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라는 제목으로 성경말씀을 전하여 드리겠습니다.
왕상22:8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오히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왕상22:9 이스라엘 왕이 한 내시를 불러 이르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로 속히 오게 하라 하니라.
길(吉) = 길하다. 좋다. 상서롭다.
흉(凶) = 흉하다. 좋지 않다. 불길하다.
‘이스라엘 왕이’(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여호사밧에게’(남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말하되
“오히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상서로운=듣기에 좋은)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불길한=듣기에 좋지 않은)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아합 왕이 유다의 여호사밧 왕에게,
“미가야 선지자가 ‘내게’(아합 왕인 자신에게) 대하여 ‘길한’(듣기에 좋은=기분 좋은)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듣기에 좋지 않은=기분 나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라고 한 것은,
미가야 선지자가 “아합 왕이 원하는 것을 하라”고 하는 듣기에 ‘좋은’(길하게 여기는) 예언은 하지 아니하고,
“아합 왕이 원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는 듣기에 ‘좋지 않은’(흉하게 여기는) 예언을 하니,
미가야 선지자가 바르게 예언하는 말이 아합 왕이 듣기에는 ‘좋지 않으므로’(흉하므로=기분이 나쁘므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듣기에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자신이 듣기에 싫은 말을 하는 사람은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아합 왕 역시 미가야 선지자가 “아합 왕이 원하는 것을 하라”고 듣기에 좋게 예언하여 주었으면 미가야 선지자를 좋아하였겠지만,
미가야 선지자는 “아합 왕이 원하는 것을 하라”고 하는 듣기에 ‘좋은’(길하게 여기는) 말을 하지 않고,
“아합 왕이 원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는 듣기에 ‘좋지 않는’(흉하게 여기는) 말을 하였으므로 미가야 선지자를 미워한 것입니다.
아합 왕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나라 대다수의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이 듣기에 ‘좋게’(길하게) 설교하는 목사들이 있는 교회를 찾아가서 신앙을 하고,
자신들이 듣기에 ‘좋지 않게’(흉하게) 설교하는 목사들이 있는 교회는 멀리하고 외면을 합니다.
아합 왕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나라 대다수의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이 듣기에 ‘좋은’(길하게 여기는)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이미 ‘구원’(영혼 구원)을 받았다.”
“믿는 자들은 재물이 많은 부자들이 되어, 불신자들보다 잘 살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환난 전에 다 들림을 받는다.”라고
세상적으로 적당하게 설교하는 목사들이 있는 교회를 찾아가서 신앙을 하고,
자신들이 듣기에 ‘좋지 않은’(흉하게 여기는)
“기독교인들은 행함으로 ‘구원’(영혼 구원)을 받는다.(약2:14)”
“기독교인들은 마음속의 탐욕을 버리고 심령이 가난하여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환난 전에 들림 받지 못하고 환난에 다 들어간다.”라고
성경말씀으로 바르게 설교하는 목사들이 있는 교회는 멀리하고 외면을 합니다.
그러면 아합 왕이 미가야 선지자를 왜 미워하였는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왕상22:1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삼 년을 지내었더라.
이스라엘의 북쪽에는 [아람]이라는 큰 나라가 있었는데, 이스라엘 아합 왕 당시에 3년 동안 서로 전쟁을 하지 않고 지내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오래 동안 편안하게 살게 되면, 때로는 몸이 근질근질 거리기도 합니다.
왕상22:2 제 삼년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내려가매
왕상22:3 이스라엘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 왕의 손에서 취하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
왕상22:4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뇨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니이다.
길르앗 라못 = 갓 지파의 영토 안에 있는 성읍이며, 요단강 동쪽에 위치한 세 도피성 가운데 하나.
‘제 삼년에’(아람과 전쟁 없이 지낸 제 삼년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아합 왕)에게 내려가매,
‘이스라엘 왕’(아합 왕)이 그 ‘신복’(신하)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길르앗 라못’을 당시에는 아람에게 빼앗겼음)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 왕의 손에서 ‘취하지’(다시 빼앗아오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하고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말하기를
“‘당신은’(유다 왕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나를 도와서 아람의 군사들과 싸우시겠느뇨?”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아합 왕에게 대답하기를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유다 백성은) ‘당신의 백성’(이스라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상22:5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청컨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유다 왕인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 아합 왕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하신지’(길르앗 라못에 가서 아람의 군사들과 싸우기를 원하시는지, 원하지 않으시는지) 물어 보소서.”
