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행복한 아침]

열려라 에바다 2011. 10. 18. 20:26

[행복한 아침]

어려서 유치원을 다녔다면 밭에 고구마를 심은 후 캐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많은 유치원들이 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어 이는 하나의 아름다운 전통이 됐다. 밭에 심을 수 있는 것은 고구마뿐이 아니지만 하나를 캐면 나머지가 주렁주렁 딸려 나오는 고구마를 아이들은 유독 좋아한다. 어느 유치원은 이 경험을 나누고 싶어 밭이 없는 이웃 유치원 아이들까지도 초대했는데 역시나 고구마를 캐며 크게 환호하고 즐거워했다고 한다.

다만 밭에서의 활동을 유심히 보면 어떤 아이들은 흙을 만지고 곤충을 관찰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지만 일부는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꽃삽을 들고 우아하게 서 있기만 할 뿐 더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흙을 만지는 일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거의 아파트에 사는 요즘 아이들이 텃밭이나 숲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또 다른 원장님은 유아들을 데리고 강원도 최전방의 유치원으로 견학을 갔다. 강원도 원장님은 도시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며 고구마를 구워 주었다. 그런데 뜨거운 고구마를 받아든 아이들의 행동에 극명한 차이가 나타났다. 강원도 유치원 아이들은 삼삼오오 앉아 호호 불며 맛있게 잘 먹는 반면 도시 유치원 아이들은 뜨거워서 못 먹겠다며 내려놓았다. 고구마만 제대로 못 먹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앉아 있지도 못했다. 이리저리 뛰는 아이들이 행여 다칠까봐 어른들이 제지해 보았지만 아이들은 못 들은 척 미친 듯 뛰며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의젓하게 도시 아이들을 바라보는 강원도 유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생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도시 원장님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우리 유치원에서는 예의 바르고 차분하던 아이들이 대체 왜 이러지?”

도시 아이들이 넓은 자연에서 마구 뛰었던 것을 탓할 일만은 아니다. 넓은 자연환경에서 자신의 몸을 느끼고 움직여보려는 자발적인 노력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이들은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 잘 디자인된 놀이터의 틀에 갇혀 자유롭게 움직여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유아들은 자연환경에서 마음대로 뛰어 봐야 자신의 몸을 느끼고 움직임을 느끼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움직임의 질적 수준이 높아지고, 느끼는 능력도 성장한다. 느끼는 능력이 성장해야 사고력도 자라고 자신감도 생긴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어려서 배고프기는 했지만 자연환경에서 마음대로 뛰논 경험이 있다. 그러나 현대의 유아들은 이런 기회와 공간이 없다. 어른들이 의도적으로 경험하게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로서는 자연을 접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대자연을 느껴보지 않은 아이가 어떻게 하나님께,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지와 생명에 대해 경외감을 느낄 수 있을까.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귀한 생명을 가진 다른 사람과 동물, 자연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인공적인 환경에서 인공적인 놀이만을 하는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는 점점 더 이기적이고 냉랭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원영<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