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무더운 날씨가 기승을 부린다. 땅은 갈라지고 사람들은 지친다. 나 역시 이 더위에 움직이는 게 쉽지 않다. 남보다 조금 더 힘든 게 있다면 목발 2개 없이는 거동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곱 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 목발이 나의 발이 됐다.
내 오른손에는 항상 굳은살이 박여있고 왼팔은 틀어져 있다. 수도 없이 넘어졌다. 내 몸은 두 계절을 갖고 있다. 상체가 여름이면 하체는 겨울이다. 나는 지금 내복 하의를 입고 있다. 아내는 내 다리에 자신의 다리를 올려놓고 말한다. “에어콘이 따로 없네요.” 내 육체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예수님과 함께한 흔적이다.
내 고향은 전남 진도군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유명해진 팽목항 근처가 우리집이었다. 딸 다섯 집안에 외아들로 태어나 장애를 얻자 당시 동네 사람들은 “병신 새끼가 났으니 그냥 바닷물에 던져버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꼭 껴안으며 말씀하셨다. “큰놈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하나님이 도우신다. 반드시 축복하신다”며 사랑해주셨다. 어머니는 나를 기르면서 한 번도 나를 좌절시키는 말씀을 한 적이 없다. 어머니는 항상 긍정적이었다. “너는 잘 될 거야.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했다.
어머니는 전라도 말로 “댈롱댈롱 매달려라” 하셨다. 간절히 붙잡고 부르짖으라는 말이다. 어머니는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애원하고 기도하면 도와주신다 하셨다. 그렇다. 하나님밖에 도와줄 이가 없었다.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로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었고 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 꿈의 시작은 1983년 서울 도봉구 도봉산 기슭 안골자락이란 곳에 천막을 치고 장애인 10명과 함께 시작한 장애인 주거시설 임마누엘집이었다.
당시 임마누엘집은 천대를 받았다. 생계를 위해 나는 볼펜과 양말, 껌 장사를 했다. 오전에 볼펜을 팔러 가면 “아침부터 재수 없다”며 물을 끼얹는 사람들도 있었고 식당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냐”며 경계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버스나 택시는 서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하나님께 ‘댈롱댈롱’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마 1:23)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천막에서 이전하게 하셨다. 임마누엘집은 1990년 지금의 자리인 서울 송파구 거여동으로 옮긴 후 계속 확장했다.
사회복지법인 임마누엘복지재단과 애향원 등 두 개의 법인을 설립했고 경기도 포천군과 강원도 인제군 등 전국 6개 지역에 11개의 장애인 시설을 갖췄다. 단순 거주시설부터 빵을 만드는 베이커리 작업장, 장애인 운전교육원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전국에서 1000여명의 장애인들이 이 시설을 이용하고 있고 직원만 300명에 이른다.
나는 지금까지 3000번 넘게 강연을 다녔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강조하는 말이 있다. “안 된다는 생각을 절대 하지 말라.” 나는 그동안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하신 주님의 말씀을 나누고 싶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약력=△1954년 전남 진도 출생 △백석신학대 졸업 △세종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임 △1983년 ‘임마누엘집’ 개원 △사회복지법인 임마누엘복지재단·애향원 이사장 △임마누엘교회 담임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역경의 열매] 김경식 <1> “바닷물에 던져버려라”… 지체장애아, 목사 되다
딸 다섯 둔 집 외아들로 태어나 ‘목발’… 모친 “하나님께 댈롱댈롱 매달려라”
![[역경의 열매] 김경식 <1> “바닷물에 던져버려라”… 지체장애아, 목사 되다 기사의 사진](http://image.kmib.co.kr/online_image/2017/0703/201707030000_23110923776102_1.jpg)
임마누엘집 원장 김경식 목사는 지체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장애를 원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목발 짚은 장애인들의 천사로 불린다. 국민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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