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시33:18-19]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열려라 에바다 2022. 5. 31. 08:07

33편 18절-19절: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18절: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여호와께서 어떤 사람을 살핀다고 하느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곧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다. 그러면 인자하심이 뭐냐? 일반적으로 자비심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이런 게 다 인자다. 참아주시고, 견뎌주시고, 기다리시는 게 다 인자에 속한다. 사랑이 아니면 이와 같은 마음이 없는 거다.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신다는 것인데, 인간들에게 사랑과 긍휼을 바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바라는 자를 살피신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 앞에 보여지는 것과, 하나님 앞에 보여지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고 사랑함을 받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한다. 바꿔서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바란다.

 

우리가 이걸 생각해 보면 길을 갈 때 엎드려서 동냥을 하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서 ‘내가 이 사람에게 돈을 던져줄 테니 그 대신 나에게 복을 많이 주옵소서. 그러면 하나님께 십일조도 하고 감사헌금도 많이 하겠습니다’ 라고 하며 거지에게 돈을 주는 사람과, 동냥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에게 돈을 주려고 할 때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나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구나’ 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라고 하는 사람 중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시겠느냐?

 

자기 자신을 쳐다보면서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구나. 내 속에는 악한 것만 있고, 앙칼진 것만 있고, 모난 성질만 있구나.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구나. 내가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의 부자가 되어야 하겠는데 그렇지 못하구나’ 하면서 ‘이 면에 가난한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한다면 이건 옳은 마음이고 옳은 정신이다. 이런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다.

 

나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풍부하게 들어오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순종을 해야 한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뭘 보겠느냐? 성경을 본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이 깨달아지고 그 마음이 자기에게로 들어온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예수 믿으면서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 세상 쪽으로 자기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지 하나님의 것을 욕심을 내며 그것을 얻고자 하고, 하나님 것으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하나님께서 인생을 살핀다고 했는데 왜 살피는 거냐? 하나님의 것을 구하는 사람을 두들겨 패려고 살피는 거냐? 하나님 것을 주려고 살피는 거다. 그러니까 믿는 우리가 세상 것이 아닌 하나님 것을 받고 싶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것을 주신다. 하나님의 것을 잘 받는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 당신이 보시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이것도 좀 써 봐라. 이것도 좀 써 봐라’ 하며 주시는 거다. 믿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자식은 누구의 말씀을 귀담아 듣느냐? 부모님 말씀을 귀담아 듣는다. 부모님이 얘기를 하는데도 귀담아 듣지를 않는다면 이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거냐? 사랑하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진리이치의 말씀을 들으면 영특해진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수많은 이치가 들어있기 때문에 진리이치를 들으면 이 사람은 자꾸 깨우쳐 나가게 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며 아무리 오래 살아봐야 100년 안팎인데, 세상에 사는 동안에 고생을 하고 좀 못 살지라도 진리이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늘나라에 갔을 때 그 나라가 전부 이 사람의 것이 된다. 그러나 ‘예수 믿어 세상에서 부자 되자’ 라고 하는 사람은 세상정신으로 미련하게 되고 천국에 가도 자기 것은 없다.

 

우리가 세상의 것은 가지고 있지 않을지라도 자기 속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지면 이 사람은 부자다. 하나님의 것으로 깨달음의 부자요, 하나님의 사랑의 부자다. 하나님을 많이 깨달으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거다. 이 사랑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서 마음대로 쓰고, 마음대로 누리는 게 진짜 부자다. 영원한 부자다.

 

우리 믿는 사람은 모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한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경외하는구나’ 하는 이 마음을 하나님께서 살피실까, 안 살피실까? 살피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내 마음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서도 세상 속화된 교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자기 주관성대로 먹고 마시는 의식주에 대한 소원 목적을 세워놓고 그걸 자꾸 이뤄달라고 한다.