이때에는 이렇게 하나님께 물어보고 했었지만,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인지, 성경말씀으로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왕상22:6 이스라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인쯤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저희가 가로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이스라엘 아합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인쯤 모으고 저희에게 말하기를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저희가’(거짓 선지자 사백 인이) 말하기를
“아람과 싸우러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소서. ‘주께서’(하나님께서) ‘그 성을’(‘길르앗 라못’ 성을) ‘왕의’(아합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아람과 싸워서 [길르앗 라못]을 빼앗아 오기를 원하는 아합 왕에게 북 이스라엘의 거짓 선지자 사백 인이,
아합 왕이 듣기에 ‘좋게’(듣기에 길하게) 여기는 아첨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아합 왕의 마음은 어떻게 해서라도 아람과 싸워서 [길르앗 라못]을 빼앗아 오려는 생각으로 가득한데,
이스라엘의 선지자 사백 인이
“아람과 싸우러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소서. ‘주께서’(하나님께서) ‘그 성을’(‘길르앗 라못’ 성을) ‘왕의’(아합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라고 하니,
아합 왕으로서는 얼마나 듣기가 ‘좋은’(길한) 예언이겠습니까?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기독교인들도 어떤 목사가 가르치는 말과 설교가 성경과 맞지 않아도,
자신들이 듣기에 ‘좋은’(길한) 말을 하면 “아멘”하고 무조건 ‘좋게 여기고’(길하게 여기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왕상22:7 여호사밧이 가로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유다 왕 여호사밧이 말하기를
“‘이 외에’(“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라고 말하는 사백 인의 선지자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하나님의 선지자가 ‘여기’(북 이스라엘에는) 있지 아니하니이까?”
유다 왕 여호사밧이 듣기에 ‘좋게’(길하게) 예언하는 사백 인의 선지자 외에 다른 선지자의 말을 들어보려고 한 것처럼,
지금의 기독교인들도 ‘어떤 특정한 계통’(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순복음교회, 성결교 계통 등)의 목사들의 말만 들어볼 것이 아니라,
저와 같은 목사들이 성경을 해석하여 전하는 것도 자세히 들어보고 참고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왕상22:8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오히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이스라엘 아합 왕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말하기를,
“오히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선지자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미가야 선지자는) ‘내게’(아합 왕 자신에게) 대하여 ‘길한’(듣기에 좋은=기분 좋은)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듣기에 좋지 않은=기분 나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
유다 왕 여호사밧이 말하기를
“아합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시고, 한번 불러서 어떻게 예언하는지 들어보기나 합시다).”
지금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이 듣기에 ‘좋게’(길하게=기분 좋게) 세상적으로 적당하게 설교를 하는 목사들은 좋아하지만,
자신들이 듣기에 ‘좋지 않게’(흉하게=기분 나쁘게) 성경말씀으로 바르게 설교하는 목사들은 미워합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말씀’(지금은 성경말씀)을 바르게 전한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비방과 조롱과 멸시와 핍박을 많이 받았으며,
더러는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성경말씀을 정직하고 바르게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은 목사들은,
이 시대의 세상적이고 부패한 교파의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비방과 조롱과 멸시와 핍박을 많이 받아야 할 것이며, 때가 되면 더러 죽임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왕상22:9 이스라엘 왕이 한 내시를 불러 이르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로 속히 오게 하라 하니라.
유다 왕 여호사밧이
“미가야 선지자를 한번 불러서 어떤 예언을 하는지 들어봅시다.”라고 하니,
이스라엘 왕이 한 내시를 불러 말하기를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선지자로 속히 오게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왕상22:10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문어귀 광장에서 각기 보좌에 앉았고 모든 선지자가 그 앞에서 예언을 하는데
왕상22:11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왕상22:12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더라.
이스라엘 왕 아합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왕복을 입고 각기 보좌에 앉았고 ‘모든 선지자가’(사백 인의 선지자가) 그 앞에서 예언을 하는데,
‘시드기야’(거짓 선지자인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하나님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고 하셨다.”하고,
그 외 ‘모든 선지자’(모든 거짓 선지자)도 ‘그’(시드기야)와 같이 예언하여 말하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하나님께서 ‘그 성’(‘길르앗 라못’성)을 ‘왕’(아합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아람 나라에게 빼앗긴 ‘길르앗 라못’을 아합 왕은 싸워서 되찾아 오려고 하는데,
거짓 선지자 사백 인이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싸우소서. 하나님께서 아람 군사들을 진멸하고 [길르앗 라못]을 되찾아 오게 하실 것입니다.”라고 하니,
아합 왕은 그렇게 하는 말이 얼마나 ‘듣기에 좋았겠습니까.’(듣기에 길하였겠습니까.)
