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옛날 문화를 떼어 버리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살아요 = 출애굽기33;1-35(210815)

열려라 에바다 2021. 8. 12. 11:17

 

PW : 믿음       BIW : 버리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케케묵은 옛날 문화를 버리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높고 깊고 넓은 하나님의 사랑

어떤 사람이 강원도 삼척 동해안에 아름다운 별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해안 한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동해바다를 향해 불쑥 나와 있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은 사랑하는 딸을 데리고 바위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아버지와 딸이 바위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는 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애야, 위를 올려다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아래를 내려다보아라.”
아버지의 말대로 딸은 하늘이 비추어주는 넓은 동해바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이번엔 저 앞을 내다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했습니다.
“내 딸 영미야, 이처럼 높고 한없이 깊고 끝없이 넓고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란다.”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딸은 아버지를 향하여 “아빠, 하나님의 사랑이 이처럼 높고 깊고 끝없이 광활하다면 우리는 그 한가운데서 사는 거네요.”하고 똑똑히 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딸의 이 말을 평생 잊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깊고, 넓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모든 것을 넉넉히 품고도 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높고 넓고 깊고 광활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품으면서 십자가의 사랑과 복음을 보여줍니다. 아멘.

P4.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미리 천사들을 보내서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을 쫓아내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모든 것들을 준비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래부터 완악하고 뻣뻣한 백성들임을 익히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진노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실까 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순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3절에서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조상들에게 약속해 주신 땅, 가나안 땅으로 올라간다 한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올라가지 않으신다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올라가지 않으면 껍데기는 올라가는 것이지만, 알맹이는 올라가지 않는 꼴이 된다.
껍데기만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 출애굽하여 시내 광야까지 이동하여 왔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행하시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 올라간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지 않나?
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올라간다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동행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안 계시는 가나안 땅이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올라갈 이유도 없고, 혹 올라간다 해도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여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지 않겠다고 결단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돌이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의 마음이나 생각이나 뜻을 돌이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와 뜻과 계획을 돌이킬 수 있도록 노력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돌이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급선무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와 계획을 돌이킬 수 있을까?
하나님은 진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D4.

① 이방 장신구들을 떼어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4-5에서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여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지 않겠노라고 하시는 말씀을 백성들이 듣게 된다.
이 말씀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였다라고 성경에서는 말씀하고 있다.
본래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않는다는 말은 백성들이 자신들의 몸에 장신구를 달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더라도 동행하지 않겠노라고 말씀하시기 전에는 자신들의 몸에 장신구들을 치렁치렁 달고 다니면서 몸단장을 했다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왜 백성들은 자신들의 몸에 장신구들을 치렁치렁 달고 다니면서 몸단장을 했던 것일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살았던 곳은 다름 아닌 애굽이라는 나라이다.
애굽이라는 민족은 각종 잡동산이 신들을 신봉하기 위하여 갖가지 장신구들을 몸에 치렁치렁 달고 다니면서 그 신들을 섬기는 민족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고센 땅에서 애굽인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430년 동안 애굽인들이 살았던 문화, 풍습, 습관, 관습, 신앙을 보고 배우면서 살았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의 몸에 이상한 장신구들을 치렁치렁 달고 다니는 것이다.
무당들이 여러 칼라의 무의(巫衣, 무당 옷)를 입고 몸에 방울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장신구들을 치렁치렁 달고 이상한 말을 하고 춤을 추면서 굿을 하는 것과 똑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갈 수 있는 명분을 세우는 것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몸에 치렁치렁 달고 다니는 각종 이방신들을 섬기는 장신구, 패물을 떼어 버리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결단을 보여주면 하나님께서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 보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잡동산이 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미련없이 떠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창세기 34, 35장에서 야곱의 일행들이 숙곳에서 딸 디나가 성폭행을 당하고, 아들들이 할례 제도를 활용하여 세겜성 주민들을 학살하고 노략한 사건으로 인하여 큰 두려움을 느낀 야곱이 숙곳을 떠나 벧엘로 올라가려고 할 때, 야곱의 일행들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품고 왔던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내어주고 야곱은 그 모든 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어 버리고 벧엘로 올라가는 것과 똑같은 모습이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시는 견고했던 하나님의 마음이 풀릴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바뀔 수 있는 명분을 백성들에게 보여 달라고 요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6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 내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호렙산은 시내산의 한 줄기이다.
호렙산을 시내산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시내산을 하나님의 산 호렙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부터 가지고 나온 모든 이방 신상들과 이방 신들을 섬기기 위하여 치렁치렁 달고 다니던 모든 장신구들을 떼어 내어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와 계획과 뜻이 바뀔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② 하나님께 떼를 쓰라고 감동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

