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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최상민 <6> 현대重 발전기 판매영업 맡으며 사업 첫발

열려라 에바다 2017. 8. 16. 11:06

[역경의 열매] 최상민 <6> 현대重 발전기 판매영업 맡으며 사업 첫발

한국 아내 둔 현지 실무자 덕에 판로 열려, 2기 판매… 고장나면 직접 수리까지 맡아

 

[역경의 열매] 최상민 <6> 현대重 발전기 판매영업 맡으며 사업 첫발 기사의 사진
최상민 ESD 사장이 2002년 도미니카공화국 최대의 발전회사인 EGE HAINA에 판매한 한국산 발전기.

2001년 후반부터 도미니카공화국에 출장 온 현대중공업 엔진기계 영업부장의 통역을 맡았다. 자연스레 발전소용 발전기 판매영업 에이전트 생활이 시작됐다. 설명서를 보니 발전기 1기당 100만 달러였다. 돈 단위가 확실히 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판로를 뚫는 건 쉽지 않았다. 도미니카공화국 내 발전회사를 찾아 무작위로 이메일을 보냈다. 하루는 이메일로 연락이 왔다. “미스터 최, 현대중공업 관계자와 함께 우리 발전소에 한번 오시오.”

도미니카공화국 최대의 발전회사인 ‘EGE HAINA’사였다. 들뜬 마음으로 찾아가 인사하고 보니 실무자는 미국 국적의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다. 감사하게도 그의 아내는 한국인이었다. “아내가 한국 분이었으니 한국의 산업기술이 얼마나 발전돼 있는지 잘 아시겠어요.” “물론이죠.” 그는 2002년 초 한국에 가서 발전기를 직접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흔쾌히 이사회에 발전기 구매 건을 올렸다.

감사의 뜻으로 그를 아리랑 식당에 초대했다. 아내가 직접 요리한 양념 통닭을 대접했는데 그의 입맛에 딱 맞는 듯했다. “굿!” 그 후로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식당을 찾아왔다.

얼마 후 EGE HAINA에서 연락이 왔다. “발전기 2기를 구매하겠습니다.” “오, 하나님. 한 대도 아니고 두 대씩이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현대중공업에서 만든 국산 발전기는 신제품으로 상용화되지 않아 검증이 필요한 제품이었다. 그런데도 나를 믿고 구매해준 것이다.

현대중공업에서 판매수수료로 5만 달러를 받았다. 날아갈 듯 기뻤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계약이 성사됐어.” “어머, 정말 잘됐네요. 하나님이 드디어 길을 열어 주시나 봐요.” 첫째 아이를 임신해서 배가 부른 아내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우리 부부는 그동안 진 빚을 갚았고, 3만 달러를 주고 아반떼 승용차를 샀다. 수시로 고장 나는 중고차로 영업을 한다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같은 해 말 도미니카공화국 북동쪽과 서쪽에 현대중공업 발전기가 설치됐다. 한국으로 따지면 하나는 속초, 하나는 목포쯤 되는 곳이었다. 발전기를 돌리자 현지 직원의 운영상 미숙함과 초기 제품의 특성 때문에 고장이 잦았다. 내가 하는 일은 차를 몰고 가 문제가 발생한 발전기 부분을 사진으로 찍고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 현대중공업에 문제점이 담긴 보고서를 이메일로 보내고, 회신 내용에 따라 직접 장비를 들고 가 고쳤다. 한국에서도 부품을 적극 지원해줬다. 초도 제품에 하자가 있으면 개발한 투자금이 모두 날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시로 발전소 2곳과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잠도 못 자고 현장으로 뛰어나가기 일쑤였다. 한번은 새벽 1시 서쪽 발전기를 고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미스터 최, 북동쪽 발전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와주셔야겠습니다.” 한숨도 못 자고 운전대를 돌려 북동쪽으로 향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 산악 지형이다 보니 오후 1시쯤 도착했다. 사진을 찍고 보고서를 만들어 한국에 보냈다. 입술이 부르트고 허리통증이 올 정도였다.

그렇다고 현대중공업이나 도미니카공화국 발전소에서 월급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내가 주선해준 제품에 문제가 있다면 고쳐주는 게 도리다.’ 사실 한국과 도미니카공화국 사이에서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발전기 제품 보증기간이 끝날 무렵 한국에서 전화 한 통이 왔다. “최 선생, 조만간 도미니카공화국 발전소의 제품 보증기간이 만료되거든. 부품 공급업을 한번 해보는 게 어때?”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