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역경의 열매] 김진숙 <12> 아들 잃고 미친 듯이 성경 읽어… 영적인 눈 뜨여

열려라 에바다 2017. 6. 13. 07:50

[역경의 열매] 김진숙 <12> 아들 잃고 미친 듯이 성경 읽어… 영적인 눈 뜨여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해” 눈물 고백, 52세에 목사 안수 받고 학원 목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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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4월 12일 미국장로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내 평생 처음으로 축도를 하는 모습.

큰아들 형수를 잃고 시애틀로 이사했을 때 하나님은 내 영안(靈眼)을 열어주셨다. 난 밤낮으로 미친 듯이 성경을 읽었다. 성경을 몇 번이나 통독했는지 모른다. 남편을 따라 낚시를 가서도 찌를 보지 않았다. 해가 지고 글이 안 보일 때까지 쉬지 않고 성경을 읽었다.

시애틀에서 난 메이플우드장로교회를 나갔다. 이 교회 윌슨 목사가 내게 목사 안수를 권했다. 내 나이가 벌써 50인데 무슨 공부냐며 사양했다. 윌슨 목사는 할 수 있다며 밀어붙였다. 결국 시애틀의 풀러신학교 분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공부는 역시 재미있었다. 영적으로는 기뻐서 찬송가를 부르며 다녔다. 그러나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하느라 육신이 힘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였다.

당시 목사 안수 후보자는 노회 시험을 두 번 거쳐야 했다. 한 번은 전 노회원 앞에서 왜 목사가 되려는지 설명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필기시험이었다. 이를 거치면 최종 구두시험을 다시 본다.

첫 관문을 통과하는 날 나는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일뿐”이라고 말했다. 맨 앞자리에 있던 남편을 향해 그 말을 하는데 눈물이 터진 수도꼭지처럼 쏟아졌다. 그 말은 소중한 자식을 잃고 사경을 넘나들며 얻은 결론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수백 명의 목회자와 장로들 중 마른 눈으로 돌아간 이가 없었다고 한다.

풀러신학교에서 소정의 교육을 마친 뒤 필기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 다시 2년 후 구두시험을 만장일치로 통과하고 목사안수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노스푸젯사운드 노회는 1987년 4월 12일 메이플우드교회에서 내게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해줬다. 미국장로교에서 한인 여성 목사가 된 사람은 한정미 목사가 처음이었고 내가 두 번째였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28년 만에 온갖 풍상을 겪고서야 이룬 결실이었다. 그 때 내 나이 쉰둘이었다. 그곳에 참석했던 모든 목사와 장로들이 나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를 했다. 다들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여자 나이 쉰이 넘으면 ‘쉰 세대’라고 하는데 난 펄펄 날았다. 인생의 또 다른 장을 시작했다.

이처럼 4월은 내게 의미 있는 달이다. 부활절이 있고 내가 미국에 도착한 달이다. 내 아들의 생일과 그 아들이 세상을 떠난 날이 있고, 내가 목사가 된 달이다. 4월은 내게 죽음의 달이자 부활의 달이기도 하다.

윌슨 목사는 내게 워싱턴주립대학에서 학원 목회를 제안했다. 당시 대학에는 외국인 학생 수가 전체 학생 수의 20%를 차지할 만큼 많았다. 미국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찾아 발이 닳도록 캠퍼스를 누볐다.

목사 안수를 받은 지 꼭 1년이 되던 1988년 부활절 새벽, 난 이상한 꿈을 꿨다. 꿈속에서 하나님이 날 작은 교회 문 안쪽에 세워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기에 십자가를 심으라. 그리하면 그것이 지붕 밖으로 자라 나갈 것이다.(Plant the Cross. It will grow through the roof)”

하나님 음성을 처음 들었다. 감격스럽고 떨렸다. 계시는 분명했지만 미련한 나로서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대체 어디에 십자가를 세우라는 말씀일까. 그 뜻을 알아차리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정리=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