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 :14-20절
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저는 사역의 초장기부터 내세운 슬로건이 있습니다. ‘예배의 끝마침은 섬김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주일예배와 일상의 생활이 분리되어선 안됩니다. 주일에 은혜가 있다면 일상의 생활 예배와 일 예배가 동일하게 같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을 하게 되면 하나님을 우리에게 필요한 통찰력을 주십니다. 아무리 작은 일을 하더라도 기도와 감사로 올려 놓으면, 그 일이 하나님 앞에 예배요 제물이 됩니다.
신앙생활은 현장입니다. 좋은 믿음은 좋은 삶의 수준으로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이란 현실세계를 살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과정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른 다는 것은 삶의 현장이라는 현실세계에서 개인적인 신앙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현실의 문제는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파도처럼 덮칠 때가 있습니다. 어쩔 때는 마귀가 야수처럼 공격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땀 흘리는 대가가 사라질 때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겐 기회조차 박탈당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현실 세계가 우리를 힘겹게 하더라도 구원의 진리와 삶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성찬식’을 해왔습니다. 성만찬은 삶과 신앙의 일치하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찬식은 과거의 역사, 복음의 은혜를 실체감 있게 회상하는 동시에 그 기억들을 날마다 회복하는 일종의 도전장입니다.
성만찬은 성경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십자가와 부활에 초점을 맞추는 렌즈의 역할을 합니다. 기독교 공동체를 위한 정체성의 중심을 제공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공동인 교회와 성도들이 현실세계 역사에서 어떻게 확고하게 뿌리고 살아야 할지 강력하게 진술해주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두 가지 단어를 집중해야 합니다. ‘이 피는 새언약’이라고 했습니다.(20절) 15~16절에는 어떻게 새 언약이 되었는지 설명해 줍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구약은 신약을 상징합니다. 출애굽 때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 재앙이 넘어갔습니다. 그것이 유월절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유월절이 신약이 이 순간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실체는 유월절 어린양 예수로 말미암아 완성이 되었습니다. 구약의 유월절이 신약의 성만찬이 된 것입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에서는 세례로, 구약의 유월절은 신약의 성만찬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유월절의 은혜를 기억할 때마다 ‘자격이 없는 나를 새언약의 자녀로 불러 주심을 감사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계약의 자손이 아니라 언약의 자손입니다. 그 자손에게는 주위환경이 변하여도 이 언약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음 19절, ‘기념하라’ 는 말씀이 나옵니다. 기념하라는 뜻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근거는 유대인들이 매일 먹는 떡과 포도주(대중적, 생활현장)처럼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21세기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기억은 정신적인 되살림처럼 느껴지지만, 당시의 기억은 그 사건을 새롭게 경험하라는 뜻입니다. 나를 기념하라는 뜻보다는 행하라는 뜻이 더 타당합니다. 이것을 통해 원동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첫째는 습관적인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에 반역하는 모든 상태, 습관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안됩니다. 내 의지와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새언약을 주기길 기도하며 의지해야 합니다.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져야 합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순종을 우리 몸에 고삐를 물리는 작업입니다. 소를 제대로 몰기 위해선 고삐를 매야 주인의 의도대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고삐가 풀린다면 감당을 못합니다. 성찬식은 우리의 몸에 고삐를 물리는 것입니다. 몸에 기억하는 것입니다. 몸에 새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습관입니다.
여러분들이 성찬식에 참여할 때 살 깊은 주님의 사랑을 여러분의 몸에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습관적인 죄를 버리고, 새언약을 바라보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본 말씀은 오정현 목사의 주일설교(2003.11.16)를 요약,정리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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