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설(Millennium: mille+annus; Chiliasm: Chilia+ete)
천년왕국설(Millennium: mille+annus; Chiliasm: Chilia+ete)
무천년설(Amillennialism),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이상 세 가지 천년설은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된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에 따라서 구분된 주장이다. 여기서 전, 후, 무는 천년의 시기가 ‘앞에’ 혹은 ‘뒤에’, 또는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Millennium은 ‘천년왕국’이라는 의미를 갖는 신학용어인데 특정한 경향에 치우친 주장이 되면 millennialism(천년왕국주의, 천년왕국설)이 된다.
이때 ‘천년동안의’라는 의미이면 Amillennialism이, 전기에 출현한 설을 Premillen-nialism, 후기에 출현한 설이 Postmillennialism이 된다.
이상 세 가지 설은 요한계시록 20:1-8절까지에 나타난 ‘천년’이라는 시간과 그 시간 동안의 통치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나뉘어진다. 이와 함께 구약 이사야서에 기록된 다음 두가지 구절들이 천년왕국과 연관된 것으로 각 천년설들의 근거 주장 혹은 해석에 적용되고 있다.
요한계시록 20장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7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이사야 11장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65장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 세에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
21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22 그들의 건축한 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23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
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무천년설(Amillennialism)
무천년설은 주후 4세기부터 교부 어거스틴의 주도하에 널리 인정되었다. 이전 시기까지는 전천년설이 지배적이엇는데 점차 쇠퇴하여 431년에 개최된 에베소 종교회의에서는 문자적 천년왕국이 있다는 전천년설이 미신으로 정죄되었다. 이후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천년설이 전승되어 오고 있으며 어거스틴 이후, 존 칼빈을 이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윌리엄 콕스(William Cox), 윌리엄 헨드릭슨(William Hendriksen),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레온 모리스(Leon Morris),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 등에 의해 전승되고 미국 칼빈신학교 조직신학교수였던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와 그의 제자 엔토니 후크마(Anthony Hoekema)에 의해 확고하게 개혁신학의 종말론 해석입장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무천년설의 주장
무천년설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을 해석함에 있어서 점진적인 평행해석법(Progressive Parallelism)을 주로 따르고 있다. 점진적인 평행해석법은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일곱부분으로 구분짓고 각 부분안에는 개별적인 동시에 전체적으로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점진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그중 마지막 부분인 일곱 번째 부분은 세상 끝에 있을 최후 심판과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긍극적인 승리, 새롭게 된 새하늘과 새땅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무천년설이 갖는 요한계시록 20:1-8절의 해석
1-3: 사탄의 결박
4-6: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와 순교자들의 통치기간
7-8: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해 시작된 사탄의 치명적 패배, 1-3절의 부연설명
이와같은 해석에 따르면, 1-3절의 사탄의 결박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한 것이다. 창세기 3:15절의 예언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다. 사탄은 결박되었으며 십자가 사건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와 순교자들의 통치기간은 시작되었다. 만약 이 기간이 문자적으로 일천년이었다면 첫 일천년이 끝났을 때 사람들의 생각하는 종말은 이루어져야 했다. 무천년설은 이 기간을 상징적인 천년으로 본다. 이 상징적 천년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을 의미하며 사탄에 대한 최후의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사탄의 무저갱에 결박된 시간으로부터 잠깐 놓이기 전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이 기간은 바로 마태복음 28:19절의 복음전파 명령이 수행되는 기간이다.
첫째부활
무천년설에 따르면 첫째부활은 신자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루어지는 중생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하였기 때문에 이후에 있을 둘째 사망이 신자들에 대한 영향력이 없는 것이다.
무저갱과 순교자들의 통치
무저갱이 사탄의 최후의 심판을 받는 장소라는 것을 무천년설은 부정한다. 본문이 의미하는 무저갱은 계시록 20:10, 14-15절에 나타난 불못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은 분명 이 상징적인 천년의 기간이 끝난 이후에 이루어진다.
문자적 천년설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4-6절이 말하는 순교자들의 통치가 현실적인 지상이 아닌 천상임을 강조한다. 이 통치는 지상 통치의 의미가 없다. 또한 둘째 사망역시 14절에 있는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는 구절에 근거하여 육체적 부활이 있은 후의 영원한 형벌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이사야서에 대한 해석
전천년설은 이사야 11:6-9절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상에 회복될 다윗왕국의 성격과 범위로 보는데 그 근거가 이리, 어린양, 표범, 송아지, 새끼염소, 어린사자는 지상의 생물이지 천상의 피조물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무천년설은 이 본문은 하나님의 재창조가 완성된 새 하늘과 새 땅의 상태를 묘사하는 상징적 묘사라고 해석한다.