이와 같은 이치로,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의 목사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듣기 ‘좋게’(길하게=기분 좋게) 설교를 하는 분들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듣기 좋게 설교를 하니 지금 듣기에는 좋겠지만,
그러나 듣기에 ‘좋은’(길한=기분 좋은) 설교만 듣다가 죽은 기독교인들의 영혼들이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왕상22:13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자가 일러 가로되 선지자들의 말이 여출일구하여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컨대 당신의 말도 저희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여출일구(如出一口) = 이구동성. 여러 사람의 말이 한결 같음.
미가야 선지자를 부르러 간 ‘사자’(왕상22:9 아합 왕이 보낸 내시)가 일러 말하기를
“‘선지자들의’(사백 인의 거짓 선지자들의) 말이 여출일구하여 ‘왕’(아합 왕)에게 ‘길하게’(듣기 좋게) 예언하니,
‘청컨대’(원하건대) ‘당신의 말도’(미가야 선지자 당신의 예언도) ‘저희’(사백 인의 선지자들)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아합 왕이 듣기에 좋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미가야 선지자가 아합 왕이 보낸 사자의 말을 좇아, 아합 왕의 앞에 가서 사백 인의 거짓 선지자들과 같은 듣기 좋은 예언을 하였다면,
‘옥에 갇히는 고난도 당하지 않고’(왕상22:26-27) 당장은 육신이 편안하였을 것입니다.
저도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을 바르게 전하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온갖 비방과 조롱과 멸시와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많은 목사들이 설교하는 것같이 저도 기독교인들이 듣기에 ‘좋은’(길한=기분 좋은) 말을 하면,
비방과 조롱과 멸시와 핍박을 받지 않고 이 세상에서는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왕상22:14 미가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미가야 선지자가 대답하기를
“하나님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하나님께서 ‘내게’(미가야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사백 인의 거짓 선지자들과 같은 말을 하지 아니하고, 나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내가 말하리라’(내가 바르고 정직하게 말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의 목사들도 미가야 선지자처럼,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한 성경말씀만을 바르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가야 선지자처럼 저도,
우리나라 기독교 목사들이 가르치는 ‘사람의 계명’{‘교파의 교리’(교파의 헌법)와 세상 철학과, 세상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와, 예화집에서 뽑은 예화 설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칼뱅의 기독교강요 등}은 가르치지 않고(마15:8-9,골2:8,20-23,호5:11,딛1:14,갈1:6-9),
오로지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성경말씀만을 미가야 선지자처럼 바르게 전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신4:2,18:20,갈3:15,계22:18-19,마28:20)
드디어 미가야 선지자가 아합 왕의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예언합니다.
왕상22:19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왕상22: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왕상22:21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왕상22:22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왕상22:23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미가야 선지자가 말하기를,
“그런즉 ‘왕’(아합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미가야 선지자가 영안이 열려서 보니) 하나님께서 ‘그 보좌’(천국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아람 군대와 싸우러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하나님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떻게 하겠느냐(네가 어떻게 아합 왕을 꾀어 죽게 하겠느냐)?’
한 영이 말하기를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사백 인의 거짓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꾀이겠고(너는 아합 왕을 꾀어 죽게 하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아합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하나님께서 ’왕‘(아합 왕)에게 대하여 ’화를‘(화를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합 왕이 자신을 살리려고 바르게 예언하는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흉하게’(듣기 좋지 않게=기분 나쁘게) 여겨서 듣지 않고,
[거짓말하는 영]을 받아서 자신을 죽게 하려는 시드기야와 거짓 선지자 사백 인의 말을 ‘길하게’(듣기 좋게=기분 좋게) 여겨서 듣고,
[길르앗 라못]을 빼앗아 오려고 아람 나라와 싸우러 갔다가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왕상22:34-35)
아합 왕은 아람 나라에게 빼앗긴 [길르앗 라못]을 아람 나라와 싸워서 빼앗아 오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거짓말하는 영]을 받은 시드기야와 사백 인의 거짓 선지자가 예언하는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하나님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라고 하는,
아합 왕인 자신을 죽게 하려는 말을 아합 왕이 듣기에 ‘좋게’(길하게=기분 좋게) 여겼으며,
아합 왕인 자신을 살리기 위하여 미가야 선지자가 바르게 예언하는
“[길르앗 라못]으로 아람 군대와 싸우러 올라가면 죽게 될 것입니다.”라는 말을
듣기에 ‘좋지 않게’(흉하게=기분 나쁘게) 여겨서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대다수의 기독교인들도,
세상적으로 적당하게 설교하여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넓은 문)으로 들어가게 하는 거짓 목사들의 말은,
아합 왕이 시드기야와 거짓 선지자 사백 인의 거짓말을 ‘좋게’(길하게) 여겨 들은 것처럼 잘 듣고,
성경말씀으로 바르게 설교하여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하는 참된 목사들의 말은,
아합 왕이 미가야 선지자의 바르게 전하는 말을 ‘좋지 않게’(흉하게) 여겨 듣지 않은 것처럼 잘 듣지 않습니다.
