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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나폴리, 통영을 다녀오다(4)..한산도ㆍ미륵산케이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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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5.19.수.오전..통영 미륵산 한려수도 케이블카
언제:2010.5.16.일요일~19.수요일(3박4일)
누구와 어디
첫날:통영시 용화사-미래사-통영 유람선터미널앞 숙박
둘쨋날:통영 해저터널-세병관-충렬사-연화도연화사,연화봉 산길 한바퀴 도보관광
세쨋날:연화도-통영항여객선터미널-한산도제승당-통영달아공원-당포대첩지-통영대교
네쨋날:통영유람선터미널 주변산책- 통영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 승강장- 마이홈
평생반려자와 두리서
2010.5.18. 화..한산도 제승당으로 가는길
비바람,안개와 동반한 한산도,그리고 미륵산 케이블카
5월18일 화요일..3박4일 여행 세쨋날 3편 이야기에 이어진다. color size
통영터미널에서 20분 걸려 10시20분에 한산도에 도착했다
광풍에 폭우다. 우산이 뒤집히는 강풍이다.
바람 때문에 우산속의 몸도 엉거주춤이다.
타고 나갈 배시간부터 알아본다. 매시30분에 떠남을 확인한다.
한산도 유적지 안내도를 살펴 본 뒤, 주변경치를 감상하며 빗속을 걷는다.
매표후 입장이다. 제승당까진 족히 10분정도 걸어가야 한다.
굽이굽이 에스자로 돌아돌아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제승당으로 오르는 대첩문 바로 앞에 우물이 있다.
대첩문
밀랍인형이 꼭 사람같아 순간적으로 착각도 했다.
제승당으로 오르는 길
계단으로 올라 충무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제승당 경내다.
제승당
제승당 (사적 제113호)의 역사적인 내용
충렬사가 이순신이 죽은 뒤에 지어진 이를테면 기념관 같은 것이라면,
한산도에 있는 제승당은 그가 통제사의 큰일을 맡으면서 손수 지휘하여 지은 집이다.
1593년 8월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 통제사를 제수 받아 한산도에 본영을
설치 하였을 때 지금의 제승당 자리에 장수들과 작전 회의를 하던 운주당(運籌堂)을
세웠다. 그러나 원균의 모함을 받아 서울로 떠날때 까지 삼년여덟달 동안 머물면서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던" 그곳은 1597년의 칠천량 싸움에서
우리 군사가 지게 되자 그때 경상 우수사이던 배설이 거기 비축되어 있던
쌀과 무기 따위를 왜적에게 넘겨 주지 않으려고 불을 지름으로써 잿더미로 변하였다.
정유왜란 때 폐허가 되어 버린 이곳에 제107대 통제사 조경(趙儆)이 1739년에
유허비를 세우면서 "제승당" 이라 이름 하였고 1976년 지금의 제승당과 충무사,
한산정, 수루 등을 새로 짓고 경내를 정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루에서 바다를 향하여 바라본 풍경
경내 풍경
한산도 관광중 계속 우산이 뒤집히는 강풍에도 사진 찍기등 볼일은 다 봤다.
1시간이면 다 둘러 볼곳을 느긋하게 2시간을 보내고 12시30분에 승선했다.
광풍과 폭우로 바닷물도 스산했다. 옷도 젖었다. 춥고 배도 고파왔다.
유람선터미널 뒤편에 위치한 대형식당으로 들어간다.
첫날 저녁식사를 했던 유치환의 "행복"이란 詩가 걸린 식당이다.
따끈따끈 방바닥에서 차진 몸도 녹이며 점심을 맛있게 들었다.
그 때까지도 계속 폭우다.
하룻밤을 더 묵고 낼 마이홈행이다.
첫날에 묵었던 "카리브"에 방부터 정하려니 이미 예약이 다 되어 없댄다.
아뿔싸~
늘 여유 빈방이 있는 줄 알고
또 연화도에서 어찌 될지 몰라 예약을 하지 않은 것이 불찰이다.
옆에 나란히 위치한 bay콘도도 예약이 꽉차 빈방이 없었다.
다행히 유람선터미널 버스정류장 앞에 새로 지은듯 한 숙소가 있어
여행 마지막밤을 묵기로 정하곤 그리 멀지 않은 "달아공원"으로 달린다.
이곳정보도 알려드립니다. 취사가능
"전망좋은 해피텔" 통영시 도남동 관광특구 유람선 주차장 앞
055) 642-3633 011-465-3636
달아공원
달아공원은 미륵도 최남단 산양해안일주도로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바다경치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요 돌계단으로 올라 가세요.
