君以忠)이고 둘째 항목은 사친이효(事親以孝)입니다. '충'과 함께 '효'를 나라의 중심적 가치로 삼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때는 국교가 불교였지만 역시 효를 강조하였습니다. 석가모니도 효를 강조하면서 "몸을 세워 올바른 길을 걸어서 그 이름을 후세까지 남김으로써 부모의 이름을 높이는 것은 효의 마지막 되는 큰 효도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은혜를 자은(慈恩)이라고, 어머니 은혜를 비은(悲恩)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비롯되어 아버지의 은혜에서 '자(慈)'를 어머니의 은혜에서 '비(悲)'를 따서 '자비(慈悲)'라는 불교의 기본사상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채택하여 효를 실천적인 행동규범으로 체계화시켰습니다. 전국의 효자, 효부, 효녀 등을 뽑아 표창하고 향약제도의 실현을 통해 효도사상을 선양하였습니다. 유교는 중심 사상을 인(仁)에 두고, 윤리적 근본사상은 효에 두었습니다.
효는 백행의 근본이고 불효한 죄의 양은 3천가지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라 하였습니다. 110명의 효행담을 집대성한 “효자도(孝子圖)”를 만들어 자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와 부모가 인도하는 가족을 욕되게 하지 않고, 부모에게 좋은 음식과 의복, 따뜻한 방을 제공해 드려 편안히 모시는 것을 당연히 여겼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도 효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부모도 모르는 종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효도를 아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통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장수하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부모 공경에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물론 효도라는 단어는 개혁개정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딱 오늘 본 본문에 효라는 말로 한 번 나옵니다. 물론 표준 새번역을 보면 효도라는 단어로 번역된 내용이 창47:29절에서 야곱이 요셉을 불러 축복할 때 "네가 이 아버지에게 효도를 할 생각이 있으면,” 자신의 시신을 이집트에 묻지 말라고 당부할 때 나옵니다. 그리고 말라기에서 “사람이 효도하는 자식을 아끼듯이, 내가 그들을 아끼겠다.(말3:17)”라고 번역했습니다. 효도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성경이 효도를 강조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서에 보면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라고 할 정도로 효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효도 교육이 자녀 교육의 근간이고 효도하는 자녀는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녀들에게 효도 교육을 시키는 부모가 되어 하나님이 약속한 복은 누리는 성도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1. 그러면 어느 때부터 효도 교육을 시켜야 할까요?
오늘 성경 4절을 보십시오. 자녀와 손자에게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 그렇게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교회에서 홀로된 과부를 부양했습니다.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 죽든지, 질병과 사고로 죽으면 당시 대부분의 과부들은 살길이 없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직업이나 복지 제도가 잘 구비되지 못할 당시, 교회에서 약자를 위한 복지 제도를 실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도와 줄 필요가 없는 과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과부를 세 종류로 나누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세요. 참 과부는 남편을 잃고 홀로 되어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몸씨 외로운 처지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서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 10절을 보세요. 교회에서 제도적으로 도와야 할 자격을 말씀합니다. 60세 이상 되고 참 신자들을 도우라고 합니다.
