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역경의 열매] 김승일 <6> 어머니 중풍 재발해 대학 자퇴… “돈 벌자” 일본으로

열려라 에바다 2017. 4. 24. 08:06

[역경의 열매] 김승일 <6> 어머니 중풍 재발해 대학 자퇴… “돈 벌자” 일본으로

사기 당하고 귀국해 15개 직업 전전, 빚만 1억… “희망이 없다” 자살 시도

 

[역경의 열매]  김승일 <6>  어머니 중풍 재발해 대학 자퇴… “돈 벌자” 일본으로 기사의 사진
테너 김승일이 자신의 삶과 신앙을 회상하고 있다.

장학금까지 받던 대학생활과 즐거웠던 음악과 노래연습, 하지만 어머니의 중풍이 재발을 거듭하면서 자퇴를 결심했다. 막내인 나를 위해 무리하게 허드렛일을 하신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

학교에서 등록금을 되돌려 받았다. 현금을 보자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하다 직업소개소에 100만원을 건넸고 일본행 배를 탔다. 소개한 사람에겐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웠다고 적당히 둘러댔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일본은 비자가 없으면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곳이었다. 주위 사람 말로는 세 가지 직업밖에 구할 수가 없었다. 도로포장 노동자와 미싱사, 그리고 유흥업소 종업원이었다.

일본에서 노래를 부르게 해준다고 소개 받은 곳은 밤무대였다. 그것도 단 3일. 나중에 안 사실인데 정식 비자 없이 일본 체류 15일이 지나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됐다.

그제야 사기 당한 것을 알게 됐다. 실망이 컸다. 남은 돈으로 일본 도쿄 시내를 기웃거리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참 겁도 없이, 그렇게 첫 사회생활은 시작됐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방황하다 집 근처 서점에 들어갔다. 꽂혀 있는 책 중 성공이라고 써 있는 책들을 한아름 구입해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름 만에 그 책을 모두 읽고 나왔다.

성공할 것 같은 착각에 사로 잡혔다. 3000만원을 카드로 긁고 새 차를 구입했다. 택배회사 수도권 지사장을 꿈꾸며 열심히 일했다. 새벽에 일어나도, 밤늦게까지 일해도, 즐겁고 신이 났다. 어린 나이에 사장을 꿈꾸며 일하는 게 즐겁고 행복했다.

누구 하나 충고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또 일을 가르쳐주거나 격려해주는 선배나 어른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고 생각과 행동을 책임져야 했다.

당시 나는 오히려 그게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하루하루 일을 해 나갔다. 빚도 갚고 저축도 해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삶은 생각대로 나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까지 났다. 시골길에 어떤 할아버지와의 접촉 사고였다. 이후에도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빚을 갚기 위해 15가지 직업을 전전했지만 빚은 더 늘어만 갔다. 그 마지막 직업이 야식배달부였다.

그런데 야식배달부를 할 때 중풍으로 고생하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이 끝난 뒤 내 통장을 보니 1억원이 넘는 빚이 쌓여 있었다. 막막했고 자살을 생각하게 됐다.

‘내게 희망이 없어지고 있어.’

집에 있는 면도날을 꺼내 손목을 그어댔다. 몇 번이나 피가 났다. 하지만 죽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된다고, 진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길 몇 번.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셨다. 면도날에 묻은 피를 보는 순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됐던 것이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언젠가 반복해 읽던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이게 뭐지 꿈인가 생시인가. ‘어머님은 돌아가셨지만 내가 용기 있게 살아가기를 바라실 거야.’

거짓말같이 몸이 가벼워졌다. 믿음을 갖게 되니 불끈 용기가 났다. 다음 날 일터에 나가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일했다. 이후 빚은 점점 줄었다. 삶에 대한 희망이 다시 생기고 있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