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담초 활엽수.쌍떡잎식물.장미목. 콩과 .골담초속. 골담초.낙엽관목 골담초(骨擔草)는 뼈를 책임지는 풀이란 의미가 있으며 실제로 뿌리를 한약제로 쓰고 있다. 이름에 풀초 자가 붙어 있어서 초본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틀림없는 나무이다. 노랗게 피는 꽃을 따서 쌀가루에 섞어 시루떡을 쪄 먹기도 한다. 경북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을 오른 쪽으로 돌아 5분쯤 올라가면 고려 우왕 3년(1377)에 창건한 조사당(祖師堂)이란 국보 19호의 자그마한 목조건물이 있다. 건물의 처마 밑 철망 안에 별로 볼품없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신선 집 꽃이란 의미의 선비화(仙扉花)란 팻말이 붙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나무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중생을 위하여 집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 곳 조사당 처마 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아나고 잎이 피어 오늘에 이르렀다.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도 항상 푸르게 자라고 있다.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이 부석사를 찾아와 이 선비화를 바라보며 비선화시(飛仙花詩)란 시를 짓기도 하였다. 이 선비화의 이름은 골담초라 한다.> 라고 하여 이 나무의 의미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또 택리지에는 1730년경 이중환이 조사당 선비화를 보고 <지팡이가 싹이 터서 자란 나무는 햇빛과 달빛은 받을 수 있으나 비와 이슬에는 젖지 않는다. 지붕 밑에서 자라고 있으나 지붕은 뚫지 아니하고 높이는 한 길 남짓하지만 천년세월을 지나도 한결 같다. 광해군 때는 경상감사 정조(鄭造)가 절에 왔다가 이 나무를 보고 '옛 사람이 짚던 것이니 나도 지팡이를 만들고 싶다'고 하면서 톱으로 잘라 가지고 갔다. 그러나 나무는 곧 두 줄기가 다시 뻗어 나와 전처럼 자랐다. 다음 임금인 인조 때 정조는 역적으로 몰려 참형을 당하였다. 나무는 지금도 사시사철 푸르며 또 잎이 피거나 지는 일이 없어 스님들은 비선화수(飛仙花樹)라고 부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조가 나무를 잘라 지팡이를 만들었다가 화를 입었으며 사시 장청 푸르다하여 나무의 신성스러움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골담초가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중국 원산으로 가정에 흔히 심고 있는 낙엽활엽수 관목으로 높이2m정도 자라며 줄기가 옆으로 늘어지면서 포기를 만든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고 짝수 우상복엽으로 소엽은 4개로서 길이 1∼3cm이고 타원형이며 두껍고 표면에 윤기가 있다. 꽃은 5월에 피고 황적색으로 1개씩 달린다. 열매는 협과로서 8∼9월에 익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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