모세는 하나님을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죄를 위하여 끊임없이 탄원하며 간구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을 멀리 떠나서 장막을 세운다.
모세는 그 장막의 이름을 “회막(tent of meeting. the Tabernacle of the congregation)”이라고 부른다.
여호와 하나님을 앙모하며 경외하는 이들은 회막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장소를 특별하게 정해주는 것이다.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마다 백성들은 자기 장막에서 나와서 모세가 회막으로 들어갈 때까지 바라본다.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게 되면 백성들은 자기 장막에서 다 일어나서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한다.
회막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주 친한 친구처럼 대화하신다.

모세는 이 회당에서 하나님을 만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탄원하며 간구하는 것이다.
12-13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라고 탄원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지 않겠노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바꾸어달라고 애원한다.
모세는 거듭거듭 탄원하며 간구한다.
모세는 16-17절에서도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라고 탄원하며 간구한다.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 신앙의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탄원하며 간구하는 것이다.
어쩌면 신앙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애절한 마음으로 간구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온전하게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요 의무이지만, 신앙인들은 손바닥 뒤집듯이 변덕이 심하여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갈대처럼 변하는 것이 신앙인들의 약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인들은 다시 오직 메시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간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쩌면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이기적이고 뻔뻔한 모습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 신앙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애절한 마음으로 탄원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③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

모세가 애절하게 탄원하며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15절에서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백성들과 함께 올라가겠노라고 말씀하신다.
17절에서도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모세를 위해서라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거듭거듭 약속해 주신다.
모세의 애절한 탄원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뻣뻣하고 목이 곧은 백성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지 않겠다는 뜻을 돌이켜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겠노라고 거듭거듭 약속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사람들이 애끓는 간구에 하나님의 굳은 마음도 슬슬 녹아내려서 뜻과 의지와 계획을 바꾸신다.
하나님은 신앙인들의 기도와 간구를 거절하지 않으신다.
신앙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본래 갖고 계셨던 뜻과 의지와 주권도 바꾸신다.
하나님은 신앙인들이 기도할 때 무척이나 약해지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신앙인들이 기도할 때 무척이나 약해지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간구하는 기도의 제목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 주시고 해결해 주시고 역사해 주신다.
지금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문제들, 우리들 스스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 덩어리를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와서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만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다.

④ 하나님의 등을 보여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겠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모세는 아직까지도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모세는 하나님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간청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셨던 마음을 바꾸셨음을 자신에게 영광으로 보여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아주 친절하게도 19절에서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주겠노라고 확신을 심어주신다.
하나님은 모세 앞에서 지나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겠노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얼굴은 보여주지 않고 지나가시는 등의 모습만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신다.
20-23절에서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직접 하나님의 모습을 영광으로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면서 하나님께서 지나가시면서 하나님 등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사람이 해로움이나 재앙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 신앙인들의 안위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겨주시는 분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뵈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하나님을 뵈는 열정 때문에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선을 넘게 된다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안위와 안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 경계선을 정해주시고, 지켜나가기를 원하고 계신다.

L4 & B4.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며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고 준행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실제 우리들의 삶을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을 따라서 살아간다기보다는 본인의 의지, 본인의 생각, 본인이 살아가는 삶의 패턴을 따라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사고 있다고 자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목사인 내 자신이 내 자신을 냉혹하게 판단하고 관찰해볼 때면,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내 삶의 방식에 이용할 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방식에 순응하면서 내 의지와 마음과 생각과 지식을 온전하게 하나님께 맞추어서 사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많이 든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심장과 마음은 허울 좋은 메시지에 불과하고, 모든 부분에 내 자신의 판단기준이 최우선되어 결정하고 그 결정을 따라서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목사라는 명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목사로 인정해 주면 우쭐해지고, 나를 목사로 알아주지 않으면 심통이 나고 분노를 일으키고 괜히 트집을 잡는 내 모습을 볼 때가 많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온전한 뜻과 의지와 계획을 잘 깨닫고, 하나님께서 가지신 뜻과 의지와 계획을 믿음으로 받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야 할텐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수치스럽기만 하다.