둘째 부류는 주님께 헌신하지 않은 불경건한 자들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나이가 젊고 품행이 바르지 못한 홀로된 여인입니다. 그들 중에서는 결혼을 원하는 자가 있으면 재혼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6,11-15)
셋째 부류의 사람은 교회가 돕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4절,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이들은 자녀와 자손이 있는 경우입니다. 이들은 가정 내에서 먼저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4). 일가친척이 있으면 그들이 도와주어야 합니다(16)
이 때 자식과 손자들에게 효를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효를 행하라는 말은 “유세베인”이라는 말로 “경외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효도하되 공경과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배우게 하라는 것입니다. “배우게 하라”는 말은 “만다네토산”이라는 말로 구체적으로 그들이 배워서 행해야 할 일을 지시하는 말씀입니다. 효도는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어릴 때부터 배우게 하여야 합니다. 효도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식 교육, 기능 교육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효도 교육을 어릴 때부터 잘 교육시켜야 합니다. 순종하게 하는 것,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게 하는 것, 부모님의 구두를 닦게 하고 심부름을 하게 하는 것, 부모님에게 안마하게 하는 것, 신발장을 가지런히 정리정돈하게 하는 것, 신문을 제자리에 정리해 놓게 하는 것, 형제끼리 의좋게 지내게 하는 것, 물건을 아껴 쓰게 하는 것, 어른을 보면 인사하게 하는 것, 부모일 거들게 하는 것, 부모에게 존댓말 쓰게 하는 것, 버스에서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하는 것, 양로원이나 무의탁 노인을 방문하게 하는 것 등 이런 교육은 어느 날 되는 것이 아니라 유아기 때부터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면 효도 교육을 양보하지 말고 적기에 잘 시켜야 합니다. 효도 교육도 때가 있습니다. 요즈음은 효도 교육도 크게는 인성교육 속에 포함시켜 인성교육이라는 말로 사용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기르는 교육입니다. 인성이란 사람의 본성, 사람의 성품으로 인성교육이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과 태도 및 품성을 배양하는 교육을 말합니다.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으로 마음의 바탕인 지, 정, 의를 조화롭게 발달시키는 심성 교육과 개인적인 자아실현을 위한 가치교육, 그리고 사회적인 도덕적 삶을 추구하기 위한 도덕교육 등을 총칭해서 인성교육이라고 합니다. 이런 인성 교육은 지식교육이나 기능 교육보다 앞서야 합니다. 요즈음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인성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달았을 것입니다. 세월호의 선장은 가장먼저 탈출하여 병원으로 옮겨졌고 언론사 기자가 찾아갔을 때 그는 바닷물에 젖어버린 만원권 지폐를 말리고 있었답니다. 아이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내팽개치고 자기들만 살기위해 선장과 선원들이 먼저 나왔습니다. 어쩌면 인성교육을 무시한 경쟁주의, 학벌주의 교육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인성 교육이 안 되면 결정적인 순간에 지식과 기능은 선하게 쓰임 받지 못합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80대 할머니가 자식을 상대로 재판하는 이야기가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젊어서 남편을 먼저 보내고 아들 하나를 어렵게 공부시켜 서울대에 보냈답니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결혼할 때 큰돈을 지원했답니다. 그런데 아들이 사업을 하면서 어렵다 해서 전 재산 10억 원을 아들에게 줬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아들은 태도를 바꾸었답니다. 자신을 찾아오지도 않고 생활비도 보내주지 않아 하도 억울해 이젠 아들을 상대로 재산을 다시 달라는 소송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인성이 문제입니다. 인성 교육은 꼭 필요한 시기가 있습니다.