또한 전천년설은 이사야 65:17-25절을 문자적 천년왕국의 상태를 묘사한다고 해석하나 무천년설은 이 본문이 상징적인 천년의 기간을 의미하지 않으며 이후에 있을 영원한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19절에서,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인데 이는 계시록 21:4절과 잘 조화되기 때문이다.
무천년주의자들의 보편적인 주장
a. 그리스도의 초림은 하나님의 나라를 그의 인격과 사역에 가져왔다고 믿는다.
b.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은 창세기 3:15절의 성취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이며 동시에 미래적인 것으로 믿는다. 즉,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하였으나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c. 최후의 날은 아직 미래에 남아있지만 현재 종말이 시작되었다. 최후의 날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으므로 종말 역시 이에 포함된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그러나 아직의 긴장 상태에 있듯이 최후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 종말은 주후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시작되었다.
d.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사탄의 활동이 제한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존재하는 현재를 의미한다. 즉, 신약시대(현재)를 의미한다.
e. 그리스도의 재림은 단 한번 있을 유일한 사건이다.
f.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신자들과 불신자들의 보편적인 동시의 부활을 믿는다. 그리고 부활시에 갑자기 변형하여 영화로운 몸을 입는다.
무천년설의 취약점
첫째 부활, 둘째 부활을 설명할 틀이 빈약하여 에베소서 1장을 강조(신자의 중생), 이 두 부활은 순서대로 이루어지는, 연대기적인 1차 2차 부활이 아니다(개인의 구속사적 순서의 의미).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전천년설은 아래의 두 가지 설로 구분된다.
1. 역사주의적 견해(Historical View)
- 기본적으로 세대주의적 견해와 동일하나(7천년구조) 문자적 천년으로는 보지 않음.
2. 세대주의적 견해(Dispensational View)
- 세대주의적 견해는 인류 역사 즉,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앞으로 잇을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를 7천년간의 시대로 보고 그것을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천년왕국 1천년으로 본다. 세대주의는 ‘문자적 시각’으로 날짜를 계수한다.
7천년
구약 4천년의 기간 신약 2천년의 기간 천년왕국
이중 천년왕국을 또 다시 다음과 같은 연대기적 개념으로 생각한다.
공중재림 지상재림 이스라엘의 회복
7년 1천년
휴거 7년 대환란 1천년간의 지상 통치기간
1차 부활 2차 부활
이사야서에 대한 해석
a. 이사야 11:6-9절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상에 회복될 다윗왕국의 성격과 범위로 보는데 그 근거가 이리, 어린양, 표범, 송아지, 새끼염소, 어린사자는 지상의 생물이지 천상의 피조물이 아니기 때문에, 왕국은 지상에 건설될 것이다.
b. 이사야 65:17-25절을 천년왕국의 상태를 묘사한다고 해석한다.
전천년설의 취약점
a. 성경은 공중재림, 지상재림을 언급하지 않음.
b. 재림시기는 성경이 숨기고 있으며
c. 7천년이라는 시간체계는 현재 발견된 과학적 근거에 모순된다. 인류역사는 7천년보다 더 길다.
d. 재림의 임박성을 강조함으로 경건성은 있으나 내세 지향적 성향이 강해 현실세계에 대한 책임이 없고 지나치게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음
e. 이단 종말론의 모태가 되었음(시한부 종말론, 다미 선교회 등)
f. 휴거 상태로 지상에서 이루어질 7년간의 대환란을 피한 후에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는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 전천년설은 비관주의적 역사관으로 시한부 종말론의 틀이 되었다. 오랜 어려움으로 내세에 대한 열망이 높은 한국교회의 상황과 잘 맞아서 많이 받아들여졌다. 신앙열정은 있으나 사회 역할에 소홀하며 1980년대를 기점으로 국내에서 무천년주의적 입장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후천년설은 역사적 낙관론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어거스틴의 신학을 기초로 출발했다는 부분에서 무천년설과 그 기원을 같이한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 심판 및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의 설립이 천년왕국의 끝에 가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와 같다고 본다. 그 나라가 전지구상에 그리스도의 영적 통치권을 확립한 후에야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게 될 것이다.