관해정을 향해 돌계단을...조심조심 디딤을요.
관해정
달아공원의 정자다.
정자 양편엔 동백나무가 줄지어 자란다.
달아마을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일 뿐만 아니라
한려수도의 장관도 감상하고 낙조나 달이 뜬 밤의 은파를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정자로 지난 1997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전망대로 가기 위해 나무계단을 오른다.
이곳에 서면
시원그레 펼쳐진 바다위에 점점이 떠 있는 한산, 욕지, 사량 등 3개
도서면 관내의 대다수 섬들을 조망할 수 있으며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의 전경은
가히 일품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단다.
일몰의 전경을 직접 보지 못했기에 아쉬움이 있지만 참 아름다운 곳이다.
안개와 강풍과 비의 훼방으로 잿빛 뿌우연 섬만 안았다.
그러나 보일듯 말듯 감칠맛이 별맛이었다.
아래 관해정이 안개에 묻혀 흐릿하게 보인다.
당포대첩지
예나 지금이나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는 해전장이었음을 말해 주는 건
길가에 서 있는 "당포대첩지" 표지판 하나..
지금은 통영시 미륵도 삼덕항으로 불린다.
당포해전 [唐浦海戰]
1592년(선조 25) 6월 2일 이순신(李舜臣) 함대를 주축으로 한 연합함대가
경상남도 통영시 당포 앞바다에서 왜선 21척을 격침시킨 해전.
1592년(선조 25) 5월 29일부터 6월 1일 아침까지
전라좌수영의 이순신(李舜臣) 함대를 주축으로 한 조선 연합수군은
사천포해전을 통해 왜군 함선 13척을 격침시키고, 왜군 2,600여 명을
사살하였다. 같은 날 정오 무렵 이순신 함대 전선 23척과 원균(元均)이
이끄는 경상우수영 전선 3척은 삼천포(三千浦) 앞바다를 거쳐
사량도(蛇梁島)에 이르러 이곳에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오전 8시 척후선으로부터 당포 선창에 왜선이 정박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순신 함대는 곧 당포(지금의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앞바다로 나아갔다. 당포 선창에는 왜군 대선 9척, 중선·소선 12척이
매어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배에는 붉은 일산이 세워져 있고,
장막 안에는 왜장 카메이 코레노리[龜井玆矩]가 앉아 있었다.
아군 함대가 접근하자 왜군은 조총을 쏘며 맞섰다.
아군은 개의치 않고 거북선을 앞세워 현자총통을 비롯한 천자·지자총통을
쏘아 대는 한편, 뱃머리로는 왜장선을 들이받으며 격파하였다. 이어 화포와
화살을 왜장선에 집중적으로 발사하였다. 이 와중에 왜장은 중위장
권준(權俊)이 쏜 화살에 맞아 바다로 떨어진 뒤, 첨사(僉使) 김완(金完)과
군관 진무성(陳武晟)에 의해 목이 베어졌다. 왜장 카메이 코레노리가 죽자,
왜군은 혼비백산하여 전선을 남겨 둔 채 달아나기에 바빴다.
왜선 21척은 모두 격침되었고, 사살된 왜군만도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순신 함대가 제2차 출전에서 사천포해전에 이어 치른 두 번째 해전이다.
옥포·합포·적진포해전 등 제1차 출전까지 합하면 다섯 번째 해전이 된다.
적정과 지형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거북선을 앞세워 적의 대장선에
화력을 집중하는 이순신의 치밀한 전략이 돋보인 해전이다.(네이버 백과)
통영대교에도 폭우가 여지없이 쏟아진다.
통영대교 [統營大橋]
경상남도 통영시 당동과 미수동을 잇는 다리이다.
길이는 591m·폭은 20m이며 1998년에 완공되었다.
통영운하를 가로질러 세워진 다리로,
통영시 당동(當洞)과 미륵도(彌勒島)의 미수동(美修洞) 사이에 있다.
통영대교가 가설되기 전에는 해저터널과 충무교만이 미륵도로 갈 수 있는
통로였다. 아치트러스 공법 등을 이용해 가설했으며,
140m의 중앙 아치 부분에 196개의 투광등(投光燈)을 달았다.
밤이 되면 초록빛 조명에 감싸여 멋진 야경을 만들어낸다.
통영대교의 야경과 해저터널은 통영의 명물로 꼽힌다.
동선이 참 긴 날이었다. 몸이 그냥 무너진다.
저녁도 굶은 채 세쨋밤은 그렇게 무너진 채로 흘러갔다.