유아기는 인성 교육의 최적기라고 합니다. 이 시기에 형성된 인성은 전 생애에 걸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6세까지 신생아기 영아기 유아기가 인간의 발달단계 중 지적·정서적·신체적인 모든 분야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학설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근래의 교육학, 심리학, 생물학 등의 연구결과 인간의 기본적 행동은 유아기에 대부분 형성되어 일생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확인되고 입증되었습니다. 옛 동독이 소수 인구로 스포츠 강국으로 등장하고, 이스라엘이 수백 배의 아랍인을 상대로 싸워 이기는 것도 유아교육을 통하여 이룩한 결과라고 보고 있습니다. 프로이드(Freud, S.)는 인성의 바탕이 되는 성격은 3세 전에 대부분 형성된다고 말합니다. 인성은 유아기에 집중적으로 발달합니다. 유아기는 뇌 발달 단계 중 전두엽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로, 사고력, 창의력, 판단력, 주의집중력, 감정을 조절능력을 키워가는 때 입니다. 또 인간성, 도덕성 등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기능이 발달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학업보다 인성 교육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높은 지식과 기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운용하는 인성이 좋아야 합니다. 똑같은 칼이라도 의사에게 잡히면 사람을 살리지만 강도에게 잡히면 사람을 죽입니다. 인성교육도 결정적 시기인 유아기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뇌 발달 연구학자들에 따르면 인성을 담당하는 뇌는 대뇌피질의 전두엽입니다. 전두엽은 사람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즉 문제해결을 위한 사고력과 창의성, 자기성찰능력인 인성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뇌 발달 전문가들은 만 3~6세 전후까지가 전두엽 발달이 가장 활성화되는 시기이므로, 이 시기에 예절교육과 기본적인 인성교육이 이루어져야 성장한 후에도 예의 바르고 인성이 바른 아이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2.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오늘 성경에 보십시오. 자녀와 손자에게 효를 행하여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답하는 교육을 시키라는 것입니다. “보답하기”란 마땅히 갚아야 할 것을 되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보답하다”는 말의 헬라어 “아포디도나이”는 문법적으로 현재, 능동태, 부정사로서 되돌려 주는 행위가 일회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하는 일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자식이 부모에게 의무를 다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많이 있지만 효도 교육의 내용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지속적으로 순종의 효 교육을 시키는 것 입니다.
어릴 때부터 철저히 순종을 통한 효도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1)”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골 3:20)”
오늘날처럼 권위가 서리 맞은 세상에서는 순종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취급받습니다. 순종을 강요하는 것은 창의성과 자율성, 개성을 잠들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순종입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순종교육부터 먼저 시켜야 합니다. 효도 교육의 기본은 순종입니다.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시켜야 합니다. 순종은 가정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녀의 미래를 사라"의 저자 존 S. C. 애보트는 "아이를 양육하는데 있어서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 가장 우선돼야 할 과제이다. 아이에게 끝까지 강요할 생각이 없는데 시키는 것은 아이에게 불순종하는 법을 가르치는 지름길이다. 다스림의 원리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부모의 모든 명령에 아이들이 순종하도록 하고 절대 부모의 말을 무시하지 못하게 원칙을 세우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말하기를 아이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당신의 말이 곧 법'이라는 사실이 불변의 원리가 되게 하라고 말합니다. 아이의 자율성 앞에 부모에게 향한 하나님의 명령을 접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잘 못된 명령에 순종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앞에 순종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하면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순종교육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진정한 복을 잃었습니다. 순종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생명의 본질입니다. 심장이 뇌의 지시에 순종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허파가 뇌의 지시에 순종하지 않으면 호흡이 멈춥니다. 롯의 처는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천사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창 19:26).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의 명하지 않는 다른 불로 제사하다가 망한 것입니다(레10:1-2), 노아 홍수 때 구원받지 못하고 심판 받는 자들은 다 순종치 않는 자들입니다(벧전3:20).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거꾸러진 것도 불순종 때문입니다(민14:26-39). 사울 왕이 버림받은 것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삼상 15:2-3, 18-19). 신앙인에게 있어 순종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가져오게 하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청명한 하늘에 거대한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노아(창 6:22)나,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한 아브라함(창 22:1 이하)이나, 이성과 상식에 맞지 않는 아버지의 지시에 묵묵히 순종하는 이삭 등은 순종을 통해 축복을 누린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순종의 질은 축복의 질이 됩니다. 순종의 크기가 믿음의 크기입니다. 순종은 자신의 의지에 합하는 것을 따르는 동의와는 다른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에 반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따르는 것이 순종입니다.