로마제국이 몰락해가던 5세기 경에 이 해석이 크게 대두되었다. 410년에 발생한 알러릭(Alaric)의 인도하의 고트족의 로마침공, 그리고 뒤이은 야만족의 북아프리카 침입등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 때 어거스틴은 세상나라는 멸망해도 그리스도께서 통치하는 교회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또 교회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는 ‘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을 저술하였다.
이 책이 출간된 후 로마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가 세상나라에 대한 통치권을 갖는다는 교리를 제정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지상에 존재하는 가시적인 교회가(단적인 예를 들어 교황) 실제적인,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세속적인 수단과 방법을 통한 교회의 세속통치는 한계를 만나게 되었고 신학적 이해자체도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천년설이 갖는 확고한 견해는, 교회는 점진적으로 수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그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며 결국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가 점점 진행될수록 교회의 영향력이 커지고 궁극적으로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 후천년설의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이다.
후천년설이 갖는 요한계시록 20:1-8절의 해석
요한계시록 20:1-8절의 ‘천년’은 문자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상징적 의미인 이 ‘천년’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재림 때까지 진행된다.
따라서 첫째 부활은 영적인 것이었고, 사탄은 ‘무저갱’에 이미 어거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통치는 날로 확고해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고전 15:25) 교회의 확장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어거스틴의 신학을 이어 후천년설을 발전시켰다. 이후 18세기에 이르러 후천년설은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18세기 유니테리안 주석가인 다니엘 휘트비(Daniel Whitby)는 ‘첫째 부활’을 죽은 자들의 육체적인 부활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순교한 자들의 영적 부활이라고 했다. 또한 전통적으로 지지받았던 “천년왕국이 이미 역사 안에 들어와 있다: 시작되었다”는 해석을 거부하고, 천년왕국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천년왕국이 시작되기에 앞서 교황권이 이교권을 석권하는 교회적 승리가 성취되어 전세계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에 비로소 사탄이 더 이상 사람을 괴롭히지 못하는 소위 ‘천년왕국’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평화의 통치 기간 후에 사탄의 반역(놓임)이 있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이 오며 그 후에 영원한 나라가 임한다고 믿는다.
후천년설의 문제점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어느 때이다라고 단정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신약성경의 여러 구절은 이를 분명히 보여주는데, 예컨대, 살후 2:1-5에서 바울은 주의 날이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배교하는 일과 불법의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벧후 3:3-10은 이와는 반대이다. 즉, 주의 재림이 어떤이의 더디다함과 같이 더디지 않고, 도적같이 임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 주장은 1815년부터 1914년(나폴레옹 전쟁 종결 이후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까지는 역사의 흐름과 잘 조화되었다. 세상은 평화로웠고, 그것은 바로 교회의 영향력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세계 1,2차대전과 베트남전을 비릇한 수많은 분쟁은 역사가 점차 평화를 향해 나아가며 이 평화가 궁극적으로 천년왕국의 도래를 가져온다는 주장과 일치하지 못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소위 기독교 국가들끼리의 상호 파괴, 전쟁의 후유증으로 말미암는 선교열의 하락, 기독교 국가를 무신론 국가로 만들면서 8억의 백성을 철의 장막 속에 가두어버린 러시아의 공산화, 독일에서의 유대인 대학살과 러시아에서의 우크라이나 농부의 대학살 등은 인간 본성이 기독교인 되기를 거부하며, 천년왕국이 아직도 이르지 않았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최근 급진주의 신학자들은 역시 진화론을 수용하여 후천년설을 사회개혁이론으로 발전시키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육체적이며 실제적으로 있을 재림을 ‘평화’와 ‘정의’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역사와 사회의 진화(또는 발전, 진행)는 ‘평화와 정의 시대’로 향한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점점 향상되어 가는 것으로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걸림돌이 너무나 많다.
후천년주의자들의 보편적인 주장
a. 전천년주의와 같은 급진적인 역사의 진보는 거부하며, 역사의 점진적이며 완만한 진보를 주장한다.
b. 황금시대(교회의 절대통치기간)는 갑자기, 어느 특정한 날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c. 일상생활 전반에 새로운 변화는 모든 학문분야에서 결실할 것이다.
d.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의 영향력의 증대로 인해서 도래한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것이다.
e. 그리스도의 통치는 이 지상에서 이루어진다.