 

입으로는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기도한 대로 이뤄준다’ 라고 하면서 이런 기도를 하고 있으니 그럴 바에야 이것저것 작은 것을 이루어 달라고 하지 말고 세상에서 일등부자로 만들어 달라고 하라. 기도한 대로 하나님께서 이뤄준다고 하면 이왕 구할 바엔 한꺼번에 큰 것을 구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가만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자기에게 얼마나 속는지 모른다.

 

우리는 불타고 없어질 세상 것을 구하지 말고 ‘나에게 하나님을 주십시오. 내 마음이 넓으니 내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오십시오. 신령계 물질계가 다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의 것을 나에게 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하라.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 들어있고, 그런 말씀으로 되어있고, 나에게 필요한 것으로 되어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고 싶은 것으로 되어있고, 하나님의 소원 목적을 내 소원 목적으로 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예수 믿는 우리가 이런 마음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19절: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사망이 뭐냐? 사망은 죽은 것. ‘사망했구나’ 할 때는 죽은 것. 사망계로 가는 것은 죽어가는 것,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죽는 것. 그러니까 사망운동은 살리는 운동이냐, 죽이는 운동이냐? 죽이는 운동이다. 죽이는 운동을 하면 할수록 다 죽는 거다. 반대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에, 영생에, 영원에 삼킨바 되게 하라’ 하는 것은 살리는 것이요, 이게 자유다.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누구의 영혼? 나의 영혼이다. 이 말씀은 18절에서 이어오고 있는 거다. 즉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영혼을 죽는 것에서 살려낸다는 거다. 뭐가 사망이냐 하면 진리의 말씀에 피동되지 못한 삶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진 것은 영원히 사는 것, 영생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시시 때때로 내 속에서 고약한 생각이 나오기도 하고, 나쁜 성질도 튀어나오고, 욕지거리도 나온다. 지금까지 예수 믿으면서 안 믿는 사람들처럼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는 사람이 있느냐? 우리는 욕을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욕을 잘하는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아라. 그 욕이 금방 옮아온다.

 

자기의 생각 마음 정신 이해타산 평가성 소원 목적이 전부 진리로 되어있으면 이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지, 그러니까 생계를 위해서 돈을 벌고,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해도 전부는 살려내는 쪽으로 들어가 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서 자기의 소원 목적이 세상으로 되어있으면 이 사람은 그 정신 자체가 땅으로 되어있고, 아래로 되어있다. 이건 사망이다. 다 죽는 거다. 살아나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서 ‘세상에서 부자 된다. 만사형통 된다’ 이런 쪽으로 나가는 사람은 지혜지식이나 도덕성이 하나님의 것으로 깨닫고 자라는 게 없다. 이러면 아무리 오랫동안 예수를 믿는다고 할지라도 생명적으로 자라나는 것도 없고 생명적으로 살아난 것도 없다. 다 죽은 거다. 죽었기 때문에 자기 속에서 살아나오지 못하는 거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라는 말씀이 있는데, 누구에게?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으니 이 말씀을 따라 살면 자기의 정신이 살되 영원히 살고, 지혜지식성이 살고, 도덕성이 산다. 이 사람의 정신은 산 정신이다.

 

사람이 죽은 정신이 있고 산 정신이 있는데,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은 그 정신이 죽었다. 다 세상으로 향해져 있다. 그 정신은 심판받을 거고, 그 정신으로 움직이는 것마다 다 죽은 거고, 죽을 거고, 하나님의 불심판에 들어갈 거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정신은 살아있는 말씀의 이치를 받기 때문에 자기 속에서 지혜지식적으로 이치가 살아나는 것이 엄청나게 많다. 이것이 많을수록 이용 활용 사용이 많아진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거다.