지난 주 오랜만에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동생이 집에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딸 셋을 잘 양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보다 많이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교회 생활도 저보다 오래하지 않았습니다. 교육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자녀교육에 대한 책을 많이 본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딸 셋을 철저히 순종하는 딸로 양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를 가지 않으면 회초리를 때려서라도 교회에 보내었다고 합니다. 대학생이 된 딸이지만 지금도 순종에는 양보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식사를 하고 나면 어릴 때부터 설거지를 시키고 상을 치우게 하였다고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어릴 때부터 습관화되어 어느 때 우리 집에 오면 아이들이 자신들이 먹은 밥그릇과 수저 등을 설거지통에 가져다 놓는 것을 보았습니다. 외국에 나가 생활하면서 특별한 교육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열심히 나가 신앙 생활하게 하고 부모에게 철저히 어릴 때부터 존댓말을 쓰며 순종하게 하는 교육을 시켰는데 두 딸이 연세대학에 들어와 학교를 다니고 막내는 미국으로 학교를 가려고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순종 교육 때가 늦으면 잘 되지 않습니다. 적기에 순종 교육을 통해 평생 효도하는 자녀를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는 지속적으로 보은의 효도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보은은 은혜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게 교육을 시키라고 말씀합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생명의 통로입니다. 길러 주고, 입혀주고 평생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가시고기와 우렁이와 같이 사십니다. 가시고기는 산란기에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면 수놈은 알이 부화될 때까지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고 침입자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때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작은 물고기랍니다. 가족을 위해 수고하다 조용히 한 세상을 마감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렁이는 제 몸에다 알을 낳는데 새끼들은 어미의 살을 파먹으면서 성장한다고 합니다. 한 점의 살도 남김없이 새끼들에게 먹이로 주고 빈껍데기가 되어 조용히 물에 떠내려간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그런데 자식은 부모에게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부모는 먹지 않고 자식을 주고, 자식은 먹고 남아야 부모를 준다" 속담이 있는데 요즈음은 먹고 남아도 안줍니다.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려도 열 자식은 한 부모 못 거느린다"는 속담처럼 부모 모시기를 꺼려합니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싸가지 없는 아이로 만들면 안 됩니다.
얼마 전 모 목사님이 저희 교회에 와서 서로 중매할 만한 청년들 없느냐고 물어 보며 중매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때 그 목사님이 그러는 것입니다. “싸가지 없는 얘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싸가지 없는 얘들은 자신은 중매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의 미래가 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철저히 부모를 부모처럼 대접하게 하는 예절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혼자 좋은 음식 다 먹도록 방치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인사만 잘 하게 해도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환영받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어른을 대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잘 시켜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아버지 자리에 절대 아들이 앉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맛있는 것은 아이들이 먹을 날이 더 많습니다. 어머니들이 너무 맛있는 것을 아이들에게만 챙겨 주지 말아야 합니다. 자가만 아는 버릇 나쁜 아이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을 더 잘 챙겨 주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이들보다 먹을 날이 많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보은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말씀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이 만든 부자들1.2(이채윤 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부모에게 효도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미국의 기본을 세운 믿음의 사람 벤저민 프랭클린, 신실한 신앙으로 백화점 신화를 만든 사람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 후반전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큰 부자가 된 데이비슨 록펠러, 믿음으로 성직자와 같은 비즈니스맨으로 산 존 템플턴 등 여러 사람들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부의 복음을 실천한 사람 앤드류 카네기가 나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가 아버지는 책상 보자기를 파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공장에 나가서 16시간이나 일을 해야만 했답니다. 