<출처: 한우리성경강해>
전천년 후천년 무천년 - 에스라 하우스
전천년설(Premillennialism)은 문자 그대로 예수께서 천년왕국 이전에 재림하신다는 학설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이 전천년설을 정통 교리로 받아들였던 바, 초기 기독교의 교부인 저스틴(Justin)과 사도 요한의 직제자인 이레니우스(Irenaeus)는 전천년설을 지지하였다.
한편 천년왕국 이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천년설은 대환난을 기준으로 삼아 '대환난전 재림론-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대환난후 재림론-역사적 전천년설'로 나누어진다.
먼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공중에 비밀 재림하시고 그때 신자들은 휴거되어 공중에서 7년간 혼인 잔치를 하며, 그 동안 지상에 남아 있는 유대인들과 불신자는 7년 대환난을 통과하고, 이 환난을 통해 유대인들은 대규모로 회개할 것이다. 이 7년이 끝나면 주님은 성도들과 함께 지상에 재림하여 천년왕국을 건설하신다.
그 다음 역사적 전천년설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천년왕국 전에 지상에 한번 재림하시고 공중과 지상에 두번 재림하시지 않는다. 교회는 유대인이나 불신자들과 함께 환난을 통과하며, 그 환난 후에 주께서 재림하시고 성도들은 그를 영접하기 위해 휴거되며 함께 지상에 내려온 다음에 천년왕국이 어떤 변형된 세계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다.
■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이는 천년왕국이 그리스도의 재림보다 앞선다는 주장이다. 그 내용과 종말의 시간적 순서와 약점 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후천년설의 내용. 세상의 종말, 즉 명확하지는 않으나 문자적 천년보다 훨씬 긴 세월 동안 복음이 전세계에 전파되어 결국 이 세상은 자동적으로 이상적인 낙원이 되고 상징적 의미의 천년왕국이 이 땅 위에 건설된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인류의 대부분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케 되고 복음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마태복음 28:18에 언급된 복음 전파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받으셨다는 말씀과 인간 역사 속에 메시야 시대가 올 것이라는 구약성경의 많은 예언들(사 2:2-4; 단 2:44)을 그 근거로 삼고 있다. 그들은 이 천년 왕국이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로 실현되거나 아니면 복음 전파가 점차적으로 확산되어 마침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견해에 의한 종말의 시간적 전개. 후천년론자들이 생각하는 종말의 시간적 전개는 다음과 같다.
1. 점진적 향상의 시대. 오순절 이후 악이 점차 감소되고 복음의 확장으로 선이 증가된다.
2. 천년왕국 기간. 복음의 확장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성도가 되는 이상적 시대이다.
3. 대배교와 환난. 천년왕국 말기에서 그리스도의 재림 사이에 사단이 잠깐 놓여나 활동할 것이다.
4. 그리스도의 재림.
5. 부활.
6. 심판. 악인들이 영원한 형벌에 들어간다.
7. 신천 신지의 건설.
후천년설의 약점. 후천년설은 무천년설과 유사한 점이 많지만, '천년'이란 기간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갖는다. 즉 무천년설이 '1,000'이라는 숫자를 완전히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천년왕국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후천년설은 천 년을 문자적으로 생각하여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천년 동안 계속될 복음과 평화의 시대를 가리킨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후천년설은 크게 세 가지 약점을 지닌다.
첫째로, 후천년설에 의하면 세계는 복음의 평화가 넘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볼 때 그 반대의 현상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둘째로, 후천년설은 인본주의적 역사 낙관론으로서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진화론에 근거한 것으로 그 지지 기반이 약하다. 비록 하나님이 이 세대에 우리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지만 영광스러운 평강의 왕국이 역사 발전의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이 땅위에 건설될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셋째로, 후천년설은 성경에 분명히 언급된 중요한 사실 두 가지, 즉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을 다시리기 위해 육체로 재림하시리라는 것과 그의 강림 때 성도들이 육체적으로 부활하여 천년왕국에서 그와 함께 왕노릇하리라는 사실을 배제해 버린다.
이런 이유 때문에 후천년설은 최근에 가장 주의를 끌지 못하는 견해가 되었다.
■ 무천년설(Amillennialism). 문자적 천년을 부정하고 상징적 또는 영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이다.