 

사망은 죽은 것, 그리고 죽어가는 것. 필연적으로 죽어가면서 죽는 게 사망이다. 다른 복음은 사망운동인데, 세상소원 목적으로 예수를 믿게 하고, 그 일을 크게 벌려놓는 것은 전부가 사망운동이다. 이런 일은 해 봐야 소용없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들어간다. 이런 상태로 있었는데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라고 했으니까 사망에서 이제 어디로 나가는 거냐? 생명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사는 쪽으로 간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의 영혼을 죽는 곳에서 건져낸다는 거다. 이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게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되어지는 거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있지만 자기 속에 살려낼 것이 많다. 산 것도 있지만 죽은 게 더 많을 수도 있다. 사망적인 생각, 하나님의 의사단일에 합해지지 않은 것은 전부가 세상적이고, 육적이고, 마귀적이고, 죄적이고, 옛사람 부패성적인 것들이니 전부가 죽을 거다. 그러니까 성경에도 있듯이 이 죽을 것을 그대로 두지 말고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려내야 한다.

 

물속에 떠내려가는 사람을 가만 내버려두면 이 사람이 지금은 살아있지만 가면 갈수록 죽는다. 서서히 죽어가다가 완전히 죽는 거다. 이 사람을 건지려면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물에 뛰어들어서 끄집어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물결 세상유행의 바람에 빠졌다면 이 사람은 신앙 믿음이 죽어가고 있고 죽은 건데, 이것에서 끄집어내서 살리려면 진리이치의 말씀을 주어서 그 사람 속에 들어있는 사망적인 정신 사상 소원 목적을 생명적인 것으로 바꾸게 해야 한다.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우리가 사망을 알아야 한다. 신앙 면의 사망적인 정신, 사망적인 생각을 알아야 한다. 죄로 된 것은 전부가 사망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망적인 정신 사상에 빠지지 않으려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되 바른 곳에서 섬겨라. 바른 곳에서 경외하라. 진리이치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섬겨라.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예배를 하려면 어디로 오라고 하느냐? 성전으로 와라. 성전에 뭐가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는 법궤가 있다. 그래서 오라는 거다. 이게 무슨 뜻이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라고 했으니까 이치의 말씀이 있는 곳에서 예배를 하라. 그래야 네가 산다 그 말이다. 네 영혼이 사망에서 생명 쪽으로 산다. 그걸 알아라.

 

사망에서 건진다고 하는 것은 세상에 빠져있는 마음, 세상 쪽으로 향한 정신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해서 하나님의 심판에서 건져내는 거다. 세상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생명 쪽으로 건져내는 거다. 이게 기독교고, 이게 교회의 교훈이다. 이게 신앙이다.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기근은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는 상태다. 하늘에서 비가 안 오면 땅이 마른다. 땅이 마르면 산천초목도 다 마르고 죽는다. 이러면 그걸 뜯어먹고 사는 동물들도 목이 갈하고, 그 다음에 서서히 죽는다. 하늘로부터 비가 안 오면 정말 비참하다. 결국은 인간도 죽는 거다. 비가 와야 농사도 짓고, 풍부해지고, 풍부해지면 그곳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고, 이러면 그곳에 도시가 생긴다. 알고 보면 이게 하나님의 덕이다. 하늘로부터 비가 안 오면 전부가 사하라 사막처럼 돼버린다.

 

그러면 이런 걸 왜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거냐? 영적인 차원에서도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영적인 면에서 빼빼 말라 비틀어져 버린다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영적 깨달음으로 오는 은혜, 성령의 역사로 되는 말씀의 이치의 깨달음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이렇게 되면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정신적 차원은 일반사람과 똑같다. 이치가 이렇게 된다. 교회가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그 다음에는 실질적으로 위로부터 오는 비가 끊어진다. 다시 말하면 일반은총이 중단이 돼버린다.

