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소금의 역사 | ||||||
언제부터 소금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고구려 때 노예들이 생선과 소금을 상류층에 상납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자체에서 생산했을 가능성도 있고 고구려 북방변경이 중국과 맞닿아 있어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문헌상에는 고려 태조때 "도염원"을 설치하여 소금 전매제를 시행했고 국가 재정의 주요 원천 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염업은 정부의 과도한 통제로 인해 충분히 발달할 수 없었습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융통성 있는 염제의 실시로 염업이 어느 정도 활성화 되었으나, 말기에 들어 서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쇠퇴해 버렸습니다. 근래에 접어들어 천일염전을 조성하고 확대해 갔으나 생산은 관의 주도로 크게 발전할 수 없었고, 해방이후에도 소금 전매제는 그대로 시행되고 해방직후 심각한 소금부족현상이 발생하여, 그 해결을 위해 민간에게도 염전개발을 허용하였으나 현재까지 대한염업조합이 염업을 관장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
소금에서 유래된 지명 | ||||||
- 서울,염리동 : 지금은 없어졌지만 옛날 동막역 부근에 소금창고가 있어 소금장수들이 많이 살았다. 그 연유로 염리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서울,염창동 : 동 이름은 조선 말기, 서해안 염전으로부터 수집해 온 소금을 보관하기 위한 소금 보관 창고를 103번지 근방에 지었기 때문에 붙여졌다.염창으로 운반된 소금은 국가용, 군사용, 일반판매용으로 구분해 각각 저장되었다. | ||||||
외국에서 소금으로 유명한 지역 | ||||||
- 사해 : 아라비아 반도의 북서쪽에 있는 염호. 최장 길이 85 Km, 최장 폭 17Km 표면적 약 1,015 평방 Km 인 사해는 그 수면이 지중해보다 398m나 더 낮다. 즉 지구 표면 중에서 가장 움푹 들어간 곳이다. 구약에는 염해(Yam Hamelach = Salt Sea 창 14:3)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생물이 전혀 살지 않기 때문에 사해(死海) 라고 불리며 염도가 약 33%로서 세계적 으로 염분이 가장 많은 물이다. 보통 바닷물이 4-6 퍼센트의 염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해물은 그 5배나 되는 것이다. 사해가 많은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이유는 그 물이 흘러 나갈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요단강 등 주변에서 유황과 질산 성분의 물질들이 함유된 약 7백만 톤의 물이 매일 쏟아져 들어 오는데 빠져 나갈 구멍은 없고 요르단 계곡의 뜨거운 열기는 수분을 증발시킴으로써 여러 가지 화학물질 등 고체 성분만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 청해호 : 중국 시베이[西北] 지구 칭하이성(省) 동부에 있는 최대의 염호(鹽湖). 서녕 서쪽으로 3백 킬로미터 떨어진 해발 3천 1백 95미터의 중국 최대 담수호로 수면이 4천 6백 35킬로미터로 호수라기보다는 바다 같고, 수많은 물고기와 철새가 서식하고 있다. 청해호의 가장 큰 매력은 鳥島로 청해호에는 산란기가 되면 약 10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 든다고 한다. - 아랄해 :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에 있는 대염호(大鹽湖). 중앙 아시아 우즈베크와 카자흐 지방에 있는 큰 호수로 면적은 6만 6 000km²이고 가장 깊은 곳이 68m이다. 스텝과 반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강수량이 적은 반면 증발이 심하다. 시르다리아강 아무다리아강이 이 호수로 흘러들고 있으나 나가는 물길은 없다. 아랄해는 한때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내륙호였으며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에게 담수어장과 가축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지만 현재, 아랄해로 흘러들던 아무다랴강은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마구 끌어다 쓰는 바람에 지금은 완전히 말라버렸으며 민물유입이 줄어든 아랄해는 염분 농도가 급격히 높아져 한해 1억파운드나 잡히던 물고기 들이 모두 사라졌다. - 미국,유타주 : 북부에는 염호(鹽湖)로 알려진 그레이트솔트호가 있고, 그 서쪽에는 세계 최대 급의 염류(鹽類) 사막인 그레이트솔트레이크 사막이 있다. 염호에서 사막까지 일대는 예전에 보네빌이라고 하였던 거대한 호수였는데 건조기후 때문에 물이 말라 현재와 같이 되었다. - 중국의 신강 위그르 : 세계 4대 장수촌의 하나로 꼽히는 지역으로 타크라마간 사막의 북쪽 산록에 이어져 있는 천산남로는 2,000km의 암염의 소금길이 있다. 옛부터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의 하나였던 위그르에 이르는 천산남로의 연도에는 눈처럼 하얀 소금이암염이 되어 대지의 표면을 덮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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