이 학설의 내용 및 주장은 천년을 문자적으로 보지 않고 완전한 기간, 즉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재림 사이의 전체 기간을 상징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무천년설은 지상에서 실제로 천년왕국이나 혹은 전세계적인 평화와 의의 시기가 도래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천년왕국을 부인하고 이것을 상징적 또는 우화적인 것으로 처리해 버린다. 이들에 의하면, 본장에 언급된 사단의 결박은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한 성도들의 구원을 의미하며, 본서에 기록되어 있는 사단의 사역의 역사적 진행들은(12:10; 13:1-18; 14-17장; 19:11-21) 한 사건,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한 사단의 패배만을 계속적으로 반복 강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리겐(Origen)은 최초로 무천년 왕국설을 주장한 학자로서 천년의 기간을 신약 시대로 보았으며, 중세의 유명한 신학자 어거스틴(Augustine)은 천년왕국이 복음 시대 전기간을 의미한다고 보았고, 그리스도의 통치란 교회가 세속 도시를 영적으로 지배하는 것이라고 했다. 칼빈(J. Calvin)도 이 견해를 지지했으며, 렌스키(Lenski), 카이퍼(A. Kuyper) 등도 무천년론자이다.
시간적 순서들. 무천년론을 지지하는 견해에 의하면,
이 '천년기'의 역사, 즉 시간적 순서들은 다음과 같다.
1. 천년 왕국 기간. 사단이 결박되고(2, 3절) 첫째 부활(중생)에 참여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복음의 권위로 영적 왕노릇을 한다(5:10).
2. 대배교와 대환난. 천년기가 끝나갈 무렵 사단이 잠깐 놓임을 받아 대배교와 환난이 일어난다(3절).
3.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기가 끝난다.
4. 부활과 성도의 공중 영접. 이미 죽은 신자와 불신자가 심판을 받기 위해 부활하고, 부활한 성도와 생존한 성도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하여 공중으로 끌어올림을 받는다(살전 4:17).
5. 심판. 악인이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 곧 불못'에 던지움을 받는다(14절).
6. 신천 신지의 건설(21:1).
무천년설과 다른 학설과의 관계
이 견해는 종말에 세상이 극도로 타락한다는 점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세력이 등장한다고 주장한 점에 있어서는
전천년설과 일치하며, 천년의 기간이 재림 전에 있다고 주장한 점에서는 후천년설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약점을 지닌다.
첫째로, 계시록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사단의 사역은 땅으로 추방됨(12:10)
그리스도를 대적하려는 사단의 시도(13-17장)
그리스도의 재림(19:11-16)
사단의 멸망(1-3절; 19:19-21) 등의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사단의 사역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만 관련된다는 주장의 허구성을 보여 준다.
둘째로, 2절의 '사단의 결박'이 십자가상에서 이미 일어난 것처럼 보는데 현 세상은 결코 사단이 결박된 세상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벧전 5:8) 상황으로 인식된다.
셋째로, 이들은 본장에 언급된 첫째 부활(5절)이 성도들의 육체적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영혼이 거듭나는 중생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여 인류가 받을 심판의 이중적 성격을 부인하고 성경의 본래적인 의도를 왜곡해 버릴 위험이 있다.
세 견해의 특징과 주의점. 우리는 위에서 천년왕국에 대한 학설들을 살펴보았다.
이 세 견해들의 특징을 비교해 보기 전에
먼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전제와 원리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것만 알고자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둘째, 어느 학설을 지지하든 절대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어떤 신학 입장도 완전한 해답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넷째, 천년왕국'을 두고 그리스도인간의 교제에 금이 가서는 안 된다.
다섯째, 이 천년왕국설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여섯째, 숫자를 해석할 때에 너무 문자화하거나 또 문자적으로 볼 것도 상징화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7년이란 것은 성경 어디에도 없는 말인데 세대주의는 이것을 주장하고 있다.
일곱째, 세 가지 학설에서 공통적이면서 가장 주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사실이다.
여덟째, 재림의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깨닫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재림 사건을 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문에 나타난 묘사의 세밀한 해석보다는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천년왕국'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할 때 어느 견해를 지지하든 감사와 위로와 평안이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대사회의 죄 (창 10 : 9~10) (0) | 2020.08.30 |
---|---|
온유의 뜻... (0) | 2020.08.30 |
성경 속 식물 ‘우슬초’ (0) | 2020.08.30 |
[인 더 바이블] 걸림돌(stumbling block) (0) | 2020.08.29 |
[인 더 바이블] 갈대(papyrus) (0) | 2020.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