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목의 성경 현장] 갈릴리 뉴스의 현장…가버나움Ⅰ(갈릴리)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⑤
갈릴리 호수에서 발견된 예수님 시대의 부두는 모두 16개로 밝혀졌다(멘델 눈의 저서 The Sea of Galilee and its Fishermen in the New Testament). 아마도 호수 주변으로 최소 16개의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85~6년 극심한 가뭄으로 갈릴리 호수의 수위가 뚝 떨어졌다. 그때 기노사(Ginnosar) 근처 호숫가에서 2000년 동안 진흙 속에 묻혀있던 예수님 당시 배가 발견됐다(길이 9m, 넓이 2.5m, 높이 1.25m). 예수님 당시에 호수와 배는 주변 마을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갈릴리 호수를 다룰 때 언급했듯이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과 관련하여 복음서에 등장하는 도시나 마을 이름은 고작 5~6개 정도다. 그중에서 예수님은 사역의 거점으로 가버나움을 선택하셨다. 마태가 가버나움을 예수님의 고향으로 부른 것도 이곳을 중심으로 사역하셨기 때문일 것이다(마9:1). 그러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시고 갈릴리 호숫가에 있던 가버나움을 사역의 거점으로 사용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 사역과 관련하여 가버나움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지리적 접근이 중요하다. 가버나움은 호수 북쪽 해변을 따라 300m 길게 펼쳐진 도시인데 상부 요단강 서쪽 편에 위치해 있어 헤롯 안티파스의 관할 지역 내에 있었다. 처음 가버나움 유적지를 방문해 그곳에 전시된 유물들을 찬찬히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하나의 빛으로 다가온 것이 돌기둥이었다. 이 돌기둥은 1975년 가버나움 회당에서 북동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로마 시대(주후 2세기) 이정표였다. 이 이정표가 빛으로 나에게 다가온 이유는 이것이 ‘비아마리사’(Via Maris)를 나타내는 도로 표지판 역할을 했다는 데 있었다. 가버나움에 대한 나의 모든 의문이 한 번에 풀리는 순간이었다.
경험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땅이나 역사를 공부하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지형과 도로를 이해하는 것인데 도로 가운데서도 비아마리사가 가장 중요하다. 비아마리사는 고대부터 이집트의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연결하는 정치, 경제, 군사, 행정의 중심 도로다. 이스라엘의 갈릴리 지방을 관통한 다음 지중해변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중요한 도로가 갈릴리 호수 북쪽 가버나움을 통과한다. 가버나움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도로상에 있는 도시였던 것이다.
가버나움은 300m 정도 해변을 따라 길게 형성되었다. 주변에 있던 벳새다(동쪽) 마을이나 고라신(북쪽) 마을과 비교하면 가버나움은 매우 규모가 컸던 도시였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의 모양과 크기를 보면 도시 건물들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했는지 상상이 된다. 또한 이 도시에서 동쪽으로 3㎞ 떨어진 지점에 타브가(Tabga), 서쪽으로 5㎞ 떨어진 곳에 상부 요단강이 있는데 이 두 지점 사이(갈릴리 호수의 북쪽 해안 8㎞)가 어업 활동이 가장 쉽고 동시에 부두가 발달했던 곳이었다. 더 나아가 발굴된 유물, 특히 동전과 그릇을 보면 가버나움이 상부 갈릴리, 골란고원, 시리아, 페니키아, 소아시아, 그리고 사이프러스 지역 등 북쪽 지역들과 상업적으로 매우 밀접한 교류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북쪽에서 상업과 어업의 중심지로 주변 지역 사람들이 몰려드는 도시였던 셈이다.
이런 가버나움의 위상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예수님 사역 가운데 발견된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세리장 마태를 만나셨고 그의 집에서 음식을 드셨다. 이 사실로 보면 세리장 마태는 분명히 가버나움에 사는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마9:9-10).
또한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셨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마8:5-13)
이 사건은 백부장이 가버나움에 거주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세리장 마태와 로마의 백부장이 가버나움에 거주했다는 것은 도시로서 가버나움의 기능, 역할, 위상을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것들이다. 가버나움은 비아마리사가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에 있었으며 동시에 갈릴리 북쪽에서 가장 커다란 행정, 상업의 중심 도시로서 원근 각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곳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고치면 그 소문은 해가 지기 전에 갈릴리 전 지역, 모든 가정과 사람에게 순식간에 전파되었다. 당대에 그 어떤 매체도 이 역할을 대신할 수 있던 것은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을 두루 거처 벳새다 들녘에 이르셨을 때 어린이와 여자를 제외하고도 50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쫓아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버나움은 비아마리사가 통과하는 교통의 요지다. 이곳을 지나는 상인들이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는 예수님을 보았다면 그 소문이 남쪽으로 애굽까지 그리고 북쪽으로 시리아와 페르시아까지 퍼져 나갔을 것이 분명하다. 세상 그 누구도 이들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을 거처 수리아를 지나 거라사에 이를 때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사람이 4000명이나 되었다. 이쯤 되면 예수님이 가버나움을 사역의 거점으로 삼으신 이유가 확실해진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갈릴리 지역, 더 나아가 전 세계를 향한 생생한 뉴스의 현장으로 사용하셨던 것이다.
*디베랴(Tiberias)
디베랴는 주후 18년 헤롯 안티파스가 세운 갈릴리 지방의 행정중심도시였다.
*세리장(Tax Collector)
성경 시대 로마 정부의 세금 징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예수님 당시 세리는 두 종류로 구분되었다. ‘갑바이’(gabbai)는 일반세를 징수하는 세리였으며, ‘목케스’(mohes)는 관세를 거두어들이는 세리로 마태가 이 목케스에 해당하는 세리였다. 세리는 원래 세금 이상의 액수를 거두어 그 차액을 자신이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리를 죄인(마9:10, 11:9), 창기(마21:31), 이방인(마18:17)과 같이 취급하고 비난했다.
*백부장(Centurion)
100명의 군인을 거느리고 있는 로마의 지휘관을 말한다. 로마 군대는 군단들로 조직됐다. 각 군단은 6000명 정원의 남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또한 각 군단은 100명의 군인을 지휘하는 60명의 백부장들과 더불어 6개의 보병대를 가지고 있었다. 백부장은 로마 사회에서 좋은 직업으로 인정되었으며 정상적인 근무연한은 20년이었다.
김상목 성경현장연구소장(국민일보 성지순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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