 

아직까지 가뭄이 오고, 햇빛이 나고, 비가 쏟아지고, 한쪽 구석에서는 홍수에 뭐가 떠내러 가고 하는데 이건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다. 왜 홍수를 내는 거냐? 인간들이 하도 더러운 찌꺼기를 내놓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청소를 하려는 거다. 지진은 왜 내는 거냐? 하나님께서 왜 지구를 흔드는 거냐? ‘너희 아파트가 얼마나 튼튼하냐?’ 하고 흔들어 보는 거다. 지진에 아파트가 넘어가면 ‘튼튼하게 못 지었구나’ 이게 드러나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의 깨달음이 없으면 사람이 안 된다. 속사람이 일반사람과 똑같다. 이렇게 되면 일반은총마저도 끊어지게 된다. 일반은총이 끊어지면 짐승이 먼저 죽는다. 그러니까 일반은총이 끊어져서 짐승이 죽는 것은 그 짐승이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인간들의 죄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만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를 한다고 했다. 인간들이 죄를 지으니 그 죄를 깨닫게 하고 그 죄를 심판하느라고 인간들에게 홍수나 가뭄이나 기근이나 지진이나 전쟁 등을 동원하다 보니 그로 인해서 나무도 죽고 짐승도 죽고 한다. 그러니 믿는 우리는 인간들로 인해 만물이 고통하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예수 믿는 자기는 느낌에 있어서 민감해야 한다. 만물이 고통하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인간아, 제발 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라. 그래야 우리가 심판을 안 받는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 우리만 얻어맞고 우리만 죽는다’ 라고 하는 만물의 고통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 때문에, 특히 예수 믿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를 하는 거다.

 

예수 믿는 자기가 현재적으로 잘 못 믿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 세상을 불바다를 만들어 놓지 않는 것은 누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기 때문에. 그 내가 어떤 나냐? 하나님을 섬기는 나를 말한다. 예수 믿는 나를 깨닫게 하고 바로 만들어지게 하려고 아직까지 세상을 그대로 두는 거다.

 

신앙정신 사상적으로 보면 비진리적 육적인 세상 속화된 기독교가 자꾸 불어나면 영적인 면에는 흉년이 든다. 이렇게 되면 교인들이 진리말씀을 먹을 수가 없다. 생명의 옳은 꼴을 먹을 수가 없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목사님들의 세계가 정말 큰일이다. 성경의 ‘성’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목사라고 하며 모여서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이건 기독교가 흉년이 든 거다. 보통 큰일이 아니다. 심판이 오면 교회부터 올 거다.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평소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자기 속에 하나님의 것이 없어서 애타하는 성도에게는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혜가 중단이 될 때라도 어떤 면으로건 살게 하신다는 거다. 말씀으로 살게 하신다. 우리가 이걸 알아야 한다. 육신적으로는 먹을 것이 풍부한데 자기가 옳은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수 없다고 하면 이건 기근이다. 그런데 육신의 것은 가난하고 먹을 게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수 있다고 하면 이 사람은 육신적으로 풍부해질 가능성을 앉고 있는 거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기름진 요단들을 보고 아브라함을 떠나서 그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소돔 고모라 성의 화려한 필딩들이 있는데 그것을 보고 그리로 들어갔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친구처럼 사이가 좋기 때문에 롯이 이 삼촌 아브라함 옆에 있으면 늘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수 있는 거다. 그런데 롯이 화려하게 보이는 소돔 고모라 성으로 이사를 갔으니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수 있느냐? 먹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 성의 죄를 심판하려고 할 때 아브라함이 그곳에 사는 조카의 가족을 염려해서 처음엔 50명으로 시작해서 10명까지 협상을 했음에도 결국 그곳에 의인 10인이 없어서 심판을 당하고 말았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신앙교육을 받은 롯이 사는 곳에 의인 10인이 없어서 결국은 심판을 받은 이게 뭘 말하는 거냐?

