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교회에 의한, 교회를 위한 음악

총신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 서현교회 협동목사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은 남북전쟁 중 게티스버그(Gettysburg) 전투에서 북군이 남군을 패배시키고 4개월 반이 지난 후인 1863년 11월 19일 목요일 오후, 그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인 펜실베니아주 게티스버그에 마련된 군인국립묘지 개장식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명연설을 했습니다. 2분 남짓한 이 연설은 인간의 평등과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천명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표어라고도 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끝을 맺습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링컨의 말을 빌려 교회음악을 정의한다면, 교회음악은 ‘교회의, 교회에 의한, 교회를 위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음악”이라는 명칭 자체가 함의하고 있듯이, 교회음악은 교회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으며, 교회가 중심이 되는 음악인 것입니다.
교회의 음악
교회음악은 교회의 음악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일까요?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교회에 대한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낱말은 “카할”로서 회중의 모임을 뜻하며, 신약성경의 헬라어 용어는 “에클레시아”로서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불러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즉, 교회란 어떤 건물이나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임, 곧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회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12은 시편 22:22의 인용으로서 교회의 의미에 대한 중요한 성경적 증거인데, 히브리서의 “교회”(에클레시아)라는 용어는 시편의 “회중”(카할)이라는 말을 대치시켜 놓은 것입니다. 그처럼 성경은 ‘교회는 곧 회중’이라고 확실히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라는 용어는 보통 “세상”이라는 말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교회의 음악은 세상의 음악과는 구별되는 음악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음악이 세상음악과 구별되는 본질적인 특징은 무엇일까요? 칼빈(John Calvin, 1509-1564)에 따르면, 그것은 “거룩함과 순결함”입니다. 본래 거룩성은 교회의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린도전서 1:2에 보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2:9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거룩한 나라”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통해서 고백하듯이 교회는 “거룩한 공회”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교회의 음악은 당연히 거룩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거룩함의 본질은 죄로부터의 단절이며, 이는 결국 순결함을 의미합니다. 즉 교회음악은 죄악의 요소가 없는 깨끗하고 순수한 것이어야 하며, 이것이 죄의 그늘 아래 있는 세상음악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점입니다.
한편, 교회의 음악이라는 말은 ‘교회에 속한 음악’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음악의 ‘내용’이 교회에 속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교회음악은 기본적으로 성경과 기독교 신앙, 그리고 성도들의 기독교적인 삶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음악의 내용은 본질적인 것으로서 시대에 따라 또 문화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교회에 속한 음악의 내용은 보편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몇 백 년 전에 유럽에서 작곡된 교회음악의 본래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한 감동을 그 시대, 그 문화의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적 내용에 따라 교회음악은 세상음악으로부터 구별됩니다. 비록 사용되는 음악 형식이 세상음악의 것과 별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또 그 내용을 표현하는 양식이 시대에 따라 또는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하더라도, 이 본질적인 음악의 내용이 교회음악을 기본적으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교회의 음악이라는 정의 속에는 세상이 아닌 교회 안에서 노래되고 연주되는 음악이라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히 2:12는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의한 음악
교회음악은 교회에 의한 음악입니다. 즉 교회음악의 주체는 교회, 즉 회중이며, 그들에 의해 창작되고 연주되는 음악이 교회음악인 것입니다. 이사야 43:21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 즉 교회가 하나님 자신을 찬송하기를 원하시며, 그것을 위해 그들을 지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며, 그것이 또한 우리 인생의 목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모세의 인도 아래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교회”(행 7:38)라고 부르면서, 그들이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넌 후에 하나님을 찬송한 사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 15:1). 또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행 2:46-47a)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교회에 의한 찬송들을 예시하면서 교회음악이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 하나님께 드려지는 음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즉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음악은 설혹 그것이 기독교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진정한 교회음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Amazing Grace”(나 같은 죄인 살리신)라는 찬송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어떤 가수가 불렀을 때, 그것을 진정한 교회음악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물론 없습니다.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적인 내용은 가졌으나 진정성을 결여한 하나의 노래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음악이 되기 위해서는 기독교적인 내용을 가진 음악이 교회에 의해, 즉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 드려져야 합니다. 로마서 15:6에 기록되었듯이, 이렇게 교회가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 교회음악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를 위한 음악
교회음악은 교회를 위한 음악입니다. 물론 교회음악의 일차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보여지듯이,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와 이웃과의 수평적인 관계가 신앙 안에서 결합될 때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마 22:37-40)에서도 확인됩니다. 따라서 교회음악에 있어서도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수직적인 면과 더불어 수평적인 어떤 본질적인 면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것은 바로 교회음악은 교회, 즉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음악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여 교회음악은 교회, 즉 성도들을 세워주는 음악인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루터와 칼빈을 포함한 종교개혁자들이 회중찬송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모국어로 부르도록 한 것은 교회음악이 성도들을 신앙적으로 세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깊이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즉 성도들은 교회음악을 듣고 노래하고 연주하면서, 때로는 상처받은 마음이 치료되는 것을 경험하며, 낙심되었던 상태에서 새로운 소망과 힘을 얻기도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다시금 도전을 받는 것입니다. 조핸슨(Calvin M. Johansson)은 이러한 교회음악의 역할에 대해 “음악사역의 얻기인 과업은 하나님의 성도들을 성숙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성숙한 교회음악은 그리스도인들의 성숙에 있어서 강력한 힘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에베소서 4:12에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교회음악은 결국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아름답게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휴스태드(Donald P. Hustad)가 지적한 것처럼, 교회음악은 “그것이 회중들에게 얼마나 잘 봉사했느냐에 의해 평가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 있어서 교회음악은 빈번하게 성도들 간에 갈등을 유발하고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부정적인 요인이 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음악이 왜 그처럼 역기능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많은 교회음악인들이 교회를 위한 음악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를 위한 음악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교회, 즉 성도들을 세우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지 않고, 음악을 더 잘 만들기 위해 오히려 성도들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교회음악이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사람들을 찌르는 가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모름지기 교회음악은 교회를 위한 음악이어야 합니다. 음악 자체보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고, 교회를 이루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해롤드 베스트(Harold M. Best)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먼저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지키는 법과 그들에 대한 사랑이 그들이 만드는 음악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음악은 교회의, 교회에 의한, 교회를 위한 음악입니다. 교회, 하나님의 백성, 즉 성도들은 교회음악의 중심이며, 교회음악을 규정짓는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교회음악이 성립될 수도 없고, 교회음악을 논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음악에 있어서 교회의 책임은 막중합니다. 교회음악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이끌어나가고,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교회, 즉 하나님의 사람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은 월간 『Choir & Organ』 2009년 3월호에 실린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기독교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교인이 되는 절차, 교인을 받는 절차 (0) | 2021.02.17 |
|---|---|
|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0) | 2021.02.16 |
| 지옥의 다섯 가지 고통 (0) | 2021.02.16 |
| 성령 세례와 불 세례의 차이 (0) | 2021.02.16 |
| 주님이 이땅에 오신목적 (0) | 2021.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