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을 신의 섭리라고 하는 걸까. 나는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이상한(?) 크리스천 지도자를 한 분 만났다.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첫해인 1990년 10월 초 베이징아시안게임 기간이었다.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 골프장 사업을 하기 위해 오가던 때였다. 당시 중국에는 골프장이라고 해봐야 베이징과 상하이에 일본인들이 운영하고 있던 두 곳뿐이었다.
칭다오시와의 협상이 농민들 토지보상 문제로 난관에 부닥쳤다. 수소문 끝에 국가주석 양상쿤의 아들 양샤오밍을 만나기 위해 베이징의 한 호텔에 갔다. 그런데 그 이상한 한국인과 약속이 중복돼 있었다.
김진경 옌볜과학기술대 설립자 겸 총장과는 그렇게 처음 마주했다. 먼저 면담하시라고 양보하고 옆자리에서 경청했다. 어깨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나를 세차게 흔들었다.
“제가 미국에 있는 재산을 팔아 옌지에 기술전문대학을 하나 세우려 합니다. 과학기술 분야 교육을 통해 중국을 돕고 우리 동족을 깨우치는 일에 봉사하고 싶습니다.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내가 하는 일에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귀동냥으로 들으니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유럽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20년 넘게 생활한 시민권자였다. 대학교수를 지내고 사업도 해서 비교적 크게 성공했다. 그는 1986년 중국사회과학원 초빙교수로 베이징에 와 있는 동안 조선족들이 사는 옌지·지린·창춘·하얼빈 지역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농업학교를 설립·운영했던 선친의 유업을 좇아 이 지역에 고등교육기관 설립 계획을 갖게 됐다.
그는 1989년 5월 지린성과 옌지시 정부의 협력하에 중외 합작 형태로 ‘옌볜조선족기술전문대학’(1년 후 옌볜과학기술대로 승격) 설립을 허가받고 학교 부지까지 정해 놓은 상태였다. 내게 비친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뭔가를 구하러 온 사람이 아니었다. 돈벌이가 부끄러울 이유는 없었지만 내겐 그와 같은 멋진 꿈이 없었다. 그 점이 나를 부끄럽게 했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서울에 돌아온 뒤 나는 잠시 내 삶의 달음박질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나는 무엇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왜 살고 있는가.’
그러다 2주 후 서울에 출장 온 김 총장을 찾아가 상의한 끝에 대학 설립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생애 처음 내 모든 것을 던져도 좋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김 총장은 서울에서 옌볜과기대 건립후원회를 결성하고 모금 활동에 들어갔다. 나는 그의 요청으로 남서울교회 당회장실에서 열린 후원기도회에 참석했다. 홍정길 목사를 그때 처음 만났다. 이어 고 옥한흠 목사, 곽선희 목사가 이 일에 깊이 관여했다.
김 총장은 월례 후원기도회를 맡아달라고 내게 요청했다. 매월 마지막 주 열리는 기도회는 무려 10년간 이어졌다. 이 기도회를 통해 심도 있는 영성훈련을 받게 된 셈이다.
1990년대 후반 조용기 옥한흠 곽선희 목사와 김진경 총장 네 분이 만나는 조찬 모임을 주선했다. 원로목회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 모임은 그 후 대형교회 간 순회설교의 계기가 됐다. 신앙생활 초기에 이런 분들과 만난 것은 참으로 귀하고 영광된 인연이었다.
정리=정재호 선임기자 jaehojeong@kmib.co.kr
[역경의 열매] 이승율 <12> 인생 의미 깨닫게 해 준 김진경 총장과의 만남
옌볜과기대 설립 순수한 뜻에 감동… 월례 후원기도회 맡아 모금 활동
이승율 회장(오른쪽)이 2001년 12월 김진경 옌볜과기대 설립자와 평양과기대 설립 협의차 평양을 방문,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은 당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조영화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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