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해 종합검사를 받았다. 의사들은 신경쇠약 외에도 담낭(쓸개)에 돌이 가득 찼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매일 밤 날 괴롭혔던 가슴앓이의 원인이었다. 가슴을 째고 쓸개를 뗐다. 가슴앓이가 사라지니 새 인생을 찾은 것 같았다. 하나님은 불행한 상황에서도 밝은 소망을 찾게 하셨다. 완전한 불행이란 없다. 언젠간 소망이란 친구가 뒤따라온다는 교훈을 얻었다.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고 난 공부를 하기 위해 굿사마리탄홈을 그만뒀다. 이든 신학교에서 목회임상실험 훈련을 1년 받은 뒤, 마흔두살이던 1977년 세인트루이스대학에서 사회사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돈 때문에 포기한 공부를 16년 만에 마무리한 셈이다. 공부는 재미있었다. 사회봉사 경험이 많아서인지 이론이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내가 도서관에 들어가면 한국 유학생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나는 그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 냉면을 해 먹이곤 했다. 공부하느라 늦는 날에는 첫째 아들 형수가 큰길에 나와 날 기다렸다. 학위를 받기 직전 인턴십은 세인트루이스대학 의대 정신병원에서 받았다. 이때의 경험은 이후 정신질환 홈리스를 섬기는 초석이 됐다. 하나님의 훈련과정은 이렇게 치밀했다.
졸업하자마자 일리노이주 지역정신건강원(Community Mental Health Center)에 취직이 됐다. 정신질환자나 마약중독 홈리스들을 치료하는 주립시설이었다. 시설은 미국에서 가난하기로 소문난 흑인 빈민촌에 있었다. 살인과 강간 등 끔찍한 뉴스가 매일 쏟아져 나오는 곳이었다.
대학원을 갓 졸업한 사람이 주립시설에 고용된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흑인과 백인 등 직원 12명을 거느리고 하루 종일 100여 명의 정신질환자와 홈리스를 돌봤다. 환자들에게 점심을 해 먹이고, 교육자료도 체크하고, 직원관리도 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1년간 정신병원에서 훈련을 받긴 했어도 어떻게 내가 취직이 됐을까 의아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상당한 실력자들이 지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추천자들끼리 알력이 벌어지면서 오히려 추천인이 없던 내게 행운이 돌아온 것이었다. ‘잠겨 있는 옥문이 열리는 기적’은 이런 식으로 일어났다.
시설에서 열심히 일했다. 환자들을 친절하게 대했고 목사처럼 홈리스를 심방했다. 지역사회 지도자들을 만나 후원을 요청했고 대학교수들을 초빙해 직원교육을 시켰다. 항상 직원들과 화목하게 지냈다. 기관 책임자인 어맨다 머피 박사는 “당신은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준 천사”라며 날 칭찬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민족이 있다. 모든 사람은 피부색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 지극히 간단한 사실을 흑인 직원들과 함께 지내며 깨달았다. 시설의 환자는 대부분 흑인이었다. 하나님은 내게 백인사회 속에서 차별받고 무시당해온 흑인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도록 훈련시키셨다. 목숨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이 함께 하셨기에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일이 가능했다. 발걸음을 뗄 떼마다 나와 동행하는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졌다.
행복은 그러나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내 삶의 의미였던 맏아들 형수를 끔찍한 사고로 잃었기 때문이다.
정리=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진숙 <10> 잠겨 있는 옥문 열리듯… 주립시설 취업길 열려
석사 마치자마자 정신건강원에 취직… 훗날 정신질환 홈리스 섬길 경험 쌓아
![[역경의 열매] 김진숙 <10> 잠겨 있는 옥문 열리듯… 주립시설 취업길 열려 기사의 사진](http://image.kmib.co.kr/online_image/2017/0609/201706090002_23110923761414_1.jpg)
일리노이 주 지역 정신건강원에서 직원들과 찍은 사진. 대부분 흑인이고 비서만 백인이었다. 2년 밖에 일을 하지 못했지만 이들과 40년 넘게 교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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