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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승율 <8> 조용기 목사 해외성회 수행… 글로벌 선교 눈떠

열려라 에바다 2018. 6. 27. 08:38

[역경의 열매] 이승율 <8> 조용기 목사 해외성회 수행… 글로벌 선교 눈떠

굿피플 설립 제안 초대 총무 맡아, 곡절 끝에 ‘첫사랑 교회’ 떠나게 돼

 

[역경의 열매] 이승율 <8> 조용기 목사 해외성회 수행… 글로벌 선교 눈떠 기사의 사진
이승율 회장(오른쪽)이 1993년 3월 케냐 나이로비 성회를 마치고 귀국길에 경유한 프랑스 파리에서 조용기 목사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입교하면서 아내가 봉사하고 있던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에 가입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었다. 이 단체는 조용기 목사의 해외선교를 지원하고 현지에서 봉사하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연합회에서 나의 멘토 역할을 하신 분이 이병훈 장로다. 서울시버스조합 이사장을 지낸 이 장로는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했다. 나는 이 장로를 도와 전국대회를 개최했다. 전국대회는 1993년이 처음이었다. 그 전해 8월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전국대회에 참석한 후 이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1995년 8월 경북 경주 보문관광단지에서 개최한 전국대회에선 특별한 행사를 준비했던 기억이 새롭다. 1000여명의 순복음실업인이 그해 3월 개교한 한동대를 찾아가는 일종의 ‘성지 방문’ 기획이었다. 갓 태어난 하나님의 대학이니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격려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일행은 점심값 1000만원을 아껴 헌금 명목으로 학교에 기부했다.

조용기 목사를 본격 수행한 것은 내가 해외선교지원팀에 발탁되면서다. 남미 유럽 아프리카 동남아와 인도 러시아 호주 일본 등 웬만한 곳은 다 조 목사를 수행해 방문했다.

가는 곳마다 조 목사의 영적 능력,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 수많은 기적과 이사를 보면서 나의 굳었던 심령은 하나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이 내면의 공백 상태에 채워지니까 스프링처럼 내 마음도 하늘로 튀어 올라갔다. 나는 이것을 영적 비상(飛翔)이라 생각한다. 내 영안이 세계화된 것이다.

하지만 항상 아쉽게 느끼는 부분이 있었다. 중국과 이슬람 국가에서는 성회를 열지 못했다. 궁리 끝에 나온 방안이 비영리기구(NGO) 굿피플(Good People) 설립이었다.

이 길을 이용하면 조 목사도 총재 자격으로 선교제한 지역을 방문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 목사는 내가 제출한 굿피플 설립기획서 표지에 ‘good plan’이라고 적었다.

굿피플 초대 총무는 내가, 초대 회장은 이 장로가 맡았다. 지금 굿피플은 연간 예산 100억원을 소화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중국 인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교육 의료 환경개선 등을 위해 해외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북한 접경지역인 중국 훈춘에 병원을 세워 조선족과 북한 주민에게 의료 지원을 하는 발판을 만들기도 했다.

나와 이 장로가 임기 3년을 마치고 났을 때였다. 조 목사는 2002년 목회 생애의 마지막 개혁을 실시할 기회라면서 당시 장로회장이던 이 장로를 개혁위원장으로 세우고 나를 포함해 5명의 개혁위원을 추대했다.

6개월 후인 11월 개혁백서가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거센 저항을 받았다. 비난과 모함이 들어왔다. 결국 이 장로가 장로회장과 개혁위원장을 그만두고 나서야 봉합됐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촛대가 옮겨지는 듯한 슬픔을 느꼈다.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지난 12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12월이 되자 그동안 내가 했던 교회 활동을 모두 다 정리했다. 다양하고 압축된 영적 자양분을 받은 첫사랑의 교회인데 떠나는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이 장로는 나를 이해해 주었기에 막지 않았지만 아쉬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내비쳤다.

정리=정재호 선임기자 jaeho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