아들 카네기도 공장에서 일을 하고 들어오면 저녁까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어머니는 한 벌 밖에 없는 아들의 옷을 빨아서는 밤새도록 그것을 말려서 다음날에 입혀서 보내곤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아들 카네기는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릴까 노력했고 자신을 개발하여 참으로 거부가 되었고 훌륭한 인격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머니를 기쁘시게 하기까지는 결혼도 하지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미국 최고의 재벌 중의 하나가 되었고 또한 미국 최고의 사회사업가가 되었습니다. 방직공장직공, 전신국 하급직원, 전신기사 등을 거치며 갖은 고생을 하였지만 그는 세계의 강철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부의 사회 환원"이 기업가의 궁극적 목표가 돼야 한다며 "카네기재단"을 설립하여, 정부의 힘으로도 할 수 없는 공공 복지사업을 펼쳐 나갔습니다. 45억 달러를 드려 3천개의 도서관을 설립했고, 8천대의 오르간을 기증했습니다. 성경을 근거로 하여 "부의 복음"과 "인간관계론"라는 책을 써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렇게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입니다. 나를 낳아 주신데 대하여 감사하고, 나를 길러 주신데 대하여 고맙게 생각하고, 나의 부모님에 대해 만족하며, 부모님을 존경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셋째는 지속적으로 봉양의 효도를 교육시켜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보답하는 것은 어머니가 늙어 홀로 되었을 때 끝까지 책임을 지고 돌보아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늙어 가는 부모가 힘이 없고 병들었다고 방치하면 안됩니다. 성경은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모든 백성은 아멘할지니라." (신27:16)라고 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평생 동안 봉양하도록 하는데, 이는 자신의 경제적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을 해서라도 늘 봉양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육적.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필요로 할 때면 기꺼이 도와드리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경제적인 면을 충족시켜 드리기 위해 용돈을 드리는 것입니다. 육적으로 보살피기 위해 함께 살거나 가까이 살든지 늘 안부를 묻는 것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순종이 최고의 효도라고 하면 결혼한 후에는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봉양하는 것이 최고의 효도입니다. 제가 결혼 주례를 설 때 결혼 예비학교 교육으로 5주 교육을 시킵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자격증을 줍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결혼과 가정생활에 대하여는 많은 사람이 배우지 않고 아버지 어머니 노릇을 하다 보니 시행착오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1년 부부 교육 과정이 있지만 속성반으로 결혼 전에 중요한 것을 뽑아 5주 동안 교육을 시킵니다.
신랑 신부가 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잘 사는 비결을 말씀하면서 장수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수고하여 돈을 벌면 10분은 1은 하나님께 드리고 10분의 1은 부모님께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지금까지 부모가 베풀어준 경제적 혜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결혼식 전에 부모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입금되게 만들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게 가지고 오게 해서 결혼식 때 순서에 넣어 감사편지와 함께 부모님께 선물하도록 합니다. 대부분 청년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질 있는 곳에 마음도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의 우선순위를 바르게 하면 결국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적든 많든 만족함과 풍족한 삶을 평생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한 아이들이 돈을 준다고 부모님이 그것으로 사탕을 사먹겠습니까? 아닙니다. 다 그것 손자 손녀들에게 가는 것이고 결국 있는 재산 대부분 거의 다 자식들에게 주고 가는 것입니다. 부모 봉양하는 자식 망하지 않습니다.
신문에 보니까 분당 사는 사람인데 87세 된 아버지가 공시지가 40억원 상당의 건물을 소유하고 매달 들어오는 월세만 1000여만 원에 달하자 큰 아들 내외와 작은 아들 내외가 서로 아버지를 차지하려고 납치극을 벌여 법정싸움을 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버지를 7시간이나 차에 가두어 놓고 서로 차지하려고 하여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7시간 동안 차에 갇혀 있어야 했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봉양하는 효도 교육을 잘 못시킨 것입니다. 욕심 많은 아이들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자신만 아는 탐욕의 아이들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아무도 돌보는 이 없어 홀로 돌아가시는 고독사가 한 해 1천여 건 된다고 합니다.
3. 효도한 결과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자식이 잘 못되는 것이 아닙니다. 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단지 인간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 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시겠습니까? 복을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출20:12절 말씀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했고, 엡6:2-3절 말씀에서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했습니다. 잘되고 장수하는 비결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 질서의 기초가 되는 효도는 축복과 저주의 기준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불효하는 자식들의 결과에 대하여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잠 30:17)”라고 말씀합니다.
