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의 뜻...
“프라우테스”, 야성적 본성을 길들이다.
온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형용사로는 ‘프라우스’, 명사로는 ‘프라우테스’ 입니다. 이것은 야생동물의 성품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서부영화에서 보듯이 카우보이들이 야생마를 길들이는 장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면 로데오라고 해서 거친 들소를 길들이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결국 온유란 거칠고 난폭한 성품이 길들여져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바뀌게 된 것을 말합니다.
‘즉 야성은 살아있지만 완벽히 길들여진 성품’을 말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 강한 성품을 주인만을 위해서 쓰기 때문에, 뛰어 가라고 주인이 박차를 가하면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적진 속으로라도 뛰어갑니다. 자기 본심으로는 전혀 안 가고 싶겠지만, 그래도 갑니다. 반대로 아무리 더 달리고 싶다 해도 주인이 고삐를 당겨서 서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섭니다. 이 온유함은 철저하게 주인을 위한 성품이기 때문에, 때론 산들바람처럼 부드럽지만 때론 폭풍처럼 거셉니다. 이것이 프라우테스라는 단어의 본 의미입니다.
또 성경에서 사용되는 온유하다는 뜻은 무기력이나 연약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온유는 타협에 능해서 이러나저러나 다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 이러한 태도를 나타내는 단어는 아닙니다. 당시 사람들은 환자가 약을 먹고 고열이 정상으로 돌아온 상태나, 뜨거운 바람이 불다가 어디선가 상쾌한 바람이 불어올 때 “프라우스(온유)”라고 했습니다. 이같이 온유는 강한 것을 잠재우며,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끝까지 이기고 난 사람에게 주어지는 아름다운 표현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는 “사람은 누구나 화를 낼 줄 안다. 그러나 정당한 대상을 향하여 정당한 정도와 정당한 방법으로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씨를 뿌리는 농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비유는 씨 뿌리는 비유가 아니가 밭의 비유 즉 사람의 마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옥토는 어떻게 만들어 집니까? 농부가 땅에 퇴비도 주고, 거름도 주고, 때로 깊게 밭갈이도 해서 이것저것이 다 어우러질 때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옥토는 세상의 쓸모없고, 냄새나고, 거친 것들을 다 받아들여서 흙속에 오래 품고 있으면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온유함은 나와 경험이 다르고, 지적 수준이 다르고, 생활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을 다 품고 받아들일 때 온유한 마음이 만들어 지게 됩니다.
온유한 사람은 사람을 차별해서 받아들이지 않고 다 수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가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온유함은 우리에게서 나올 수 있는 천성적인 성품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로 배우고 훈련해야 할 성품입니다.
야고보서 1:19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저 말하고 듣는데서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하게 말합시다. 기도 많이 하고 묵상을 많이 하고 말해야 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안됩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면 안됩니다. 들을 때도 온유해야 합니다. 칭찬한다고 좋아하지 말고, 싫은 소리한다고 화를 내거나 흥분하거나 원수 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온유한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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