왕상22:24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왕상22:25 미가야가 가로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 날에 보리라.
[거짓말하는 영]을 받아 거짓 예언을 하는 거짓 선지자인 시드기야가 미가야에게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말하기를
“하나님의 영이 ‘나를’(거짓 선지자인 시드기야 자신을)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미가야 너와 같은 인간에게) 말씀하더냐?”라고 하니,
미가야 선지자가 말하기를
“’네가’(거짓 선지자인 시드기야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 날에 보리라’(아합 왕이 아람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아람 군대가 쳐들어온다고 두려워하며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날에, ‘내가 한 말이 맞다’는 것을 네 눈으로 보게 되리라).”
거짓 선지자인 시드기야가 참 선지자인 미가야의 뺨을 때리며, 미가야 선지자에게 “거짓말을 한다.”라고 하며 핍박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인 시드시야가 참 선지자인 미가야를 핍박한 것처럼,
기독교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시대든지 거짓 선지자가 참 선지자를 비방하고 조롱하고 멸시하고 핍박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시대든지 거짓 선지자가 많았으며, 참 선지자는 수가 매우 적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거짓말하는 영]을 받아서 거짓되게 전하는 거짓 목사들이 많을 것이며,
성경말씀을 바르게 전하려고 애쓰는 참 목사들은 당연히 적을 것입니다.
그리고 수가 많은 거짓 목사들이 수가 적은 참 목사들을, 당연히 비방하고 조롱하고 멸시하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시면, 기독교 역사의 이러한 진실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왕상22:26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미가야를 잡아 부윤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로 끌고 돌아가서
왕상22:27 말하기를 왕의 말씀이 이 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 하라.
부윤(府尹) = 한 부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던 우두머리.
이스라엘 아합 왕이 말하기를
“미가야 선지자를 잡아 부윤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로 끌고 돌아가서 말하기를,
‘왕의 말씀이’(아합 왕인 내가 말씀하시기를) ‘이 놈을’(미가야 선지자 이 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아합 왕인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거짓말하는 영]을 받아서 거짓 예언을 한 시드기야와 사백인의 선지자들은 아합 왕이 예언을 듣기 ‘좋게’(길하게=기분 좋게) 여겨서 평안하게 지내고,
바르게 예언한 미가야 선지자는 아합 왕이 예언을 듣기 ‘좋지 않게’(흉하게=기분 나쁘게) 여겨서 미움을 받아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에도 보시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에,
세상의 권세를 잡은 ‘유대교인’(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때리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런 일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이 세상에서 반복이 되는데,
말세의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하여, 하나님께서 성경을 일점일획이라도 어김없이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왕상22:28 미가야가 가로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찐대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또 가로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찌어다 하니라.
미가야 선지자가 말하기를
“아합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찐대, 하나님께서 ‘나로’(‘아합 왕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면 죽게 된다.’고 나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미가야 선지자가
“아합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찐대, 하나님께서 ‘나로’(‘아합 왕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면 죽게 된다.’고 나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라고 한 말은,
“아합 왕이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면 반드시 죽게 된다.”는 말인 것입니다.