 

소돔 고모라 성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리는 없는 거고, 50명을 말한 것은 롯의 종들을 말하는 거다. 롯은 물론이고 그 종들 모두가 소돔 고모라 성의 아가씨들의 미소에 다 넘어가 버렸다고 보여진다. 결국 롯이 그곳으로 들어가서 전도를 했느냐? 전도는커녕 그곳의 화려함에 취해서 신앙정신을 다 버렸고, 그러니 롯의 종들 역시 소돔 고모라 성의 술집으로, 노래방으로, 오락실로 다 들어가 버린 거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롯의 신앙상태가 풍년이겠느냐, 흉년이겠느냐? 흉년이다. 정신상태가 빼빼 마른 거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풍년이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런 장면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부자로 살아도, 아무리 먹을 것이 풍부해도 진리의 옳은 말씀을 들을 수 없고 깨닫는 게 없다면 ‘아, 이 사람은 기근이, 흉년이 들었구나’ 이렇게 되는 거다. 이 사람은 벌써 정신 면에, 생각 면에 타락이 된 것이고, 이 사람 속에는 본능적으로만 사는 짐승 같은 사고방식이 들어있다. 분명히 그렇다.

 

아합 왕 때에 3년 6개월 동안 흉년이 들었는데, 이는 왕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떠났다. 오늘날도 세상 속화된 기독교가 모양적으로는 ‘예수 어쩌고’ 하지만 정신 사상적으로는 하나님의 본질에서 떠난 신앙이다. 떠났기 때문에 세상을 구하는 거다. 이건 신앙 면에 흉년이 든 거다.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영혼을 건지신다. 그리고 아무리 기근이 들어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살게 하신다. 그 방편이 신실한 종들을 붙잡고 오시기도 하고, 영감의 감화성으로 오시기도 하고, 영광 육을 분리시켜서 선택하여 살게 하기도 하시고,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의 은혜의 말씀을 주어서 살게도 하신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자는 총명하게 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차원에서도 지혜가 나오고 사는 방식이 인도가 되는 거다.

 

하나님을 바라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실한 종들을 보내서 수종을 들게 한다. 왜냐하면 이게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는 거니까. 그리고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한다. 누구로 통해서? 신실한 종들로 통해서, 성령의 감화로 통해서, 말씀을 깨닫게 해서. 이런 게 다 하나님의 역사다. 그래서 옳게 바르게 예수를 믿으면서 한 3년, 한 5년, 한 10년만 지나고 나면 사람이 확 달라진다. 이것을 너희들 눈으로 실질적으로 보게 된다.

 

옳은 진리이치의 말씀을 듣는 성도가 한 5년, 혹은 한 10년이 지난 후에 진리의 말씀을 먹지 않는 세상 속화된 교회에 다니는 성도와 비교를 해 봐라. 한 10년만 지나도, 아니 한 5년만 지나도, 아니 1년만 지나도 확 다르다. 다른 교회에 다니다가 여기(주-김경형목사님과 김정학목사님이 궁극교회와 포도원제일교회에서 신학생 및 교역자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 나와서 한 1년 정도 배운 목사님이 계신데, 이 분이 얼마 전에 그전에 같은 교회에 있던 목사님을 만나서 얘기를 해 보니까 이 목사님이 그 전에 같은 교회에 있던 목사님보다 실력이 훨씬 더 위라. 그래서 그 목사님도 공부하러 나오고 있다.

 

예수를 믿는다면 교회가 어떤 곳이고, 성도는 어떻게 자라야 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자기에게 어떻게 진행이 되는 것인지를 알고 그 효력을 봐야 한다. 교회에 다니면서 헌금만 갖다 주고 깨닫는 것이 없다고 하면 뭐 하러 교회에 다닐 거냐? 그래서는 안 된다. 한 생명이 귀하다고 하지만 사람이 배우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짐승과 같다. 그러니 뭐가 귀하냐?

 

일반세상에서도 국가적으로 옳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을 기념하지 않더냐? 일반적으로도 그러는데 예수를 믿는다면 하나님 앞에 바로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다 받고 가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이방 불신세상이 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놓일지라도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해주는 면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면 믿는 효력을 볼 줄도 알아야지 믿는 내가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이 취급을 받을 바에야 뭐하려고 예수를 믿느냐? 정신 사상 소원 목적이 일반사람들과 똑같을 바에야 뭐하려고 교회에 다니느냐? 진정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느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