신명기 21장 18~21절에서는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고 무섭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5절에서는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효도하고 자식들에게 효도 교육 잘 시키면 우리도 자식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요한웨슬리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신앙적으로 쓰러져가던 영국에 부흥운동을 일으킨 목사님이었습니다. 부친 사무엘 웨슬레와 모친 수산나 사이에서 19명의 자녀 중 15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영국 국교회 목사로 38년간 섬기셨던 분으로 참으로 효심이 깊으신 분이었답니다. 살아계신 그의 어머니를 위해 늘 10파운드의 생활비를 보내드렸답니다.
어머니는 수산나였는데 어머니도 목사님의 딸로 24 자녀 중 막내딸이었습니다. 어머니도 효심이 많으신 분으로 철저하게 어릴 때부터 자녀를 효도하는 자녀로 양육하신 분입니다.
수잔나는 두 살 전에 순종을 가르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고 합니다. 두 살 전에 순종을 배우면 부모에게도, 선생에게도, 하나님에게도 순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산나의 자녀 교육 방법이 8가지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① 수산나는 자녀들을 가르칠 교과목을 정하고 자신이 친히 가르쳤는데 그녀의 교육방침의 제1조는 규율이었다고 합니다.
② 만 1살이 되면 회초리로 훈육하여 회초리를 무서워하게 하고 아이들의 고집을 꺾었답니다.
③ 아침에 일어날 때, 밤 잠자리에 들 때 주기도문을 외우게 하고 기도문, 교리문답, 성구들을 암송하게 했답니다.
④ 소리 내어 우는 것을 금지시키고 자기 고집을 못 부리게 하고 자제력을 어려서부터 길러주었답니다.
⑤ 자녀들이 5세가 되면 A,B,C 알파벳을 가르치고 그 다음 창세기를 가지고 철자법, 독서법을 익히도록 하였고 그 후에 초급산수, 문법, 역사, 지리를 순차적으로 가르쳤고 밀톤과 세익스피어 작품 같은 고전문학 작품을 소리내어 읽게 하였답니다.
⑥ 타인에게는 경어를 쓰게 하고 거짓말, 상스러운 말을 엄금시키고 장성한 자녀가 어린동생을 맡아 가르치게 하였답니다.
⑦ 수산나는 자녀들의 자질에 따라 교육을 시키고 그것이 계속 발전되도록 힘썼으며 특히 암송하도록 가르쳤답니다.
⑧ 수산나는 자녀들이 장성한 후에도 계속하여 자녀들을 지도하였고 일생동안 좋은 상담자가 되어주었답니다.
효도하는 자녀를 만들기 위해 조기부터 효도 교육을 시킨 수산나의 자녀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19명의 아이들을 낳은 동안 몸은 병약해졌답니다. 재정적인 능력이 없었답니다. 그러나 그가 가르친 자녀 중 9명이 근대 교회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가 나와 영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찰스 웨슬레가 나와 6000곡 찬송가 지어 지금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순종하게 하는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도와주는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부모님의 구두를 닦게 하고 심부름을 하게 하는 것은 효도 교육입니다. 부모님에게 안마하게 하는 것, 신발장을 가지런히 정리정돈하게 하는 것, 신문을 제자리에 정리해 놓게 하는 것, 형제끼리 의좋게 지내게 하는 것, 물건을 아껴 쓰게 하는 것, 어른을 보면 인사하게 하는 것, 부모일 거들게 하는 것, 부모에게 존댓말 쓰게 하는 것, 버스에서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하는 것, 양로원이나 무의탁 노인을 방문하게 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자녀를 혹사시키는 노동이 아니라 자녀를 잘 살게 하는 효도 교육입니다. 효도 교육은 때가 있습니다. 유아기 때부터 효도 교육을 철저히 시키는 것이 자녀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1)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엡 6:2)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3)”
열린교회/김필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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