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비석공장을 하는 친구 형님이 200만원을 빌려갔다. 몇 달이 지나도 이자를 주지 않아 찾아갔더니 도박판에서 모두 날렸다며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는 내게 “200만원만 더 빌려주면 돈 100만원을 더 얹어주겠다”며 통사정을 했다. 큰 판이 벌어지니까 한몫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지만 어쩔 수 없이 조합에서 200만원을 인출했다.
이번엔 직접 확인하고 싶어 형을 따라 도박장에 갔다. 나는 옆에서 그 형이 돈을 따도록 기도까지 했다. 오랜만에 하는 기도였다. 하지만 웃돈까지 얹어주기는커녕 200만원도 몽땅 털렸다. 잃어버린 400만원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그대로 집에 갈 수는 없었다. 나는 숨을 고른 뒤 그 자리에서 1할 이자로 또 다시 200만원을 빌렸다. 그리고 판돈 50만원을 걸고 화투 노름 중 하나인 ‘도리짓고땡’을 했다. 새벽녘쯤 나는 400만원을 땄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익이 나야했다. 나는 판돈이 모두 내 것인 양 착각한 채 아침이 밝을 때까지 계속했다. 순간 모든 돈이 날아갔다.
눈앞이 하얘졌다. 나는 도박에서 잃은 돈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도박판을 전전했다. 그로부터 8개월, 잘되던 사업에서 벌었던 재산을 모두 까먹었다. 1982년 4월에는 도박사건에 연루돼 12명의 도박꾼들과 함께 경찰에 검거됐다.
유치장에 얼빠진 사람처럼 앉아있는데 어머니가 면회를 오셨다. 어머니는 성경과 찬송을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경식아,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하나님께 자복하고 돌아와.”
나는 일주일을 유치장에서 보내고 목포교도소로 이감됐다. 감방은 살벌했다. 감방장은 나를 보자마자 주먹부터 날렸다. 구타를 당하면서 나는 하나님을 찾았다. “주님….” 마음대로 살던 날들이 영화처럼 눈앞을 지나갔다. 울며 회개했다. 8개월 후인 그해 12월 27일 출소했다. 교도소 앞에 어머니가 서계셨다. 나는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어머니에게 “다시는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목포발 용산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고향으로 갈 수는 없었다. 부끄러웠다.
수감생활로 내 하반신은 더 힘이 없어졌다. 용산역 계단을 휘청거리며 내딛었고 빙판길에 나뒹굴었다. 대합실에서 앉아 언 다리를 손으로 부비며 밤을 샜다. 속은 비어 쓰리고 아팠다.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 ‘주님, 따뜻한 방에서 잠 좀 자게 해주세요.’ 눈을 뜨니 한 중년신사가 다가와 “여기 있지 말고 지하철을 타면 스팀이 들어오니 거기서 몸을 녹이라”며 혀를 찼다.
나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수원과 청량리 사이를 왕복하며 잠을 청했다. 허기로 잠에서 깨니 안양역이었다. 무작정 걸었다. 음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머니엔 돈이 없었다. 겨울바람은 귓불이 떨어져 나갈 듯 몰아쳤다. 구걸이라도 해야 했다. 대궐 같이 생긴 집의 초인종부터 눌렀다.
“지나는 사람인데 밥 한 술만 주세요.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아침부터 거지 놈이 남의 집 벨을 누르네. 재수 없게.” 그러기를 수차례, 어느 집이었다. “젊은 사람이 몸까지 불편하구먼. 어서 들어와요.” 주인집 아저씨는 밥을 먹고 목욕까지 하고 가라 했다. 너무 고마운 분이었다. 집을 나서자 아저씨는 차비까지 손에 쥐어줬다. 나는 그 돈으로 다시 용산역까지 갔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돌아갈 면목이 없었다. 나는 쥐엄열매를 먹던 탕자였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역경의 열매] 김경식 <4> 도박에 빠져 사업으로 번 재산 날리고 수감돼
빌려준 돈 받으려 도박장 갔다 수렁에… 출소 후 고향 떠나 노숙하며 구걸
![[역경의 열매] 김경식 <4> 도박에 빠져 사업으로 번 재산 날리고 수감돼 기사의 사진](http://image.kmib.co.kr/online_image/2017/0706/201707060004_23110923777535_1.jpg)
김경식 목사(오른쪽)가 1982년 서울 도봉산 밑에 문을 연 임마누엘집에서 장애인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임마누엘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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