5월19일 수요일..3박4일 여행 마지막날이다. color size
새벽에 일찍 눈을 떴다.
빗소리가 들린다.
실은 통영관광의 백미인 케이블카 탑승을 어제 하려 했는데
심한 강풍으로 어젠 운행중지였다. 오늘 이용하려 했는데
비가 계속 내려 오늘도 운행중지 일것 같아 서운하지만 포기하고
먼길 일찍 상경예정이었다.
여행 마지막날도 첫날과 같은
유람선터미널 지역에 머물러서 산책 코스는 같다.
그러나 하얀새벽과 까아만밤의 차이다.
첫날은 불빛이 흐르는 밤놀이를 즐겼다.
마지막날은 떠나야 할 아쉬움에 새벽산책을 즐긴다.
주차장 옆 "바다의 꿈" 광장이다.
첫날에 앉아서 오색빛 분수쇼를 구경했던 의자다.
정자에 올라가서 바다도 조망하고..
동개섬
동개섬 위에서 내려다 본다. 유람선터미널 앞바다의 아침 풍경이다.
터미널 앞바다 계단으로 오르면 2층에 위치한 유람선 매표소를 만난다.
아침산책을 마쳐도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더 많이 온다.
바람이 없어 어제처럼 우산이 날라가거나 뒤집어 질 일은 없었다.
이른아침 7시반부터 한시간정도 산책을 끝내고 마이홈으로 가기위해
통영시내를 달리다가 못내 서운해서 케이블카 승차장으로 핸들을 돌린다.
아쉬움에 일단 가봤더니 운행을 한댄다. 와 보길 참 잘했다.
그냥 갈 뻔했는데 감사한 일이다.
통영 미륵산 한려수도 케이블카
매표소에 닿았다.
부슬부슬 비는 내렸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운행이다.
매표 개시전 시운행중이다.
안개속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광경이 이색적이다. 볼만하다.
탑승객 100만을 돌파한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는
선로 1,975M로 도남관광지 하부 정류장에서 시작하여
미륵산 8부 능선에 위치한 상부 정류장까지 8인승, 캐빈 47대가
연속적으로 순환하며 관광객을 수송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다는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
티켓 매입 번호순대로 탄다.
흐름이 빨라서 1시간에 1,000명도 가능하다는군요.
환경을 보호하고 승객들의 편안한 승차감을 위해
중간 지주를 1개밖에 설치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출발시와 중간지주에서 덜컥할땐 겁이 살짝 나기도 했다.
한국의 100대 명산중 하나인 통영 미륵산에 설치된
이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오르면
한려수도의 보석같은 섬들과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항, 이순신장군의 구국의 혼이 살아있는 한산대첩지등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고 아주 맑은 날에는 일본 대마도,
지리산 천왕봉, 여수 돌산도까지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올라간 날은 두터운 안개로 하늘의 경계도 안개속에
묻힌채 온통 희뿌옇게만 보였다.
그러나 흔히 만날 수 없는 귀한 광경이었다.
비오면 비오는대로
눈오면 눈이 오는대로
오늘처럼 두터운 안개속에 묻히면 묻히는대로...
천국에서 신선놀음을 만끽한 또 다른 감흥을 맛본 날이었다.
9시 매표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이곳에서 일하는 친절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다.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통영에서 뱃길 40분소요의 "비진도" 를 한번 다녀 오라며 권해 온다.
아름답고 신비스런 섬, 비진도를 기억해 두며,
인터넷검색으로 그림과 해설을 살짝 삽입이다.
예쁜 모습을 담아 달라며 그 얼굴에 고운미소를 흘린다.
비진도(比珍島)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비진리에 속하는 섬이다.
면적은 약 2.766㎢이다. 안 섬과 바깥 섬의 두 섬이
가느다란 모래사장에 의해 다리처럼 연결되어 있는 형태이며,
항구도 안 섬의 내항과 바깥 섬의 외항, 두 곳이 있다.
가운데의 모래사장에 비진도 해수욕장이 위치해 있다.
주민과 마을은 주로 북서쪽에 집중되어 있으며, 양식업, 어업과
더불어, 여름철 관광객이 많아짐에 따라 관광업도 섬의 주요 산업이다.
오른쪽으로 한산도가 위치해 있으며,
통영여객터미널에서 하루 두 차례 배가 운행한다.
오전 9시..매표가 시작되면서 2번,3번 티켓팅이다.
티켓번호대로 탑승인데 우린 두번째 탑승이다.
탑승시간은 10분이다.
탑승장엔 탑승객으로 붐빈다.
케이블카 탑승장소이다.
