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수도였던 중국 지린 성, 지안 현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
광개토대왕비(광개토호토왕비)
딱딱한 역사 이야기 같지만 우리의 자존감이 넘치는 역사이자 뿌리인 중국안의 한국 유적지를 찾아서
현재 지명은 압록강 북안(北岸)인 중국 지린 성[吉林省] 지안 현[輯安縣] 퉁거우 진[通溝鎭] 타이왕 향[太王鄕] 타이왕춘[太王村]이다. 주변에는 대형고분과 성터를 비롯한 많은 고구려 유적이 산재해 있다. “비는 커다란 각력응회암(角礫凝灰岩)으로 된 불규칙한 직4형의 기둥 모양으로 된 4면비로, 남에서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세워져 있다.
왕 중의 왕이었던 광개토왕비는 광개토대왕이 죽고 2년 뒤 장수왕 3년(414년)에 세워졌다.
우리 역사에서는 그 왕 중의 왕이 고구려의 제19대 광개토대왕이다. 공적만큼이나 그 생애를 적은 비석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비가 중국 땅 집안(集安)에 서 있는 ‘광개토대왕비’이다. 그 유젹이 있는 지역은 나무와 잔디로 잘 꾸며 놓았는데
예전의 모습은 어떠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18세에 왕의자리에 올라 39세 짧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왕의 이름은
담덕이었고 고국양왕의 아들이다. 완전한 묘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이를 줄여서 광개토태왕, 호태왕으로 부르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광개토대왕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광활한 영토를 개척한’(廣開土) ‘왕중의 왕’(太王)
광개토호태왕비(호태왕비)는 높이가 6.4미터의 자연석을 대충 다듬어 1,775자의 글자를 새겼는데
아들인 장수왕이 414년에 광개토대왕 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한다.
광개토대왕비는 청나라가 만주의 봉금을 해제한후 발견되었는데, 초천부 라는 농민이 팔기 위해 탁본 을 뜨면서
보다 선명하게 뜨기 위해 쇠똥을 발라 불로 이끼를 태우면서 비석에 금이간 모습인데
근래 표면을 반듯하게 하느라 석회를 바르기도 하였단다
고구려를 부정하고 중국의 소수 민족으로 깍아내린 중국의 역사정책
중국은 고구려 제28대왕 박람관’을 소개하는 안내문의 내용을 보면 고구려는 역대로 중국의 소수민족정권이었다’는 문구가 선명하니…. ‘2012년 6월28일 지안(集安) 고구려 민속문화연구 발전센터’ 명의로 된 안내판은 중국어와, 그 중국어를 번역한 ‘한글판’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14줄에 불과한 한글 안내문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흥미로운 점을 간파할 수 있다.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정리한 ‘고구려사 인식’이 함축돼있으니 말이다. 우선 ‘고구려=조기 중국 북방의 소수민족정권’이라는 인식은 동북공정이 낳은 핵심 인식이다. 뿐이 아니다. 안내문을 보면 ‘고구려 정권은 705년 동안 동북아 문명사의 눈부신 자태를 자랑했다’고 상찬했다. “기원 668년 당나라에서 일어난 국내전쟁으로 고구려 정권은 철저히 소멸됐다”고 했다. 그러니까 중국 동북의 소수 민족 정권인 고구려는 중앙의 당나라 정부와 내전을 벌였으며, 그 내전에서 패하는 바람에 ‘철저히’ 사라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안내문은 그것도 모자라 “고구려 정권의 발생이 필연적이지만, 그의 소망(消亡·소멸해서 멸망함)도 필연적이었다”고 못박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 변방의 소수민족정권인 고구려는 중앙정부(당나라)에게 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철저히 멸망해서 사라졌는데, 그 멸망 또한 필연적인 수순이라고 강조점을 찍은 것이다.(지안(중국)|이기환 사회에디터 http://leekihwan.khan.kr/)
유네스코에 등재되어있는 고구려역사 문화지역 태왕릉
태왕릉 호태왕비 위치가 그려진 비석
<고구려 왕조 순서>
마천왕-고국원왕-소수림왕-고국양왕-광개토대왕-장수왕-문자명왕-안장왕-안원왕-양원왕-평원왕-영양왕-영류왕-보장왕
지안고구려유적공원
광개토 대왕의 능과 비는 이곳에 있다.
광개토대왕릉으로 가는길
자그마한 언덕을 이루고 있는 이곳이 바로 광개토대왕의 묘로 알려진 곳이다. 광개토대왕님이 영토를 확장하게 된 계기중 하나가
바로 복수심 때문입니다. 광개토대왕(이하 태왕)의 조부였던 고국원왕때 후연의 공격을 받아 굴욕을 당하었고 백제와의 전쟁때
전사까지 하였는데 숙부셨던 소수림왕 때는 거란의 공격을 받았고, 고국양왕때도 이어졌다..그런 연유로 태왕은 즉위하자마자
거란, 후연, 동부여, 숙신 나라들을 완전히 제압했고 백제와 신라까지도 굴복을 시키게 되었다고한다..
