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자의 삶으로
마태복음5:1-12
오늘 본문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시는 팔복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제자들과 무리들을 모아놓고 설교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모아놓은 것이 산상보훈인데요, 그 산상보훈 중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팔복입니다.
8가지의 복을 말씀하시면서 이런 사람들이 진정 복 있는 사람들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신 팔복은 우리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고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피하고 싶고 원하지 않는 말씀들을 주님은 복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이 여기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부유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목마르지 않고 핍박을 받지 않는 것을 대부분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복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들은 그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두 가지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는 주님이 잘못 말씀하셨을 가능성이고요, 다른 하나는 우리가 복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것이 맞겠습니까?
주님께서 잘못 말씀하실 리가 없다고 하면 문제는 우리의 복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복이 주님이 말씀하신 복과 다르기 때문에 팔복이 조금 낯설게 들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복을 원합니다.
복을 바라지 않고 복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가 복을 원하고 복을 바라고 복을 누리기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행복하다고 말하는 분들은 적습니다.
좋아하는 만큼 복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복에 대한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세계 각국의 행복만족도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제일 못사는 나라로 평가받는 방글라데시가 행복만족도 1위였고 아제르바이잔이 2위였습니다.
5위안에 있는 나라들도 대부분 잘 사는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반면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미국은 40위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행복은 결코 경제적으로 잘사는 것과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복 있는 사람을 경제적인 부유와 사회적인 지위를 연관시킬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그렇게 복 있는 삶을 바라면서도 정작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행복이 없어서가 아니라 행복을 잘못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이 아닌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고 엉뚱한 방향에서 복을 찾기 때문에 복을 원하면서도 복 있는 삶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복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산상에서 하신 말씀 중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은 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복에 관한 말씀을 제일 먼저 하신 이유는 복이 진정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주님께서 바라시고 원하시는 삶이 복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도 멸망받기를 원하시지 않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복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독생 성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도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도 우리를 행복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귀한 말씀을 주신 것도 결국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섬긴다면 우리는 당연히 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우리 성도들이 행복한 신앙생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기를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좋은 인생, 더 좋은 신앙생활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복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먼저, 복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복이 있다고 표현된 말은 헬라어로는 ‘마카리오스’라고 하고 영어로는 blessed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보통 행복이라는 영어 happiness와는 거리가 있는 말입니다.
해피니스는 우연히 주어지다는 의미가 있는데 반하여 블레싱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여러분, 행복은 결코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8복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온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과의 관점으로 자신을 발견한 사람을 말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의 죄를 느끼고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하나님의 표준, 혹은 하나님의 가치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질 때 거기에서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행복하고 복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늘 정립해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잘 섬기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예전에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용기 장로에게 할머니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을 집사라고 밝힌 할머니는 장로님 뵙기를 30년이나 소원했다고 하면서 사정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자기에게 외아들 하나가 있는데 간절히 기도해서 장로가 되었고 그 장로 아들에게 아들 일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 예수님을 잘 믿고 복을 받았는데 다만 한 가지를 못 받아서 찾아 왔노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조금 가난해요. 다른 것은 다 받았는데 물질 축복을 못 받았어요.
우리 아들과 손자들이 물질 축복을 받도록 기도해 주세요.”
그때 김용기 장로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집사님, 제가 전국을 다 다녀 봐도 밥 굶은 장로는 없습디다.
하나님 믿는 것이 복이고 장로된 것 자체가 이미 복인데 무슨 복을 더 바랍니까?
장로가 할 일은 하나님 잘 섬기는 것입니다. 모든 복은 거기서 나와요” 했답니다.(이윤재 목사 설교에서 인용)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할 때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
모든 복은 만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복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8복에서 우리는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복은 밖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환경에서 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환경이 좋아야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주님은 환경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물질적 부유가 행복을 가져다주고 물질적 빈곤이 행복을 앗아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주님은 물질이 많든 적든 마음이 가난하면 행복하다고 말씀합니다.
핍박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핍박을 내가 어떻게 견디고 참느냐가 행복의 관건이라고 말씀합니다.
다툼과 전쟁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러나 다툼 중에서도 내가 평화하면 행복합니다.
어떤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 속에서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 나의 태도가 중요하고 행복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태도를 바르게 가지면 주어진 어떤 환경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고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뉴욕 경찰이었던 스티브 맥도널드는 거리를 순찰하면서 불량학생들을 조사하던 중 15살 소년이 쏜 총에 머리와 목을 맞게 됩니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목 아래가 마비되었고 평생 환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사고 당시 그는 결혼 8개월이었고 아내는 임신 6개월이었습니다.
신혼의 단꿈이 한 순간 악몽으로 변했지만 맥도널드는 그 소년을 용서합니다.
감옥에서 나오면 함께 전국을 돌면서 용서의 이야기를 전하자고 약속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출소한 소년이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책을 써서 용서를 선포했는데 그 책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 척추에 박힌 총알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 가슴에 피어나는 복수심이었다.
나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소년을 평생 원망하며 불행하게 살든지 그를 용서하고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든지.
나는 용서를 선택했고 그 순간 행복의 길로 접어들었다.”(이윤재 목사 설교에서 인용)
여러분,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외부의 누구 때문에, 외부의 어떤 환경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을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다른 사람 때문에, 외부 환경 때문에 불행해져야 합니까?
누구도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없고 누구에게서 상처를 받지도 말아야 합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증오하면 그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불행해집니다.
그래서 데일 카네기는 “분노심이란, 독약은 자신이 마셔놓고 남이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말했습니다.
행복은 나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복 있는 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어떤 외부의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그 환경을 극복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 번째로, 복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의 성품과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8복은 예수님의 성품이요 예수님이 살아가신 삶을 의미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겸손한 인격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애통하기 위해서는 교만한 자신의 인격이 깨어짐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온유한 자를 언급합니다.
그런데 온유와 겸손의 인격을 완벽하게 갖춘 모델 인격이 있다면 누구이겠습니까?
예수님입니다.
주님은 친히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팔복의 교훈을 따라가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에 초점을 맞추고 그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에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인격과 성품을 통하여 복 있는 자가 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이제는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주님의 삶을 살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골로새서에서 말씀한대로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입니다.(1:28)
주님의 삶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실 때 어떤 삶을 사실 것인가를 잘 보여준 삶입니다.
그 삶을 사셨을 때 주님은 가장 자유로웠고 가장 행복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삶을 배우고 그 성품을 따라 살 때 우리도 가장 행복하고 가장 복된 자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복 있는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복을 누리기를 원하시는데 오늘 주님을 믿는 우리가 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이 말씀하신 복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엉뚱한 것을 복으로 생각하고 엉뚱한 데서 복을 찾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방향을 주님의 8복에 맞추어야 합니다.
팔복을 통하여 주님의 성품을 배우고 주님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팔복을 통하여 여러분의 태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믿음으로 8복에 따라 살아갈 때 여러분들도 주님처럼 복 있는 자의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202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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