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 손바닥 위에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래를 두려워하기 마련입니다. 신자든 불신자든 말입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니면 지인이 내일 당장 운명을 달리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금 즉시 사고당할지 예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러니 미래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를 대비합니다. 저금하고, 보험을 듭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듭니다. 그걸로 미래에 벌어질지도 모를 일을 완전히 대비할 수는 없지만,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는 있습니다. 아니,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런 대비를 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은 안심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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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사람이 미래를 두려워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은 그러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래에 대해 초연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분은 점쟁이처럼 미래의 어느 한순간만 희뿌옇게 추측하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 모든 사람의 미래를 전부 아십니다. 정확히 아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봐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예상치 않은 일을 맞닥뜨려도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아시는, 우리의 미래를 정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놀란 가슴에 진정시켜 주실 테니까요.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나 평안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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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태도는 미래가 우리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심리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결국 그것은 미래, 곧 존재하지 않는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보다 존재하지 않는 신을 더 두려워하는 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합니다. 미래가 우리를 해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우리의 미래를 좌지우지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 손바닥 위에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분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참된 신앙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땅한 반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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