광개토대왕릉이 잠들어 있는 상단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오고~
돌무더기들이 이리저리 방치되어 있어 눈쌀을 찌푸리게한다.
집안의 고구려유적지로 대왕의 숨결이 묻어 있어야할 곳은 현재론 공원같은 모습으로
한국사람들이 찾아와 역사탐방을 하고 있는데 입장권을 끊고 이렇게 바라보기가 암담한 심정이었다.
광개토대왕릉
광개토대왕의 업적 가운데 하나는 백제와 신라, 가야가 모두 고구려의 직접, 간접적인 지배하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비록 삼국이 완전 통일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 나라에 고구려 문화가 전파됨으로써 서로간의 문화적 일체감이 강화되고, 민족의식이 생겨난 것은 차후 삼국통일의 기반이 되었다고 하겠다. 고구려의 성을 쌓는 기법이나 토기제작 기법, 무덤의 형태, 건축술, 무기와 갑옷, 여러 제도 등이 두 나라에 전파되어 5세기 이후에는 삼국간의 문화적 차이가 많이 줄어들었다.
<고구려 왕조 계보>
1대 - 동명성왕(주몽) : B.C 37~19년
고구려의 시조. 성은 고 이름은 주몽이라. 동부여 금와 왕의 아들 대소의 모해를 피해 졸본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고구려' 라 칭했다
2대- 유리명왕 재위기간 : B.C 19년 ~ A.D 18년
이름은 유리. 22년에 도읍을 국내성으로 옮기고.33년에 양맥을 전멸시키고 한나라로 부터 고구려현을 빼앗았다.
3대 - 대무신왕 : A.D 18년~44년
이름은 무휼. 유리왕의 셋째 아들이며 동부여.개마국을 공격해 병합하고 낙랑군을 정벌하여 굳토를 이북까지 확대하였다
4대 - 민중왕 : A.D 44년~48년
이름은 해색주. 대무신왕의 아우로써 대무신왕이 죽은 후 나이어린 태자를 대신하여 즉위하였
5대 - 모본왕 : A.D 48년~53년
이름은 해우. 그는 성품이 사나우며 정사를 잘 돌보지 않아 백성들의 원망을 들었다.
6대 - 태조왕 : A.D 53년~146년
이름은 궁. 고구려가 실질적인 중앙 집권적 국가로 전환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7대 -차대왕 : A.D 146년~165년
이름은 수성. 자신의 왕위계승을 반대하는 고복장.태조왕의 태자의 막근을 죽이고 왕권을 지켰다.
8대 -신대왕 : A.D 165년~179년
이름은 백구. 좌.우보의 직제를 국상으로 바꾸고.172년에 중국 한나라 군대의 침입을 물리침.
9대 - 고국천왕 : A.D 179년~197년
이름은 남무. 을파소를 재상으로 등용하여 선정을 배풀었으며 빈민구제책인 진대법을 발효하였다.
10대 - 산산왕 : A.D 197년~227년
이름은 연우. 209년 도읍을 환도성으로 옮겼다
11대 - 동천왕 : A.D 227년~248년
이름은 우위거. 동황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신라와 화친하였다.
12대 - 중천왕 : A.D 248년~270년
이름은 연불. 259년에 위나라의 장수 위지해가 쳐들어왔들 때 양맥 계곡에서 크게 무찔렸다.
13대 - 사천왕 : A.D 270년~292년
이름은 약로. 280년에 순신군이 침입하자 아우 달고를 내보내 크게 물리쳤다
14대 - 봉상왕 : A.D 292년 ~300년
이름은 상부. 293년과 296년에 중국 연나라 모용외의 칩입을 막아내었으나. 그 후 사치와 방탕에 빠져 폐위되었다.
15대 - 미천왕 : A.D 300년~331년
이름은 우불. 현도군을 공격하고 낙랑군을 점령하며 고구려의 영토 확장에 큰 공을 세웠음.
16대 - 고국원왕 : A.D 331년~371년
이름은 사유.342년에 도읍을 환도성으로 옮겼다가 343년에 다시 평양의 동황성으로 옮겼다.
17대 - 소수림왕 : A.D 371년~384년
이름은 구부. 372년에 중국 전지에서 순도가 불상과 경문을 가져오자 이를 받아들여 최초의 불교를 수입하였다.
18대 - 고국양왕 : A.D 384년~391년
이름은 이련.요동과 백제를 정벌하여 고구려에 국토를 넓혔다.
19대 - 광개토대왕 : A.D 391년~413년
이름은 담덕.18세 왕위에 올라 불교를 신봉하였으며.남북으로 영토를 크게 넓혀 만주와 한강 이북을 차지하는 등 고구려의 전성시대를 이룩하였다.