이제부터라도 처음 목사로 임직을 받았을 때 가졌던 순수함을 회복하여 초심견인(初心牽引)하는 마음의 자세로 돌아가야겠다는 결단을 해야겠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세심하게 새겨보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준이 최우선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더 믿음으로 붙들며 살아가자.

세상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살아가지 않나? 그러니 우리들도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지 않나? 하는 안일한 생각과 자세에서 이제는 ‘정말 하나님이시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실까?’를 먼저 생각해야겠다.
아무리 세상의 원리에 따라서 합당하고 다들 그렇게 살아가지 않나? 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법칙과 기준에 따라서 합당하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의 문화, 전통, 관습, 습관, 기준, 법, 규례보다도 하나님의 말씀과 기준이 더 앞서야 함을 결단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니까 우리 신앙인들도 덩달아 그들처럼 생각하고 그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YES라고 하는 것이면 합당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NO라고 한다면 불의한 것이다.
세상의 기준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이 우선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의 기준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장신구, 패물을 떼어 내어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들에게는 세상의 온갖 장신구들, 패물로 치렁치렁 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떼어 내어 버려야 할 것들은 없을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떼어 내어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온갖 장신구들, 패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살면서 몸에 밴 케케묵은 옛날 애굽의 문화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애굽을 떠나서 출애굽하여 시내 광야에까지 이동하여 살면서도 하나도 이상하다라고 여기지 못했던 것들이다.
어쩌면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기면서 몸에 한 부분인 것처럼 여겨졌던 것들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모든 장식구들, 패물들을 떼어버리라고 아주 강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만약에 그런 장식구들, 패물들을 떼어 내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절대로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실 정도로 하나님은 매우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도 하나님께서 매우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온갖 장신구들, 패물들을 과감하게 떼어 내어 버리는 결단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나 살아가는 방식이나 패턴이나 프레임과 같은 케케묵은 옛날 전통문화를 미련없이 버리고 하나님의 신령한 것들로 바꾸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② 하나님 앞에서 울고불고 매달리며 간구하는 삶을 살아보자.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떼를 쓰면서 자기 민족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서 가나안 땅으로 함께 올라가 달라고 애절하게 애원하며 간구하였듯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과 축복을 베풀어달라고 하나님 앞에서 울고불고 떼를 쓰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겠다.
우리들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하고, 목사님, 사모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과 같은 호칭을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더라도 우리들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애들의 특색은 철저하게 자기편이라고 마음에 확신하는 이들에게는 막무가내로 떼를 쓰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애쓴다.
그런 방법만이 자기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방법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때로는 매를 맞으면서도, 때로는 심한 욕을 들으면서도 울고불고 떼를 쓰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선 우리들 자신은 우아하고 매너있고 고급스럽게 보이지 않아도 좋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애들처럼 떼를 써야 한다.
어린아이들이 떼를 쓰는 것은 일종의 어린아이들이 가진 특권이다.
우리 신앙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떼를 쓰며 기도할 수 있는 것도 신앙인들이 가진 특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부여해 주신 특권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죄라고 하면 죄가 될 수 있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 쉬는 죄를 결코 범하지 않겠다라고 결단한다.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께 쓰임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떼를 쓰면서 기도한 사람들이다.
여호와 하나님께 떼를 쓰며 간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신 분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신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떼를 쓰며 간구하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8:26-27절에서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찾아오셔서 떼를 쓰며 기도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와 담대함과 결단을 심어주신다.
우리들의 약하고 부족한 여건과 처지 때문에 낙심하면서 주저주저하고 주저앉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하늘 아버지께 떼를 쓰면서라도 간구하는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져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너무나 고통당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사회를 위하여, 선교사님들의 선교지를 위하여, 우리교회와 한국교회를 위하여, 우리 가정과 생업터전과 자녀들을 위하여, 온갖 질고와 아픔을 이겨내고 치료와 회복의 은혜를 달라고 하나님을 향하여 떼를 쓰면서라도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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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① 프레임설교의 이론과 실제(1권, 2권)
② 청중마음열기 2권(유머편, 예화편)
③ 감(感)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
④ 은혜로운 물 붓기
⑤ 성경의 여인들 이야기 3권(구약1권, 2권, 신약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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