드디어 희뿌연 안개속으로의 여행이다. 잠시후면 안개속으로 사라진다.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 두터운 구름속을 지나 하늘로하늘로 오른다.
연화도 등산길에서 염소를 보고 간담이 서늘해진 것보다 더 강도가 높은 서늘함이다.
머리카락이 쮸뼛 선다. 바짝 긴장된 두려움에 놀랍게도 잠시 스릴도 스친다.
앞창에 다닥다닥 달라붙는 빗방울이 조금은 위안이다.
빗속에서 구름과 안개를 뚫고 하늘로 하늘로 계속 오름이
결코 짧지 않은 10분간이 바짝 긴장감으로 온몸이 굳어지 듯 했다.
그 10분간을 보내고 내리니 그때서야 스릴 만점의 환희에 빠진다.
미륵산 정상으로 오르는 초입계단에서 숨도 고르며 안개를 담는다.
상부 종합안내판
미륵산 정상 표지석에서..461M
해병대 통영상륙작전(海兵隊 統營上陸作戰)..해설판 글을 옮김
1950년 6월25일 남침을 개시한 북한공산군은 불과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8월 중순에는 포항,대구,마산방면으로 압박을 가하면서 최종목표인 부산을
향해 총공격을 시도하였다. 우리 국군은 미국을 위시한 유엔16개국의 지원을
받아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결사항전을 시도하면서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때, 마산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하던 북한군은 아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거제도를 통해 마산,진해,부산방면으로 진출을 기도하였다.
이를 위해 북한군은 8월15일 7사단 예하 증강된 1개대대(650명)을 투입하여
거의 무방비 상태에 있던 통영을 먼저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하였고,
아군 경찰병력의 소규모 저항을 무력화 시킨 뒤 8월17일 01:00에
통영 시가지를 완전 점령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8월16일 해군참모총장은 마산 진동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해병대 김성은 부대로 하여금 거제도에 상륙하여 적을
격멸시키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 해군본부의 승인을 얻어 8월17일
해군함정의 지원을 받아 통영 동북단 장평리에 기습 상륙하였다.
상륙과 동시 삼봉산(246고지)을 점령한 김성은 부대는 8월18일 새벽
총공격을 개시하여 전술적 요충지인 원문고개와 망일봉(148고지)을
점령하고, 이어서 해군 함포사격과 공군 항공기의 지원을 받아 8월19일
새벽에는 여황산(178고지)을 점령한 후 동일 10:00시경 통영시가지를
완전 탈환하였다.
통영시내가 탈환되자 북한군 패잔병 200여명은 야음을 틈타 어선을
탈취하여 고성방면으로 도주하였다. 이후 한 달 동안 북한군은
9차례에 걸쳐 원문고개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하였지만 번번히 격퇴
당했으며, 마침내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적은 완전히
패주하게 되었다.
통영상륙작전을 통해 한국해병대는 적 사살 469명, 포로 83명이라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며, 아군 전사자는 19명에 불과하였다.
이 작전은 6.25전쟁중 최초로 실시된 한국군 단독의 상륙작전이자
공격작전으로 외신종군기자(UPI통신)로 부터
"귀신잡는 해병대(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란 찬사를
받아 한국해병대의 용맹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산대첩과 더불어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던 조국을 구한
또 하나의 승전의 역사로 후세에 길이 남을 것이다.
뒷면의 글
정상 관광을 마치고 하산길이다.
구름위에서 신선으로 지내다 하산한다.
하늘전선에 대롱대롱 매달려 내려간다.
통영시가지가 안개에 덮혀 뿌옇게 보인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통영시가지를 가까이...
안전하게 데려다 준 미륵산 케이블카여! 안녕!
해 반짝 뜬날 내 다시 너 만나러 오마.
그땐 햇님의 친절한 안내로 아름다운 통영에 또 반할테지......
미륵산 정상을 마지막으로 4박5일간의 여정을 모두 마칩니다.
자칫 돌아서 갈 뻔한 미륵산 케이블카를 순간의 판단으로
시마을님께 보여 드리게 되어 여간 기쁘고 흡족하지 않습니다.
연화도 역시도 그랬습니다.
모두가 신의 축복이라 생각되어 더욱 조신한 마음이 되네요.
장장 4편으로 엮으면서 혼신을 다했지만 미흡한 점이 많을겁니다.
그래도 고운시선으로 바라봐 주심에 고맙기만 합니다.
보내 주시는 애정에 두손합장으로 감사드리면서..
늘 축복된 삶이길 바라옵니다.
感謝합니다
사진촬영및제작 찬란한 빛 s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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