아합 왕이
“길르앗 라못을 아람과 싸워서 되찾아 오고 싶다”는 욕심으로 인하여,
미가야 선지자가 아합 왕을 살리기 위하여 바르게 전하는 말을 ‘흉하게’(듣기 좋지 않게=기분 나쁘게) 여겨 듣지 않고,
[거짓말하는 영]을 받아 아합 왕을 죽게 하려고 거짓되게 예언하는 시드기야와 사백 인의 선지자들의 말을 ‘길하게’(듣기 좋게=기분 좋게) 여겨 듣고,
[길르앗 라못]으로 아람과 싸우러 올라갔다가 죽고 말았습니다.(왕상22:34-35)
지금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에게,
성경말씀에는, “탐심은 우상숭배이며”(골3:5) “우상 숭배자는 유황 불못에 들어간다.”(계21:8)라고 하였으니,
“기독교인들은 탐심을 버려야 유황 불못에 들어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다.”라고 전하면,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재물’(돈)을 사랑하는 탐심을 버리지 못하여,
이 말씀을 아합 왕처럼 듣기에 ‘흉하게’(좋지 않게=기분 나쁘게) 여기고 전혀 마음을 열고 들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성경말씀은 거짓이 없는 참된 말씀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성경말씀을 경외하고 좋은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마음속의 탐심을 버리라”고 하는 성경말씀을 아합 왕처럼 ‘흉하게’(좋지 않게=기분 나쁘게) 여겨 마음을 닫고 듣지 않는다면,
그 기독교인들은 죽은 후에 백 보좌 심판을 받고 유황 불못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아합 왕이 “[길르앗 라못]을 아람과 싸워서 빼앗겠다.”고 하는 고집과 욕심을 버리고,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좋은 마음으로 ‘길하게’(듣기 좋게) 여겨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금의 기독교인들도,
“탐심은 우상숭배이며”(골3:5) “우상 숭배자는 유황 불못에 들어간다.”(계21:8)라고 하는 말씀을 좋은 마음으로 ‘길하게’(듣기 좋게) 여기면,
죽은 후에 유황 불못에 들어가지 않고 영원히 천국에서 복을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두어 말씀만 더 전하고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렘12:6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찌라도 너는 믿지 말찌니라.
‘네 형제’(믿음의 형제)와 ‘아비의 집’(교회)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믿음의 형제들과 교회들이) 네게 듣기에 ‘좋은’(길한=기분 좋은) 말을 할찌라도,
너는 듣기에 ‘좋게’(길하게=기분 좋게) 하는 말을 믿지 말찌니라.
기독교인들은 “믿음의 형제와 교회의 목사들이 듣기에 ‘좋은’(길한=기분 좋은) 말을 할찌라도, 기독교인들은 그 말을 믿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목사들을 세워서 부패하고 패역한 기독교인들에게,
듣기에 ‘좋은’(길한=기분 좋은) 말을 하게 하는, 아첨하시는 하나님이 절대로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말세인 이 시대에 ‘참 목사들을 보내시어’(목사라고 해서 전부 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목사들이 아닙니다),
이 시대의 부패하고 패역한 기독교인들을 엄하게 책망하고, 경책하고, 훈계하고, 권고하고, 권면하게 하십니다.
사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악을’(유대교인들의 신앙을=지금은 기독교 교파의 신앙을) ‘선하다’(착하다=올바르다) 하며,
‘선을’(예수님과 제자들의 신앙을=지금은 성경말씀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려고 애쓰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악하다’(착하지 않다=올바르지 않다) 하며,
‘흑암’(사람의 계명=교파의 교리와 세상 철학과, 세상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와, 예화집에서 뽑은 예화 설교,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 등)으로 ‘광명을 삼으며’(빛으로 여기며=진리로 여기며),
‘광명으로’(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말을=성경을 바르게 전하는 말을) ‘흑암을 삼으며’(어두움으로 여기며=비진리로 여기며),
‘쓴 것으로’(쑥물을=사람의 계명을) ‘단 것을 삼으며’(달게 받아들이며=길하게 여기며),
‘단 것으로’(성경을 바르게 전하는 말을) ‘쓴 것을 삼는’(욕으로 여기는=흉하게 여기는), ‘그들은’(그런 신앙을 하는 기독교인들은) 화가 있을찐저.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신앙을 하였듯이, 말세인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인들 중의 많은 사람들 또한 이런 신앙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거짓말하는 영]을 받아서 세상적으로 적당하게 전하는 목사들의 말을 ‘듣기 좋아하지’(길하게 여기지) 마시고,
자신들의 영혼을 위하여 성경말씀을 정직하고 바르게 전하는 목사들의 말을 ‘듣기 좋게’(길하게) 여기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할렐루야!
전 화: 010 – 2821 - 5588
부족한 종 전대복 올림
[보태는 글]
구약시대든지 신약시대든지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바르게 전한 미가야와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과,
베드로와 사도 바울과 같은 사도들을, 그 시대의 많은 믿는 사람들이 미워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말세인 지금 이 시대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사람을,
또한 이 시대의 많은 믿는 사람들이 미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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