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어머니는 내가 뉴욕시립대 졸업을 1년 앞두고 자퇴를 했다는 말에 크게 실망을 하셨다. 어머니는 늘 “우리는 못살아도 너희는 잘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당부했던 어머니께 졸업장은 고사하고 대학 중퇴라는 안 좋은 소식을 전해드렸으니 매우 속상하셨을 것이다.
미국 유학도 아리랑 식당의 인맥을 통해서 열렸듯 사업도 아리랑 식당의 손님을 통해 연결됐다. 식당을 자주 찾던 인조목 공장 사장님이 계셨는데,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선생님, 저도 인조목 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어 그래? 계산해보니 저 작업 틀을 한국에 가져가는 게 돈이 더 들더군. 그럼 한국행 비행기 티켓만 끊어주면 넘기지.” 그렇게 식당 뒤뜰에서 인조목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2000년 중반까지 계속됐다. 시멘트 먼지를 뒤집어쓴 머리를 감는데 얼마나 뻣뻣하던지 손이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처럼 시멘트가루 먹고 살다간 일찍 죽겠다. 이건 정말 아니다.’
마침 수요도 별로 없었다. 인조목 사업을 그날로 접었다. 식당을 자주 찾았던 도미니카공화국 주재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무역관장을 찾아갔다. “인조목 사업을 하다가 수요가 없어서 접었습니다. 돈을 받지 않고 도울 테니 저 좀 가르쳐 주세요.” “정말 할 수 있겠나.”
영어와 스페인어가 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흔쾌히 받아들여졌다. 8개월간 코트라에서 무보수로 일하며 어깨너머로 무역을 배웠다. 많이 힘들었다. 어느 날 한국에 있는 재숙이한테 연락이 왔다. “상민아, 이제 결단을 해줘. 나랑 결혼할 게 아니면 그만 놔줄래.” “아무런 기반도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해.” “주님이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실 거야. 지금 결혼 못하면 영영 못할 것 같아.” “좀 더 기도해보는 건 어떨까.” “아니야, 지금 해야 해.” 재숙이의 설득에 믿음으로 결혼을 결정했다. “재숙아, 지금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꼭 행복하게 해줄게.”
장인어른의 반대가 심했다. 무일푼의 25세 청년이 안정적으로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고 있는 딸을 달라고 했으니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아무런 비전도 없는 나를 믿어준 분은 신앙심이 깊었던 장모님이었다.
굳은 표정을 한 장인어른께 장모님의 설득작업이 시작됐다. “여보, 다른 친구는 몰라도 나는 상민이를 믿어요. 중학교 때부터 봐온 상민이는 성실하고 믿음이 좋은 아이예요. 우리 딸을 어떻게든 책임질 거예요. 지금 모습만 보지 말고 나중을 봐서 결혼을 시키자고요.”
간곡한 설득 끝에 결혼 승낙이 떨어졌다. “재숙아, 우리 최소 경비로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 거 알지. 내가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신혼집을 준비할 테니 네가 결혼식 준비를 좀 해야겠다. 부모님을 모시고 갈 테니 그때 상견례하고 결혼식을 갖자.” “응.”
재숙이는 혼자서 예식장과 웨딩촬영을 예약하고 드레스를 맞췄다. 결혼식장은 경기도 남양주 금곡 웨딩하우스를 잡았다. 2001년 4월 22일 결혼주례는 아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해주셨다. 그렇게 속전속결로 결혼식을 치르고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날아왔다.
신접살림은 식당 한쪽에 에어컨도 없는 방에 차렸다. 나는 무일푼이었고 아내는 도미니카공화국의 한국 어린이에게 국어와 수학을 가르쳤다. 아내가 과외로 매달 벌어오는 80만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미안해. 나 때문에 해외에서 이렇게 고생을 해서.” “아니야, 하나님께서 우리 집을 책임져 주실 거야.” 기회는 2001년 후반 찾아왔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역경의 열매] 최상민 <5> “무역 좀 가르쳐 주세요” 코트라 찾아가 무보수로 일해
중학교 여자 동창이 청혼… “주님이 가정 지켜 주실 거야”
![[역경의 열매] 최상민 <5> “무역 좀 가르쳐 주세요” 코트라 찾아가 무보수로 일해 기사의 사진](http://image.kmib.co.kr/online_image/2017/0815/201708150004_23110923798493_1.jpg)
2001년 4월 경기도 남양주 한 예식장에서 중학교 동기동창인 이재숙씨와 결혼식을 올리는 최상민 ESD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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