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성경에 있는 세 성막, 곧 예표의 성막과 실재의 성막과 완결된 성막은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단체적인 한 백성을 얻어 영원토록 하나님을 표현하고 대표하게 하는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를 계시한다.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존재는 이 예표의 성막과 실재의 성막과 완결된 성막의 빛 안에서 점검받아야 한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는 그분께서 단체적인 한 사람을 얻으셔서 그분께서 이 사람 안으로 건축되시고 이 사람은 그 분 안으로 건축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단체적인 사람은 그분의 영광으로 충만하여 그분의 형상을 표현하고 우주 안에서 그분의 통치권을 가지고 다스림으로써 그분을 대표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의도이다. 출애굽기 40장 34절에서 가리키듯이 하나님께서 예표적인 그분의 건축물을 얻으셨을 때마다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집을 가득 채웠고 하나님은 표현되시고 대표되셨다. 구약에 나오는 성막의 예표는 머리이신 개인적인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라는 단체적인 그리스도에 대한 충만하고 완전한 계시로서 교회생활을 위한 그리스도의 체험에 관한 세부항목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의 거처라는 점에서 성막과 성전은 하나이다. 신약에 나오는 실재의 성막은 육체 되신 그리스도 곧 개인적인 그리스도와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그리스도의 몸이다. 개인적인 그리스도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단체적인 그리스도인 교회로 확대되셨고, 이 교회는 성전이자 하나님의 집이자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신약의 믿는 이들로 구성된다. 그 분께서 육체가 되셨을 때 그분은 우리가 만질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고, 누릴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이 되셨다. 최종적으로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심으로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이 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도 위대한 일이지만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위대한 일이다. 성경 전체의 결론인 성막의 완결은 새 예루살렘이다. 새 예루살렘은 삼일하나님과 세 부분으로 된 사람들과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합병체로서 단체적이고 위대한 한 하나님- 사람이다. 계시록 21장에 따르면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막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막이며, 그분은 우리가 거할 수 있는 성전이다. 새 예루살렘은 성막과 성전의 완결이며, 하나님과 사람의 영원한 상호 거처이다. 이것이 성막의 완결이다.
Ⅱ. 시편 84편은 성막의 예표의 성취이신 그리스도를 누려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합병되어 성막의 실재와 완결이 되게 하는 것에 대한 비밀한 계시이다.
시편 84편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집을 향한 시편 기자의 사랑에 관한 것이다. 1절과 2절에서 하나님의 장막들, 하나님의 거처들은 지방 교회들을 의미한다.
놋 제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한다. 이 제단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제물들에 의해 부정적인 것들이 처리된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들을 제하셨고, 옛사람을 못 박으셨으며, 사탄을 멸하셨고, 세상을 심판하셨으며, 옛 창조와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끝내셨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우리의 향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도록 금 향단에 나아갈 자격을 준다. 금 향단은 하나님의 백성이 평강 가운데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장소이다. 이 향은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시는 승천 안에 계신 부활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그리스도의 죽음 전에는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는 휘장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은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을 찢으셨으며, 따라서 이제 더 이상 법궤와 금 향단 사이를 나누는 휘장이 없다. 그것들은 하나이다.
시편 84편 3절은 집과 보금자리에 대해 말한다. 집은 안식처인 반면, 보금자리는 피난처이다. 오늘 놋 제단은 우리의 피난처이다. 제비는 작고 약하여 폭우와 다른 많은 것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제비는 보금자리, 곧 피난처를 갖는다. 매일 우리는 두 단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십자가에 나아갈 때 그곳에서 피난처를 가지며, 그리스도께 나아갈 때 그곳에서 안식하며 집을 갖는다. 첫째 단에서 우리는 보금자리를 얻으며, 둘째 단에서는 하나님의 집에서 안식처를 얻는다.
시편 84편에는 네 방면이 있다. 첫째 방면은 하나님의 집에 대한 사모함이다(1절). 둘째 방면은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시편 기자의 갈망이다.(2절). 셋째로, 하나님의 집에 이르는 대로(大路)의 방면이 있다(5하절). 넷째 방면은 하나님의 집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을 해와 방패와 은혜와 영광으로 나누는 축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는 삼일 하나님을 우리의 해로, 우리를 보호하는 우리의 방패로. 우리의 누림을 위한 은혜로, 하나님의 나타남을 위한 영광으로 누린다.
시편 84편5절부터7절까지는 그 마음에 시온에 이르는 대로가 있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계시한다. 시온에 이르는 대로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상 교회 생활 안에 있고자 하는 우리의 의도가 우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대로이다. 시온에 이르는 대로는 복된 대로로서(씻는 물두멍과 진설상과 등대와 증거궤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성취하신 육체 되신 삼일 하나님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영적인 체험을 통해 우리는 한편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있음을 배웠다.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완성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을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대로에 있다.
육체 되신 하나님에 관련된 두 가지 주요 성취가 있다.
첫째 단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희생 제물들을 드리는 놋 제단이다.
둘째 단은 구속된 죄인들이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기 위한 금 향단이다. 우리가 승천 하신 그리스도를 체험 할 때, 우리는 안식처를 얻었고 집에 있다고 느낀다.
시편 84편 6절은 눈물 골짜기에 대해 말한다. 교회 생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지만, 다른 한 편으로 사탄에게서 많은 반대를 받는다. 사탄은 많은 성도들을 박해한다. 사탄이 야기한 어려움과 박해는 우리의 대로를 눈물 골짜기로 만들 수 있다. 우리가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 하나님은 이 골짜기를 샘이 되게 하신다(시 84:6).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이르는 대로를 취한다면, 어려움과 박해가 우리에게 임할 것이며, 그러한 것들은 우리가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샘으로 바꾸실 것이다. 오직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만이 샘을 가질 것이다.
시편 84편 8절, 9절, 11절, 12절은 시편 기자의 기도이다. 이 구절에서 ‘방패’는 다윗 왕을 가리키며, 기름 부으신 자 또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다윗 왕을 가리킨다. 예표론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이다. 시편 84편은 예표 적으로 교회 생활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리고 우리가 교회생활을 얼마나 귀히 여겨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누리며,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을 누린다. 우리 모두는 교회에 이르는 대로를 취해야 하며, 또한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다윗, 우리의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 우리의 해와 방패와 은혜와 영광이신 우리의 그리스도를 누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