20대 - 장수왕 : A.D 413년~491년 이름은 거련, 427년에 도읍을 평양으로 옮기고 남하 정책을 펼쳐 고구려의 판도를 넓혔다. 5부를 개설하고 고구려의 전성시기를 이끌었다 21대 - 문자명왕 : A.D 491년~519년 이름은 나운. 부여,백제,신라를 칭공하여 영토를 확장시켰다. 22대 - 안장왕 : A.D 519년~531년 이름은 흥안, 백제와 두 차례 싸웠으며 남쪽의 양나라와 우정을 맺었다.
23대 -안원왕 : A.D 531년~545년 이름은 보연. 남쪽의 양나라 북쪽의 동위와 수교하였다. 24대 - 양원왕 : A.D 545년~559년 이름은 평성. 돌궐의 침입을 막고 신라와 백제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겼다. 25대 - 평원왕 : A.D 559년~590년 이름은 양성. 중국의 진나라.북제.수나라 등과 수교하였으며 장안성(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26대 - 영양왕 : A.D 590년~618년 이름은 원.598년에 수나라 문제의 30만 대군을 격퇴하였으며.612년에는 수나라 양제가 침입하자 을지문덕을 앞세워 이를 무찔렀다. 27대 - 영류왕 : A.D 618년~642년 이름은 건무. 중국 당나라와 평화적인 관계를 맺어 수나라의 고구려 원정 때 잡혀간 포로를 찾아왔으며.도교를 처음으로 받아들였다 28대 - 보장왕 : A.D 642년~668년 이름은 장.보장 연개소문에 의하여 왕위에 오른 고구려의 마지막왕이다. 668년 나당 연합군의 침공으로 고구려는 망하고 왕은 중국 당나라로 압송되었다. 광개토태왕의 릉이 있는 맨 위의 부분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집안(지안)에 속한 마을의 전경이 보인다 광개토대왕이 묻혀있던 광개토대왕릉 고구려태왕, 광개토대왕의 무덤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고 내부는 덩그라니 볼만한 것이 없어 마음이 아려옴을 느끼게 된다. 시신이 놓어있었을법한 두개의 대리석만 보이고 아무런 설명이 없는데 누가 놓았는지 지폐만이 속절없이 쌓여있는듯~ 이 무덤이 강개토 대왕의 무덤이 맞다면 얼마나 안타가워하고 있을까! 광개토대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태왕릉 광개토대왕의 무덤은 집안시에 있는 태왕릉으로 알려져 있다. 동양의 피라미드로 알려진 장군총은 장수왕의 무덤이라고 보고 있다. 장군총은 높이 12.4미터, 바닥 한 변의 길이가 31.6미터지만, 태왕릉은 높이 30미터에 바닥 한 변의 길이가 65미터로 장군총에 비해 엄청나게 크다. 광개토대왕은 이 무덤이 산처럼 튼튼하게 만년의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보존되기를 바랐지만, 현지에 가 보면 원래의 모습에서 많이 파괴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지금도 그 웅장한 무덤의 규모는 여전하다 호태왕비(광개토대왕비) 호태왕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적힌 비문 서기 374년 고구려 왕실에서는 큰 경사가 났다. 소수림왕의 동생인 이연 부부가 아들을 낳은 것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담덕이라고 했다. 소수림왕에게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담덕은 왕실에서 더욱 소중한 아이였다. 담덕은 어려서부터 체격이 크고 남이 얕잡아볼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광개토대왕비가 비나 바람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투명창으로 된 가옥을 만들어 광개토대왕비를 전시하고 있다. 여행가볼만한곳/여행전문가/양지꽃이사/양지꽃의아름다운세상/유럽가족여행/빙하지역/여행지/ 여행지추천/유럽성지순례/크루즈성지순례/북유럽여행/항공예약/지중해여행/터키여행/그리스여행/로마여행/이탈리아여행/파리여행/프랑스여행/독일여행/좋은여행/기독교성지순례/카톨릭성지순례제주도여행/한국여행/배낭여행/신혼여행/아프리카여행/성지순례여행사/노르웨이피오르드/미국여행가족여행/가볼만한곳/배낭여행/국내여행/혼자여행/해외여행/국내겨울여행/여행지//1박2일 당일여행/일본여행/여행사/유럽여행/제주여행/인센티브여행사/지중해크루즈/교회성지순례/성지순례여행사 슬로우푸드 08김치 양지꽃이사 /중국여행/여행인솔자 양지꽃이사/양지꽃/유럽여행/유럽전문가/유럽전문리뷰/유럽호텔/중국전문가/여행전문가/여행리뷰작가/스위스/스위스여행사/융프라우/프랑스니스/전세계여행/싼타크루즈/크루즈나라/여행좋아하는사람/여행작가/여행자/독일여행/일본여행/좋은여행/이름다운여행/행복한여행/멋진여행/신혼여행/한국여행/블로거/세상엿보기/역사여행/박물관/자유여행/파워블로거/맛집블로거/양지꽃이사맛집/맛집/리뷰전문가/리뷰사진작가/리뷰어/파워리뷰어/여행블로거/전게계여행블로거/북한여행/중국여행/백두산/장백산/중국여행기/중국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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