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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승일 <8> 내 노래 듣고 사장님이 TV 출연 신청… 벼락스타 돼

열려라 에바다 2017. 4. 26. 08:12

[역경의 열매] 김승일 <8> 내 노래 듣고 사장님이 TV 출연 신청… 벼락스타 돼

방송 이후 격려와 방송출연 요청 쇄도… 15번째 직업인 야식배달 그만두게 돼

 

[역경의 열매] 김승일 <8> 내 노래 듣고 사장님이 TV 출연 신청… 벼락스타 돼 기사의 사진
테너 김승일이 2010년 12월 SBS 예능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해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중 ‘네순 도르마’를 열창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가졌던 15가지 직업 중 야식배달부는 마지막 직업이었다. 땀 흘려 일하며 동분서주하던 어느 날, 주문 음식을 독촉하는 곳으로 황급히 배달을 나갔다. 그날은 유난히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이었다.

옷은 모두 젖어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화려한 대리석으로 지어진 부잣집 대문의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고 주문한 음식을 내려놓는 순간 어린 중학생쯤 되는 친구가 늦게 음식이 도착했다며 연거푸 짜증을 냈다. 그리고는 만원짜리 지폐 몇 장을 내팽개치듯 던졌다.

음식 값을 집어 들면서 거의 정신이 없었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 때문이었다. “웬 아이 엠 다운 앤드 올 마이 소울 소 위어리(When I am down and all my soul so weary·내가 힘들고 영혼이 지칠 때)….”

예전에 즐겨 부르던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주여 당신이 나의 영혼을 높여주십시다)’이었다. 바로 핸드폰을 꺼내 그 노래를 입력했다. 집에 돌아와 열심히 그 노래를 불렀다. 울적한 마음이 풀릴 때까지 말이다.

며칠 뒤 핸드폰에 녹음한 내 노래들을 야식집 사장님께 자랑삼아 들려 드렸다. 노래를 유심히 들은 사장님은 무슨 각오라도 한 듯 넋 나간 사람처럼 쏜살같이 동네 PC방으로 향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장님은 그때 SBS 예능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내 절절한 사연을 자세히 써서 보냈다고 한다.

며칠 뒤 방송국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지만 처음엔 거절했다. 출연 요청이 장난인 줄 알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전국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출연하는 날 몹시 떨렸다. 그래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부르고 몇 번이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지 모른다. ‘평소대로 잘 부르게 해 주세요.’ 속으로 기도했다.

2010년 12월 4일 방송국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아리아 ‘네순 도르마’를 부르면서 기적을 체험했다. 방송 이후 내 삶이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근무지인 야식집에 무슨 식품위생법도 위반하지 않았는데 구청장을 비롯 수원시청 직원들이 찾아왔다. 나를 보기 위해서였다. 격려와 찬사도 쏟아졌다. 방송출연 요청이 줄을 이었다. 축구선수 박지성씨의 아버지는 저와 같은 고향 출신이라며 야식집을 방문했다.

저마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곰국을 끓여 오는 아주머니들 때문에 또 한 번 놀랐다. 어머니들은 방송 이후 나를 국민아들로 생각한다고 했다. 고맙고 눈물겨운 일이었다. 네티즌 7만명이 동시에 접속해 방송국 인터넷이 마비 됐던 일도 있다. 자살을 시도하던 한 청년이 내 사연을 듣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야식배달을 멈추지 않았다. 방송 후 6개월간 말이다. 방송 출연 한번으로 내 신상에 무슨 일이야 생기겠느냐는 생각이 앞섰다.

그런데 황당한 일들이 자꾸 일어났다. 내가 배달을 나가지 않을 땐 주문을 취소하는 일이 속출했다. 야식집에 김승일이 근무하는 게 확실한지 묻는 전화도 많았다. 정말 사장님께 미안했다. 며칠 뒤 야식집 사장님은 “너 때문에 장사가 안 되니 나가 달라”고 했다. 결국 7년간 일했던 야식배달부 직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