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마리아교회 은퇴를 결심하고 이사회에 통고했다. 이사회가 마련한 송별회에서 놀라운 선물을 받았다. 홈리스 여성들로 가득한 배를 내가 물 위에서 끌고 가는 모습을 그린 삽화였다. 내 사역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에 지금껏 내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죽음을 준비하는 동안 하나님은 또 다른 계획을 준비하셨던 걸까. 1997년 미국장로교총회 주최 홈리스 워크숍에 초청받았다. 그곳에서 홈리스 사역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현장에 있던 바바라 두에이 목사가 내 말을 새겨들었는지 총회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미국 전역의 장로교회를 돌면서 홈리스 근절 촉구 설교를 해달라는 설명이었다.
98년 2월부터 순회설교에 돌입했다. 작은 여행가방 하나를 끌고 곳곳을 누볐다. 6년 동안 비행기를 184번 타고 31개 주 96개 도시에서 430개 교회와 그룹에게 홈리스 근절을 촉구하는 설교를 했다. 내겐 미국 전역에 언제든지 방문해 머무를 수 있는 집이 100군데나 있다. 호텔비를 아껴 홈리스를 돕기 위해 민박을 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여성상’을 받을 때 후원자들은 ‘홈리스 근절(END HOMELESSNESS)’이라고 적힌 보랏빛 티셔츠에 관심을 보였다. 언제나 이 옷을 입고 다녀서 ‘보랏빛 여성’이란 별명을 얻었다. 양말이나 운동화, 가방, 모자까지 보랏빛으로 입고 다녔다. 병원이나 식당, 버스, 공항에서 사람들은 “보랏빛을 좋아하나 봐요”라며 한마디씩 던진다. 그때마다 “이것이 내 선교 색깔”이라며 가슴의 홈리스 근절 문구를 보여주면 다들 “원더풀”이라고 대꾸한다.
71세가 되던 2006년에는 두 가지 큰일을 해냈다. 샌프란시스코 신학대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땄다. 남편이 병들어 양로원에 들어가면서 공부를 중단해야 할 처지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응급실로, 중환자실로, 양로원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남편 침대 옆에서 계속 논문을 썼다. 칠순도 학교에서 공부하다 맞았다. 학생들이 케이크를 사와 축하해줬다. 사실 내겐 학위가 필요 없었다. 일생을 바친 홈리스 사역을 학문적으로 정리해 후대를 위해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또 하나는 내가 사는 시애틀 인근 린우드에서 둥지선교회를 설립한 일이다. 모든 걸 잃어버린 홈리스들에게 직업과 거처를 마련하고 존엄성을 회복시켜 하나님과 예수님께 돌아오게 하자는 취지였다.
천신만고의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이제 천신만고의 이야기로 끝맺고 싶다. 난 지금 홈리스 들을 대학에 보내는 사역을 벌이고 있다. 공부를 해야 좋은 직장과 월급을 얻고 홈리스 생활을 청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에 보내준다는 소문이 나자 찾아오는 홈리스들이 100명을 넘었다. 지난 1월 시작된 대학교 새 학기에 20명을 우선 등록시켰다. 내년 봄학기를 준비하는 학생은 24명이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린우드시는 내가 눈물로 호소하자 어느 침례교회 마당에 텐트 5개를 치도록 허락해주었다. 어떤 분은 판잣집 10개를 기증하겠다고 나섰다. 지금은 그 판잣집이 들어설 장소를 찾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 하나님이 또 다시 문을 열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난 지금 죽음을 향해 걷고 있다. 폐협심증으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홈리스들의 졸업식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등에 업고 달리시니 천신만고의 길이라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정리=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진숙 <14> ‘홈리스 근절’ 美 순회 설교… 71세에 박사 학위 따
건강 악화로 교회 은퇴 후 새 길 열려… 홈리스 자립 위해 대학 보내기 사역 시작
![[역경의 열매] 김진숙 <14> ‘홈리스 근절’ 美 순회 설교… 71세에 박사 학위 따 기사의 사진](http://image.kmib.co.kr/online_image/2017/0615/201706150004_23110923764701_1.jpg)
6년 이상 섬기던 순회 설교 사역에서 은퇴하던 날 동료들이 날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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